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과 가로등

  • 와~! 가로등과 초승달 ! 어둠속에 깨어~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22 14:51
    • 어둠 속 깨어있는 것들은 누구라도요.

      한희철 2020.01.22 20:54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2)

 

초승달과 가로등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겠구나.

  후미진 골목의 가로등과

  새벽하늘의 초승달

  어둠 속 깨어 있던 것들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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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신동숙의 글밭(62)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옥수수를 삶고 있는데,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떠들썩하다. 세 살 난 딸아이도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모처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잔칫날 같다. 압력솥에 추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에 조바심이 다 난다. 다행히 아이들은 멀리 가지 않고 우리집 앞 공터에서 이리저리 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옥수수를 뚝 반으로 쪼개고, 나무젓가락을 쪽 반으로 갈라서 옥수수를 하나씩 꽂아 쟁반에 담아서 골목으로 나갔다. 핫도그 모양으로 젓가락에 꽂은 옥수수를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이와 이름을 묻는다. 네 살, 여섯 살, 1~2학년, 키가 제일 큰 아이가 5학년이란다. 다들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말이 반갑다. 옥수수 먹으면서 놀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새로 이사온 우리집 마당과 집안이 궁금했는가 보다. "아줌마~ 들어가 봐도 돼요?" 하길래, "그래" 했더니, 집안이 사내 아이들로 북적북적하다. 딸아이가 제일 신났다.


그 후로도 골목에서 마주치면 우리들은 서로가 먼저 말을 붙이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도 대문 밖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예원아~ 노올자" 하며 종종 동생네 집으로 놀러 오곤 했다. 오빠야들이 놀러오는 날엔 딸아이는 신이 난다. 그런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한 살 많은 오빠야의 얼굴을 순식간에 꼬집어 그 집 엄마가 우리집으로 찾아온 일도 있다. 귀한 작은 아들 입가에 상처가 나서 들어온 게 속상해서 오긴 왔지만, 덩치가 저보다 작은 딸아이를 보고는 혼을 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


대여섯 명의 동네 아이들은 둘씩, 셋씩 서로가 형제라고 한다. 게중에는 키가 제일 큰 5학년 태현이, 그 밑으로 태호, 태경이 삼형제가 있었다. 골목에는 ㄱ 자 굽은 허리로 리어카에 폐지를 모르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누가 인사를 건네나 싶어 겨우 고개만 드시고, "예"라고 대답만 하실 뿐, 한 번도 허리를 펴신 모습을 뵌 적이 없는 어르신이다.


태경이네 할아버지인 줄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태경이 형제가 놀러 와서 마루에서 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께서 용돈을 마련하시려나 보다." 했더니, 태호가 가만가만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우리 키워 주시려고 돈 버는 건데요." 한다. 나는 순간 대답이 막혀서 "엄마는?" 하고 이어서 물었고, "같이 안 살고 왔다갔다 하시는데요." 한다.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는데도 순간 나온다는 말이 "엄마는 뭐를 좋아하실까?"였다. 태호는 "우리 엄마는 가마솥 갖는 게 소원이래요." 한다. 


십 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가 오늘 일처럼 생생한 것은, 태경이 때문이다. 나무젓가락에 꽂아준 반쪽 옥수수를 먹던 때가 태경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멈추고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를 해오던 아이. 태경이가 6학년이 되던 어느 여름 날. 동네에는 소방차가 왔고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아이가 강물에 빠졌는데, 찾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누구집 자녀인지 몰라서 부모를 찾는다 했고, 아이의 할아버지가 폐지를 줍는다는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운 여름날 방과 후에, 새로 생긴 돌다리 옆 수풀을 따라서 난 강물에서 다이빙을 하며 물놀이를 하던 사내아이들. 거센 물살에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가 6학년 태경이였다. 한참의 수색으로 몸을 건졌지만 숨은 돌아오지 못했다. 운구차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새벽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나도 새신자 등록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살아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기도로 구했다. '예수 영접'. 그렇게 7일 동안 새벽기도를 드렸다.


