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이





싸늘한 벽돌과 
껑껑 언 모래와 
먼지 같은 시멘트

이 셋을 접붙이는 일
이 셋으로 집을 짓는 일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이 차가운 셋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제 살처럼 붙으리라는
강물 같은 믿음으로

나무 토막 줏어 모아 쬐는
손끝을 녹이는 모닥불의 온기와

아침 공복을 채워주는 
컵라면과 믹스 커피

새벽답 한 김 끓여온
생강차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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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빈 가지가 흔들린다
아, 바람이 있다

나에게 두 눈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가 없는 듯

한낮의 햇살이 
슬어주는 잠결에

마른 가지 끝 곤히
하늘을 지우는

보이지 않지만
없다가 있는 듯

앙상한 내 가슴을 흔드는
이것은 누구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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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잎

 



스치는
겨울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내려 주시는 
한 줄기 햇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만 집니다

- 겨울나무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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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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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생 동안 쓰면 되겠네"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백발 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005년 5월 15일 길상사 음악회 때 하늘을 울리던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함께 하신 신청곡

임형주의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듣으며
이어서 12월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나도 참
숨을 되뇌이면서

백팔 번의 엎드림으로 숨을 내쉬고
백팔 번의 일어섬으로 숨을 들이쉬며

땅으로 몸을 굽혀 엎드리지 않고서야
하늘로 머리가 뚫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처럼 단단해진 심장과
굳어진 몸을 조율합니다

백팔 번의 번뇌가
백팔 번의 감사함이 되고

부처의 손가락이
예수의 손가락이 되어서

내 손가락 끝에 걸터 앉은 염주알이 
천천히 숨을 고르듯 노래를 부르듯 굴러갑니다

하늘이 땅이 되던 예수의 무릎과
땅이 하늘이 되는 성령의 바람과

백팔 염주알과 사이 좋은 벗이 되는
이태석 신부님의 묵주알을 나란히 놓으며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진리 안에서

오늘밤에도 달과 별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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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썩은 밥에 빠진 누런 코')

 




한 사람이 있다. 그 옛날 친구를 따라서 뭣 모르고 찾아간 해인사의 백련암. 그리고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던 젊은이다. 그러면 부처님 앞에 삼 천 배를 올리라는 성철 스님의 한 마디에 괜히 투덜댔다가 "그라믄 니는 마, 만 배 해라!"라는 성철 스님의 엄호에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로 백련암 초행길에 만 배를 올렸던 젊은이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다. 

다리가 끊어지고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만 배를 겨우 마친 젊은이는 기어가다시피하며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였다고 한다. 청년이 기대했던 한 말씀이란 다름 아닌 청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었으리라. 

성철 스님은 "지킬 수 있나?" 물으신 후 딱 한 말씀만 하시곤 내려가라 하셨다며 상좌인 원택 스님은 회상에 젖은 얼굴빛으로 평생의 은사이신 성철 스님과의 첫 일화를 들려주신다. "속이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마라."

젊은이는 앞날의 인생을 위한 특별한 한 말씀을 기대했으리라. 하지만 겨우 "거짓말 하지 마라."라는 성철 스님의 그 평범한 한 말씀에 갑자기 허탈해진 젊은이는 기껏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그 쉬운 말을 들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며 만 배를 올렸던가. 후회를 하면서 그만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곰곰이 일주일이 흘렀다.

"거짓말 하지 마라.", "속이지 마라", 참 쉬운 말이다. "남을 속이지 마라.", 그래, 젊은이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돌아보아도 크게 남을 속이지 않았으며 그런데로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스스로 들었다. 그런데 "자기를 속이지 마라."는 말씀에서 그만 가슴을 쳤다고 한다. 그 길로 젊은이는 다시 성철 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한 사람을, 하나의 조직을, 하나의 국가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딱 한 가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건 바로 '정의'를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 강단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사회에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주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강의가 생각난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내가 동경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자본과 경제 논리로 이룩한 탐진치의 미국조차도, 미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유산은 다름 아닌 '정직'이다. 그런 미국에서 160여년 전에 태어난 소로우와 뒤늦게나마 그를 알아본 미국이 지닌 또 하나의 얼굴에 그래도 희망을 둔다.

모든 인간 관계에서 '정직과 정의'와 '신뢰'는 첫 단추가 된다. 하지만 탐진치와 허욕에 눈이 먼 자들에게 '정의'란 분리수거라는 유예기간의 여지도 없이 곧바로 폐기처분 가능한 가치일 뿐이란 말인가? 나에겐 '진리'의 길로 이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가치가 '정의'인데,

이 추운 겨울날, '법과 정의' 앞에 이미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검찰 조직과 야당과 그들을 추종하는 눈먼 언론이 밥상을 차려서 국민들 앞에 내놓았다. 나는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처럼 새하얀 밥알을 그래도 한 톨은 기대하면서, 그들이 내놓은 밥을 두루 살펴보았다. 장차 내가 선택한 밥은 나와 더불어 이웃과 자녀들과 널리 나누어 먹을 밥이기에 선택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그 밥이 된 한 사람이 있다. 밥이 속까지 검게 탔는지 썩은 밥이다. 우리네 선조들의 속담에도 나온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렸다.' 다 된 밥에 콧물이 떨어졌는지 모른다면 맛있게 먹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내 눈 앞에서 밥 속으로 떨어지는 그 콧물을 보았다면, 누군들 그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이 차려준 밥은 잘된 밥도 아니고, 법과 정의를 상실한 썩은 밥이다. 공평과 정의를 생명으로 하는 법의 저울추가 사람에 따라서 이권에 따라서 저울질을 달리 한다면 그건 이미 고장난 법과 썩은 밥에 해당된다. 

