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교회 성령운동의 빛과 그림자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1. 9. 18. 08:58

 

 

한국 기독교사에서 성령 이해의 매우 중요한 분수령은 1970년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개인과 교회의 전격적인 변화에 대한 증언이 존재해왔으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파장을 이루면서 한국인들의 신앙에 위력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성령운동이었다. 그리고 비기독교 대중들도 ‘성령’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가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하겠다.

 

애초에는 보수교단에 의한 이단 시비로 신학적 제동이 걸렸지만, 죄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교인들을 주눅 들게 했던 기존 교단의 엄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영적 해방감을 신앙인들에게 맛보게 함으로써 성령운동의 파급은 막기 어려운 속도와 강도로 진행되었다. 복잡한 신학적 이해를 요구하지 않았고, 고도성장의 사회정치적 압박으로부터 오는 규격화된 긴장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이고 비정형적인 예배양식을 통해서 해소되었으며, 계층이동의 욕구를 신앙적 기원(祈願)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당연한 축복으로 이해했기에 그 대중적 기반은 빠르게 확대되었다.

 

새로운 바람

 

이로써 대중들이 신앙의 세계로 진입해 들어가는 문이 넓어졌다. 억압적인 엄숙주의가 사라지고, 예배의 기쁨이 집단적으로 체험되기 시작했으며, 즉각적인 성령의 권능을 목격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부인하기 어려운 신앙 경험들이 축적되어 갔다. 긴장의 발산이 성령을 강조하는 부흥회에서 고도로 이루어졌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여온 울분과 한과 좌절 그리고 성공을 향한 기원이 거침없이 쏟아졌으며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성령의 존재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특히 육신의 병으로 고달프게 시달렸던 이들은 성령의 체험으로 종교적 열정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감을 상실했던 사람들도 성령충만의 절정을 경험하면서 생활의 자세가 달라졌다. 이로써 순복음교회의 오순절운동은 한국 기독교에 중대한 도전이 되었고, 기성 교단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성령운동의 장력 내에 있는 사람들의 밝고 기쁜 표정은 기성교단의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던 경건주의의 딱딱한 표정과 대조되었다.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활짝 열린 이 오순절 신앙의 현장은 한국사회의 상류계층이 주도하고 있던 교회의 정돈되어 있던 기존 질서에 일대 충격이었다. 이로써 새로운 영적 에너지를 받아 가지게 된 사람들이 교회를 비롯해서, 한국사회의 약동하는 변화에 자신을 실현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순복음교회를 비롯하여, 오순절 운동을 근거로 한 교회들의 급격한 성장은 이러한 기세에 힘입었다고 하겠다. 이제 한국 기독교에서 성령에 대한 강조가 없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고, 기성 교단들도 하나둘씩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순복음교회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성령운동은 그 동안 다분히 정죄주의적이고 율법적인 분위기가 지배해오던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다. 무엇보다도 신앙인들에게 은혜를 사모하게 만들고, 성령의 체험을 통해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한국사회의 역량을 높이는 데 괄목할 만한 기여를 한 셈이다. 더욱이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성령운동은 그 카리스마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 기쁨을 줌으로써 이 운동에 속한 사람들에게 대단한 활력을 주었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를 휩쓴 성령운동은 기성 교단의 교조적 질서와 틀에 묶인 사고에 대한 내재된 반발이 점화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믿음으로부터 오는 개인적 자유와 성취의 차원을 새롭게 열었다.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 기독교를 ‘정죄로부터 용서로’, ‘심판으로부터 복 받음으로’, 그리고 ‘내세로부터 현세로의 삶으로’ 그 신학적 담론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세속의 성공주의와 결합한 성령운동

 

그러나 ‘세상 것에 대한 거부’라는 말로 표현되는 비정치적 접근과,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성장주의와 결합된 신앙적 기원이 서로 모순됨이 없이 ‘오순절운동’을 떠받쳐 나감으로써, 중앙집권적 개발시대에 대한 순응주의를 길러나갔다. ‘열심히 땀 흘려 살아보자’는 구호가 전면적으로 지배했던 시기에 이 같은 신앙의 유형은 잘사는 것이 결코 종교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며, 성령의 권능 안에서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이른바 ‘적극적 사고방식’의 출세주의를 촉진시키는 신학적 기반이 된 셈이다.

 

이것은 자연히 신앙인들의 사회적 관심에서 정치적 문제제기의 비판 능력을 거세하면서, ‘개인의 내면적 평화와 계층 상승의 기대감’을 하나로 묶어 매우 이기적인 경제주의에 매몰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잘못 건드리면 탄압이 예상될 수밖에 없는 정치의 영역은 신앙의 이름으로 퇴각시키고, 이런저런 사회적 번뇌로부터 탈출하도록 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이루는 가운데 현세의 물질적 성취로 만족을 얻는 방향으로 신앙인들의 내면을 조성해 나갔던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게 만들었고, 현실의 모순에 대하여는 외면하거나 침묵하게 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없이 내가 설정한 개인적 성취의 목표에 신앙의 힘이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가 관건이었다.

 

그리고 성령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영적 도구처럼 인식되어 갔다.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위치의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성령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방망이’였던 셈이다. 그런 교회의 대세 속에서 한국사회는 빈부격차의 사회경제적 근거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빈곤해져 갔고, 풍요가 낳은 타락과 부패의 늪에서 사람들이 이토록 헤매게 되기까지 아무런 힘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배태된 성령운동의 주류는 결국, 한국의 역사를 바르게 잡고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는 일과는 거리가 있는 신앙심으로 위장된 ‘이기적 자기실현의 동력’이라는 반(反) 그리스도적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나아가 교회의 양적 규모가 비록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진실된 양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미지가 굳게 서있다면 그 종교적, 사회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의인’일지라도 이들이 이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동안 쌓여 왔다면 개신교의 위상은 사뭇 달랐을 것이며, 오늘날과 같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고 위태한 시대에 교회가 줄 수 있는 것들은 매우 귀중한 종류의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자신을 기꺼이 십자가에 던질 ‘소수의 의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대중들의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구미에 자신을 맞추어나가는 쪽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른 ‘영업’을 하려고 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미지를 주고 말았다. 그래서 영업이 잘 되는 비결을 배우려는 식으로 양적 규모에 매달리는 교회성장론이 판을 치고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영적 양식을 제공하고, 그 사회적 진로에 대한 깊이 있는 발언을 하는 힘은 사라지고 마는 위기에 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아, 그 교회!”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갑자기 숙연해지고 양심이 뜨거워지며 무언가 나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지 하는 감동을 제대로 줄 수 있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로 접근해본다면, 개신교 교회의 전반적인 위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마는 부끄러운 현실에 직면하고 만다.

 

해방의 영, 은혜의 영

 

기독교 신앙의 성령 이해는 나사렛 예수의 성령이해가 그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그밖의 다른 것은 어떤 인위적 목적에 반응하는 사회심리적 조합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내면에 근본적으로 잠재하고 있는 영적 감각과 사회적 요구가 결합된,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닌 ‘종교심리적 반응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온 영은 본질적으로 그 영이 임재한 사람에게 그가 세상에서 해야 할 ‘해방의 사명’에 눈뜨게 한다. 이 차원이 존재하지 않은 성령이라는 이름의 종교심리적 현상은,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말로 위장하고 은폐했든지간에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기주의에 봉사하게 될 뿐이다. 누가복음 4장의 이사야서 인용의 대목은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셨을 때 일깨워지고 드러나는 신앙의 지향점이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든 행적과 사역이 자신의 인간적 의지나 결단 또는 이념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주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라고 고백하듯이 하나님의 영이 그를 움직이고 있음을 먼저 선언하고 있다. ‘나를 보내셔서’라는 말에서처럼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자’라는 인식을 드러내고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 하게 될 일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하시려는 일임을 못박고 있다. 하여, 성령이 임재한 자의 모습은 자신의 소욕에 따른 행동방식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 세상에 역사하시려는 바를 대리하는 자로 부각된다.

 

성령은 자신이 성취하려는 바를 도우시는 분이라는 각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취하려는 바에 성령의 인도에 따라 쓰임받는 자라는 인식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세속적 성공주의와 결합된 성령주의 운동’과는 완전히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하고자 하며 또 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시켜주는 영적 능력으로서의 성령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내 안에서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보혜사이다. 그러므로 이 성령은 거듭 말하지만, 인간의 이기주의와는 필연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인간 자신은 그 안에서 소멸되고, 하나님의 뜻이 그 모든 행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나는 매일 죽노라” 한 바와 통하는 차원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는 결국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내가 창조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내가 소멸되지만 사실은 새로운 내가 다시 생기는 것이며, 그 새롭게 생기는 나는 이전의 나와는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성령운동의 본질

 

따라서 성령의 임재는 따라서 일차적으로 그 인간의 내적 욕망과 성령이 투쟁하는 단계를 통과하게 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예수의 광야시험’이 사단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려 이루어졌다고 증언된 점은 바로 이를 뜻하게 된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생기도록 만드는 인간 내부의 일체의 것과 대결을 벌이며, 성령이 임한 사람은 기존의 가치관이 졸지에 붕괴하는 충격과 혼돈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 사람을 고뇌하도록 만드는 일이며,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이제껏 인식하지 못했던 역사와 사회의 이면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며,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다가와 온몸을 이 작업에 내어맡기는 자로서의 전격적 변모를 겪게 된다. 말하자면, 나사렛 예수의 메시아적 메시지가 내포하고 있는 작업의 성격은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주목할 수 없었던 현실이 그 시계권(視界圈) 내로 포착되어 사명의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의 증언이다.

 

그가 가난한 사람, 포로 된 사람, 눈먼 사람, 억눌린 사람에게 기쁜 소식과 자유와 다시 보게 됨, 그리고 해방과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맞딱뜨려야 할 일은 이들을 가난하게 하고 포로 되게 하며 눈멀게 할 뿐만이 아니라 억누르고 가두는 세력과의 대결이다. 그런 세력의 존재가 있지 아니하고는 이들의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절로 가난하고, 저절로 포로 되고, 저절로 눈멀며, 또한 저절로 억눌린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 않은가? 나사렛 예수께서 그의 선교사역 과정에서 바리새파, 대제사장, 율법학자 등과 무수한 충돌을 겪게 되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이 대결의 현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의 임재가 성령의 충만을 통해 파견자에게 주는 힘의 구체적인 성격을 파악하게 된다. 그것은 세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파괴하는 힘과의 대결에 요구되는 ‘용기와 지혜’인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존재는 세상 대세의 요구에 응하여 그에 필요한 능력을 극대화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그에 맞서서 하나님 나라의 면모를 대조적으로 증언해 주는 용기를 지니며, 그 용기가 인간에게 출로의 지혜를 주는 대안적 능력을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자의 삶은 기본적으로 예언자적 성품을 가지고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의 여론에 이끌려서 자신의 입지를 팔랑개비처럼 상실해버리는 자가 아니라, 핍박과 비방이 있다 해도 그에 굴하지 않는 가운데 인간의 삶을 가난하게 만들고, 무언가에 포박되게 하며, 진실에 눈 어둡게 하는 질서와 세력을 세상에 폭로해 버리고, 이들에게 인간이 자신을 내어주지 않도록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은 이러한 작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풀려난 존재들이 만나게 되는 기쁜 현실, 은혜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이 땅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열어가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은 한 개인의 삶을 죄와 탐욕으로부터 내적인 해방을 실현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한 사회와 역사를 뒤덮고 있는 억압을 철거하는 작업에 인간이 위엄 있게 나서도록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그 인간과 사회에 하나님의 생명력이 채워져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억누르며 속이고 가두는 일이 없는 ‘새 하늘 새 땅의 감격’을 맛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운동의 본질’은 당연히 그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일체의 개인적이고도 집단적인 죄와 억압의 문제를 대결의 중심에 놓게 되며, 정치·경제·문화·사회 모든 면에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도록 성령이 임재한 인간을 역동적으로 바꾸고 활약하게 만들어주게 되어 있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번창해 가는 사회는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타락과 경제적 부패, 그리고 문화적 세뇌와 사회적 무기력을 바로잡아 나가는 능력이 극대화되어 가는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지 않다면, 그런 성령운동은 좋게 말해서 역부족이거나 또는 분명한 거짓이다. 그것은 결국 가난한 자에게 허망한 세속적 환상을 공급하고, 포로 된 자를 포로의 위치로 그대로 고정시키며, 눈먼 자에게 눈이 감겨 있어도 행복을 느끼라고 세뇌하며, 억눌린 자의 마음에 복종의 윤리를 심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맞서서 무너뜨리려 했던 일체의 세력을 돕는 하늘에 대한 반역을 성령의 이름으로 (자기도 모르게)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성령은 실로 우리들 안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이 세상 곳곳에서 그 아름다움을 펼쳐낼 수 있도록 하는 권능을 이루어내고, 그 위에 하늘의 위엄과 섭리의 역사를 부여하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삶이 지향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와 사회적 사명의 차원에 대한 눈뜸으로 연결되고, 그 실천의 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하늘의 생명력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 소유한 자에게 ‘이김’이 약속되어 있다.