그날 낮에 마을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찾았고, 태경이 얘기를 했더니,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얘기가 지금도 고맙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느 집사님이 태경이를 한 달 전에 전도를 했었고, 한 달 4주간의 새신자 교육을 마치고, 예수 영접을 받고는 직후에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다 헤아릴 수 없는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곳은 그렇게 예수의 품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시던 예수.





지금도 동쪽으로 강변을 산책하려면 새 다리를 지나야 한다. 십 년도 전에 놓은 새 다리지만 여전히 새 다리로 불린다. 한 번 입에 붙은 이름이라 바뀌질 않는다. 그 새 다리를 지날 때면 나는 한 번도 태경이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다. 아직도 나는 그쪽 강물 곁으로 가지 못한다. 소심해서 사고 지점을 자세히 바라보지도 못한다. 다만 새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다 지나는 동안만이라도, "태경아, 태경아" 속으로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로 예수님을 부른다. 그 분 품으로 맡긴다.


그렇게 한 순간 어린 목숨을 데려간 강물이지만, 나는 한 번도 강물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강물은 여전히 흐를 뿐이다. 새 다리를 지날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태경이를 애써 지울 이유도 없고, 지우려고 한 적도 없고, 그리고 여태껏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게 할 뿐이다. 그렇게 내 가슴을 슬고 지나는 어린 영혼을 예수에게로 인도할 뿐이다. 끊이지 않는 호흡처럼 그렇게 슬픔의 강물이 평온히 흐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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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신동숙의 글밭(61)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아들은 아침부터 티비를 켜면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는 한 마리 봉황새처럼 이불을 친친 감고서 둥지처럼 포근하게 만듭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주고는 억지로 데리고 나오려다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게 되면 딸기 쥬스와 빵을 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옵니다. 


반납할 대여섯 권의 책과 읽을 책과 노트와 필기구와 물통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맵니다. 몸을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로 순간 숨이 푹 땅으로 내려앉을 듯 하지만, 한쪽 귀에만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이 어둡고 구석진 마음마다 밝혀주는 햇살 같아서 발걸음을 가벼웁게 해줍니다. 


집을 나서고 보니 5일 장날입니다. 아침밥이 벌써 소화가 되었는지, 혼자 걷는 걸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겆질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있었다면, 엄마 소매를 붙들고 걸음을 멈추어 사달라고 했을 떡볶이, 어묵, 닭꼬지, 김말이입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집을 나서지 않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순간 집으로 되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작은 의지가 이내 제 풀에 꺾인 것은 어깨를 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마냥 무겁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가던 걸음을 돌이켜야 하거나 때로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보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선뜻 몸이 가지 못하는 이유가 저마다 짊어진 일상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은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의 말씀이 한 줄기 햇살처럼 전해져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 불신과 미움과 분리의 무거운 마음을 발걸음마다 날숨마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나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의 평화를 이 좁다란 가슴에도 담을 수 있을런지요.


무엇보다 가벼웁게 할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도록 수시로 내려놓을 일입니다. 그 홀가분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임을 봅니다. 언제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네'라며 가볍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날숨마다 몸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합니다. 날숨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조금은 길게 내쉬는 날숨 그 다음에 들숨처럼 저절로 채워주시는 은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 안에 고요히 머물러 쉼을 얻는 평화와 사랑의 호흡이 강물처럼 이어지기를요.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는 텔레비전과 이불 없이도 스스로 앉아서 고요히 마음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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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태워줘!

신동숙의 글밭(60)


엄마, 태워줘!





엄마, 태워줘!

버스 타고 가거라


골목길 걷다가

강아지풀 보면

눈인사도 하고


돌부리에 잠시

멈춰도 보고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콩나물 시루 속 

한 가닥

콩나물이 되면


옆에 사람 

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


함께 걷는 길

평화의 길

사랑의 길

버스 타고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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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맞추기

  • 나의 이해를 초월하시는 그 분의 그림 안에서 살아가기에, 나에게 다가오는 새로운 만남 앞에 사심없이 다가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의가 나의 사심으로 인해서 가리워지지 않기를요.