단풍이 아름답던 지난 시월의 가을날 '위드 코로나'로 잠시 맑은 숨을 쉴 수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변종 오미크론까지 가세해 우리는 다시금 사회적 거리두기의 안전망 안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백신 부작용으로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지만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바이러스란, 정의를 무너뜨려가면서 무릇 정신과 마음과 영혼을 해치는 거짓의 바이러스가 몸을 해치는 바이러스보다 만 배나 더 위험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우리의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썩은 밥을 어떻게 더불어 먹자고 하며 또 먹일 수 있을까? 한 가정 안에서도 앞선 부모 세대는 후대의 자녀를 위하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늘 부끄럽지만 자연의 거울을 피할 수는 없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내 몸속으로 속속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이 하늘처럼 숨줄이 붙어 있는 한 정의는 하늘처럼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누런 콧물과 같은 사람이다. 동종동색의 부부처럼. 썩은 밥에 떨어진 거짓과 허위의 누런 콧물이다. 주가 조작이라는 사기죄로 조사를 받다가 자기를 조사하던 검찰 총장의 아내가 된 사기범(참 신기한 일이다.)인, 코바나 콘텐츠의 대표가 학창시절부터 50세가 넘도록 지금껏 초지일관된 거짓 삶을 살아왔다는 증거가 15건에 달한다. 이어서 터져 나오는 뉴욕대 허위 학력와 숙대 논문 표절 증거까지 파고 또 파도 온통 거짓과 거짓된 삶의 증거들 뿐이다. 

막장 드라마와 영화를 안 보는 나로선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대한민국의 역사에 빨간줄을 긋는 희대의 사기극 앞에서 찝찝하고 괴롭고, 더럽혀진 눈을 어디서 씻어야 할지 사실은 눈 씻을 곳을 찾느라 혼자서는 더 바쁘다. 그를 직접 만났다며 스스로 나선 증인의 증거처럼 라마다 르네상스 호텔의 쥴리 경력만 빼고는 눈물 한 방울까지도 거짓일 수 있다니.

그동안 그가 몸 담았던 곳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이다. 그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때 모 대학의 교수였고, 겸손히 시간강사라 자신을 소개하며 이미 자기를 속였던 그 이름은 쥴리다. 라마다 르네상스 조남욱 회장에게 소개받은 쥴리를 만났다며 스스로 증인으로 나선 안해욱 초등학교태권도연맹회장의 인터뷰 영상을 살펴보았다. 쥴리를 두고 "첫인상이 남자상이고 신기가 있어 보였다.", 사실 여부 확인에 혈안이 된 인터뷰 기자의 거듭되는 질문 공세에 안해욱 태권도 회장의 느긋한 한 마디가 크게 공감이 된다. "우리는 그냥 느껴요."

적어도 정상적인 인지력과 감지력을 가진 동물이 아닌 사람이라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있다. 거울에 비추듯 바로 비추어 보이는 것이 있다.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상과 표정과 말투에서 엿볼 수 있는 그만의 인생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걸로 불충분하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증거 법치주의국가이다. 문서 증거가 수두룩하고 증인이 스스로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도 증거 채택과 구속 기소를 도둑이 뒷걸음 치듯이 미루고 있는 검찰 조직을 국민들은 과연 어디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곧 구속 기소라는 그 거짓에 합당한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코바나 콘텐츠 대표 김건희(개명 전 김명신)는 자신의 학력과 경력 위조를 두고 결혼 전 단지 돋보이고 싶어한 마음에 범한 자신의 실수라며 거듭 자기를 속이고 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기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알고 있다. 그 허위·사기죄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계와 밀접 접촉자인 다른 교사들과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다 된 밥에 빠진 콧물을 아무도 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썩은 밥에 빠진 이 콧물은 맑은 콧물이 아닌, 허위와 거짓의 고름이 코로 터져 나온 누런 콧물이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 바이러스다. 우리 아이들아 조심하자. 그래도 곳곳에서 촛불처럼 번지는 눈 밝은 2030 젊은이들이 있어서 숨을 쉴 수가 있다. 

