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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손
씻은 손 합장하여 하나 둘 셋 물방울 떨구어 종이수건에도 닦지 말고 잠시 그대로 두고 물기가 어디로 가는고 없는 듯 있으면 바람이 말려주고 손이 스스로 손을 말린다 닦지 않아도 닦을 게 없다
2024.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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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예언자가 부르는 아리랑
성경은 악보와도 같다. 악보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일종의 암호다. 작곡가가 음표 하나하나에 새겨넣은 곡진한 마음 그리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심어놓은 살가운 이야기를 누군가 해독해야 한다. 그 역할을 맡은 이가 연주자다. 같은 악보라도 연주자에 따라 달리 들리는 만큼, 연주자의 해석은 무척 중요하다.설교자 역시 연주자다. 단순히 독자이기만 하다면 홀로 성경을 읽고 깨달아 실천하면 그뿐이지만, 설교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말씀의 신비를 풀어헤쳐 청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설교자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이자 설교자에게 현장이 중요한 이유다. 내가 20대에 처음 만난 ‘김민웅’은 설교자의 전형이었다.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가 그의 현장이었고, 거기서 전한 말씀이 《물 위에 던진떡》(한국신학연구소, 1995)으로 ..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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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단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너에게서 보이는 너의 단점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 안에 없는 것은 티끌 하나도 비추어 보일 수 없다는 거울처럼 선명한 이치를 문득 눈치챈 찰라부터 널뛰던 나의 불평은 멈추고 세상의 모든 빛은 나를 향할 뿐 천상천하 유아독존 내가 눈을 감으면 눈앞의 부처도 볼 수 없고 내가 귀를 닫으면 예수의 복음도 들을 수 없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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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단밤
빨간 신호등에 차를 멈추면 창문을 내리고 무조건 내미는 손 손바닥만한 흰 종이 봉투를 열면 무분별지가 하얗게 열린다 다 맛있다 늘 맛있다 배가 고프면 내가 먹고 배가 부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이에게 주고 곱씹은 약단밤을 삼키며 오로지 한 생각 뿐 가지산 너머로 해가 지기 전에 약단밤들 모두 다 따뜻한 손으로 순한 날의 태화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평화의 동해바다로 차도 사람의 발길도 닿지 않으나 모든 생명에게 안전한 그 빈 땅에 멈추어 선 오토바이 한 대 봄날인가 했더니 어느덧 여름인 4월 말 계절을 잊고 웃음 짓는 민들레 한 송이 꽃대 같은 아저씨 그 손에서 피어난 약단밤이 달디 달다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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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목사의 언어, 말, 소리, 메시지
소리 없이 퍼지는 메시지> 시편 19편 시인은 우주에 가득 찬 언어와 말과 소리를 두고서 다음과 같이 읊는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개역/개정 ‘선포하고’, 공역 ‘속삭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간다.”(《새번역》 시편 19:1-4a) 피조물인 하늘과 창공이 말한다. 피조물인 시간(낮과 밤)도 말로 정보를 전달한다. 시인의 역설(逆說)이 나온다. 이 우주에 언어가, 말이, 가득 차 있어도 들리는 소리가 없단다.(안 들려!) 다음 행에서 이 역설이 한번 더 뒤집힌다.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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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믿음으로?
답답한 시절이다. 한 줄기 빛과 한 뼘의 위로조차 절실한 시절이다. 세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고, 새로운 전망은 쉬이 보이지 않는다. 과거와 비교하며 현실을 이야기하기에 젊은 세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난 몇 십년간 우리 세대와 사회가 이룩한 성취들은 다 어디로 갔나? 기나긴 여정 끝에 도달한 곳이 고작 여기란 말인가? 많은 이들의 낙담과 한탄도 이제는 지겹다. 과연 역사에는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인가? 인간의 머리와 가슴으로 쉽게 가늠이 안 된다. 이런 자괴와 혼돈의 시간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이렇게 현재의 조건만을 주목할 때 납득이 가지 않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현실적 조건에 의존하는 해결이라면 그것은 굳이 하나님 나라의 능력에 의존할 이유..
2024.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