 

오순절 운동의 성서적 모델

 

그러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순절운동의 성서적 모델을 살펴보자. 사도행전 2장 1-4절은 ‘방언’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성령충만이 드러내는 현상의 본질적 성격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의 변화’이다.

 

말은 인간의 정신을 장악하는 힘을 가진다. 말로 성처를 입기도 하고, 그로써 새로운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에게 이 말이 갖는 생명력의 차원을 변화시키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을 성서는 증언해 주고 있는 셈이다. 이 사도행전의 대목에 등장하는 ‘방언’은 일상의 차원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어떤 영적 언어가 아니라,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는 능력을 지닌 언어이다. 그것은 언어의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내면에 도달하는 힘을 발휘하는 모습으로 그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의 성품은 본문에서 바람과 불길, 하늘의 소리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것은 첫째, 바람에 휩쓸려 가는 소리가 아니라, 그 ‘바람의 진원지’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 충만한 자의 말은 그야말로 바람을 몰고온다. 그리고 그 바람은 세차다. 낡고 악한 것이 그 바람의 위력 앞에서 ‘흩날리는 겨’가 되는 것이다.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권능이 그 말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에 충만한 자의 모습은 ‘거대한 폭풍’으로 이 시대와 마주하는 느낌을 준다. 그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세월의 바람 속에 묻히지 않고, 바람 자체가 되어 역사의 풍향을 바꾸고,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놀라움을 가져오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자가 있는 자리는 그래서 언제나 활기가 차고, 무언가 기대가 있게 되며 변화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몰고오는 기운이 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던지는 말 한마디가 시대의 정곡을 찔러 전세(戰勢)를 뒤바꾸는 환호가 있는 것이다. 이런 말의 능력이 우리에게 있게 된다면 그 얼마나 감격스러운가?

 

둘째, 그 말은 불길이다. 불같은 뜨거움과, 어둠을 밝히는 빛이 말 속에서 인간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논리를 뛰어넘는 이 감동의 능력이 그 말 속에 있지 않을 때 우리의 선교는 실패한다. 그래서 이 불은 작지만 온 세상을 삼키는 데에도 부족하지 않은 담대한 기세를 가지고 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말은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길을 느낄 수 없는 말은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서 이끌어내지 못한다. 불이 된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우리에게 소유하게 하는 하늘의 은사이다.

 

셋째, 이 말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말이 아니다. 자신을 앞세우는 언어가 아닌 것이다. 지식과 경험이 성취하는 일정한 수준에서 생산되는 언어가 아니라 하늘의 기운을 담아내는, 그래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하는 말이다. 바로 이 점이 성령에 충만한 말의 본질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의 말 속에 당당함과 겸손, 권위와 온화함, 그리고 세상에서 구하지 못하는 지혜와 사명을 명료하게 뿜어낸다.

 

이것은 모두 결국 ‘부활의 생명력’이 그 안에 간직되어서 이루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이런 세 가지 기본 성품을 말에 담아 하늘의 힘을 더함으로써 새로운 창조의 능력이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우리의 말은 그와 다를 바 없이 창조의 능력을 발휘하여 인간과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언어가 오염된 이 혼탁한 시대에

 

오늘날, 말은 얼마나 힘을 잃었는가? 말은 오염되었고 독기를 뿜고 있으며, 도리어 세상의 온전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지 아니한가? 말은 신뢰를 상실했고, 아름다운 창조보다는 악의적 파괴에 열중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장벽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성령에 충만한 자의 말은 이와는 다르다. 그것은 고난 가운데서 감사를 가르치며, 무슨 일을 만나도 인격을 보호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온전히 교통시킨다. 그래서 그 마음이 짓눌리는 일이 없게 하며, 위로할 자를 위로하고 고칠 자를 고친다. 또한 하늘의 뜻을 세우게 하며, 그를 위해 자신의 육신과 영혼을 바칠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폭력을 막아내고 형제애적 연대를 강화하며 작은 가능성이라도 격려하며 비난과 추궁의 언어를 우리의 삶 속에서 추방한다. 인간에 대한 관대함을 배우게 하며, 역사의 희망을 기른다. 그래서 인류가 하나 되는 기쁨을 쉬지 않고 선언하며, 아무리 멀리 살아 있어도 그 뜻이 서로간에 통하는 그런 감격을 우리 안에 빛으로 창조한다.

 

그것은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를 새롭게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질서를 인간의 내면에 심고, 그로써 온 인류의 달려갈 길과 그 달려갈 힘을 함께 공급하는 그런 능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성령은 그래서 우리에게 ‘존재의 새로운 집’을 만들고,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준비시키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했듯이, “성령의 힘으로 충만한 우리의 언어”는 오늘 혼돈과 흑암의 소리가 되어 희망의 빛을 창조해나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들의 정신과 영혼을 기운차게 일으켜 세울 것이다.

 

이 혼탁한 시대에 바로 그런 성령운동의 개시(開始)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 심호흡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영적 존재로서의 위엄을 가진 선택된 자들이 아닌가? 성령은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차원의 자존심으로 역사를 바꾸어 나가는 일에 허락된 하나님의 권능이니 이 좋은 것을 열렬히 사모하여, 우리 모두 ‘말씀의 생명력’이 풍부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 능력이 무한한 성령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시는데, 이기주의의 늪에 빠진 오늘의 현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레 포기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표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졸저, <밀실에 갇힌 예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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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1. 9. 15. 16:19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8:7)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9:2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4:13)

 

이 세 구절은 7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한국교회(특히, 순복음교회) 성장과정에서 가장 많이 쓰인 성서의 대목이라고 할 만 하다. 이 말씀을 듣고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일어서서 재기의 의욕을 불태운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는 이러한 의욕의 무진장한 공급처였으며 그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을 보다 힘 있게 지원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가 겪은 가난과 열등감과 목표상실의 현실에서 풍요와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슬로건처럼 이 세 구절은 신앙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적극적인 인생관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서이해는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과 궤를 같이 하면서 힘겨운 현실을 돌파할 수 있도록 하는 축복의 언어로 신앙인들을 사로잡아왔다.

 

경제성장과 교회성장의 맞물림

 

코딱지만한 구멍가게 규모로 시작한 사업이 이후에 번성하는 기업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심사는 그 시작은 미미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비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아무래도 자신이 없을 듯한 상황이지만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니 자신감을 한 번 더 발휘해보는 시도를 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다보니 내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무얼 못하겠나 싶은 대단한 용기가 나오는 감격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들 말씀들은 좌절의 벽을 뚫고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거의 주술적(呪術的) 영향력을 행사하기조차 했다.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이로 인한 성공에의 열망은 보다 나은 계층으로 이동하기를 갈구하는 신앙인들에게 성서에 이같은 구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감사했고, 자기를 드러내기를 꺼리는 유교적 전통이나 세속적 성공과 노력에 관심이 없는 불교문화적 환경이 줄 수 없는 도전적 능력을 이 말씀 속에서 길어 올렸다. 그러기에 과거 기독교인 하면 어딘가 자신 없이 겸손하기만 하고 자기를 낮추면서 제가 뭘요하던 모습에서 이제는 자신감이 넘치고 무슨 일에든 선뜻 나서기를 서슴지 않는 유형으로 바뀌어왔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다그쳤던 경제개발정책에서 요구되었던 인간유형은 다름 아닌 바로 이러한 모습이었고, 우린 한다면 한다는 식의 저돌적인 집행력을 갖춘 인간군이 요구되고 있던 상황에서 기독교는 그에 필요한 인간형의 성품적 기초를 마련해주고 있던 셈이었다. 한국경제의 성장과정과 한국교회의 성장과정이 서로 합치되는 상황의 밑바닥에는 이러한 무형적 연관성이 존재했다. 그것은 성공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되고 풍요와 일신의 영달이 복을 받는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을 의미했다.

 

허허벌판의 한국경제에 공장과 도시가 세워지고, 게으르기 짝이 없다고 스스로 한탄했던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근면한 민족 가운데 하나로 치켜지며 도대체가 한국 사람이 못하는 게 있을까 싶게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은 이들 성서의 구절대로 현실이 움직여지는 듯 했다. 그래서 교회는 그와 같은 현실에서 성공을 보장해주는 축복의 지침을 내리는 현장처럼 되었고, 세속적 성공을 위한 믿음의 징표는 말씀 안에서 능력을 얻고 그 능력대로 최대의 성과를 목표로 하는 적극적 인생관으로 집약되었다. 긍정적 사고에 대한 담론이 이 시기에 지배하기 시작한 것도 다 이러한 연유와 관련이 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사고방식이 스스로의 인생을 보다 풍요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길러진 것이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것은 세속적 현실에서의 능력과 관련이 있었고, 그로해서 성공하는 것은 믿음의 결과가 되었다. 낙오는 믿음이 부족한 탓이었으며, 따라서 더욱 열심히 기도해서 능력을 얻어 현실에서 보다 높은 성취를 이루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취의 정도와 내용이 높고 풍족할수록 축복을 많이 받은 존재로 인정되는 인식체계를 한국교회 안에 자라나게 하였다. 이와 함께 목회자는 허가받은 축복의 배급자처럼 되는 그 위치가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했으며 바로 여기에서 한국교회의 특권적 위계질서가 그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특권적 위계질서는 정치경제적인 특권과 연결되면서 한국교회를 기득권 세력화했으며, 그 기득권의 방어는 믿음의 능력을 통해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치적 권위주의가 요구하는 사회문화적 요소를 강화시켜왔으며, 이로써 이러한 체제가 추구하는 성공이데올로기에 대한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온 바가 적지 않은 것이다. 무엇을 위한 창대함인가, 무엇을 위한 능력인가에 대한 질문은 근본적이고 도전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로써 성공주의의 윤리적 기초는 건드려지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와 의라는 대전제는 이러한 성공주의적 선교 이데올로기 안에서 그 자리가 없었으며, 오로지 세속적 능력과 위치에서 괄목할 만한 진보가 있으면 그로써 축복이 확인되는 시스템이 가동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서의 근본정신은 승승장구하는 것에서 무너질 것을 보고, 패배하는 듯 하나 위대한 시작을 보는 하나님의 섭리에 그 중심이 있다. 십자가는 바로 그 섭리의 핵심이다. 세상은 십자가에서 패배를 목격했지만 신앙은 거기에서 죽음을 이긴 생명의 새로운 시작을 고백하고 증언한다. 그리고 그 생명의 새로운 시작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과 그 의를 위한 헌신은 그 무엇으로도 소멸시킬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성공은 전혀 다른 평가 속에 놓이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성공처럼 보여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너지게 되어 있으며, 몰락과 패배처럼 여겨져도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접붙여진 것이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영광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법이다. 이것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세상의 권세에 아부하고 그로써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인간과 사회가 병들어가는 것이다. 그 성공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지금 우리사회의 정신적 타락과 경제적 붕괴 속에서 처절하게 목도하고 있다.

 

빌닷의 충고가 축복의 메시지로 변질

 

욥이 고난을 받고 있을 때에 그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한 처음에는 보잘 것 없지만 나중에는 크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욥의 탄식에 대한 위로와 신앙적 충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의롭게만 살아온 그가 갑자기 당한 고생을 보고 그의 친구는 네가 의롭고 깨끗하기만 한다면야 무슨 걱정인가,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겠는가. 하나님은 의로우시니 지금 보기에 보잘 것 없이 여겨져도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바로 서리라하는 격려였다.