한 사람을, 한 국가를 바로 세우는 길은 딱 하나만 올바로 세우면 된다. 그건 바로 성철 스님의 세상을 향한 첫 법문, "자기를 속이지 마라", '정의'를 바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 추운 겨울날 허위와 사기와 거짓이 터져 나와서 푼 누런 콧물이 떨어진 썩은 밥을 내놓으며,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야당과 거기다가 거짓 포장지로 포장하느라 애쓰는 언론의 뒷힘이 나는 늘 궁금하다. 일제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그 괴물은 살아서 그들만의 잔치 밥상을 위하여 거듭 꼭두각시를 세워오고 있으면서 그들만의 탐진치를 채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급기야 썩은 밥에 누런 코가 빠진 폐기해야 될 밥을 국민들에게 먹으라며 내놓기에 이르렀다니.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참 애쓰는 일부 언론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처럼 우스운 광대꼴이다. 

국민들에게 먹으라고 내놓은 '누런 코가 떨어진 썩은 밥'을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 다양하겠지만, 나의 선택은 그냥 안 먹으면 된다. 욕을 하면서 내 입을 더럽히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단어를 선정하면서도 참 찝찝하다. 하지만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였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이유는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의의 맑은 하늘이 늘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 마음이 가리키는 정의와 진리의 세상을 보여준 모범생 석가모니 부처님과 진리의 몸과 우리들의 밥이 되신 예수의 아름다운 밥이 엄연히 어둔 세상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모진 겨울 바람이 국민들의 맑은 눈을 더 맑게 씻겨주고 있는 듯하다. 투명하도록 푸른 겨울 하늘이 나의 눈을 더 푸르게 지켜주는 듯하다. 제 아무리 검은 손바닥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려고 해도 곳곳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육성이 터져나와 곳곳에서 빛난다.

그리고 참 기쁜 소식이다. 예수의 밥을 뿌리치고, 썩은 밥과 손을 잡은 탐진치의 전당이 된 대형 교회당과 함께 침몰하고 있는 일부 개신교 소식으로 암울한 이때에 그래도 얼어죽지 않고, 대한민국의 고대로부터 유유히 내려오는 태권도 정신이 살아 있었다. 증인으로 스스로 나서 준 안해욱 초등태권도연맹회장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인상이 참 믿음직스럽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나에게 물으면, "우리는 그냥 느껴요." 

사실 이런 글을 적고 있다는 현실 앞에, 스스로 공부가 덜 되었음을 나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바라볼 곳이 있어서 마음은 느긋하다. 그리고 언제나 한 사람이 있다. 그건 정의와 진리의 몸으로 이 세상에 몸을 낮추신 예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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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나무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이 땅에 오신 십자가 나무

그러나 이 땅에 머리둘 곳 없다 하시던
마음이 가난한 나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비로소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마음으로 살으라 하신

홀로 산을 오르시어
기도하시던 나무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진리의 몸이 되신

온몸으로 시를 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랑 나무

다시 하늘로 오르시어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 가시며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함께 살아가든 홀로 외따로 살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저마다
태양을 닮은 양심이 공평하게 나를 비추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 안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한 그루의 평화 나무로 선 
십자가 나무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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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 동지 팥죽

 



새벽잠 걷어내시고 일어나셔서
몇 날 며칠 마련하셨을 

붉은팥, 맵쌀, 찹쌀로 
팔팔 끓이신 동지 팥죽 

뚜껑 열리지 않도록 
팔팔 올림픽 보자기에 꽁꽁 싸매고서

동해 바다가 품은
동짓날 떠오르는 태양처럼 

품팔이로 가정 일으키신 
바다 같은 품에 안으시고서

새벽 댓바람에 붉게 익은 얼굴 가득
자식 손주들 건강과 평화를 기도하시며

지나온 2021년 한 해도 감사히
다가올 2022년 한 해도 감사히

선물처럼 주시는 오늘을 해처럼 품으시고서
엄마는 새벽바람처럼 징검다리를 건너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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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 네 나

 



벽돌 일곱 나를 머리에 이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지매가 떨군 눈길을 따라서

벽돌 스무 나도 넘게 등짐을 지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재의 굽은 등허리를 따라서

빈 몸으로 계단을 오르는 김에
속으로 벽돌 네 나쯤이야 하면서 

갓난아기를 안듯이 
품에 안고서 오르다가

열 계단쯤 올라서면서 그만 
어디든 내려놓고 싶어졌다

애초에 세 나만 챙길 것을 후회하면서
묵직해진 다리로부터 차오르는 뼈아픔이

벽돌로 쌓아올려야 뚫리는 
하루치의 하늘과

벽돌이 된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 같은 숨이

벽돌 같은 세상을
맨몸으로 부딪히고서 맞는 밤하늘은 허전해

하나 하나의 벽돌 모두가 나로 쌓였다가
눈물로 허물어지는 외로운 겨울밤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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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어 간다





시들 시들
시들어 간다

나무 숟가락, 밥그릇, 흙 접시
유리 찻잔을 악기 삼아

흐르는 물결과 물결의 선율에 기대어
평화를 연주하는 내 두 손으로

시들 시들
시들어 간다

평화의 물결이 스민
주름진 손등으로

피부결마다 
바람의 숨결 같은

시들 시들
시가 들어간다

잔주름 결결이 
황토빛 살결은

햇살 아래 시가 되어
황금 들녘 넘실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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