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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7

‘염려’없는 노동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3) ‘염려’없는 노동 - 전집 4권 『성서 연구』 「기독신자의 처세 원리」 - 임금피크제를 놓고 노사정간 의견조율이 안된다고 한참 시끄러웠다. 극적 타결을 보았다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결국 앞으로 차차 의논하며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데‘만’ 합의를 한 모양이다. 그럴 일이다. 서로 “네가 양보해라”라고 주장하는 협상테이블에서 무슨 실질적인 합의가 나오겠나. 직업안정성이 있는 정규직이 날로 줄어드는 이 마당에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정규직 ‘부모’ 세대에게 ‘자녀’ 세대인 청년들의 고용창출을 위해 봉급을 깎자는 정부와 기업의 감성팔이는 생계형 노동현장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정서에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깎아서’ 청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어엿한 직장을 마련.. 2021. 9. 16.
을(乙)의 지형학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을(乙)의 지형학 -「조선지리소고」 1934. 3 - 김교신의 전공은 ‘지리 박물’이었다. 1927년 4월 함흥의 영생여자고등학교를 첫 부임지로 하여 이후 양정고등학교, 경기중학교, 그리고 마지막 송도고등학교까지 약 15년 간 강단에 섰다. 양정에서의 12년이 가장 긴 시간이었고, 늘 ‘사상이 의심된다’거나 ‘불온하다’는 눈초리를 받다 결국 1942년 으로 투옥되면서 교사 생활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그에게서 ‘지리 박물’을 배운 학생들은 회고하기를 그저 딱딱한 지형에 대한 수업이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나 한국 지리를 배울 때면 각 지역에 얽힌 조상들의 얼을 함께 가르쳤으며, 일제가 한글 수업을 금지했음에도 당당하게 조선말로 조선혼을 심어주셨다고 전한다. ‘무레사.. 2021. 5. 23.
버텨라, 버티자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버텨라, 버티자 (조와(弔蛙), 1942년 3월) ‘한 시간에 740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차요원을 꿇릴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던 ‘백화점 모녀’마저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절이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단다. 한참 동면 중인 ‘개구리’도 들었다면 웃을 이야기다.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VIP(아주 중요한 사람)로 자리한 사람에게는 무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표시하는 사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였을까?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데, 그랬다면 740만원 씀씀이나 남편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했을 일이다. ‘내 남편 한 마디면 너희들 다 잘려!’가 어찌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성을 .. 2021. 5. 19.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 첫째로 손 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 간역전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苦)와 쾌(快)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 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 절반 지점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양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 2021. 5. 14.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 1940년 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 2021. 5. 13.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 응답하라. 2021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 응답하라. 2021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1927년으로부터 온 편지 - 창간사 - 1927년 7월, 6인의 조선 젊은이들이 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했다.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의 현재를 암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절보다도, 더 희망이 없던 일제치하였다. 동인 중 하나였던 함석헌의 표현처럼 ‘끌려가듯’ 일본 땅에서 낯선 타자로 살며 바다 건너 조국을 지켜보자니, 젊은 지식인이요 신앙인인 이들의 참담한 마음이 더욱 깊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 시의 스기나미촌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해하면.. 2021. 5. 10.
‘졸업’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들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6) ‘졸업’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들 -「졸업생에게」 1941. 5 - 가까이 아는 아이 하나가 어린 시절 학교 부적응으로 고생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면 ‘당연히’ 적응하기 마련인 선생님의 자리와 학생들의 자리 사이의 경계를 자꾸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무언가 설명을 하실 때 그것이 자기가 잘 아는 주제이거나 다른 생각을 나누고 싶으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와 그야말로 ‘열강’을 한다는 거다. 선생님도 반 아이들도 당황스러워 수업은 늘 ‘엉망’(다수의 표현)이 되었고, 결국 그 아이는 특수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너무나 총명하고 마음 따스한 아이였다. 하여 난 그 소식을 전해 들으며 무척이나 마음이 상했다. 사실 그 아이와 ‘.. 2015.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