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신동숙의 글밭(241)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초가집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고 그리던 제 마음의 고향집입니다. 어린날의 그림 속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오른편엔 초가 지붕을 훌쩍 넘는 나무 한 그루, 왼편엔 장독대가 있고, 둘레에 싸리와 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키가 낮으며 성글고, 집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그런 마음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져오면서 평화로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의 성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서 비록 혼자서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에 만나게 된 벗님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가는 일은 별을 발견한 듯 경이로운 일입니다. 중학생 시절 건물 귀퉁이 작은 동네 서점에 처음으로 들어가 머물며, 서점 안에 책들을 모두 살피어 비로소 마음에 들어와 손에 잡은 한 권의 책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었습니다. 처음 본 어느 스님의 단정한 인상이 마음에 들어오던 순간입니다. 


스무살 초반엔 초가집과 함께 막사발이 참 좋아졌습니다. 깊은 묵상 중에 인간의 문명을 하나씩 거두어내고 있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만든 건물과 유물들, 자동차, 우주선, 샴푸, 칫솔까지 정말로 필요한 것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모든 유·무형의 문화와 문명을 하나씩 마음의 체에 거르고 걸렀던 때입니다. 주위에선 취업에 신경 쓸 시절에 저 혼자서는 속으로 깊이 앓던 때입니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몰라주는, 길 없는 길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그 길을 혼자서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든 청춘의 가슴에는 한 점 별빛처럼 미세하지만 빛나며 손짓하는 영혼의 부름이 있고, 물처럼 구름처럼 가슴 가장 밑바닥으로 유유히 흐르며 우리의 가슴을 적시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문득 대상을 만나면 일어나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방황이 되기도 하는. 


배흘림 기둥으로 올린 한옥의 멋스러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기와집을 볼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지배와 피지배가 낳은 건축 양식이 어쩌면 고래등 같은 한옥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닿고부터는 아름다운 한옥도 제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가을 하늘의 쪽빛을 담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선 어딘가 애써 잘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한 마음이 거슬렸습니다. 그에 비해 막사발은 자연적이고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본성을 닮았습니다. 


눈먼 장님이 한 걸음씩 길을 더듬어 한발짝 내딛듯 제 마음이 걸어가는 길은 가족도 평범한 주위 사람들의 관심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그런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이미 물길이 난 그 길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마음의 길이 아니고선 이 땅을 살아가는 몸이 숨을 쉴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십 대 초반 가슴으로 읽은 윤동주 시인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의 시인의 마음이, 저에겐 몸을 받아서 살아 숨 쉬는 일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로 읽혔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먹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방식의 모순. 