 

그러나 욥은 빌닷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매우 전격적인 반론을 제기한다. 의롭다 의롭지 않다는 내 자신의 입에서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소관이지 어찌 내가 의로우니 그런 축복을 내려주시라고 요청하며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이었다. 시작의 미미함이 결과의 미미함으로까지 가지 않는다는 빌닷의 격려 속에 담긴 무의식적인 전제, 즉 그런 축복을 마땅히 여기게 될 자신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의 성서적 충격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면이라는 질문이 풀려야 한다는 점이다. 온갖 술수와 음모와 비리, 그리고 아부로 낮은 처지에 있다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에게는 이러한 말씀의 성서적 적용은 불가한 것이다. 그러한 경우 그 높은 자리가 바로 죄의 증거이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의는 세상이 보기에는 자못 미미하게 보일 수 있으나 그 의로움의 열매는 인간의 헤아림을 넘는다라고 이 대목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의로움 대신에 인간의 성취를 그 중심에 놓고 은유적으로 차용했으니 이는 성서의 근본정신에 대한 파괴이다. 욥은 빌닷의 하나님 이해를 수용하면서도, 그 미미함과 창대함의 과정은 인간의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관련된 것임을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자면 도리어 인간의 처지는 겉보기에는 몰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몰락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녕 성공주의적 이데올로기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믿음의 능력은 욕망의 도구가 아니다

 

마가복음의 본문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에게 부탁하면서 하실 수 있으시다면 어떻게 좀 도와주십시오하는 말에 대한 대응이다. 예수께서는 이 사나이의 질문에 대하여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하고 반문하신다. 그리고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나이가 예수에게 한 말은 예수의 능력에 대한 호소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은 문제의 해결은 사나이 자신의 믿음과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는 것은 예수의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그것은 전제되어 있고 이를 확고히 믿고 그 능력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이는 이 아버지에 더욱 달려 있다는 논리이다. 이때의 상황은 제자들은 아이를 치유하기보다는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로써 정작 치유대상인 아이는 관심권밖에 방치되어 있는 현장이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모두의 관심을 이 아이 자체에 집중시킨다. 논쟁의 승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귀신을 내어 쫓고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지금 결정적인 과제라는 것을 환기시키신 것이었다.

 

그 일은 실로 우리의 능력을 뛰어넘는 일처럼 보인다. 누군가 능력 있는 존재가 와서 해결해주기 전까지는 우리는 그저 참고 기다리든지 아니면 그 해법을 놓고 갑론을박하든지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일의 해결이 모두에게 가능할 수 있음을 일깨우신다. 이후 제자들이 왜 자신들은 그러지 못했는가 하고 묻자 기도로 능력을 입지 않으면 하고 그 방도를 가르치셨다.

 

무슨 이야기인가? 믿음의 능력이란 우선 이 아이의 생명에 대한 간절한 심정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기원으로 강렬하게 집약되어 하나님의 능력과 결합되는 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은 ! 뜨거워하고 줄행랑을 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 그러면 이것이 성공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가? 성공한 이들은 대체로 이렇게 귀신들려 고난을 받고 있는 아이의 생명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그 생명이 이들의 중대한 관심도 아니며, 그에 쓸 시간도 없다. 사회적 약자들의 고난이 어떤 병을 일으켜 이들에게 삶의 좌절과 고통을 주는지 알바가 아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기도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우선 그런 기도가 그들의 삶에 중심 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은 귀신들려 가련하게 된 생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대로 놓아두시지 않을 것이다, 나의 믿음과 간구가 그 생명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 생명을 구해내실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는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다. 윤리적 정당성도 없는 일, 도리어 이웃에게 귀신들리게 하는 일들을 믿음이 주는 능력이라고 앞세워 자신의 탐욕을 채우며 야망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일들을 벌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작업인 것이다.

 

믿는 자에게라는 말씀은 지금 생명이 고난을 받고 있는 존재에게 대한 일차적인 관심이 쏟아 부어지는 존재에게 주어지는 말씀이다. 제자들처럼 논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는 이들은 믿는 자라는 규정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회는 우리사회에 바로 이 고난 받는 생명을 중심주제로 삼아나가도록 하는 일깨우기가 전제된 상황에서 이 말씀이 주어져야 함을 직시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사회가 겪는 온갖 문제들이 하나씩 제대로 풀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의욕, 용기, 재기 이런 단어들과 이런 현상들이 이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과 상처받은 생명의 치유에 대한 열정과 관련이 없으면 그것은 개인적 욕망의 달성일 뿐이며 신앙은 이를 도우는 협력자로 전락할 뿐이다. 한국교회는 그런 죄를 저지른 과거를 회개해야 할 것이다.

 

순교적 헌신의 고백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한 바는 어떤 의미였는가? 이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다. 그 옥고를 사도 바울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빌립보서는 증언해준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전하는 일에 쓰이는 사건이라면 그 어떤 것도 달게 받아 즐거워 할 수 있는 비결이 있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414절에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그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함은 인간으로서 겪게 되는 고난의 한계에조차도 자신은 무너지지 않는다 라는 감격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한치도 의심하지 않는 자신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편지의 진상이 이러할 진데, 한국교회는 내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이루어내고 만다는식의 성공주의적 모델에 매달려왔다. 고난은 피하고, 갈채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는 머리박고 다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것이다. 그 어떤 위협과 그 어떤 불리함이 닥쳐와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이라면 나의 처지가 어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하게 치루겠다는 순교자적 헌신의 고백, 그 결정판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에 과연 이런 모습으로 현실의 권세가 휘두르는 폭력과 불의에 맞서는 순교자가 얼마나 되었는가? 아니, 순교자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선하고 의로웠으며 아무 문제가 없었던가? 바울의 옥중서신이 담고 있는 이 신앙적 비장함과 그 놀라운 기쁨의 고백은 나의 개인적 고통을 대가로 하고서라도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져가고 있음에 대한 간증임을 주목할 때 비로소 그 진의(眞意)가 드러난다. 이 성서의 진면목에 대한 설교가 부재한 교회에서 자라나는 것은 자신의 불의에 대한 성서적 합리화일 뿐이다. 성서에 대한 이와 같은 간교한 유린은 실로 이제부터라도 중단되어야 한다.

 

 

졸저, <밀실에 갇힌 예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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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수척함’에 대하여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1. 8. 18. 10:32

 

폭증하는 코로나에 다시 반복되는 장마와 같은 날씨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변화를 그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어느 누구도 태양을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산 위로 꺼내 올릴 수 없다. 하늘의 별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나오게 할 방법도 없다.

 

세상은 한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인간이 사는 본질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는 것같다. 요즘, 모름지기 자기 의에 사로잡혀 기준이 언제나 자기위주에 빠지는 일을 경계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착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삶이 담고 있는 이런 저런 사연들을 헤아려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의 마음과 진실 되게 만날 능력이 없다고나 할까.

 

늘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 자신의 입장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타당하다. 그래서 그런 생각과 자세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도 아무렇지 않아 한다.

 

자기의 기준을 상대가 그대로 받아들여주어야만 비로소 직성이 풀린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상대를 비난한다. 남이 언제나 문제다.

 

그런 사람의 귀는 막혀 있어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눈은 어둡고, 입은 독을 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해줘도 끝이 없고, 저렇게 해줘도 끝이 없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의 행복이란 사실 욕심을 채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욕심은 그대로 두면 정지할 줄 모른다. 욕심은 충족의 한계가 없다. 원래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자기위주의 마음과 욕심은 하나로 통할 뿐이다. 욕심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참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봐야하고, 들어야 하고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상대의 진심을 보지 못한다. 상대의 선한 동기에 눈뜨지 못한다. 이런 사람과는 말을 해봐야 피곤하기만 하고, 진정한 대화의 가능성은 거의 절망적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주변에 칼을 꽂은 담을 쌓는 자이며, 결국에는 혼자되는 길을 가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상대를 엉뚱하게 곡해하고 근거 없이 오해하며 편견에 사로잡혀 오판하는 불운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뭔가 다른 계산이 있어서 접근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사람을 자신에게 마침내 굴복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참에 아예 완전히 굴종시키려고 들기조차 한다. 서로 어려운 관계에 있다가 간신히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여는 사람을 따뜻하게 받아들일 줄 모른다.

 

보잘 것 없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의 선의를 우습게 여긴다.

 

알게 모르게 이름 있고 강하고 힘깨나 쓰는 사람이나 부한 자들과 어울리려 하고 그들의 그저 스쳐 지나가는 눈길이나 말 한마디에는 감격해 한다.

 

계산은 빠르지만 생각은 얕고, 야망은 높지만 마음은 빈곤하다. 왜 그럴까? 영혼이 수척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다시금 스스로를 깊이 성찰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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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라는 것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1. 1. 4. 09:32


 신앙이라는 것

 


인생을 살면서 신앙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삶을 목표로 삼아야 되는가등등 간단치 않은 주제들과의 씨름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한마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고 설득하면 그로써 우리의 고뇌는 더 이상의 의문의 여지없는 상태로 안정되는 일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의 생활과 분리되어 따로 종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또는 사사로운 문제와는 관련이 없이 보다 심오하고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들하고만 상대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 모두가 다 신앙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없는 삶, 삶이 없는 믿음 모두가 다 허무하거나 혹은 껍질뿐인 앙상한 관념의 놀이에 그치기 십상이다. 신앙이란 삶 그 자체의 절박한 주제이고, 그 삶을 펼쳐나가는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성서>는 매우 솔직하고 구체적이다.

 

 

사실 신앙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 놓거나 또는 그저 주변에서 맴도는 경우에도 성서를 읽게 되노라면 성서가 최상으로 경건한 책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과도 같은 생각들이 들어맞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당혹하게 된다. 인간들의 일상의 고뇌를 비롯해서 전쟁, 파괴, 속임수, 간음, 질투, 투쟁, 사랑, 근친상간, 타락 등등 무수한 드라마가 그 안에 담겨 있어서 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사와 그리 다르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하나님의 존재도 그 속에 그려져 있다. 아니 때로는 더욱 잔혹하고 편협하며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요구를 인간에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다.

 

 

그래서 혹자는 성서를 문학으로 이해하고, 혹자는 역사서로 이해하며 혹자는 이스라엘 민족종교의 경전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으로 그친다. 성서에 대한 이런 이해가 반드시 틀리지만은 않다. 성서는 그런 면모를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성서가 보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다가올 수 있는 길을 보게 된다. 무수한 세월 속에서 인간이 겪은 무수한 사건들을 삭이고 삭여서 그 오랜 시간의 풍파(風波)에 마모되지 않은 평생의 고백들이 정수(精髓)처럼 하나로 묶여진 책이기 때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려움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런 어려움들을 하나 하나 통과해오면서도 그 삶에 깊숙한 연륜과 지혜가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인생의 새로운 깨우침을 얻는다. 그 마음과 영혼이 온통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그 삶에 아름다운 품위가 있고, 경청할 만한 진리가 번뜩일 때에 우리는 그가 치른 고난이 도리어 보석이 되어 빛나는 것을 경험하고 감격해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이력과 그로써 얻은 진실에 대한 눈뜸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살면서 별로 고생도 해보지 않고, 인생 보는 눈이 가볍고 남의 고통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은 자에게 우리는 인생의 가르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성서는 이런 온갖 고난의 골짜기를 힘겹게 통과한 연후, 자신의 영혼에 길러진 귀중한 생명의 진액을 인류에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인생사의 갖가지 곡절과 시비 앞에서 성서는 그 모든 문제들을 종국적으로 풀어나가는 힘의 원천이 결국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인간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마음과 고백을 만날 수 있는 현장이 성서 속에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 또는 종교적 교리든지 아니면 신학적 가르침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의 인생살이와 성서속의 세계가 하나로 만날 수 있는지를 물으면서 읽어나가야 한다.

 


요한복음에는 나사렛 예수와 한 사마리아 여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길을 가다가 목이 마른 예수께서 물을 길러 나온, 유태인들과는 서로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인, 그것도 아무도 없는 호젓한 우물가에서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종교지도자의 스캔들로 문제 삼을 만한 현장이었다.

 

물을 한잔 청하자 여인은 별로 친절하지 않게 대꾸한다. 예수는 자신이 누군가를 알았다면 거꾸로 예수에게 여인이 물을 달라고 청했을 것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여인은 두레박도 없는 주제에 무슨 소리냐하면서 핀잔을 준다. 이에 예수는 자신이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이라고 답한다. 매일 물을 길러오는 고된 노동에 시달려 있던 여인은 귀가 번쩍 뜨인다. 팩팩 거리던 여인이 자신의 힘든 지경을 짚어나가는 예수 앞에서 마음이 한결 열린 것이다. 게다가 예수는 여인의 삶, 그 본질적인 고뇌 즉, 지금 살고 있는 남편도 진짜 남편이 아니며 이미 몇 사람의 남자를 거치면서 살아온 역경의 현실을 언급한다. 이렇게 저렇게 전전하면서 살아왔지만, 아직도 그 마음과 몸이 지쳐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있는 여인의 영혼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아픔을 어루만진 것이다.