    신동숙 2020.01.18 13:30
    • 모든 순간에 담긴 하늘의 뜻을 인정하면, 분명 나를 통해서도 멋진 그림을 그리실 테지요.

      한희철 2020.01.21 08:59 DEL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9 01:52
    • 한결같은 걸음,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21 09:00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0)

 

퍼즐 맞추기

 

몰랐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신기하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이끄시는 방법 중에는 새로운 만남이라는 방법이 있지 싶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두 사람과 점심 식사를 했다. 정릉교회에 부임을 한 뒤로 예배 시간에 자주 얼굴을 대하게 되는 젊은 내외가 있었다. 새벽예배는 물론 금요심야기도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설교 내용을 열심히 적을 만큼 예배에 집중하는 내외였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두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고, 처음으로 차 한 잔을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국민대 교수라는 것, 주일에 출석하여 섬기는 교회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점심을 약속하게 되었던 것인데, 함께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속 기도제목도 나눌 수가 있었다. 이야기 중에 들려준 퍼즐 이야기가 고마운 메아리처럼 들렸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퍼즐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이해하기 힘든 일과 시간들은 왜 이런 것이 내 삶에 주어졌을까 이상한 퍼즐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조각이 없으면 하나의 그림은 완성될 수가 없다고 말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힘들었던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허락되는 새로운 만남도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만남이라는 조각 하나를 건네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생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가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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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좋은 거울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9 01:49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21 09:00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9)

 

좀 좋은 거울

 

고흐가 동생 테오와 나눈 편지 중에 거울 이야기가 있다. 지금이야 위대한 화가로 칭송과 사랑을 받지만, 살아생전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았다. 가난과 외로움이 그의 밥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형의 처지와 마음을 유일하게 알아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며 고흐는 어느 날 이렇게 쓴다. 

“모델을 구하지 못해서 대신 내 얼굴을 그리기 위해 일부러 좀 좋은 거울을 샀다.”(1888년 9월)    


고흐의 이 짧은 한 마디 말을 떠올릴 때면 나는 먹먹해진다. 비구름에 덮인 먼 산 보듯 막막해진다. 울컥, 마음 끝이 젖어온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절대의 고독과, 물감조차도 아껴야 하는 극한의 가난, 그런 상황에서도 놓을 수 없었던 그림, 그림은 고흐와 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을 것이다. 고흐에게는 그림이 유일한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대신 자기 얼굴을 그리려고 좀 좋은 거울을 산 사람, 그러면서도 그것조차 조심스러워 하는 고흐의 떨림이 오늘 우리에겐 없다. 고흐 그림 속에 담긴 근원이, 근원을 향한 그리움이나 절박함이 우리에게 없는 것은 ‘좀 좋은 거울’을 사는 가난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좋은 거울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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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59)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모처럼 찾은 산동네, 다들 바쁜 일정 중에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중국집에서 시켜 먹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걸어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데만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한 이 까꼬막을 오토바이가 올라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칫 뒤로 자빠질 것 같고,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배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크고 밝다는 의미의 우리말 옛이름은 '배달'입니다.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달의 민족을 배웠다면, 오늘날 초등학생들은 매스컴에서 듣고 또 듣는 이름 '배달의 민족'. 광고의 요지를 보면, 어디든 달려 가고, 무엇이든 배달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제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합니다.




저녁답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주부의 모습이 귀합니다. 얼마 이상 주문을 클릭하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앞까지 배달이 되니까요. 아파트촌과 평지 마을이 배달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생계를 위해 배달을 해야하는 이웃들에게 산동네의 까꼬막은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를 두고 묵상을 합니다.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던 예수의 마음을 제 어둔 가슴에 해처럼 떠올려서 잠시나마 산동네와 배달음식, 택배 문화를 비추어봅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청년들의 잔뜩 움츠러든 몸과 피어나지 못한 체 접혀 있는 씨앗 같은 마음을 묵상합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도 먹거리부터 생계가 해결 되기에, 연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지, 삶이 행복한지, 가치와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영혼이 배달 음식으로인해 자유로움을 얻는지. 자본주의가 낳은 편리함이라는 두터운 이불 속에 갇혀 연명하고 있는 젊음.  젊은 육체의 세포들을 알알이 깨어나게 해줄 한 줄기 햇살을 구합니다.