* 시와 구름이 머무는 황간역의 강병규 역장님의 돌그림


2002년 월드컵의 열기도 제 가슴에 불을 지피지는 못했습니다. 법정 스님의 오두막과 소로의 월든 숲에 오두막이 가슴으로 들어오고, 2003년 어느 봄날엔 저 역시 그러한 삶을 살기로 뜻을 세우고 인생의 방향키를 조정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가 혼자만 잘 살아선 아무 의미가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 것입니다. 돕는 삶, 나누는 삶이라야 비로소 인간으로써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한 생각이, 아궁이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듯 풀무질을 하는 바람에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란 울타리는 헐어버리기 쉬운 성근 싸리와 나무 울타리도 아니고, 단숨에 뿌리 뽑힐 나무도 아니었습니다. 딸아이의 행보에 엄마는 당뇨가 왔고, 아버지는 한 쪽 귀가 안들리고, 약혼자는 자신의 삶까지 접고서 인도에 가면 저를 만날 수 있단 희망 하나로 비행기표를 끊어둔 상황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닥뜨린 것입니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었습니다. 큰 아이가 품에서 내려와 집 앞 골목길을 자박자박 걸어다닐 무렵 다도(茶道)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도가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익히 들어온 밥상머리 예절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신혼 살림을 고르던 시절 그 예쁜 커튼들을 다 제쳐두고 장식도 없고 고운 색으로 물도 들이지 않은 광목천으로 된 단순하고 소박한 커튼을 고른 저를 두고 같이 따라간 친구와 가족들의 반응은, "발품 팔고서 기껏 고른 게 저거냐"라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제 마음은 무명의 광목천에서 안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집 창문에 걸어둔 그 천덕꾸러기 광목천 커튼이 다실에 걸려 있는 걸 보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좋아하던 막사발을 훔쳐간 일본이 고려청자가 아닌 막사발을 그들의 국보로 모셔 놓았으며, 초가집을 닮은 초의선사의 일지암이 한국 다도의 성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동안 혼자서 걸어온 길이 영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확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잡초요리연구가인 고진하 시인 목사님과 아내 권포근 선생님의 자연 속에서 공생하며,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생명과 이웃을 헤치지 않으려 선택하신 불편당의 삶, 한국 다도의 성지가 된 초의선사의 일지암, 초가집을 닮은 소로와 법정 스님의 오두막, 권정생 선생님의 안동 조탑리의 가난한 생가, 한희철 목사님이 단강 마을 이웃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서로를 배려하며, 느린 호흡으로 주위에 흔한 나무와 흙으로 담을 쌓아 만든 인우재의 기도실이 제겐 마음의 성지입니다. 


그런 제 마음속 그림이 글에서도 간간히 드러나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숨인가봅니다. 제 글에서 오두막이 나오는 글을 보시고,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을 손수 돌에 그림으로 그려서 선물로 보내주신 분은, 기차가 지나치던 작은 간이역을 시(詩)와 구름이 머무는 역으로 가꾸신 강병규 황간역장님입니다. 지금은 은퇴를 하셨지만, 마을 사람 누구든 그리고 동행하는 우리는 시동(詩同)은 역장님으로 부릅니다. 


커피 물을 들인 고목의 나무틀 속에 놓인 돌그림의 빛깔이 더불어 따스하게 번집니다. 마치 돌그림이 거하는 안식처, 오두막 같습니다. 그림이 가슴으로 들어옵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제 마음의 성지와 점점 하나로 물이 듭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제 마음의 성지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평화가 흐르고 숨을 쉬고 있는 이 몸에 깃드는 지금 이 순간이 제 영혼의 집이 되는 따스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집니다. 벗님들은 어떤 마음의 성지를 가졌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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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朗讀)

신동숙의 글밭(240)


낭독(朗讀)




곁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밀려올 때


묵상 중에도 흔들려서 

말 한 마디 건져올릴 수 없을 때


책을 펼쳐보아도

글이 자꾸만 달아날 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줍니다

내가 나에게 읽어줍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독이고 다독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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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신동숙의 글밭(239)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땔감이래도 줏어다가


부뚜막 한 켠에 


쟁여 드리고 싶은 집


가난한 오막살이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책으로 둘러쌓인 방


서넛이 앉으면 꽉 차는 쪽방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 한 자락만 들려주셔요


*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은 권정생 선생님의 노래 상자 제목에서 인용 - 권정생 詩. 백창우 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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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

신동숙의 글밭(238)


한마음




그 옛날 당신이 내어준 한마음

살갗을 스치는 바람인 듯

가고 오지 않는 물결인 듯


까맣게 태운 마음 한 알

가난한 마음에 품기로 하였습니다


바람결에 뭍어온 풀향 한 자락에

물결에 내려앉은 별빛 한 점에

그 한 말씀을 새기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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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엄마하고 약속한 가을 소풍

신동숙의 글밭(237)