 

 

그러자 여인의 삶은 전격적으로 예수를 향해 열렸다. 그리고는 물을 긷기 위해 가져왔던 물동이를 우물가에 내버려두고 동네를 향해 달려간다. 예수를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여인이 우물에 온 것은 물동이에 물을 담아 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이 이 여인의 삶에 지금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그녀는 물동이를 버리고 간다. 홀연 정작 중요한 것이 깨달아 지는 순간, 지금껏 집착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신앙의 세계를 통해서 만나게 되는 예수는 우리에게 그런 깨달음을 준다. 우리의 삶, 그 처지를 바로 보고 짚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껏 매달려 있던 욕망이라든가 좌절감이라든가 또는 허망한 생각에서 단숨에 우리를 깨어나게 하신다. 우리의 영혼 그 깊숙한 곳까지 부드럽게 육박해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니라, 그 영혼에 생명의 힘을 길어 올릴 두레박을 얻은 여인이다. 바로 그런 얻음이 있었기에 물동이는 더 이상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영혼의 두레박’, 그것을 우리가 얻게 되면 우리는 인생의 갈증을 새롭게 축이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 오늘날, 무수히 방황하는 심령들은 모두 바로 이 두레박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올 한 해, 부디 그런 두레박을 얻어 삶의 새 힘을 경험할 수 있기를 빈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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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12. 5. 10:08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 리영희 선생의 <대화> -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

 

오늘은 엄혹한 시절, 불의가 판을 치고 거짓이 난무할 때 그러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이다. 한 시대를 사상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수한 고초와 핍박 그리고 고난이 전제된 것이라면 아무나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그 격동의 시기에, 진실에 대한 깊은 갈구를 해온 세대에게 마치 샘물처럼 솟아오른 존재였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냉전 의식으로 눈이 가려진 시대를 뚫고 진실의 정체를 보여준 위력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세대를 길러낸 사상의 은사또는 시대의 교사라는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사상의 은사

 

이보다 더 이상의 기쁨은 없다. 그가 낳은 사상의 자식들이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일전의 지휘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 학교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문화계, 시민운동 등 그의 지적 파장이 도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격인 대화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대화자로 등장해서 리영희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개인이 하나로 엉켜 이루어내는 일대 드라마를 장쾌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리하여, 리영희라는 개인에 대한 이해와 지식만이 아니라 그가 마주했던 시대의 의미까지 파악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오늘은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자서전 대화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절실한 일독을 권하게 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와 같은 시점과 현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했을지 돌아보게 된다. 그건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자 훈련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하여, 이 시대에 대화를 읽지 않는다면 그는 대화에 끼일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지난 시대가 겪어온 고통과 우여곡절, 거기에서 탄생한 역사에 대한 열정과 의로운 힘들의 집결, 이를 주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시간을 내용 없이 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빛나는 어리석음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

 

첫 장을 펴는 순간 독자들은 아마도 근 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리영희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구어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이다. 한 의지가 바른 지식인의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이 열어가는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참으로 줄기차게도 그리고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뜻에 충실해온 지식인의 빛나는 어리석음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을 만나게 된다.

  

리영희가 전환시대의 논리를 내놓았을 때, 세상은 여전히 중세였다. 권력의 신학이 지배하고 사상의 종교재판이 당연시되었다. 언론은 세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보여주는 임무가 본연의 역할인 듯했던 때였다. 바로 그 시점에서 리영희는 권력자, 기득권 세력에게 악역을 맡은 자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세대에게는 복음의 전령자가 된다.

 

베트남을 위해 한국군이 파병되었다는 월남전의 진상이 무엇인지,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도대체 어때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전략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일체의 서술은 그때까지 진리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그것은 단지 주장이 아니었고, 명확한 논거와 입증 그리고 논박하기 어려운 논리로 무장된, 거짓에 대한 철저한 해부였다. 당대의 젊은이들은 놀라움에 휩싸였고 권력자들은 분노했다.

 

 세계는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는데, 이 땅은 옛 질서의 철옹성 속에서 흘러간 노래를 군가처럼 부르게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건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나 도는 행렬을 닮아 있었다. 냉전의 성채야 무너져라, 반공의 무덤은 사라져라, 권력의 기만은 이제 끝이다, 라는 외침이 그 안에서 솟구쳐 나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력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리영희는 여차하면 수인(囚人)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더더욱 빛났고 그의 명성은 이 시대의 영혼 깊숙이 뿌리내렸다. 권력은 강했지만 악했고, 힘 있는 듯 했지만 역사의 정의 앞에서 점점 무력해져 갔다. 리영희는 그러면서 살아있는 신화가 되어 갔고 리영희 학교는 날로 번성해져 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그의 책 우상과 이성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마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를 연상하게 하는 자세로 거짓과 우상의 기만을 쳐부수었다. 온 시대가 우상의 속임수에 끌려가고 진실과 멀어지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그리고 참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들린 펜을 이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는 망치로 사용했으며 그로써 사상의 해방구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리영희는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에 이르는 길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화적 편협성은 우리 남한 사회가 해방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광적인 반공주의와 극우 폐쇄사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문명적, 문화적 후퇴를 겪어야 했던가 하는 사회 경험의 본보기가 되지요. 공산주의 국가들도 지식, 사상, 문물의 차원에서 마찬가지였지.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이요. 공산주의나 반공주의나 다 자살주의임에는 다름이 없어요.”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론의 거짓 선전이 난무할 때, 온갖 자료를 통해서 진실의 면모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미국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자서전 대화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베트남 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예요. 베트남 전쟁이 그 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10여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범, 점령했고 약소 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복시켜 왔어요.”

 

미국의 허상을 이렇게 짚은 그는 그 허상의 파악을 넘어서서 미국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범죄를 폭로하고 이에 속지 않도록 경계한다. 미국과 관련한 사상적, 정치적, 역사적 우상을 일거에 깨어버린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그런데 책 대화는 그의 지적 형성사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인간적 고초와 고뇌가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그가 한때 신문사에서 쫓겨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날 집에 누워 있는데, 옆에서 놀던 소학교 1학년의 큰놈이, 아버지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동생 미정이에게 말하더군.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이 없을 것 같아라고 하니까, 동생이 왜 없어?’ 하고 물어요. ‘아버지가 실업자래. 돈을 못 번대하더군요.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참 가슴이 아팠어요. 몇 푼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서 그 길로 이병주를 찾아갔지요. 마침 그때 그이가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1965)마술사(1968) 등 몇 권을 쓴 뒤라 그걸 출판하려고 스스로 아폴로라는 출판사를 냈어요. 결국 내가 그 책 외판을 한 거야. 새끼로 묶어서 들고 다녔어요.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들에게 안기고 월급날에 값을 받아오고 했지요. 그래서 서울의 웬만한 남녀 중학교는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제일 고약했던 것이 한성여중이었어. 언덕 위에 있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거기에다가 눈까지 쌓여 미끄러운 길을 레닌의 말대로 일보 전진 이보 후퇴로 오르는데 그 짓을 엄동설한 내내 했어요그 뒤 이병주가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7분짜리 칼럼을 했는데, 그 양반이 자기는 술 먹고 여성사업 하느라고 바쁘다며 나보고 대신 쓰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썼는데, 원고료가 적지 않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1년 남짓을 몇 푼씩 벌어가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어.

 

무척 춥던 겨울 어느 날, 오버를 입고 양쪽 손을 각각 이병주 소설을 열 권씩 새끼로 묶은 책 뭉치를 들고 이화여고 국어 선생들을 찾아가느라고 덕수궁 길을 걷고 있었어. 눈이 얼어서 미끄러운 길에서 간신히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갑자기 이 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어. 보니까 법조계 출신인 합동 통신사의 젊은 기자더라구, 그는 나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의아스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더군. 그의 뜻을 알아차린 내가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 사람을 두지 못해서 직접 책을 배달하고 있다고, 진실 반 거짓 반으로 적당히 얼버무렸어.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합동 통신사에서 외신부장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있었어요그것이 1969년 겨울의 일이었지.”

 

한 위대한 지식인이 감옥에 갇힌 일만이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는 과정을 그는 담담하게 토로한다. 그렇게 그는 우여곡절을 통과하면서 진실의 필봉을 놓지 않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는 더욱 단단해졌고, 더욱 내공이 달라진 존재로 변화해온 것이다.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최대한 강화하는 자들이 민낮을 드러내고 온갖 거짓과 진실을 뒤섞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 권력이 기세등등한 혼란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끝까지 지조를 변치 않고 참 언론인으로 아무리 때가 어둡다 해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 주어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가 되어 온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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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기자는(3)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10. 25. 07:00

전도서 기자는(3)


인간은 누구나 늙어가고 또 기력이 쇠하여 어쩌지 못하는 때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그 어느 누구도 한때의 젊은 시절의 힘이 늙어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간다고 장담할 수 없으며, 그 자랑으로 한 평생을 자기 영광을 구하며 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권좌의 영광에 취해 교만해지고, 자신의 간교한 지혜에 자만하여 구덩이를 파다가 자신이 그 구덩이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전도서의 기자는 책은 아무리 읽어도 끝이 없으며 공부만 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한다.”(12:12)고 말하고 있다. 세상에는 알아야 할 것들이 널려 있고, 그걸 쫓아다니면서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는 것이다. 최고의 지혜자라고 알려진 전도서의 기자는 지식에 의한 명성을 도리어 거부하고 있으며 그것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을 택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도자는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백성에게 자기가 아는 지식을 가르쳤다. 그는 많은 잠언을 찾아내어 연구하고 정리하였다. 전도자는 기쁨을 주는 말을 찾으려고 힘썼으며, 참되게 사는 길을 가르치는 말을 찾으면, 그걸 바르게 적어 놓았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수집된 잠언은 잘 박힌 못과 같다. 이 모든 것은 모두 한 목자가 준 것이다.”(12:9-11)라고 자신의 지혜의 근원을 밝히고 자신이 살면서 애써온 바를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모두 자칫 12절의 말씀에서 밝혔듯이 끝이 없고 곤고한 삶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그 한 목자가 자신에게 준 말씀의 결론적 취지에 속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심판하신다.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모든 은밀한 일을 다 심판하신다.”(12:13-14)

 

전도서 기자는 세상이 자신의 영광을 칭송하고, 자신 역시 자랑했던 그 모든 것을 이면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생각, 소행, 사건들을 떠올린다. 아무리 대단하고 아무리 잘 났고 아무리 높고 아무리 강성해도, 그래서 남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칭찬하며 감탄할 지라도 이들이 알지 못하는 은밀한 일”, 그것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든은밀한 일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을 결국 하나님께서 일일이 다 아시고 기억하시며 또한 판단하신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산다면, 우리 인간이 세상에서 구하려는 영광과 성취, 그리고 부와 명성 이 모든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겠는가, 돌아보라는 것이다. 자신과 세상에는 영광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위선이고, 자신과 세상에서는 성취와 명성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교만과 위선이라면 어찌하겠는가라는 질문이다. 자신과 세상 앞에서는 부와 권력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악행이자 죄라면, 그 모든 것은 결국 다 헛되고 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전도서는 과연 인생의 덧없음과 헛됨을 일깨우고 말하는 책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도리어 인생이 헛되지 않고 덧없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길에 대한 성찰, 일깨움이라고 할 수 있다. 살아보니 사는 것이 별 볼일 없고 아무것도 아니더라,가 아니라 진실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따로 있더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잘못된 길을 가지 말고 지혜로운 길로 가라는 것이다. 세상의 평판과 칭찬, 저주와 비난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바로 서라는 것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세상의 유혹과 칭송, 세상의 무시와 외면 그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보람 있고 뜻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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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비텐베르크, 2020년 10월 서울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10. 24. 10:17

151710월 비텐베르크, 202010월 서울

 

비텐베르크


흑곰호텔의 아침 식사용 식당에서 곰이 으르렁거린다. 벨기에의 관광객 한 그룹이 뷔페 식당으로 들어왔다. 함부르크에서 온 운동복 차림의 부부는 엘베 강변의 자전거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서둘렀다. 네덜란드에서 온 한 교회의 교인들은 먼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언한다. 도시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대부분 마르틴 루터를 보기 위해서다.


