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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출간 책 서평63

그 힘의 이름은 사랑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 삶을 돌아보며 ‘행복을 피하면서 찾았다’고 고백한다. 행복에 대한 갈망을 품고 살면서도 행복을 한사코 피하는 아이러니. 어쩌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사는 모든 이들의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우리 내면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이 확고하게 우리를 잡아채 절망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친다. 불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사람들은 분주함 속으로 도피한다. 그런데 분주함은 우리가 마땅히 보아야 할 자기 내면의 실상을 보지 못하게 한다.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의 간극은 점점 커진다. 이런 불모의 낙원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가? 루미는 일렁이는 버릇이 든 물은 바다에 이르러야 잠잠해지듯이, 거칠어.. 2022. 6. 14.
아득한 시절의 자전적 비망록 이 소박한 자전적 비망록은 저자가 자의식이 생긴 대략 너덧 살 어린아이 때부터 서른에 이르기 전 몸이 겪어낸 자잘한 일상의 기록이다. 어설프고 어리숙했기에 돈키호테의 막무가내 열정으로 낯선 세계와 부대끼길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어나면서 정신도 꾸준히 자랐겠지만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저자를 둘러싼 사람들과 만나고 엮인 인연은 생에 다채로운 무늬와 얼룩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오늘도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고 그 권태 속에 스트레스가 일용할 양식으로 넘쳐날 때, 또 원치 않는 억압적 상황에 부지불식간 포위되어 치일 때 저자는 흔적으로 남은 그 아득한 시절의 천연 공간으로 연거푸 피정을 떠나곤 한다. 그러면 다시 과잉 거품 속에 더께 진 내 욕망의 실체가 보이고 세월 속에 오래 풍화된 내.. 2022. 5. 3.
왜 하필 예레미야인가? 어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가담하거나 또는 앞장서고 있는 세력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교회들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서야 할 교회가 세속의 권력과 손을 잡고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명백히 죄악이다.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야할 이들이 권력과 재물의 옹호자가 되고 있고,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난폭한 자들의 편이 되고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우상숭배자들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리기 위한 장식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깊게 새기고 있는 김기석 목사가 욥(《아! 욥》)에 이어 예레미야에 대한 책을 냈다. 역시 기대 이상이다. 문학도이기도 한 그가 써내려가는 글들.. 2022. 4. 12.
“만 가지를 쳐내고 한 꽃을 얻는다” 삼 십여 년 전 어느 날 저녁, 불현듯 한희철 목사가 계신 단강을 찾아간 적이 있다. 연락도 없이 찾아간 길, 창문을 통해 본 집안은 컴컴했고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같이 간 친구와 나는 낭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골집다운 허술한 자물쇠를 부수고 기어이 집 안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 한 일이라고는 책꽂이에 꽂혀 있던 책 한 권과 단강교회 이름이 새겨진 달력을 가지고 나오면서, ‘왔다 갑니다’ 메모 한 장 써놓은 것뿐이었다. 부수고 들어간 자물쇠를 고칠 도리가 없어서 살짝 문을 닫아두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알고 싶었다. 한희철의 ‘내가 선 이곳은’ 도대체 어떤 곳인지, 그에게서 솟아 나오는 샘물은 어떤 것이기에, 자기가 선 곳을 숲속 깊은 곳의 작은 옹달샘으로 만들.. 2022. 4. 2.
김기석 따라 시편 읽으며 히브리 시에 익숙해져 보기 김기석의 시편산책 이것은 김기석의 시편 설교 모음이다. 운 좋게도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면 우선 초판 서문 “시편 세계에 잠기다”를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시편이 어떤 책인지 슬쩍 궁금해지면서, 시편을 한두 편이라도 빨리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본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개정판 서문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을 마저 읽기를 바란다. 시편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시편의 시인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지, 어렴풋이나마 어떤 기대나 흥미가 생길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비로소 차례에 적힌 대로, 약 70여 꼭지의 글을 읽으면 된다. 또 설교 들으라고?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의 골갱이는 많은 독자가 싫어할 수도 있는 “설교”다. 그.. 2022. 3. 14.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속담이나 우리말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삶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가 무엇이냐 물으면 우리 옛 어른들은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라 했다. 생각해보면 그윽하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옛 어른들에게 석 달 동안 가뭄이 든다는 것은 절망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곡식이 될만한 풀포기는 모두 새빨갛게 타들어가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졌을 터. 식구들을 먹여 살릴 길이 보이지 않으니 농부의 마음은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 깊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루하루 애(창자)가 타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하늘,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천둥소리가 나야 농.. 2022. 3. 2.
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눈부시지 않아도 좋은, 하루 한 생각을 읽고 ____________________ 난 어릴 때부터 철이 삼촌이 좋았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나를 예뻐하는 삼촌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과 북적이며 살았던 덕분에 타닥이며 돌아가는 전축판에서 해바라기,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삼촌의 손을 잡고 나타난 여인을 봤을 때의 충격, 그 이후 삼촌에게 하나 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멀어져간 조카 사랑, 이 모든 걸 웃음으로 떠올리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삼촌보다 훌쩍 더 많은 나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글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그게 삶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2022. 2. 26.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 거의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오는 동안 길이 막힐 때마다 시편을 붙들고 살았다는 저자는 시편의 구절들이 거친 바다를 비추는 등대 구실을 해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한다. 시편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이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욕망 사이에서 바장인다.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확신과 회의,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 사랑과 미움이 시도 때도 없이 갈마들며 삶의 무늬를 만든다. 이 책은 그런 인간의 삶이 빚어낸 다채로운 무늬로 가득 차 있는 시편의 세계를 보여준다. 기쁨의 찬가가 있는가 하면 깊은 탄식이 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감사가 넘치는가 하면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있다. 가없.. 2022. 1. 22.
한없이 부끄러움을 배우게 하면서도 한없이 기쁘게 만드는 책 요즘은 어느 하루도 황폐하도록 기진하지 않는 날이 없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추악한 요괴들이 도처에 출몰해서 우리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온 몸에 독(毒)이 퍼지겠다 싶을 정도다. 어쩌겠는가. 그러나 이렇게라도 싸우지 않으면 “악의 퇴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중에도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지도 모른다. 이런 때에 좋은 말씀 한 구절 가슴에 스미면 그게 그날의 구원이다. 우린 어느새 사원(寺院)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일년 열두달, 계절까지 포개어 하루하루의 짧은 일기처럼 쓰여진 한희철의 은 잠언이자 시편이며 말씀이다. 그건 세월로 빚어낸 영혼의 노작(勞作)이며 우리 모두를 위해 길어올린 기도의 생수(生水)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詩’란 .. 2022. 1.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