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4)


꽃과 새





예배당 앞 작은 정원에 자목련이 피었다. 키 낮은 나무지만 자태가 곱다.


어떻게 알았는지 직박구리가 날아와 꽃잎을 먹는다. 멋있게도 먹는다. 우리가 밥을 먹듯 꽃을 먹는 새가 있구나.


새에게도 먹을 것을 주어 자목련이 저리 예쁜가.
꽃을 먹는 새가 있어 새들의 노랫소리 저리 맑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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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신동숙의 글밭(124)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이웃에 두 평 남짓 화단이 있습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담을 두르고 마사토를 쏟아 부워서 만든 작은 공간입니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애플민트 등 각종 허브 모종을 한 뼘 남짓 간격을 두고 심은 곳입니다. 그리고 화단의 가장 먼 둘레에는 꽃을 볼 작은 묘목 대여섯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작년 여름에 만들어 두고는 하늘만 믿는 천수답처럼 알아서 크겠지 하고 무심히 겨울을 지났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쏟아 부은 마사토의 높이가 울타리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비가 뜸하다 싶은 날 호수로 마른 흙밭에 물을 주면, 흙으로 스며 드는 양보다 밖으로 흘러 내리는 양이 많아 보였습니다. 입이 짧은 딸아이를 볼 때면 애가 타는 마음 같습니다. 때때로 교만으로 높아지려는 제 마음에도 가운데가 움푹 낮아져 눈물이 고이는 자리를 내고 또 내려 합니다. 교만함은 이득보다는 손해를 보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음을 이제는 경험으로 아는 나이가 됐는가 싶어 가슴께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데, 줄기는 말라 보이고 겨우 가지 끝에 피운 잎도 야위어 보입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점심밥을 먹고 난 후 호미와 모종삽과 고무장갑을 챙겨서 친정 엄마하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돌던 몸이 집 안에 머물게 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소소한 집안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들 집에 머물면서 뭘하고 있을까 하고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런 마음이신지 더러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고 싶은 얼굴들을 달처럼 별처럼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화단 중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허옇게 마른 흙을 호미로 푹푹 팠더니, 속에 부드러운 흙이 울컥 토하듯 숨을 쉽니다. 가운데 높은 흙을 퍼 담아 옮겨서 낮은 가장자리에 둑처럼 쌓았습니다. 새로운 울타리를 두르 듯 흙을 쌓아서 둑을 만들었습니다. 어릴 적 모래 놀이터에 앉아서 하염없이 쌓고 허물고 또 쌓던 모래 언덕처럼 모래 터널처럼 모래 물길처럼.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허무시는 손길을 따라서 한없이 낮아지려는 마음으로 낮은 숨을 쉽니다. 한 점까지 낮아진 숨에 고요함이 머물면 한 순간 세상은 맑고 평온하게 보입니다. 


이제는 물을 주면 밖으로 흘러 넘치지 않고 뿌리가 물을 머금도록 묘목을 중심으로 사이 사이 낮게 골을 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밭에 일꾼 지렁이가 하는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흙을 먹고서 흙을 길게 토해 내며 흙에 숨구멍을 내는 지렁이의 삶. 제가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질로 하고 있는 일이 지렁이가 하는 일들이 아닌가 하고요. 지렁이와 벌레 작은 생명들이 살지 않는 흙이란 이렇게 척박하고 단단해져 숨 조차 쉴 수 없구나.


봄비가 내린 후 강변에 아이들 새끼손가락 굵기만한 지렁이가 보이면 몇 마리 데려다가 풀어 놓자고 웃으며 얘기했습니다. 비가 그친 후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지렁이가 종종 눈에 띕니다. 징그럽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지렁이가 고맙고 소중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한결 넉넉해졌습니다. 우리집 마당에 저절로 자란 페퍼민트와 돌나물과 수국과 꽈리를 몇 뿌리 뽑아다가 한 뼘 간격을 두고 빈 곳에 옮겨 심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르고 단단한 가슴엔 스며들지 못하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 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단단한 흙에 호미질을 하는 일은, 마음을 벼르는 일 못지 않게 개운한 일이 됩니다. 날이 갈수록 마음과 몸이 하는 일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해처럼 빛납니다.