비텐베르크의 슐로스키르헤(Schlosskirche)교회는 온통 다가오는 만성절(할로윈데이) 준비에 여념이 없다. 수많은 성인들의 유적이 제단 위에 흩어져 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한 조각, 저기에는 피 한 방울 혹은 순교자들의 뼈.



루터는 요새화된 탑의 고요한 골방에서 통찰을 얻는다. 인간은 업적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이 사상은 개신교회에 해방의 복음이 되었다. 신생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 마르틴 루터가 그의 95개조 명제를 성안의 교회 북문에 쇠망치로 못을 박아 걸었을 때, 순례자들과 쿠어작센 군주의 수도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하거나 확증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수 없다.”

연보궤에 동전이 쨍그랑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교리를 설교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처럼 당시 가톨릭 교회가 자행하던 면죄부 판매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교황권에 의문을 제기하는 95개 항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95개조는 활발한 면죄부 거래와 천박한 경건에 대항한 개혁의 깃발이었다.


‘95개조 반박문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당대 지식인들 사이에 전파되었다. 루터의 행동에 대해 교황은 처음에 술 취한 독일인의 주정정도로 치부했으나 사태가 확산되자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한다.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에게 내린 파문 교서는 루터를 비하하는 인신공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일어나소서, 오 주여! 당신의 소송사건을 심판하소서. 멧돼지 한 마리가 당신의 포도원에 침입하였나이다.” 파문 교서를 받은 저돌적인 멧돼지 루터는 보기 좋게 이를 불태워버렸다.

 

2020년 10, 서울


서울 광화문 광장이 난리도 아니었다. 성조기의 물결과 함께 기도 소리와 찬송, 그리고 목사들의 외침은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하고 있었다.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가슴을 치고 있었고 남자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종교집회인지 아니면 정치집회인지 또는 외국의 명절이나 국경일을 위한 모임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성조기와 십자가가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자들의 울음 섞인 기도와 남자들의 분에 찬 아우성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단에 오른 한 목사는 강한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완전히 빨갱이 천지가 되고 있어요.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청와대에는 빨갱이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뿐인 줄 압니까? 언론, 방송, 말할 것도 없이 죄다 빨갱이가 접수했어요. 이러다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 나라 정부, 문재인이가 다 말아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예언자적 사명을 가지고 이 나라가 직면한 위험을 알려야 합니다. 절망에 빠진 이 나라가 교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보세요, 오늘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이야. 아마도 저 빨갱이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아멘 소리가 도처에서 우렁차게 쏟아져 나왔다. 그 아멘 소리가 매우 위협적이라고 예수는 느꼈다. 아멘 소리에 핏발이 서 있었다. 전투를 준비하는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들이 적으로 삼는 이들은 누구인가? 십자군 전쟁을 하려는 이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예수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 저 성조기가 십자군 깃발인가 싶었다. 연단의 목사는 계속 자신의 말을 자기도취적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교회가 이런 때에 침묵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구국의 대열에 나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저 바알을 따르는 자들이 이 나라를 사탄에 바치려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 정보에 훤하게 밝은, 제가 아는 어떤 분이 말씀해주시기를, 김정은이 보내고 훈련시킨 자들이 지금 이 어지러운 때를 이용하여 김정은이가 명령을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난 목사는 그러니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려는 자들은 모두 빨갱이에다가 김정은이 부대라고 힘주어 말한 후, 지리한 기도를 시작했다. 예수는 하도 지겨워져서 자리를 떠나려 하다가 어느 나이 든 목사가 뒤이어 연단에 오르는 것을 보고 잠시 멈칫하였다. 저이는 좀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하려나, 예수는 새로이 등단한 노년의 목사를 주시했다매우 묵직하고 다소 쉰 음성이었다.


, 이 나라가 참으로 통탄할 지경에 처해 있어요. 모두 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깊이 회개하고 믿음대로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아직 뭐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 늙은 목사의 음성이 갑자기 높아졌다.


보세요, 이 성조기의 아름다움을! 보세요, 이 성조기의 물결을! 미국이 어떤 나라입니까? 하나님이 지상에서 최고로 축복하신 나라 아닙니까? 누가 그 나라를 당해냅니까? 저 이라크의 후세인 꼴 좀 보세요. 온갖 행패를 부리다가 그만 지금은 저렇게 초라한 몰골이 되지 않았습니까? 다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 그대로 증명한 사태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도구가 된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미국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는 이 대목에서 기가 막혔다. 본질은 하나님이 누구의 편에 서 계신가 하는 것인데 말이다. 자신들이 하나님 편에 서 있다면서 이처럼 온갖 폭력을 휘두른다는 말인가목사의 말은 이어졌다.


“6·25 때 우리가 누구 덕분에 살아났습니까? 저 남쪽 한 뼘 남은 땅 말고 다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미국이 천사처럼 나타나서 우리가 이렇게 오늘날 그런대로 살게 된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저 철모르는 자들이 날뛰면서 반미 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그러니까 미국이 미군 빼간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제 바지가랑이 붙잡아도 기분이 영 잡쳐서 그냥 가겠다는 것 아닙니까? 이 안보 불안, 누구 짓입니까? 바로 저 빨갱이들 때문이 아닙니까?”


성조기가 한껏 흔들리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이 모두 감격한 표정으로 성조기를 하늘 높이 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러분, 우리의 이 믿음을 또한 누가 전해주었습니까? 바로 미국 아닙니까? 그 미국을 대적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에요. 그런데도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습니까? 저 빨갱이 무리들이 원하는 것은 미국을 우리 땅에서 몰아내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 다음에 올 것이 무엇입니까? 뻔하잖아요? 김정일이가 인민군을 앞세워 남침하는 것 아닙니까? 불바다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미군 나가게 하고 그 틈에 서울을 제 것으로 만들겠다는 거죠. 이거 우리 그대로 눈뜨고 당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아니오하고 합창했다. 갑자기 분기탱천하는 모습들이었다. 차마 입에 담지 말아야 말을 쏟아내고 있는 목사의 말은 가관이었다. 



“000이가 죽으니깐요, 국민들의 얼굴 색깔이 달라졌어요. (아멘) 국민들이 훤해졌어요, 훤해졌어요. (아멘) 앞으로 몇 명만 더 죽으면 아마, 하하하. 주여, 000 절대로 자살하지 말게 하여 주옵소서감방만 갔다가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하하. 000 너 눈에 만만하게 보이냐? 교회가? 그러면 너도 000 같이 돼버려.”


목사가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하는 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저 사탄의 무리들에게 불 심판을 내리소서. 미국을 축복하여주시고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주사파들을 몰아내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소리에 지축이 울리는 듯하였다.


예수는 너무나 슬펐다. 이들이 자신의 이름을 앞세우는 것이 부끄러웠고, 게다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이러한 주장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통탄할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예수는 10월 마지막 주가 종교개혁주일인 것을 떠올렸다. 그의 시야에는 저 500년 전 독일의 한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개혁의 신호탄은 쏘아 올려졌으나 이 나라의 교회는 개혁의 포장만 하고 있을 뿐 내용은 수구 보수였던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이 땅에 오면 과연 무엇이라고 할까? 예수는 심히 착잡했다.

 

15171031일 비텐베르크


예수의 마음은 50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5171031. 독일 비텐베르크에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가 교황 레오 10세를 대상으로 하여 당시 가톨릭 교회를 정면으로 치고 나오는 중대한 선언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저 유명한 ‘95조항이다. 당시 로마 교회는 찌들 대로 찌들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신앙의 성지가 아니라 장사하는 자들의 집단이 되어가고 있었고 권력투쟁에 몰두한 자들의 서식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마르틴 루터는 1510년 로마를 여행하면서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하여 깊은 실망과 회의를 느꼈다.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아 이것은 아닌데 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자라면서 그는 점차 로마 교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자가 되어갔는데, 애초에 그는 로마 교회 안에서의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나 그러한 믿음은 그의 이상론에 불과했음을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그는 교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파문이라는 직격탄을 맞지만 루터는 더 이상 교황과 가톨릭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나서서 개혁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그의 주장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성서로 돌아가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라는 것이었다. 교회가 하나님을 내세워 권력의 성채로 변질된 것에 대한 격렬한 투쟁이었다. 예수의 상념이 여기까지 미치면서 그는 당시 루터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글을 하나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루터는 더 이상 로마가 아닌 당시 황제 카를 5세에게 자신의 입장과 주장하는 바를 알리고, 그의 도움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이 옳음을 이해시키는 동시에 그의 동의를 구하려 하였다. 물론 여기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될 뻔했던 선제후 현인 프리드리히(Friedrich der Weise)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청과 취소를 거듭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 카를 5세는 루터를 1521417일 보름스 의회에 초청한다. 그곳에서 루터는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수 있는 발언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독일인이었던 루터는 당시 제국헌법에 있던 독일인은 그 직위를 막론하고 독일 밖에서 심문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에 따라 로마가 아닌 독일, 그것도 보름스에서 재판 아닌 재판을 받았다.


416일 도착한 루터는 다음날인 417일 제국의회 앞에 선다. 그곳에서 루터는 가톨릭 황제들의 대를 이은,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부르군드, 스페인 그리고 나폴리의 주인이던 황제 카알 5세 앞에 섰다. 그에 비하면 루터는 자신의 믿음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보잘것없는 한 수도사였던 것이다.


루터는 17일과 18일 황제와 선제후 그리고 다른 여러 제후들 앞에서, 그리고 23-24일의 의회 위원회의 청문회에서, 세 번에 걸쳐 심문을 받고 변호를 한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심문하는 심문자(Johann Eck von Trier)와 그곳에 참석한 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고 단호하게 알리게 된다.


417일 첫 날의 심문에서, 에크는 루터가 쓴 책들을 모아놓고 루터에게 그것들이 모두 루터 자신의 책인지를 묻는다. 루터는 그것을 인정한다. 두 번째로 그것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여기에서 루터는 당시의 황제 앞에서 무모할 정도로 당당하게 황제에게 생각 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을 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앞에서 한 수도사가 자신에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다행히 카를 5세는 그에게 하루의 여유를 주었다. 그뿐 아니라 다음 날 계속된 심문에서 루터는 자신의 변호를 먼저는 독일어로 다음에는 라틴어로 행하였는데, 황제인 카를 5세가 독일어를 하지 못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는 황제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루터에게는 세속의 황제보다도 더 두려운 분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심문은 그대로 기록되어져서 인쇄물로 나왔는데, 첫 인쇄물에 루터의 마지막 말, “나는 여기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Hier stehe ich, ich kann nicht anders, Gott helfe mir! Amen.)이라는 유명한 말이 등장한다.


루터는 로마의 거대한 교회 앞에서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일개 수도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장대한 권세와 맞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 이것 하나였다.


그리하여 마르틴 루터는 나는 여기에 확고부동하게 서 있습니다. 나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이라고 했던 것이 아닌가? 그에게 의지처가 있었다면 오직 하나, 하나님뿐이었고, 그로써 그는 현실의 교회 권력을 변화시키는 개혁의 놀라운 힘을 뿜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명제>


그 마르틴 루터가 오늘의 한국교회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예수는 루터가 보게 될 것은 그가 로마에서 보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대한 성채가 된 교회, 그리고 현세의 축복을 모두 독점하려는 탐욕, 거기에 덧붙여 성서가 아닌 자신들의 주장을 신앙으로, 교리로 만들고 있는 신성모독의 죄를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이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주일에 무엇을 기념하게 될까? 다만 루터의 이름을 따라 개혁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일 뿐이지 않을까? 더욱이 이들이 주장하는 북한에게 나라를 통채로 넘긴다는 가짜 뉴스와 빨갱이 운운, 미국에 대한 찬양과 숭배에 가까운 옹호란 결국 그들의 숨겨진 탐욕과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것 아닌가? ,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내세워 자신들의 속셈을 채우려 하는 것이 아닌가. 예수는 두려웠다. 그 심판의 결과가 실로 무섭기 때문이었다.

 

예수는 그 옛날,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던 말을 떠올리면서 지금 그 초라한 나사렛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무장한 오늘의 한국교회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라는 탄식소리를 듣는다. 개혁의 걸림돌로 교회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수구적 기득권의 대변자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오늘 한국교회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 예수는 역사의 과거 유산을 청산하고 새로운 나라와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개혁 과제를 안고 있는 교회가 어느새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되어 서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저자거리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자신이 오래 전 갈릴리를 주유하면서 일깨웠던 사랑과 정의, 그리고 예언자적 사명은 이들 교회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 이들은 실로 깨어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들의 권력과 탐욕을 신앙으로 포장하고 강대국에 대한 자신들의 굴종을 교리로 치장하여 뭇신도들을 속이는 것은 무엇으로 심판되어야 하는가?