해인사, 엄마하고 약속한 가을 소풍

나무골이 진 마루바닥으로 아침해가 빛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아침, 이렇게 가을이 옵니다. 해의 고도가 낮아져 집안으로 깊숙히 들어오는 만큼 이제는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눅눅하던 가슴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오늘 같은 토요일 아침엔, 숲이 있는 한적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머물러, 그동안 안으로 여몄던 가슴을 활짝 펼쳐 널어놓고 싶은 그런 날씨입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하는 헤아림으로 잠시 가슴속 여기저기를 들추어보았습니다. 지난 초여름 밀양 표충사 작은 암자 뒷마당에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계곡물에 산딸기를 헹구어 먹던 날, 친정 엄마하고 약속했던, 가을이 오면 해인사에 함께 가기로 한 일이 떠오릅니다. 울산에선 밀양과 창녕을 지나는 국도로 가는 길이 무난하여 해인사까지 갔다가 하룻밤 그곳에서 묵고 다음날 천천히 돌아올 수 있는 알맞은 여정입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둔 곳이 몇군데가 있습니다. 고려 팔만대장경이 모셔진 장경각 뒷편에 가면 있다는 작은 법보전은, 젊은 수도승이었던 법정 스님이 일평생 수행자로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인 기도의 터전을 닦으신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고, 잠시라도 머물러 앉아서 그 시절 스님이 누리셨을 그곳의 정취를 한 움큼이라도 가슴에 담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신라의 고승 희랑대사의 어진 모습과 성철 스님의 백련암 일주문을 먼 발치에서라도 잠시 머물러 바라보면서 암자 주위를 둘러싼 가야산과 가야산의 하늘을 한폭의 그림처럼 마음에 담아오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은 순간마다 언제든 맘껏 꺼내어 볼 수 있는 영원한 저장소는 언제나 가슴속 하늘이니까요. 



칠순이 넘으신 친정 엄마에게 차 안에서 드시고 싶은 간식을 여쭈니, 포도입니다. 줄기가 싱싱하고 잘 익은 머루포도를 어디에서 헹구어 먹을지 길을 떠나봐야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엄마는 언제나 제 뒷좌석에 앉으십니다. 어느날 나무밑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던 얘기를 하시며, 몇 해 전부터 교회를 다니시며 알아가고 있는 하느님은 참 지혜롭다 하십니다. 자연의 도토리에서도 하느님이 하셨다 하시는 엄마의 마음이 어린 아이 같습니다. 


가을날 산에 가보면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데, 도토리를 한창 줍고 난 다음에야 그 잎이 떨어져 온 땅을 다 덮으시는 이유를 헤아리는, 엄마의 눈길이 바라보는 하늘은 어디쯤인지, 맑은 하늘에는 마음이 가닿는 벽이 없는데도 그 울림은 커다랗습니다. 


급하게 달리는 고속도로보다는 느리게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시골길을 따라서 가는 여정이 정겹습니다. 천천히 달리며 창밖으로 스치듯 바라보는 국도변의 풍경은 느린 여행길에 덤으로 주어지는, 과정이 그대로 소풍길이 되는 선물입니다. 가다가 어느 마을 도로변 천막 노점에 잘 익은 밤과 감이라도 보이면 잠시 내려서 추석 준비를 해둘 수도 있습니다. 


소망하는 법보전과 희랑대와 백련암에 머물 잠깐의 한 순간을 위해 오랜 시간 지나온 모든 순간순간이 또한 그 한 순간 만큼의 무게를 지닐 수 있다면,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이 땅의 삶이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불교의 여덟가지 바른법인 팔정도와 예수를 따르는 좁은길이 향하는 삶이란 순간에서 영원을, 오늘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천국이 되는, 토마스 머튼이 얘기한 관상의 기도를 통해 미리 맛보는 천국의 삶이자 본래 에덴 동산에서 누리던 태초의 삶이 되는,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온전한 진리의 삶으로 향하는, 불고 싶은데로 부는 바람 성령이 이끄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그 성령은 가슴에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 같다는 생각들을 두루두루 가을 하늘에 펼쳐놓으며 엄마와 함께 가는 가을날의 소풍입니다.