더러 말씀을 들을 때면 양심에 폭폭 찔립니다. 단단한 가슴에 호미질을 하듯 진리의 말씀은 호미날 같습니다. 그렇게 폭폭 찔리고 움푹 패이고 부끄러운 듯 마침내 부드러워진 마음의 골마다 꽃씨를 심자고 했습니다. 온라인 동영상으로 듣는 주일 말씀이 또한 날이 선 호미날처럼 쟁기날처럼 그리고 뿌려지는 꽃씨 같습니다. 무심히 단단해지려는 제 마음밭을 일구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떠올리며, 고마움에 그리움에 봄비처럼 눈물이 내립니다. 낮아진 마음밭에 눈물이 빗물처럼 고이다가 넘쳐 흘러 좁은 물길이 나면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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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3)


진갑


생일을 축하하며 한 장로님이 “이젠 진갑이네요.” 웃으며 말했다. 진갑이란 말을 오랜만에 들었다. 進甲은 환갑의 이듬해로 ‘예순두 살’을 이르는 말이다. 글자대로 하자면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가 될 것이다. 




어릴 적 ‘환갑 진갑 다 지났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다. 어지간히 오래 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그 말은 살만큼 산 사람이란 뜻으로 전해졌다. 


남의 일로만 알았는데, 이젠 내가 진갑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이젠 살 만큼 산 사람이 된 셈이다. 


이제부턴 덤이다. 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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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물이 흐르는

신동숙의 글밭(123)


기도는 물이 흐르는



기도는 물이 흐르는
기도는 숨이 흐르는


품으면 꿈이 되고
피우면 꽃이 되는


하늘 숨으로
하나 되어


본향으로
돌아가는


홀로 깊은 침묵의 강
쉼을 얻는 평화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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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2)


형에게


문득 떠오른, 오래 전에 썼던 글 하나가 있다. 왜 그것이 떠올랐을까 싶은데, 어쩌면 그 말이 그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형!
-응?
-형도 울고 싶을 때가 있어?
-응!
-언제?
-아무 때나.
-형은 항상 웃었잖아.
-두 번 웃기 위해 세 번은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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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1)


희망이란


‘희망은 신앙과 사랑의 한 복판이다’


교회력을 따라 교단에서 발간하는 잡지 <강단과 목회>를 읽다가 만난 한 구절이다. 성서일과로 주어진 본문은 에스겔 37장, 마른 뼈들에 관한 환상이었다. 





‘희망은 신앙과 사랑의 한 복판이다’라는 말이 새롭고 신선하게 와 닿았는데, 그 말 옆에 인용한 성경구절이 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었다. 잘 알고 있는 말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씀을 그렇게 이해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망은 믿음과 사랑 사이에 있다. 


익숙한 말씀을 새롭게 새기자 의미가 새로워진다. 설교자가 선 자리는 그곳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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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122)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봄이 오면 장사익 소리꾼의 곡조가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듯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둘째가 세 살이 되고 엄마 품을 벗어나려던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거실에 펼쳐둔 신문을 넘기다가 하얀 목련꽃 한 송이처럼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장금도 명인의 하얀 춤사위. 진옥섭 연출가의 땀으로 장금도 명인의 민살풀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글줄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그해 6월, 저는 그렇게 십 여 년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서 혼자서 호젓이 서울행 KTX에 올랐습니다. 


6월의 서울 거리는 따사로웠습니다. 졸업 후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이 서울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을 훌쩍 넘기고, 오랜만에 걷던 가벼운 발걸음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꽃처럼 다시 피어나는 듯했습니다. 라일락꽃이 한창이던 6월의 어느 날, 돈암동 성신여대 앞 태극당 맞은 편에서 222번 버스를 타고 가던 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다가 깜짝 놀라서 몸을 바로 세우고 또 부딪히고, 그렇게 모자란 잠을 꾸벅이다가 잠결에 내린 압구정 3호선 버스 정류장, 그 바쁜 출근길에 청담동 언덕길을 없는 듯, 제 뒤를 따라와서 명함을 내밀던, 어느 종갓집 장손처럼 단정하게 생긴 청년의 수줍은 눈빛. 2년 남짓 생활하던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픈 사연도 있었지만, 세월이 한 구비 두 구비 흐른 탓인지 좋았던 기억들만 아름다운 선물처럼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앉은 곳은 관람석이었지만,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에 제 호흡을 실었습니다. 고요히 손끝으로 흐르는 선을 따라서 하얀 저고리가 허공에 그리는 수묵화 같은. 가벼운 듯 무거운 발뒤꿈치 끝이 내딛는 땅은 매 순간 이 세상 처음의 땅 같은. 가슴에서 숨이 드나들 듯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무의 춤 같은. 흐르는 물처럼 구름처럼 고독 속에 호젓이 구도자가 걷는 침묵의 길 같은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 그 긴 침묵을 깨고 봄바람처럼 불어온 소리가 소리꾼 장사익이었습니다. 그 역시 가슴에서 샘솟듯 꽃을 피우듯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많고 많은 사건 사고들에 아랑곳없이 올해도 어김없이 남쪽에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한 매화는 섬진강으로 진해로 경주로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페북에 연일 올라오는 벗님들의 꽃소식들로, 세상의 무겁고 어두운 소식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가슴이 환해집니다. 산수유, 목련, 민들레, 꽃다지, 진달래, 벚꽃, 유채꽃, 제비꽃, 튤립......  추운 겨울을 견딘 후 올해도 한결같이 피어나는 꽃들이 한창인 봄날입니다.