예수는 10월의 가을 하늘을 보면서, 교회는 저렇게 맑아야 하는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둠이 깊지만, 그것은 결국 새벽이 곧 올 것이라는 징조가 아니겠는가?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개혁, 그것을 위한 성령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도 모르게 불어올 것이다, 예수는 그렇게 마음에서 외쳐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이 이슥해진 골목길을 지나 산등성이의 작은 교회당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그 교회의 문 앞에는 “교회가 미안합니다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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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 그리고 성서의 시선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5. 20. 06:00

한종호의 너른마당(63)


2020,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 그리고 성서의 시선

 

우리에게 2020년은 한일합병과 식민지로서의 전락이 이루어졌던 1910년에서 110년이요, 한반도 분단의 결과인 19506·25 전쟁으로부터 70,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운 19604·19 혁명 60주년, 그리고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19805·18 민주항쟁 40주년이다. 실로 파란만장한 역사의 점철이다.

 

영국의 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전쟁 체제의 연속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희생되었는가를 증언한다. 우리 역시 그런 극단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근현대사를 이어왔고, 21세기는 그런 극단의 시대를 초극할 수 있는 역사를 갈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의 조명은 그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를 어떻게 바라보고 성찰하면서 그 교훈을 되씹어 미래의 자산으로 삼는가에 달려 있다. 성서는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근본적인 성찰의 기반이 된다. 성서는 히브리 민족이 아주 오래 전 겪었던 역사의 고투를 두고두고 되돌아보면서 현실의 힘으로 삼는 것을 보여준다. 유랑과 추방, 망명과 노예적 삶, 탈출과 해방, 무수한 전쟁과 평화, 분단과 통일, 패망과 재건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성서는 그 안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읽도록 일깨운다. 함석헌 선생이 오래 전 뜻으로 본 조선 역사를 펴냈던 것도 우리의 과거를 그런 하나님의 시선으로 통찰하자는 의미였다.

 

역사의 실체로 육화된 하나님의 섭리를

 

유대 역사에서 유월절이 갖는 의미는 결정적이다. 이는 억압되어 있던 피압박 족속이 하나님의 해방 사건으로 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서는 길에 대해 신념을 가지게 되는 사건이다. 달리 말해, 영구 혁명적 신앙의 반복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출애굽 사건은 역사와 믿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주한다는 이야기가 되며, 그것은 현실을 감당하는 능력에 대한 갈망이자 미래에 대한 전망이기도 하다.

 

성서는 사실 거듭해서 역사의 교훈, , 역사 속에 드러난 하나님, 역사의 실체로 육화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으라고 말하고 있다. 이걸 깨우치지 못하거나 망각한 자들의 비극과 패배를 또한 함께 조명하고 있다. 왕들의 역사는 이걸 각성했는가 아닌가로 판명되고 평가되고 있다.

 

이미 오래 전 과거에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뜻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 채 있다면 그건 어리석게도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 자가 된다. 역사는 그런 뜻에서 보자면, 과거라는 시간을 통해서 미래를 위해 개봉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도 있다.

 

지금껏 서구 철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독일 역사철학의 대가 헤겔은 서구의 역사만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아시아의 역사를 열등하게 보았다는 오류가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역사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정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한 인물이다. 절대정신의 근본에는 자유가 있고, 이 자유가 어떤 역사의 과정을 거쳐 자신을 이루어나가는가를 본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대로, 역사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절대정신 하나님의 실체와 그 뜻을 헤겔은 추적해나간 것이다.

 

헤겔의 역사철학적 방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나, 그에게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역사를 현상으로 기억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뜻으로 푼 것이다. 이는 역사철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성서의 역사관을 철학적 용어로 재정리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함석헌 선생의 역사관도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 역사에 대한 헤겔적 풀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와 다른 것은 서구 중심의 사관이 아닌, 우리 자신의 내면을 존엄하게 바라보면서 다가갔다는데 있다.

 

헤겔이나 함석헌 선생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사의 깊은 심연에 흐르는 보편적 의미를 추구하려는 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성서적 역사관을 가지게 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나 현상을 그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본질적 차원의 깨우침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서는 역사이해와 역사철학적 시선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우리의 근현대사

 

이러한 성서적 시선을 전제로 하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총괄적으로 보자면, 19세기 중후반 조선조는 봉건체제의 모순을 경험하면서 숱한 농민들의 봉기와 사상적 전환기를 맞이했고 이 과정에서 주체적인 근대화 전략이라는 선택을 밀고 나가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역사의 중심에 인간에 대한 존엄한 권리의 존중이라는 생각보다는, 신분과 계급적 차별의 심화로 역사의 동력을 상실했고 이기적 기득권의 방어에 치우치면서 세계적 흐름에서 동떨어져나가는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도 기회는 있었다. 1884년 김옥균의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 전쟁 등 시대의 모순을 뚫고 주체적 근대화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역동적인 시기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1853년 미국 페리호의 위협 아래 식민지로 전락할 상황을 결국 1868년 명치유신을 통해서 극복해내고 동아시아에서 근대전략의 수행에 일정하게 성공한다. 반면에 조선은 여전히 중화적 세계질서에 복속된 채 시선을 밖으로 돌리지 못하고 만다. 역사의 거대한 바다가 출렁거리고 있는데, 조각배를 타고 샛강에서 아귀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 세계사라는 맥락에서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미 쌓아온 기득권, 그것도 사실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나가고 있는데도 그걸 모르고 계속 움켜쥐려다가 망하는 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채 마주한 세계사의 대세는 조선을 황망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게 했으며, 그런 혼란의 와중에 일부는 저항하고 일부는 투항하면서 나라는 식민지의 늪에 빠져들어갔던 것이다.

 

조선의 20세기는 그렇게 해서 비탄과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1895년 청일 전쟁의 결과는 조선반도에서 일본의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시켰고,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동아시아 전체의 패권을 쥐는 일에 보다 본격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협력, 지원을 기초로 조선반도 전체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다. 1868년 명치유신 이후 40년 만에 이룬 일이었고 아시아 최초의 근대국가 성립이라는 자신감에 넘친 일본은 제국주의 체제로 질주했고 그 첫 희생자는 우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조선의 근대사는 제국주의와의 접전이었으며, 이는 이후 조선 근대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되어야 했다. 식민지가 된 나라의 최대 과제는 당연히 독립이었고 그 독립투쟁의 대상은 그냥 일본이 아니라 제국주의 일본이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인식이 얼마나 철저한가에 따라 역사의 시대적 극복이 이루어질 것인가 아닌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히브리 민족에게 출애굽이 핵심적 사건이라면 그것은 고대 이집트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따라서 이는 제국주의의 굴레와 맞서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인류에 대한 보편적 사랑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시선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하나님과 대적하는 일이자 체제이며 이를 분쇄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적 실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바인 것이다.

 

그러나 한일합병 110주년이 다가오는 때 이 나라는 반일, 또는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제국주의문제는 철저한 역사적 성찰의 내용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의 적대적 긴장은 우리와 일본 사이의 종족적 모순이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만들어진 제국주의와 과거 식민지체제의 갈등과 대립의 문제인데 이에 대한 역사적 투시는 부족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제국주의 지배종식을 위한 역사의식이나 세계관은 성장할 사이가 없었고 그것은 강대국에 대한 의존, 종속, 굴복을 역사 속에서 체질화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성서는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바로 서는 것보다 주변 강대국에 의존하는 것을 질타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씀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부족한 결과로도 민족 분단에 대한 극복 의지는 견고하지 못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두 개로 갈라놓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남과 북 양 쪽에 분단정권을 세워 전쟁의 시작을 만들고 말았다. 김구 선생은 남과 북에 각기 독자적인 분단정권이 성립하면 전쟁이 필연적이라며 이를 치열하게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1950년 한국전쟁은 북의 남침이 그 직접적인 시작이었으나 보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1945년 이후 우리의 역사를 자주적으로 관리하고 해결하지 못한 결과였으며, 일본 제국주의 잔재를 철저하게 청산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들 일본 제국주의 잔재 세력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움켜쥐고 유지하기 위해 분단정권 성립에 광분했으며 이에 저항하고 반대하는 세력들을 거의 모두 빨갱이로 몰아 제거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이후 제국주의 청산이나 민족 분단의 극복을 위해 일어나야 할 남쪽의 민족적 역량은 결정적으로 소멸해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토대 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은 전쟁의 끔찍한 비극을 낳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함을 아직도 낫지 않는 상처와 응어리로 남겨놓았다.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한국전쟁은 남과 북 사이의 화해를 이루어내는데 어려움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당시 만들어진 휴전체제는 평화체제로 전환되고 있지 못하다. 전쟁이 한참인 때에는 휴전이 평화지만, 이 휴전이 길어지면서 그것은 전쟁을 다시 할 수 있는 역량의 비축기간이 되었고 남과 북 사이에 군사적 대치를 결정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평화는 성서의 근본사상인데, 한국전쟁 70주년은 그런 차원에서 생명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일깨우는 기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한국전쟁은 여전히 대북 적대감을 고취시키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으며 특히 교회에서는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것보다는 북한 붕괴론에 기여하는 소재가 되고 있다.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패망했던 히브리 역사를 돌아봐도 민족분단과 상호 적대감의 지속이 얼마나 민족 전체에 비운을 가져다주는지 분명한데, 한국전쟁 70년의 역사는 이런 점에서 그 의미를 재정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19604·19 혁명은 이러한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제국주의 잔재 청산의 실패가 축적한 민주주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역사의 에너지였다. 이승만 독재는 제국주의 잔재 존속과 전쟁의 논리가 만들어낸 기득권 체제였고, 이로 인해 억압당한 민중의 저항이었다. 가난과 정치적 부자유,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억압 등 당대의 현실은 민중 전체에게 숨 막히는 사태의 연속이었다. 쌓이고 쌓인 불만과 모순의 심화는 결국 발화지점을 만들어냈고 4·19 혁명은 그 발화의 현장이 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 논란에서 이승만 체제를 합리화하고 미화하려는 세력이 있는데 이는 4·19혁명으로 극복하려 한 역사의 과제를 모멸하는 것이며 역사의 역주행을 부추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바로 이러한 역주행은 곧바로 이어졌다. 19615·16 군사쿠데타는 정치적 혼란, 경제적 빈곤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독자적 근대화 전략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었으나 현실에서는 고강도의 억압과 역사의 후퇴를 가져왔다. 4·19 혁명이 만들어낸 공간은 이로써 사라졌고, 군사 쿠데타 주역이 일본 관동군 소속의 친일분자였다는 점에서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성찰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그렇게 이어진 역사의 퇴행적 전개는 18년간 이 나라를 괴롭히다가 무너져 내렸고 새로운 역사의 공간이 열렸다고 기대했지만 여전히 강력했던 군사주의 세력의 반격으로 19805월 광주는 피로 물들게 된다. 80년 광주의 역사적 경험은, 이 나라가 여전히 분단, 지역주의, 빨갱이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이걸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는 한 역사의 발전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뇌리에 생생한데 광주의 5월이 벌써 40년이라니 세월의 흐름도 무상할 따름이나, 문제는 이 사건의 의미가 우리 대중 전체의 역사의식에 분명하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광주는 광주지역의 문제라는 식의 시선이 많이 해소되긴 했지만, 이를 전국적 차원의 고뇌와 역사인식의 성찰적 단계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수준의 지점에 놓여 있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는 셈이다.