법정 스님의 법보전 마루바닥에는 이미 오후의 햇살이 저보다 먼저 들어와 앉아 있습니다. 내려앉은 빛이 오래 사귄 정겨운 벗인냥 살갑습니다. 엄마는 해인사 장경각 경내 어느 하늘 아래 한가로이 계신지 잠시 보이지 않고, 저는 햇살 곁으로 다정한 벗인냥 아무 말없이 앉았습니다. 마루바닥으로 들어와 앉은 햇살이 이어서 가슴으로 들어오는지 무심했던 구석까지 따스해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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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와 풀벌레

신동숙의 글밭(236)


가을비와 풀벌레




한밤에 내려앉는 

가을 빗소리가 봄비를 닮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

빗소리에 머물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곤 하였습니다


순하디 순한 빗소리에 

느슨해진 가슴으로 반짝 풀벌레

밤동무가 궁금해집니다


맨발로 풀숲을 헤치며

숨은 풀벌레를 찾으려는 아이처럼


숨죽여 빗소리를 헤치며

풀벌레 소리를 찾아 잠잠히

밤하늘에 귀를 대어봅니다


가전 기기음인지 풀벌레음인지 

마음이 문전에서 키질을 하다가

자연의 소리만 남겨 맞아들입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빗소리도 발걸음을 늦추어 

더 낮아지고 


풀벌레 소리는 떠올라

가을밤을 울리는 두 줄의 현이 되었습니다


가을비와 풀벌레는

한 음에 떠는 봄비와 꽃잎의 

낮은 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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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신동숙의 글밭(235)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달밤을 떠올리면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 수련장으로 계시던 진 토머스 신부님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샌 독일인 신부님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 토머스 신부님을 아주 존경하시는 한국인 박 안셀모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카톨릭 수도승으로 구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진 토머스 신부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불교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을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는데, 그 중에는 그 옛날 가야산의 호랑이 성철 스님도 계십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과 만나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다툼이 되고 꼭 자기하고는 싸움이 되더라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런 스님들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좋았던 만남은 법정 스님과의 만남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진 토머스 신부님이 법정 스님의 오두막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도 늦어서 법정 스님이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도록 허락을 해주셨다고 합니다. 한 말씀을 기대했으나, 법정 스님을 따라서 조용히 달빛 아래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두 분이 아무 말없이 그렇게 달밤에 앉아서 보내던 그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주는 내면의 충만감을 내내 잊을 수가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가문비나무의 노래>에서 마틴 슐레스케는 이야기합니다. "한적한 곳에서 보내는 고요한 시간은 자기 가치를 되찾는 조율의 시간입니다."(130쪽) 


요즘처럼 마음이 어수선할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안타까운 소식들이 끊이질 않아 마음이 무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서부 지역에서 일어난 산불로 지금 이 시각에도 사투를 벌이고 있을 소방대원과 지역주민들의 고투에 물 한방울의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심정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물 한방울의 염원이 구름처럼 모여서 생명의 비가 되고, 불길을 다 잡을 수 있을 만큼 내리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미국 서부에서 일어난 산불의 영향으로 바다 건너 영국의 하늘도 붉게 물들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지구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유기체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지금 미국의 서부는 하늘이 붉게 변하고 연기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웃들의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에도 그 마음에 두려움과 불신이 내려앉기보다는 매 순간마다 자기의 가치와 평화를 되찾는 고요한 시간이 되기를, 저마다 평화의 씨앗이 되기를, 나 한 사람으로부터 평화가 시작된다는 그 고귀한 사실을 호흡마다 기억할 수 있기를.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언제나 침묵이 가득한 우주가 흐르고, 달이 있고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지구를 품에 안고 있는 커다란 침묵의 우주는 평화입니다. 그 커다란 평화의 손길이 어루만져 인간의 불길을 잠재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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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신동숙의 글밭(23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마당에 모처럼 숯불을 피웠다. 검은 숯 한덩이가 알이 굵은 감자만 해서 불을 지피는데도 시간이 배나 걸리지만, 한 번 불이 옮겨 붙기만 하면 오래오래 타오르기에, 불을 지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도 굽고 햄도 굽느라 모처럼  남동생 손이 바쁘다. 마당 가득 하얗게 피어오르는 숯불 연기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로 평온한 이야기 물길을 터 서로의 가슴으로 잔잔한 물길을 내어준다. 


