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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가슴이 뛰네 여름이가 곰 인형을 안고 “어 가슴이 뛰네!” 했을 때도, 고임이가 받아들고 “어, 정말 가슴이 뛰네!” 했을 때도, 그들의 성화에 사모님이 곰 인형을 받고 “어, 정말이네!” 했을 때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돌아간 후 집 사람이 “어 정말 가슴이 뛰네!” 놀라 말했을 때도 그랬다. 혹시나 싶어 손을 갖다 댔을 때 분명 곰 인형의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있었다. 윗작실 아기 난 집 선물 하려고 오천 원에 두 마리 길거리에서 산, 한 마리 보내고 한 마리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은 노란색 작은 곰 인형, 곰 인형의 가슴이 정말로 뛰고 있었다. 덩달아 뛰는 가슴, 아, 가슴이 뛰네. - 1987년 2021. 9. 6.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였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저녁예배를 드리러 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교회로 가던 도중에서 살해되었다. 이곳 섬뜰에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 바로 옆동네 조귀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주일 저녁,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연결하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교회로 가던 할머니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뱀을 잡는 30대의 땅꾼이었다 한다. 사건 당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지만, 술 먹은 사람끼리 싸우는 것인 줄 알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를 목 졸라 죽이곤 할머니 가방 안에 들어있던 600원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해됐다는 사실보다는 그 할머니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 사람들의 얘깃거리였다. 호기심조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2021. 9. 5.
불씨 ‘목회수첩’을 쓰기가 점점 어렵다. 실은 쓸 만한 얘기 거리들도 별로 없다. 뭔 좋은 소식이라고 어둡고 눅눅한 얘기들을 굳이 계속 쓰는가. 아프고 설운 얘기들, 결국은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의 이야기인데. 그걸 나는 무슨 기자나 된 듯 끼적이고 있으니. 그러나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한 멈추지 않기로 한다. 고발이니, 의미 부여니, 변명처럼 이유를 댈 건 없다. 그냥 하자. 화로에 불씨 담듯 아픔을 담자. 꺼져가는 불씨 꺼뜨리지 말자. - 1987년 2021. 9. 4.
황금빛 불 저녁 하늘 가득 홍시 빛 노을 시샘하듯 그 빛에 반해 황금빛 불 벌판에 번진다. - 1987년 2021. 8. 31.
개미를 보며 전에 없던 개미가 방안을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밖으로 집어 던졌지만, 그래도 없어지질 않아 파리채로 잡기 시작한다. 왜 갑자기 개미가 생겼을까? 개미를 불러 들일만한 맛있는 음식을 방안에 둔 건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이유를 미루어 깨닫는다. 여름을 보내며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파리 잡기였다. 주위에 소를 키우는 집이 많다보니 파리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파리채로 잡은 파리들을 뒷문을 열고 뒤꼍에 버리곤 했는데 그게 바로 개미가 생긴 이유였을 것이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개미가 그곳에 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뒤 한두 번 더 지날 때도 먹을 것이 풍족히 있음을 알게 되자 친구들을 불렀지 싶다. 그 깨달음이 묘하게 나를 흥분시킨다. 조급하게 결과에 집착하여 실망해선 .. 2021. 8. 30.
너무 하신 하나님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그래도 살아 볼려구 들에 나가 곡식을 심었는데, 어제 나가보니 때 아닌 서리로 모두 절딴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먹을 게 없습니다. 이번 추석만 지나면 어디론가 나가야 되겠습니다. 식모살이라도 떠나야지요.” 새벽 기도를 하던 한 성도가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그의 기도는 늘 그런 식이다. 미사여구로 다듬어진 기도와는 거리가 멀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다 말할 뿐이다. 한 여름 내내 비로 어렵게 하더니, 이제는 뜻하지 않은 서리로 농작물을 모두 태워 죽이다니, 두렵지만 하늘이 야속하다. 땅에 곡심 심고, 그리곤 하늘 바라고 사는 사람들, 더도 덜도 없는 땅의 사람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고 밤사이 서리가 내린 것이 도시 사람에겐 그저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2021. 8. 29.
자연스러운 과정 미영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올해 94세시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잔 빨래도 하고, 또 가끔씩은 햇볕을 쬐기도 하던, 연세에 비해 귀가 무척이나 밝으신 분이셨다. 곡기를 끊은 지 며칠째 되는 날, 곧 돌아가시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자리에 누워 계신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호흡이 가빴다. 물도 마시지 못하셨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살피시는 것이었다. 군에 간지 얼마 안 되는 맏손자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두곤 쉬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 떠나는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결국은 맏손자를 보지 못하신 채 다음날인 추석 오후 1시경에 돌아가셨다. 모두들 할머니.. 2021. 8. 28.
편지꽂이 최완택 목사님의 엽서.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무엇보다 사람들을 情으로 만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짧지만 좋은 격려였다. 누런 서류 봉투를 이용해 편지꽂이를 만들었다. 앞면엔 민들레 그림과 함께 짧은 글을 썼다. 먼 길 달려와 민들레 꽃씨로 가슴에 안기는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 우리 기억하는 사람들 우리 사랑하는 사람들 고향 산 마주하고 ‘훠-이‘ 부르면 언제나 대답하는 사람들. 그리운 사람들의 그리운 얘기들 차곡차곡 쌓였으면 포도주 단맛 들듯 깊숙이 사랑 이야기 익어 갔으면. - 1987년 2021. 8. 26.
해갈의 기쁨 비가 오셔야 한다고, 꼭 오셔야 한다고, 새벽예배시간 최일용 성도님은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잎담배 밭에 비료를 줬는데 오늘마저 비가 안 오면 담배가 타 죽고 말거라고 애원하듯 울먹였다. 이러단 모판마저 마를 것 같다고, 어제 준이 아빠를 통해 비가 급함을 듣긴 들었지만 그렇게 다급한 줄은 몰랐다. 마루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데 후드득후드득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그래 와라. 신나게 좀 와라.” 그러나 잠시 후 비가 멈추고 날이 갠다. 일기 예보엔 10mm 온다고 했다는데 그것마저도 안 오려는가 보다. 아침상을 물리고 아내와 둘이 마루 끝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어린아이 생떼부리 듯 항의를 한다. “하나님, 이것 갖고 될 줄 알아요. 어림없어요. 하나님 노릇 하기가 그리 쉬울 줄 아십니까. 하나님 체면.. 2021.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