 

십자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부활을 경험하는 역사를

 

하지만 이런 역사의 단계가 다 비관적 결론을 내리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토록 암울했던 식민지의 역사도 막을 내렸고,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남과 북의 평화체제 성립을 위한 노력도 그간 적지 않게 축적되어 왔으며 민주주의의 문제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이루어내려는 의지 역시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이 나라에서 다시는 군사주의자들이 정치를 지배할 수 있는 시대는 불가능하도록 하는 역사의 기반도 단단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진화해왔고 발전해왔다. 중요한 단계 하나하나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역사가 가야 할 길에 대하여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경험을 우리의 역사적 혈관 속에 기억하고 살아온 것이다. 이제 실로, 지난 110년의 역사를 깊이 성찰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힘차게 펼쳐야 할 때가 왔다. 나라는 자주해야 하며, 정치는 민주주의가 바로 서야 하고 민족은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제 국민의 의지를 거스르는 친일세력은 붕괴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의 격동 그 밑바닥에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 쉬고 있음을 확신해야 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러한 역사의 무수한 격랑 속에서 하늘의 뜻을 믿고 자신을 던져 희생한 이들의 피가 흐르고 있음도 아울러 기억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십자가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부활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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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영원한 친구 김장환 목사

  • 천국에서 볼수 있을런지 모르겠네

    2020.06.22 18:29

한종호의 너른마당(62)

 

권력자의 영원한 친구 김장환 목사

"그를 만나면 권력이 보인다"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이자 극동방송 사장일 뿐만 아니라,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이었던 김장환 목사의 성장기는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의 화마(火魔) 속에서 헤매고 있던 가난한 나라의 한 소년이 당시에는 꿈꾸기 어려웠던 미국에 건너가 중·고등학교와 신학대학원까지 마치고 돌아와 이제는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큰 것은 실로 입지전적인 이야기이다. 아무런 신앙적 배경도 없던 소년이, 이역(異域)에서 난관을 뚫고 실력을 쌓아 고국에 돌아온 후 영적 사역에 힘쓰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은 감격적인 간증이 된다.

 

이와 함께 그가 오늘날 정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교계 지도자로서 굳건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목사 김장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전기 <김장환 목사 이야기-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 출판 기념식에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이 운집한 것도 김장환 목사의 정치사회적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 영향력이 막대한 개신교 목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랑이요,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현실에서 소망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유명세와 영향력과 위상이 과연 우리 사회를 위해서 바람직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김장환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개인적 성장사에 담겨 있는 고난과 노력 그리고 이후 그가 괄목할 만한 지위를 가지고 여러 일을 해온 것은 결코 가볍게 평가할 일은 아니지만, 그의 삶과 그의 가치관과 그의 행적, 그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의 성격은 이 나라 이 사회의 불의한 기득권과 깊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중대한 질문이 된다. 

출세지향적 처세관으로 일관한 인생

 

 

침례교세계연맹의 총회장이 될 정도라면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그 대단함이 담고 있는 진정한 내용을 보자면 우리는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일관된 출세지향적 처세관과 이를 이루기 위한 '야망의 열정'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에게는 하나님의 의를 기준으로 한 역사관에 투철한 자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언제나 힘이 있는 곳에 그의 자리를 정하며, 그러한 일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권력자와의 교분을 통해 그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과정은 뒤집어보자면 그 권력자들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희생을 치르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연결된다. 그의 전기 <김장환 목사 이야기-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온다>를 읽어보면, 역사의 정의에 대한 그의 관심이라든가 이 땅의 백성들이 겪는 고난에 대한 아픔과 관련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그에게 관심 밖의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 땅이 겪고 있는 불의와 고난의 현실에서, 그는 다소 신랄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골프가 싱글인 목사요, 권력자들과 교분을 나누면서 유명세를 누리는 상류층 인사일 따름이다. 세상은 상류층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있지만 목사는 상류층에 속하는 순간부터 낮은 자리의 섬김과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그가 우리에게 있어서 귀감의 모형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가 가난한 나라의 소년으로 전쟁의 과정에서 미군 하우스보이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어렵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목회 현장에 자신의 삶을 투신한 것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교회와 방송국을 키우고, 선교 영역을 계속 확대해온 것에 대해 역시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보였던 그의 삶과 행적이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기울어 역사의 정의를 외면하고 백성들의 고난과는 거리가 있는 방향으로 치달아왔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우리는 그가 오늘날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기본 성격, 특히 권력자들과의 연결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유념해서 보고자 한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의 목사로서의 정치사회적 위상은 그가 살아온 삶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해주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절, 미국 순회하며 반한 여론 잠재우는데 앞장

 

그의 책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특별히 자서전 출판기념회 서평을 맡아주신 존경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20년 전 우리의 5월은 바로 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된 폭력으로 온 나라가 깊은 질고를 겪었으며, 그로써 역사의 진전은 가로막혔다. 또한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이 나라는 무수한 젊은이들을 잃었고, 막강한 폭력 체제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전은 좌절되었다. 그런 현실에서는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던 김장환 목사가 권력자가 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정치적 요청을 받아들여 움직였던 행적은 그의 오늘이 누리는 사회적 영광의 배경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불의한 권력의 죄를 고발하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을 위로하며 용기와 희망을 북돋게 하는 대신, 그 권력과 친밀한 것을 과시하는 목사에게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전기는 그가 '각계각층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서 당사자인 김장환 목사는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전도 대상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얼핏 옳은 이야기로 들린다. 그런데 김장환 목사는 전도 대상인 권력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과의 친분 쌓기에 주력하는 전도 활동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결코 전도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권력자의 벗이 되려는 출세지향적 자세이며, 그로써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려는 야망의 표출 외에 다름 아니다.

 

각계각층의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는 것이 전도가 되려면, 불의한 정치사회 지도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삭개오처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 강탈을 했으면 네 배로 갚아주겠습니다"라는 고백을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권력자들의 불의를 불의로 인식하게 하는 대신, 자신에 대한 이들의 인정을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삼는 일에 골몰했다. 

 

김장환 목사는 박정희 시절, 미주 전역을 순회하면서 당시 이른바 반한(反韓) 여론을 잠재우는 일을 맡는다. 이때의 반한 여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박정희 독재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반한 여론 잠재우기란 결국 박정희 독재 체제에 대한 옹호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여 당시 박정희 정부의 관리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광 전 의원은 "이들이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대통령 특사'나 다름없었다"라고 한다. 당시 국내적으로나 국외적으로나 박정희 정권의 폭력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사람들의 저항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을 때, 김장환 목사는 불의한 권력자의 편에 서서 폭력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실로 역사의 정의라든가, 폭력과 독선을 거부하는 하나님의 선함과 평화에 대한 신앙적 신념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5월 폭력'에도 침묵으로 방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교분은 그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차지철 경호실장 밑에서 차장보로 있을 때 예배에 참석한 후였다는 것이다. 이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5월의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장환 목사는 전두환 당시 국보위 위원장과의 만남을 가진다. 그의 책에는 이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다. '5월 초 신록이 물들기 시작할 무렵 김장환 목사의 인계동 집 정원에서 전두환 위원장은 실로 오랜만에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보안사 요원들이 집을 빙 둘러싸고 있어 바깥 분위기는 긴장이 감돌았지만 식사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이때가 어떤 때인가? 한국의 민주주의가 기로에 서 있고, 군부의 폭력이 역사를 짓밟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김장환 목사는 박정희 정권이 끝나자 이제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한 전두환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김장환 목사가 가진 화기애애한 시간에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이 나라 백성들은 피를 묻힌 군홧발에 숨죽여야 했다는 사실을 그가 오늘날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5월 광주항쟁이 발생하자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김 목사에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김 목사는 군목을 광주로 내려보내 정확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군목과 광주 현지에 내려가 현장의 소리를 듣고도 그는 전두환에게 이를 직접 알리지 않고 군목에게 떠넘긴다. 폭력 진압을 중지하는 것이 관건이었으나 그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광주 현장이 "한마디로 무법천지였어요"라는 식으로 규정될 뿐이었다. 불의한 권력자의 폭력에 대해 침묵했던 것이다. 

 

"어떻게 대처할까요" 하는 권력자의 물음에 침묵한 것은, 그가 그의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것과 다름이 없고 따라서 그는 전두환 체제 성립에 협력한 셈이었다. 그가 이후 전두환 체제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김장환 목사는 전두환 정권 당시 수원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면서, 시애틀 총영사로 있던 죽마고우 안세훈을 대신 천거한다. 전두환 폭력 체제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서 죽마고우를 활용한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권력 교체기인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를 옹호하는 선거관련 강연을 하고 다닌다. 그는 대선 후보의 자격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로 미국 우방이 믿어주는 후보, 둘째로 군대가 믿어주는 후보, 셋째로 북한이 무서워하는 후보, 넷째로 가정이 건전한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요." 여기서 우리는 그의 국가관이나 역사관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김장환 목사는 이 나라의 대권이 미국이 신뢰하고 인정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그가 얼마나 사대친미적 식민지 근성을 가진 인물인가를 자인하고 있다. 이 나라 대통령이 되어야 할 사람의 제1 조건은 이 나라 백성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지도자여야지, 어찌해서 미국이 받아들일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김장환 목사가 얼마나 미국에 대한 정치적 사대근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백성들의 생각과 신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의와 대적하는 삶…청산할 구시대의 유산

 

또한 그는 군부의 정치적 개입을 공식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군대가 믿어주는 후보란 군부가 지원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군부독재 체제를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는 그에게 아랑곳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그가 건강한 민주적 시민의식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 적대적 공포를 주는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냉전 체제의 존속을 바라는 자세를 보였다. 결국 김장환 목사는 전두환 체제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 것이었고, 미국의 지배와 냉전시대의 유지 그리고 군부의 통치에 복종하는 사회를 갈망한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의와 평화, 선한 다스림과는 전면으로 대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존엄한 권리를 짓밟고, 나라의 자존은 생각도 아니하며 대국에 머리를 굽히는 자를 지도자로 내세워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김장환 목사가 누려왔던 불의한 기득권을 지켜줄 사람과 질서, 체제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첫째 역사의 정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바칠 사람, 둘째 백성들의 고난과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면서 섬김의 헌신을 할 사람, 셋째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나라의 자존을 지켜낼 수 있는 사람, 넷째 가정의 물질적·영적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 등을 내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장환 목사에게는 미국의 관심과 군부의 관심이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나라 백성들의 고난과 절박한 현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그가 이 나라 교계의 지도자연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불행이며 수치이다. 그는 우리에게 귀감의 모델이 아니라, 극복의 모델이며 구시대의 유산으로 청산해야 할 유형인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실로 나사렛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권세자들에게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갈하시면서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고 질타하셨다. 김장환 목사가 불의한 권력자들과 상류층의 교분을 맺으면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려는 한 그의 삶은 하나님의 의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올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불의한 기득권층의 벗이요, 미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시피 한 김장환 목사의 그간의 행적은 그의 살아온 인생사를 보면 매우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권력과 출세의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야망, 그것을 위해서라면 주변의 희생을 아랑곳하지 않고 강요하는 그의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 처신 등은 그가 한국 사회에서 상류층의 권력적 실세가 되기 위한 이기적인 줄달음이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하여 그의 입지전적 삶이란, 그가 한국 사회에서 낮고 천한 이들의 삶에 다가가려는 목자보다는 높고 강한 자들의 우군이 되려는 과정이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책제목처럼 “그를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오는" 사람들은 불의한 삶을 살면서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이 김장환 목사를 통해서 얻게 되는 자기 자신의 "위선적 은폐"라는 점을 주시해야 하는 것이다.

 

불의한 권력자들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 친교 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역사적 죄악에 대한 회개를 촉구한 바 없으며 그들의 삶에서 이 땅의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의 인생을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결단을 끌어 낸 바도 없다는 것은 김장환 목사가 무엇을 지향하면서 이들과 어울리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례들인 것이다. 이런 그가 침례교 세계연맹의 총회장까지 된 것은 사실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삶이 그리스도의 헌신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이 깊기 때문이다. 

 

‘하우스보이’ 빌리

 

우리는 앞에서 그가 맺어온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주목해보았다. 이번에는 그의 성장사에서 중요한 대목을 짚어 김장환 목사의 처세관의 기반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대목은 아무래도 그가 미군부대의 하우스보이 '빌리'로 그의 삶이 바뀐 그 역정이 경계선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미국 유학이라는 길이 열릴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군 부대 하우스보이란 이 나라가 겪은 가장 비극적인 전쟁의 와중에서 가난한 백성들의 아들들에게 주어졌던 일종의 별천지의 축복이기도 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주둔군의 하인'이 되는 일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일종의 권력이었고 주변에게 물질적인 은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초콜릿과 껌, 그리고 그밖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물건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 하우스보이는 그런 선망의 대열에 낀 존재이기도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김장환 목사는 소년 시절, 수원교도소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부대에 하우스보이로 들어가 가난한 소년 시절의 삶을 지탱하게 된다. 그 후 그곳에서 '빌리 김'이 된 그는 미국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된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물건, 잡지의 상품들은 모두 빌리 김에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열망의 재료가 되고 있었다. 그것은 그 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이라면 거의 누구에게나 있었던 공통의 사회심리이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빌리 김은 '선택된 소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선택된 처지는 마침내 미국 유학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평생 그에게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에게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지를 결정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그에게 어디까지나 은혜의 나라요, 기회의 땅이었으며 그를 가난에서 구출해준 국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면서 그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하우스보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은 절박하게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과 그의 정신은 미국인의 마음과 정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으며, 밥존스라는 극우적 학교의 유학은 이러한 성장사의 가치관을 더욱 굳어지게 만들고 만다.