자본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산골이나 시골로 들어가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행복을 찾았다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가슴으로 불어옵니다. 언젠가 불어온 푸른 바람과 밝고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았던 느낌을 기억한다면, 마음까지 가벼워져 겨드랑이께로 날개가 돋힌 듯 홀가분해지던 느낌을 몸이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내리는 빗물이 산비탈 마을의 낮아진 웅덩이마다 고여서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햇살이 포근하게 깊은 곳까지 감싸 안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르내리는 걸음마다 부디 안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좁다란 오름길에 봄이 오고,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고르어 평온히 걸으면 집집마다 틈새마다 피어난 색색깔꽃들이 눈맞춤하며 반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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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다

  • 빠른 회복 빕니다.

    이진구 2020.01.16 15:07
    •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17 DEL
  • 몸의 아픔으로인해 가라앉은 시간이 저절로 주어지신 듯합니다. 깊이 침잠하는 고요함 속에서 쉼을 선물로 주시는 그 조차도 은총일 테지요.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깊어진 만큼 더 맑고 환하게 다가올 일상으로 평온히 인도해 주시기를요. 하지만, 건강 또 건강하시기를요..

    신동숙 2020.01.16 19:00
    • 따뜻한 배려와 격려,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19 DEL
  • 한목사님...탈이 제대로 났군요. 건강을 타고 나신분도... 쾌유하시길 빕니다.

    기쁨지기 2020.01.17 16:11
    • 그러게요,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8 07:20 DEL
  • 아이구 이런.. 목사님.. 쾌유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혁 2020.01.17 16:50
    • 고맙습니다.
      이 목사님도 늘 건강하세요.

      한희철 2020.01.18 07:21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8)

 

가라앉다

 

탈이 난 것은 알아차린 것은 집회 마지막 날 새벽이었다. 오전과 저녁에만 모이는 집회여서 푹 자도 좋았는데, 여전히 이른 새벽에 일어났던 것은 아픈 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탈이 난 것은 배 만이 아니었다. 욱신욱신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계속되었던 무리한 일정들, 몸에 탈이 날만도 했다.

아침에 교육부총무에게서 연락이 왔다. 몸이 괜찮으냐고. 의례적인 안부 인사인 줄 알고 괜찮다고 하자 지방 교역자들 중 여러 명이 탈이 났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전날 먹었던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조심하는 마음으로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몸은 여전했다. 복통과 두통, 거기에다가 몸 곳곳이 쑤시는 것이 이어졌다. 목은 가라앉으며 된 기침이 이어졌고, 입술은 터졌다. 웬만한 증세야 참고 견디면 지나갔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주일을 지나면서도 증세는 호전되지를 않았다. 1년 예산을 결정하는 구역회와 오후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혼곤하게 잠에 빠졌다. 걱정이 된 아내가 약사 권사님께 이야기를 하여 약을 지어왔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몸의 탈, 몸이 어딘가로 가라앉는 것 같다. 돌멩이를 매단 채 깊은 수심으로 잠기는 것 같은데, 신기한 것은 덩달아 마음도 잠기는 것이다. 몽롱하기도 하고, 희미하기도 하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들떠 있었던 것이라면 이런 경험도 필요할 것이다. 가라앉을 만큼 가라앉아 이게 바닥이다 싶을 때, 그 자리에서 어머니 태속인 것처럼 몸과 마음을 웅크린 채로 얼마간을 지내면 조금씩 다시 떠오를 것이다. 싹이 눈을 뜨듯이 새로운 기운을 찾아들 것이다. 그러면 일상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지금은 다만 몸의 증세에 맡기고는 가만히 가라앉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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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유머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5 00:24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4 DEL
  • 따뜻한 유머가 어둔 마음을 맑고 환하게 해주는 듯합니다.

    신동숙 2020.01.15 06:52
    • 따뜻한 유머는 눅눅한 가슴에 켜는 등불 같지요.

