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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랭이질 한옥을 떠메고 앉은 우직한 머슴, 주춧돌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보았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집이 제대로 서려면 물론 기둥이 중요하지만 그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은 기둥에는 눈길도 주고 그 우람함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다. 어찌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니, 주춧돌을 두고 우직한 머슴이라 부른 것은 제격이다 싶다. 한옥을 지으며 기둥을 세울 땐 맨땅이 아닌 주춧돌 위에 세워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했다. 주춧돌을 놓을 때 당연히 돌의 표면이 반반한 모양이어야 쓸모가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2025. 2. 8.
비꽃과 비설거지 비와 관련된 우리말 중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해 즐겨 쓰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안개비나 이슬비는 익숙해도 ‘는개’라는 말은 낯설지 싶다.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라 불렀다. 채찍처럼 쏟아진다고 하여 ‘채찍비’도 있었고, 빗방울의 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린다 하여 ‘발비’도 있었다. 좍좍 내 리다가 금세 그치는 비는 ‘웃비’, 한쪽으로 해가 나면서 내리는 비는 ‘해비’나 ‘여우비’,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는 ‘먼지잼’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 라 했다던데,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너무 고마워서 ‘단비’ 혹 은 ‘약비’, ‘복비’라 부르기도 했다. ‘비그이’라는 말은 .. 2025. 2. 1.
하얀 눈꽃송이보다 먼저 내려앉은 무엇이 2025 을사년 새해 꽃보다 소중한 아이들을  새해 첫눈보다 먼저  검은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려앉게 했나 하얀 눈꽃송이도 발 딛지 못한 이 언 땅은 가장 뜨거운 꽃자리 무슨 꽃을 피우려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앉은 자리마다 하얀 눈사람이 된 한 그루 겨울나무가 된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땅이 되어 지구의 심장이 되어 떨군 눈물 한 방울로 그리고 함박웃음꽃으로 피어나는 얼빛 붉고 고운 두 손으로  어둔 가슴 어둠을 한 움큼 떠서 비우고 비워 낸 자리마다 이제 무엇이 들어찰까?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스스로 태양이 되어 밤새 앉은 자리를 지켜 낸 고요한 때론 활짝 웃는 고운 얼굴에서 내가 본 적 있는  얼굴들이 어리운다 언제나 이 땅을 위해 기도하시는 성모 마리아님,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  예수님이 선.. 2025. 1. 13.
새벽별이 춤춘다 어둔 밤 겨울밤 12.3 계엄의 어둠과 혼돈을 뚫고서 집밖으로 뛰쳐 나온 소중한 별들 오늘밤도 까만 겨울밤  하얀 찬바람이 언 볼을 스칠수록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는 눈망울들 흰별,  초록별, 파랑별 노랑별,  분홍별, 보라보라 모두들 가슴에는  단 하나의 염원 하나의 목소리로  서로를 비추며 빛나는 새벽별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별은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라는  진실을 보여주려는 듯 어둠과 어둠은 모일수록 더욱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라는  정의를 보여주려는 듯 빛과 빛은 모일수록  더욱 환하게 밝아져 곧  밝은 아침이 오는 소식이라며 세상의 모든 잠자던 생명들을 깨우는 새벽별들의 맑은 노랫소리  하늘 가득 울리는 개벽 새 날 새 생명의 종소리 그 옛날 새벽별을 보고 깨우친 석가모니의 오도송 같은 법문.. 2024. 12. 31.
기도와 저항과 공동체(2) 자기 속에 평화가 없는 사람은 평화를 이룰 수 없다. 평화를 만드는 이들에게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전인격적인 변화이다. 평화운동이 영성운동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웬은 “평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성찰을 기도, 저항, 공동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힘주어 말한다. “우리가 평화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먼저 평화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떠나 평화를 주시는 분의 집에 들어가야 한다.”  주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거기서 사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기도는 우리를 존재로 부르신 분에게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활동이 기도에 바탕을 두지 않을 때 쉽게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모질게 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기도야말로 평화실천의 기본인 까닭이 여기에.. 2024. 12. 11.
기도와 저항과 공동체(1) “저항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죽음의 세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 결과 우리가 만나는 것이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생명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기도하라 저항하라》, 77쪽)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 동료들이 미국 시민권 운동의 전환점으로 만든 셀마에서 진행된 영웅적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남부로 내려갔다. 1970년대에는 반전집회에서 연설했고, 코네티컷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해군 기지에서 벌어진 철야 평화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니카라과와 과테말라에 가서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레이건 대통령의 저강도 전쟁 전략과 핵무기 경쟁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고, 네바다의 핵실험 장소에서.. 2024. 12. 4.
나는 설교에 실패했고, 거부당한 설교자였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나서 예수를 섬기는 대열에 서긴 했지만 나를 예수 사람으로 기른 사람은 목사인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아내인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내게 성경 이야기를 해주었고, 내가 성경을 직접 읽도록 가르쳤고, 예수를 내게 소개했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믿음을 갖게 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도록 이끌어주었고, 기도할 수 있게 했고, 끝내 나를 목사가 되도록 안내하였다.  내가 비록 목사인 나의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기는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교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교인이었던 셈이다. 나의 아버지 목사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교회를 떠났던 교인들이 나의 어머니의 위로와 격려에 설득되어 다시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목사 아버지가 친가 친척을 전.. 2024. 12. 1.
날마다, 순간마다 하늘에 길을 묻지 않으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한 말이다. 옛사람들은 북극성을 가리켜 ‘거기소’(居其所)라 했다. 늘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변함없이 그곳에 있기에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보며 자기 위치를 가늠했다. 먼 바다로 나갔다가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떼,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도 가야 할 곳을 잊지 않는 철새들, 꿀이 있는 곳으로 정확히 날아가는 벌들은 어떻게 길을 찾는 것일까? 운전자들은 GPS의 도움으로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길을 잃기 일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 2024. 11. 27.
하나님의 마음, 그 여성의 힘 여성 신학자, 목회자들의 성경 읽기는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단지 젠더의 차이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그 차이에 담긴 시선, 사회적 경험, 해석에 대한 질문이 될 것이다. 같은 성서 텍스트라도 그 서 있는 자리, 사회적 존재로서 겪게 되는 일상은 다른 관점, 전망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책의 제목을 《새 시대 새 설교》라고 붙인 까닭 또한 그런 의미를 담는다. 오랜 세월 동안 남성 위주의 강단이 쏟아내는 설교, 메시지가 하나의 교리, 교조 내지는 정식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여성적 관점의 배제, 여성이라는 젠더가 포괄하는 기존질서로부터 변두리화된 존재의 육성을 지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억압된 목소리, 경험, 관점의 복구를 열망하게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복구의 지점에 서 있다. 물론 이로.. 2024.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