남동생은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고기를 구웠는데, 아직도 굽고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안 구으면 승진했다고 그러는가 건방지다고 생각할까봐 집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얘기에, 어려서부터 누나보다 헤아리는 속이 깊은 남동생이다. 때론 호랑이 같은 지점장 자리도 어디까지나 섬기는 자리라 여기는 동생이 미덥다.


배를 채운 아이들은 외숙모를 따라서 우르르 강변으로 밤산책을 나섰다. 불가에 둘러앉은 건, 처남과 매형 그리고 친정엄마와 딸이다. 하얗게 이슬이 내린다던 백로가 지난 9월의 밤공기가 내겐 으슬으슬 추운 한기를 일으킨다. 고기 굽기가 끝나고서야 남동생이 몸을 일으킨 빈 자리에 얼른 가서 앉았다. 이제는 혼자서 타는 숯불의 온기가 화롯가에 앉은 듯 따스하고 정겹기만 하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 앉은 방안에 피운 작은 촛불이 좋고, 지금도 어느 깊은 산골 오두막집에선가 저녁밥을 짓느라 그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서 지필 아궁이불이 좋은 것이다. 숯불 위에는 아무거도 없지만, 저도 모르게 응어리진 마음을 녹이기엔 그만이다. 동생이 옥수수 과자를 가지고 오면서 구워 먹으면 더 맛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져 과자를 아예 어릴적 교실처럼 줄을 세워 구웠다. 과자를 숯불에 구웠더니 정말로 바삭하니 더 맛이 난다. 밤공기가 쌀쌀해져 거실로 이야기 자리를 옮긴 후 남편이 문득 일어나더니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햇고구마를 구해온다. 이미 다들 배가 부르지만 아직도 붉은 숯불이 남아 있지 않은가.


은색 호일로 고구마를 감싸서 숯불에 올려놓는데, 고구마가 내 팔뚝만하다. 언제 다 익을까 싶었는데, 고구마가 익기도 전에 어느덧 친정 식구들이 강 건너 친정 엄마댁으로 잠자러갈 시간이 된 것이다. 언제까지고 타오를 줄 알았던 숯불도 어느새 붉은 숨을 다 토해 내고 회색 재만 남았다. 오븐에 옮겨 굽기엔 시간도 너무 늦었고, 아이들 입에서 고구마가 먹고 싶다는 목소리도 더이상 나오지 않는 것은, 그새 외삼촌이 주문 떡볶이로 배를 채워준 다음이다.



다음날 만 하루가 지나서야 굽다가 만 고구마 생각이 났다. 호일을 벗기니 색이 약간 거뭇한 거 말고는 단단한 고구마다. 오븐에 넣고 30분을 돌려도 젖가락이 들어가질 않는다. 거기서 10분을 더 돌려도 젖가락에 저항이 느껴진다. 그러기를 한 시간이나 넘기고도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 호일을 벗겨내기로 했다. 생고구마를 구웠어도 이미 다 굽혔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넘긴 것이다. 고구마를 굵직굵직 썰었더니 속살이 노란빛이 아닌 생기가 죽은 회색빛이다. 어쩌다 노란 부분은 남겨서 아이들 주고 나니 못 먹는 부분만 수북하다. 아깝지만 무화과나무 아래에 파둔 구덩이 흙에 뭍기로 했다. 내년에 무화과 열매라도 많이 맺으라며.