      한희철 2020.01.16 08:25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7)

 

교황의 유머

 

“가만히 계세요. 깨물면 안 돼요.” 


그 한 마디 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럭 교황’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연말 자신의 손을 세게 잡아당긴 한 여성 신도에게 화를 냈고, 화를 낸 것을 사과하여 논란이 됐던 일로부터 말이다. 

그런 일로부터 며칠 뒤 교황이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찾았다. 많은 신자가 몰렸는데, 맨 앞줄에 있던 수녀 한 명이 손을 뻗으며 “바초, 파파!”(키스해 주세요. 교황님) 외쳤다. “오, 나를 깨물려고요?”라고 묻는 교황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자 교황은 “당신에게 키스할 테니 그대로 있어야 해요. 깨물면 안 돼요.”라고 말하며 수녀의 오른쪽 뺨에 입술을 맞추고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유머러스한 교황과 감격에 겨워 좋아하는 수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주변 신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바티칸 미디어·로이터연합뉴스



그런 교황을 보며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라는 <논어>의 한 구절을 떠올린 글을 읽고 빙긋 웃었다. 적절한 이해라 여겨졌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가 중에서 누가 학문을 좋아하는가를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안회가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성냄을 옮기지 않고, 실수를 두 번 되풀이 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불행히도 단명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안회가 30대 초반 나이에 죽자 공자는 “天喪予(천상여) 天喪予(천상여)” 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 하며 탄식을 한 것이었으니, 스승이 제자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 마음에 새겨둘 만한 말이다. 잘못이나 어색함을 덮고 지우는 것은 역시 따뜻한 유머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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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20.01.15 00:18
    • 고맙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6 DEL
  • 한국에 내리는 겨울비가 호주에서 내렸으면 하는 저도 그런 마음입니다. 말씀 앞에서 호불호가 사라지는 복된 자리,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신동숙 2020.01.15 06:55
    • 겨울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를 보면서 호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했답니다.

      한희철 2020.01.16 08:27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76)

 

호불호

 

강화서지방 연합성회에 다녀왔다. 연초(年初) 첫 번째 주에 말씀을 나누는 것이 강화서지방의 전통이었다. 연일 겨울비가 내렸지만 한해를 말씀으로 시작하려는 교우들의 열심은 날씨와는 상관이 없었다. 겨울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 생각하니 눈이 아니길 다행이었다. 눈이었다면 폭설, 오히려 길 나서기가 어려웠을 터였다. 이 비가 산불로 재난을 겪고 있는 호주에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화서지방에는 섬에 있는 교회들도 있었다. 석모도에 다리가 놓여 육지화 되었음에도 볼음도, 주문도, 아차도, 말도 등 5개의 교회는 여전히 섬에 있었다. 섬에 있는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집회 기간 동안 뭍에서 지내며 집회에 참석을 했다. 둘째 날 아침에는 섬 교회 목회자 내외분들과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섬에서 목회하는 목회자에게는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애환이 있었다.




연합성회를 인도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이 은혜를 사모하는 방식도 다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뜨거움을, 어떤 이들은 온전한 말씀을 기대한다. 어떤 기대에 부응하기보다는 내가 전할 수 있는 말씀을 전하기로 했고, 가능한 차분하게 말씀을 나눴다. 양해를 구하고 헌금에 대한 강조도, 헌금봉투에 적힌 이름을 호명하는 일도 삼갔다.


집회를 모두 마치는 날이었다. 마지막 저녁집회를 앞두고 잠깐 지방 감리사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너무 강사 방식대로 해서 걱정을 끼친 것 아닌가 조심스럽다고 하자, 감리사가 고마운 말을 한다. 강사의 성향에 따라 교우들과 목회자들의 호불호가 선명하게 갈릴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어 참 좋았다고 했다. 

물론 강사를 위한 배려의 말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 말이 고마웠던 것은 우리의 성향이 서로 다르다 해도 말씀 앞에서 갖는 우리의 마음은 서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서 호불호가 사라지는 자리가 복된 자리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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