 

하우스보이 빌리가 아무런 기독교적 이해와 경험도 없이, 미국의 극우적 정신세계에 곧바로 끌려들어가, 진정한 인간의 내면적 자유보다는 율법적 권위주의와 미국의 패권적 정치관을 배우게 된 것은 실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장환 목사의 미국 유학이 그의 개인사에 있어서 출세의 길을 열어주었는지는 모르나, 그 자신과 이 나라를 위해서는 하우스보이의 굴종적 민족관과 극우적 신학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극우적인 신학교에서 극우적인 가치관 심어져

 

밥존스는 미국에서 가장 극우적인 신학을 지향하는 학교이다. 김장환 목사가 다닌 시절에는 그러한 극우적 성향에 대한 사회적, 신학적 비판과 견제가 더 더욱이나 약했던 때였기에 김장환 목사가 그런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돌아볼 기회가 없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교회라고는 다녀본 적이 없던 그가 밥존스에 가서 학교생활을 해야 했다는 것은 그에게 일종의 고통이었으리라. 아무튼 그는 학교생활에 곧 적응하기 시작했으며 발군의 실력을 나타냈다고 그의 자서전은 적고 있다. 그런데 밥존스가 어떤 학교인지를 보여주는 보기를 책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죽었을 때 당시 존슨 대통령이 한 달 동안 조기를 달 것을 지시했다. 그러자 당시 총장이었던 밥존스 2세가 목사 한 사람이 죽었는데 미국 국기를 한 달 동안 달 필요는 없다며 하루만 게양했다. 그러자 흑인들이 밥존스 재단에 성조기를 계속 달지 않으면 보일러실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 학교에서 주 정부에 보호 요청을 하면서 군대를 파견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주 정부에서 '공립학교도 다 못 지키는데, 어떻게 사립학교를 지키느냐'며 거절했다. 그러자 밥존스 재단에서는 성조기를 게양하는 대신 기관총을 사들여 방어에 나섰다."

 

밥존스 대학은 애초부터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에 적대적이었으며,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들의 입학은 아예 봉쇄하고 있다. 이후 김장환 목사가 빌리 그레이엄의 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다는 이유로 해서 졸업자 명단에서 제명이 될 정도로, 교단적 폐쇄성이 강한 학교인데다가 위에서 보듯이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겠다는 식의 극우적 백인주의의 가치관이 가득한 학교이다. 이 학교 출신들의 극우적 성향은 미국 사회에서 종종 논란이 되고 있는데, 그런 학교에서 교육받은 김장환 목사의 가치관이 어떠할 것인지는 충분히 짐작 가는 일이다. 

 

그가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극우적인 군사주의 세력과 아무런 갈등 없이 어울리게 되는 것도 이러한 그의 성장사를 보면, 하등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자면, 김장환 목사의 유학과 그의 귀국은 한국 사회에 미국의 극우적 가치관을 심어나가고 그것을 확산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미국의 극우세력이 극우적 종교관을 기반으로 성장한 세력이라는 점을 주시하면, 김장환 목사와 전두환·노태우 등 이 땅에서 극우적 폭력을 휘두른 세력 간의 친교와 연대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미국이 이 땅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김장환 목사는 하우스보이 빌리 시절의 역할을 계속해서 톡톡히 수행해나간 셈이라고 하겠다.

 

권위주의적 품성, 혁대로 자식을 때려 순종을 가르치다

 

부인의 입에서 나온 남편의 단점은 이렇게 표현되고 있다. "목사님은 성격이 급해요." 대담자가 이것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이야기라고 하자 그녀는 하나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불평하는 것을 조금도 못 참아요." 이것은 사실 그의 권위주의적 품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밥존스에서 받은 엄격한 규율 교육,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행운의 청년, 자신의 성취에 대한 넘치는 자신감 등등이 이러한 권위주의적 자세를 길러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나 권위에 대한 이견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그의 자세는 다른 인간에 대한 따뜻한 배려나 격려의 결여로 나타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실수나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보다는 정죄와 질책을 매우 강력하게 드러내는 품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두 아들 요셉과 요한은 물론 딸 애서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버지 김장환 목사에게 혁대로 맞았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의 이러한 교육관은 순종에 대한 훈련이었다고 한다. 즉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순종에 어긋나면 가만히 두지 않는 것이었다. 순종을 폭력으로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의 교육은 여전히 극우적이며, 억압적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게 자란 아들 김요셉 목사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에게 자신이 받은 교육과 마찬가지로 혁대로 체벌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혁대로 맞은 경험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아버지는 손으로 때리지 않고 꼭 혁대로 때리셨어요. 어떻게 아이를 혁대로 때리느냐고 놀라는 분들이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좋은 기능이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아버지가 무섭기보다는 혁대가 무서웠어요. 아버지가 혁대를 매지 않는 날은 굉장히 기쁜 날이었어요. 야단 안 맞을지도 모르니까요." 

 

과연, 혁대로 때리면 아이는 그 두려움을 아버지보다는 혁대에게 돌릴까? 사람을 가죽 띠로 때리는 전통은 주인이 노예를 때리는 역사에서 연유한다. 노예는 자신을 가죽 띠로 잔혹하게 때리는 주인보다는 그 가죽 띠에게 두려움과 적대감을 느끼게 될까? 사람을 때려서 순종을 가르치겠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거니와, 그 체벌의 수단을 자신이 차고 있는 혁대를 선택하는 품성의 냉혹함은 실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폭력적 권위에 저항하는 민중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총을 휘두른 세력과, 자신이 차고 있던 혁대를 휘두르는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들은 아버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아버님의 성격이 급하십니다. 그래서 말실수를 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남길 수도 있기 때문에 잘못을 나무라고 꾸짖는 반면 격려나 칭찬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한 직원들의 공통된 이야기도 그가 격려나 칭찬보다는 질책이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우적 교육의 가학적(加虐的) 인간관의 결과이다. 따뜻하고 자상하며, 격려가 풍요한 말을 사용하기보다는 인간을 어떤 목표를 위해 짓누르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권력 지향적 권위주의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보다 권세가 강한 이에게는 도리어 매우 따뜻하고 자상한 듯이 군다. 인간에 대한 이중적 성품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장환 목사보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매우 엄격하고 질책이 우선되는 사람이자, 두려운 존재라고까지 말하고 있는 반면에 권력자들은 그로부터 마음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 이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김장환 목사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지거나 약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반면에, 자신의 권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이에게는 굴종적 처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자에겐 군림으로, 강자에겐 굴종으로 일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의 이러한 자세가 주변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자신의 출세와 권위를 도모하는 삶을 살아오게 한 동력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일일까? 극동방송 내부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에 대한 깊은 불만과 인간적 적대감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 있다는 것을 그는 어떻게 느낄까?

 

그의 경영관이 이른바 공격적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의 이러한 공격적 자세는 아들 요셉 목사가 말했듯, "관계 중심보다는 업무 중심"으로 말하자면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향해 사람들을 수단으로 동원하는 일에 열중하는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해서 성과를 달성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 자체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김장환 목사는 깨우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권력자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인간을 수단화하고 있다는 점, 바로 이러한 면모를 혹 김장환 목사는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김장환 목사의 삶을 짧은 지면을 통해서 분석한다는 것은 물론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이러한 출세와 명성은 그가 이 땅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헌신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권력자들의 교분을 깊게 하고 미국의 입장을 대변해온 사람이라는 점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물이 한국 교계의 지도적 인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이 받은 은사와 기회를 다시 새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도한다. 권세자들과의 교분이 아니라, 진정 이 땅에서 아우성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을 위해 새로운 헌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생은 완전히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한국 교회에 중대한 변화로 나타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생은 이후 그가 바라는 대로 평가를 받기에는 아마도 참으로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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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삼키는 자들의 정체

한종호의 '너른마당' 2019. 9. 28. 09:48

한종호의 너른마당

 

낙타를 삼키는 자들의 정체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마태복음 23:24).”

 

난폭한 시대다. 검찰은 죄를 찾는 게 아니라 죄를 발명해내고 있는 것만 같고 언론은 받아쓰기 외에는 하지 못한다. 교육에서 받아쓰기를 아예 없애야 할 판이고, 발명은 과학과목에서 폐기해야 하는 걸까?

 

한 나라의 법무부장관 임명과 관련해서 온통 이런 난리를 겪은 적이 있을까? 대선급 소용돌이다. 그만큼 검찰개혁이 민감하기 때문이다. 사생결판이 나야 끝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가이다.

 

적폐지속인가, 개혁추진인가? 이 갈림길에서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물러서는 순간, 개혁세력의 몰살이 닥친다. 강력해진 검찰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관리하려 들 것이다. 어찌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어디 정치판만 그런가? 대형교회 세습에 한 교단이 아예 몰빵을 했다. 기막힌 일이다. 무얼 더 가져야 속이 시원하다는 말일까? 주구장창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세력의 권세가 추하다. 이미 그곳은 성전이 아니다.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선교역정에서 바리새파와 율법학자의 위선을 매우 강렬하게 미워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더욱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신 점이다. 그것은 이들이 지닌 사회적 위치와 종교적 권위가 폭로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하고 있었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즉, 누구도 감히 그러한 작업을 할 용기나 생각을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이면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한 채 그들의 지도자적 권위에 순종하는 일종의 종교적 세뇌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예수께서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이 자신들의 종교적 선행을 포장하는 행위라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이들은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을 대단한 것으로 선전하고, 그것이 자신들의 의로움을 보장해주는 듯한 모습으로 세상에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을 보고 자신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종교생활의 기준을 거기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들이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이유는 낙타를 삼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것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확보하고, 그 대가로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낙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만큼 순수합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정직합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학식이 높습니다. 나는 이만큼이나 희생해 왔습니다, 나는 이만큼 선행을 베풀어 왔습니다.” 등등은 사실은 전부다 낙타를 삼켜먹기 위한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아, 욕심이 없으시군요. 아, 얼마나 자신을 버리고 희생해 오셨습니까?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군요. 오로지 높은 지혜에만 관심을 보이고 살아오셨군요.” 등의 평가를 얻어내어 낙타를 먹어치우기 위해 위장하는 자들은 도처에 있다.

 

가령, 정치판이 벌어지면 이렇게 ‘나는 하루살이를 걸러내고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자기발전의 선전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한다. 그렇게 해서 얻어진 표와 자리가 주어지면, 그 다음에는 그의 위 속에 수 십 마리 낙타가 들어가는 것을 본다.

 

나는 소위 기독교 인사들이(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지만 진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위선과 탐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교단선거뿐만 아니라 연합기관이나 자신의 교단과 기관에서 자리를 보전하거나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실은 낙타를 겨냥하면서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덕을 선전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마음은 낙타에 가 있고 하루살이는 그걸 위한 도구가 될 뿐이다.

 

 

 

 

 

지금 우리는 나라의 운명을 감당하겠다는 이들의 말과 삶 속에서도 하루살이가 낙타를 얻기 위한 제물로 바쳐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자신이 살아온 바가 하루살이를 걸러내며 살아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욕없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만을 위해 나섰다고 하지만, 그들이 사는 집과 재물과 삶의 스타일, 그 자손들의 행실은 낙타를 삼킬만한 위가 있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것들임을 발견한다.

 

조국 장관의 자녀 문제로 쌍심지를 돋우고 있는 정치인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미 뱃속에 낙타 몇 마리는 너끈히 집어삼키고는 하루살이조차 걸러낸 듯 재고 있다. 참으로 두꺼운 낯짝이다. 그걸 벗기려면 보다 예리한 칼이 필요할 것이다.

 

당대의 현실에서 예수께서는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시면서 ‘눈먼 인도자’라고 공박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도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기준을 알게 된다. 그가 낙타, 즉 거부하기 어려운 크기와 강도의 재물과 권세와 명예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포기하는가, 아닌가이다.

 

아, 이 어리석음여, 하나님 나라를 낙타에 비길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면서 낙타를 삼키겠다는 자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그 뱃속을 해부해야 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참으로 고단하구나. 그래도 해야겠다. 욕심에 눈먼 자들이 인도하는 세상을 종치기 위해서.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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