만약에 고구마를 첫불에 끝까지 구웠다면, 고구마 속까지 노랗게 다 읽었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드는 생각은, 마음에 일어난 한 생각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가슴속까지 익기도 전에 꺼져버린 생각의 불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생각의 불꽃이 붙을만 하면 끼니 때가 다가오고, 깊어질만 하면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찻잔 속에 차를 건져내어야 하는 조각난 일상의 시간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보편적인 생활 모습이란 것이 어쩌면 영혼을 익히기엔 모자란, 해와 달의 흐름과는 

어쩔 땐 따로 흐르는, 시간은 뚝뚝 잘려나가고 언제까지고 인생의 겉만 맴돌게 하는 하루하루가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닿을 때가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들여온 근대 산업화 방식의 학교 구조와 함께 회사 구조와 삶의 터전이라는 것이 영혼의 성숙을 위해선 모자란, 익기도 전에 종소리가 울리는, 가슴이 일으킨 한 생각의 흐름을 뚝뚝 끊어놓는 시간의 나열들. 타오르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선 스스로 꺼버려야 하는 촛불의 시간처럼 말이다.


먼 유년기엔 종일 굶었어도, 밤이 되도록 내게 밥 먹으러 오라며 날 부르는 사람도 없이 산새처럼 자유롭던 그 시절이 문득 가슴에 해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온 마을과 뒷산으로 쏘다니던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물질의 풍요 속에선 누릴 수 없는, 가난이 선물처럼 주는 영혼이 맑아지는 시간. 지혜로운 숲의 인디언들이 자녀에게 선물처럼 주는 혼자만의 숲 속 시간. 인터넷의 거장 스티븐 잡스와 빌게이츠가 그들의 자녀에게 한 달에 한번 문명을 벗어나, 핸드폰과 인터넷과 문명의 기기 없이 손수 불 피워 밥을 지어 먹게 한다는 자연 속의 원시적 시간. 토머스 머튼이 그리워한 은수자의 오두막에서 보낸 호젓한 시간.


아직 가본적 없지만, 때론 소로와 법정 스님의 오두막이 있던 울창한 산과 숲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자연만이 가득한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플 때가 있다. 생각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올라 낮과 밤을 잊은 채 앉아서, 육신의 배고픔마저 잊고서 오래오래 타올라, 세상을 향한 저항으로 응어리진 가슴속이 익을 때까지. 그래서 육신이 영혼 만큼 가벼운 빛으로 이 땅이 비로소 하느님의 영이 운행하시는 에덴 동산이던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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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신동숙의 글밭(23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

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에도 갈 수 없는 고향집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벗님을


온라인 등교로 저쪽 방에서 뒹구는 아이들을

오도가도 못하여 집안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

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가슴에는 언제나 하늘이 흐르고

추억 같은 별 하나쯤은 있어서


마음으로 바라볼 수록 빛나는 별을

그리워할 수록 더 가까워지는 별을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에는

커다란 침묵이 흐르고

바람이 멈추고


너도 나도 아름다운 별 하나가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만큼 평화가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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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신동숙의 글밭(232)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언젠가부터 스쳐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잠이 깨려는 순간

눈도 채 뜨지 못한

비몽사몽 간에

새벽녘이나 아침 나절에


잠들 무렵이면

낮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일

해결되지 못한 일

후회스러운 일

아쉬운 일

잘못한 일

그리운 일


다 기억나지 않는 꿈 속의 일이지만

밤새 내 몸은 웅크린 채

지나온 하루를 품는다


그렇게 내 안의 나는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꿈 속에서 게워내고 게워내고


해가 뜰 무렵이면

가장 커다란 한 알로 오롯히 영글어

잠시 스치듯 감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얼굴이기도 하고

장면이기도 하고

빈 가슴에 태양처럼 떠 안겨 주고는

돌아온 새날을 또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용서 해 주세요

살려주세요

함께 해 주세요


나는 매일 아침

눈도 뜨지 못한 채

간절한 짧은 기도로 하루를 열고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온통 밝고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다

온통 감사한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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