이 봄날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이 땅에 무수히 많은 봄이 찾아왔지만, 아마도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바람을 막으려는 무모한 일처럼 꽃놀이를 막으려는 마음들의 힘겨움이 조금은 헤아려지기에, 어쩔 수 없이 막아야만 하는 그 마음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민살풀이의 장금도 명인이 내딛던 가벼운 듯 무거운 발걸음처럼 긴 호흡처럼, 훌쩍 떠나고픈 가벼운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 봄날에도, 사람은 사람이라서 아름답습니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가슴으로 숨을 쉬는 일이 또한 가슴으로 꽃을 피우는 일임을 스스로가 알아차릴 수 있다면, 매 순간을 영원으로,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겨울나무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활짝 피운 봄꽃처럼, 지난한 일상 속에서 틈틈이 멈추어, 고독과 침묵 속에서 불어오는 성령의 자유자재하신 하나님을 봄바람처럼 느낄 수 있다면, 거룩한 성전인 제 가슴에도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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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이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40)


사순절이란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아픈 당신
나보다 더 힘든 당신
미련함으로
송구함으로
뒤늦게 깨닫는


사순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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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로 손 씻기와 설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39)


비누로 손 씻기와 설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습관이 두 가지 있지 싶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손 등으로 가리고 하는 것과, 손 씻기를 자주 하는 것이다. 손을 씻을 때 비누로 손을 씻으면 소독제를 바르는 것보다도 효과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들은 대로 비누로 손을 씻다가 엉뚱한 생각을 한다. 혹시 비누로 손을 씻으면 효과적이라는 말은 유머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비누로 손을 씻으면 손이 미끌미끌해지고, 미끌미끌해진 손을 닦아내려면 한참 물로 닦아야 한다. 비누가 손 구석구석에 묻었으니 비누를 다 닦아내려면 손 구석구석을 닦아야 한다. 그렇게 비누를 없애느라 손을 닦다보면 나도 모르게 손을 열심히 오래 제대로 닦아야만 한다. 비누가 효과적이라는 말은 얼마든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겠지만, 내게는 단순한 유머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는 설교가 그랬으면.
그렇게 쉽고도 당연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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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신동숙의 글밭(121)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세상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소식들로 연일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어설프게 안고서 주신 하루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유튜브로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도 듣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가는 곳마다 법정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끼고 다닌 하루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마저 치우지도 못하고,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챙겨서 떠들썩한 식구들의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출가를 하였습니다. 식구들로부터 떠나와서 출가를 하는 장소는 거실 쇼파가 되기도 하고 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가 참 다르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다 챙겨주고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어설픈 엄마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잠시 잠깐 주어지는 엄마의 빈 자리가 도리어 선물 같은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늦은 밤에 딸아이는 떡볶이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낮에 아들은 누나 곁에 나란히 앉아서 저도 따라서 색색깔 쿠키 반죽을 빚습니다. 사용설명서를 봐 가면서 오븐에 굽기까지 저 혼자서 다 해냅니다. 엄마의 역할은 그런 자녀들의 모습에 틈틈이 감탄하면서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이미 예전에 읽으면서 연필로 연하게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친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맑은 샘물을 마신 듯 푸른 하늘을 본 듯 제 속뜰로 맑고 투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귀한 글들 중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이 봄날에 함께 나누고픈 단락이 있어서 그대로 옮깁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그 모진 추위와 비바람과 뙤약볕에도 꺾이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의지가 선연한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다.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63~64쪽)


그 옛날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봄을 맞이하시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글숲을 거닐며 스님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답답하던 가슴을 슬고 지날 때마다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제 가슴을 누르던 것은 바윗돌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두터워진 모래 먼지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슬고 슬고 슬면 얼마든지 맑게 슬어낼 수 있는 세상의 먼지, 때때로 진흙탕이 될 때면 한 송이의 연꽃을 피울 수도 있는 그만치의 탁한 세상 말입니다. 이 땅에 한결같이 찾아와 줘서 고마운 봄날, 세상에서 불어오는 탁한 바람을 씻기는 건, 자연의 봄바람과 맑은 영혼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인가 봅니다. 


딸아이는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지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가 정겹습니다. 그제서야 홀로 글숲을 거닐던 순례길에서 돌아와 저녁식사 뒷정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늦은 밤 유튜브로 법정 스님의 육성 법문을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듣다가 울컥 울컥 눈물이 나서 기침을 막으라는 팔꿈치로 눈물을 닦아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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