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집이 많은 서울 늦장가드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차가 서울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구경하던 어린 딸 소리가 신기한 듯 소리를 쳤습니다. “어머나. 집이 많이 있다!”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와 빌딩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소리의 눈에도 서울은 크기만 했나 봅니다. 하기야 몇 집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 대부분이 논과 밭뿐인 작은 시골에 사는 소리로선 서울이란 별천지였을 겁니다. 어린 딸의 짧은 말이 가슴엔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 1989년 2021. 10. 7. 전기밥솥 드라이버, 펜치 등 연장을 챙겨가지고 이른 아침 작실로 올랐다. 단강리에서 제일 허름하지 싶을 아랫작실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일터로. 학교로 간 것이었다. 30촉 백열전등, 컴컴한 방에 불을 켰다. 두꺼운 이불이 방 아래쪽으로 그냥이고, 윗목엔 철화로가 있다. 불기가 없는 화로 위엔 커다란 까만색 냄비가 있는데, 그 위론 라면 부스러기가 둥둥 떠 있었다. 익지도 않은 채 불은 라면이었다. 올라올 때 만난 학교 가던 봉철이, 아마 그의 아침이었나 보다. 두꺼비집을 찾아 전원을 내리고 천정을 가로지르는 두개의 전선에서 선을 따 테이프로 감싸고 벽 쪽으로 끌어내려 아래쪽에 콘센트를 달았다. 다시 전원을 올렸다. 콘센트 불이 오는지 확인을 해봐야지 싶어 방안을 살폈다. 부엌, 방, 모두.. 2021. 10. 6. 까마귀 반가운 손님 부른다는 뒷동산 까치의 울음은 언제부턴가 효력을 잃어 빈 울음 되고 빈 들판 느긋한 날갯짓 까마귀 울음만 가슴으로 찾아들어 가뜩이나 흐린 생각 어지럽힌다. 수원 어딘가에서 기계를 돌린다는 부천 어디선가 차를 운전한다는 자식, 자식들. 내 여기 흙이 된다 한들 너덜만은 성해야 하는데. 빈 들판 지나 빈 가슴으로 까오까오 오늘도 까마귀 지난다. - 1989년 2021. 10. 5. 광철 씨의 속 얘기 수요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잠시 쉬는데 부엌 문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나가보니 광철 씨였다. 작실 교우들과 돌아가다가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웬일이에요, 광철 씨?” “지난번 가져다 드린 밤 잡수셨어요?” 밤이며 땅콩이며 호박이며 광철 씨는 늘 그렇게 먹을 게 생기면 전하려 애를 쓴다. 예배시간 이따금씩 제단에 놓이는 들꽃도 광철 씨 손길이다. 그게 광철 씨 믿음이요 사랑이다. 들꽃을 꺾어, 밭뙈기에 호박을 심어, 남의 집 일하곤 한줌 땅콩을 얻어 평소에 못 드리는 헌금 대신 드리는 광철 씨, 가장 가난하고 가장 깨끗한 드림이다. 광철 씨는 밀린 얘기를 했다. 불쌍하다 여길 뿐 아무도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이가 없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장례 치러주어 고마웠고, 장사날 밥이라도 제대로 드셨.. 2021. 10. 4. 어떤 감사헌금 ‘강아지 분만 감사헌금’ 제단에 놓인 봉투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안속장님이 강아지를 보곤 감사헌금을 드리신 것이다. 가끔은 이렇게 의외(?)의 감사헌금이 올라 약간의 당황스러움과 함께 푸근한 기쁨을 누리게 한다. 일상 속에 스민 하나님의 사랑, 그게 고마워. - 1989년 2021. 10. 3. 속장님에겐 눈물이 기도입니다 새벽 세시 넘어 일어나 세수하면 그나마 눈이 밝습니다. 성경 몇 줄 읽곤 공책을 펼쳐 몇 줄 기도문을 적습니다. 머릿속 뱅뱅 맴돌 뿐 밖으로 내려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는 서툰 기도 몇 마디, 그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두 방울 물 받듯 적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그걸 모아야 한 번의 기도가 됩니다. 흐린 눈, 실수하지 않으려면 몇 번이고 읽어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때마다 흐르는 눈물. 옆에서 자는 남편 놀라 깨기도 하고, 몇 번이고 눈물 거둬 달라 기도까지 했지만 써 놓은 기도 읽기만 해도 흐르는 눈물, 주체 못할 눈물. 실컷 울어 더 없을 것 같으면서도 기도문 꺼내들면 또 다시 목이 잠겨 눈물이 솟습니다. 안갑순 속장님의 기도는 늘 그렇게 준비됩니다. 다음 주 속장님 기도입니다, 알려드리면 한 주일은.. 2021. 10. 2. 무심한 비는 그칠 줄 모릅니다 찬비가 종일 내리던 지난 주일은 윗작실 이한주 씨 생일이었습니다. 이하근 집사의 아버님이신 이한주 씨가 73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양말을 포장하여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집 뒤론 산이 있는, 윗작실 맨 끝집입니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 마을 아주머니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들고 있었습니다. 상을 따로 차리신다는 걸 애써 말려 같이 앉았습니다. 비만 아니었다면 모두 들에 나갔을 텐데 내리는 비로 일을 쉬고 모처럼 한데 모인 것입니다. 비꽃이 피듯 이야기꽃이 피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갑니다. 장에 다녀온 얘기하며 비 맞아 썩고 싹이 나고 하는 곡식 얘기하며, 몸 아픈 얘기하며. 그중 치경 씨 얘기엔 모두들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바로 그날, 어릴 적 식구들과 흩어져 소식이 10년 넘게 끊겼던 치경 씨.. 2021. 10. 1. 치화 씨의 가방 치화 씨가 교회 올 때 가지고 다니는 손가방 안에는 성경과 찬송, 그리고 주보뭉치가 있습니다. 빨간 노끈으로 열십자로 묶은 주보뭉치, 한 주 한 주 묶은 것이 제법 굵어졌습니다. 주보를 받으면 어디 버리지 않고 묶었던 노끈을 풀러 다시 뭉치에 챙깁니다. 아직 치화 씨는 한글을 모릅니다. 스물다섯, ‘이제껏’이라는 말이 맞는 말입니다. 집안에 닥친 어려움으로 어릴 적부터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찬송가 정도는 찾을 수가 있습니다. 서툴지만 곡조도 따라합니다. 반의 반 박자 정도 늦은, 그렇게 가사를 찾는 그의 안쓰러운 동참을 하나님은 기쁘게 들으실 겁니다. 주기도문도 서툴지만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글을 모르지만 차곡차곡 주보를 모으는 치와 씨, 치화 씨는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모으고 있.. 2021. 9. 30. 하룻강아지 ‘한국전기통신’이라는 사보(89년 3월호)를 보다보니 잘못 쓰고 있는 우리말에 대한 글이 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 나오는 ‘하룻’이라는 말은 ‘하릅’이 맞다는 것이다. ‘하릅’이라는 말은 소나 말, 개 등의 한 살 된 것을 뜻하는 말이다. 태어난 지 하루밖에 안 되는, 그래서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라면 범이 아니라 세상 아무리 무서운 게 있어도 무서워할 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하루보다는 한 살 된 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함이, 타당성이 있지 싶다. 점점 외래어로 대치되어가는 순 우리말, 말에도 생명이 있다던데 같이 걱정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열 살까지의 동물의 나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한 살(하릅), 두 살(이릅), 세 살.. 2021. 9. 28.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