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신동숙의 글밭(62)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옥수수를 삶고 있는데,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떠들썩하다. 세 살 난 딸아이도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모처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잔칫날 같다. 압력솥에 추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에 조바심이 다 난다. 다행히 아이들은 멀리 가지 않고 우리집 앞 공터에서 이리저리 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옥수수를 뚝 반으로 쪼개고, 나무젓가락을 쪽 반으로 갈라서 옥수수를 하나씩 꽂아 쟁반에 담아서 골목으로 나갔다. 핫도그 모양으로 젓가락에 꽂은 옥수수를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이와 이름을 묻는다. 네 살, 여섯 살, 1~2학년, 키가 제일 큰 아이가 5학년이란다. 다들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말이 반갑다. 옥수수 먹으면서 놀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새로 이사온 우리집 마당과 집안이 궁금했는가 보다. "아줌마~ 들어가 봐도 돼요?" 하길래, "그래" 했더니, 집안이 사내 아이들로 북적북적하다. 딸아이가 제일 신났다.


그 후로도 골목에서 마주치면 우리들은 서로가 먼저 말을 붙이며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도 대문 밖에서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예원아~ 노올자" 하며 종종 동생네 집으로 놀러 오곤 했다. 오빠야들이 놀러오는 날엔 딸아이는 신이 난다. 그런데, 너무 신이 난 나머지 한 살 많은 오빠야의 얼굴을 순식간에 꼬집어 그 집 엄마가 우리집으로 찾아온 일도 있다. 귀한 작은 아들 입가에 상처가 나서 들어온 게 속상해서 오긴 왔지만, 덩치가 저보다 작은 딸아이를 보고는 혼을 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간 적도 있다.


대여섯 명의 동네 아이들은 둘씩, 셋씩 서로가 형제라고 한다. 게중에는 키가 제일 큰 5학년 태현이, 그 밑으로 태호, 태경이 삼형제가 있었다. 골목에는 ㄱ 자 굽은 허리로 리어카에 폐지를 모르시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드리면 누가 인사를 건네나 싶어 겨우 고개만 드시고, "예"라고 대답만 하실 뿐, 한 번도 허리를 펴신 모습을 뵌 적이 없는 어르신이다.


태경이네 할아버지인 줄은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태경이 형제가 놀러 와서 마루에서 놀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께서 용돈을 마련하시려나 보다." 했더니, 태호가 가만가만 하는 말이 "할아버지가 우리 키워 주시려고 돈 버는 건데요." 한다. 나는 순간 대답이 막혀서 "엄마는?" 하고 이어서 물었고, "같이 안 살고 왔다갔다 하시는데요." 한다.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는데도 순간 나온다는 말이 "엄마는 뭐를 좋아하실까?"였다. 태호는 "우리 엄마는 가마솥 갖는 게 소원이래요." 한다. 


십 년도 더 지난 옛이야기가 오늘 일처럼 생생한 것은, 태경이 때문이다. 나무젓가락에 꽂아준 반쪽 옥수수를 먹던 때가 태경이 여섯 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내가 지나가면 멈추고 "안녕하세요." 수줍게 인사를 해오던 아이. 태경이가 6학년이 되던 어느 여름 날. 동네에는 소방차가 왔고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아이가 강물에 빠졌는데, 찾고 있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도 누구집 자녀인지 몰라서 부모를 찾는다 했고, 아이의 할아버지가 폐지를 줍는다는 누군가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더운 여름날 방과 후에, 새로 생긴 돌다리 옆 수풀을 따라서 난 강물에서 다이빙을 하며 물놀이를 하던 사내아이들. 거센 물살에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가 6학년 태경이였다. 한참의 수색으로 몸을 건졌지만 숨은 돌아오지 못했다. 운구차가 운동장을 한바퀴 돌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음날 나는 혼자서 처음으로 새벽 기도를 드리기 위해 교회를 찾았다. 나도 새신자 등록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이었고, 살아있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기도로 구했다. '예수 영접'. 그렇게 7일 동안 새벽기도를 드렸다.


그날 낮에 마을의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을 찾았고, 태경이 얘기를 했더니,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얘기가 지금도 고맙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어느 집사님이 태경이를 한 달 전에 전도를 했었고, 한 달 4주간의 새신자 교육을 마치고, 예수 영접을 받고는 직후에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다 헤아릴 수 없는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곳은 그렇게 예수의 품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시던 예수.





지금도 동쪽으로 강변을 산책하려면 새 다리를 지나야 한다. 십 년도 전에 놓은 새 다리지만 여전히 새 다리로 불린다. 한 번 입에 붙은 이름이라 바뀌질 않는다. 그 새 다리를 지날 때면 나는 한 번도 태경이를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다. 아직도 나는 그쪽 강물 곁으로 가지 못한다. 소심해서 사고 지점을 자세히 바라보지도 못한다. 다만 새 다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다 지나는 동안만이라도, "태경아, 태경아" 속으로 이름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로 예수님을 부른다. 그 분 품으로 맡긴다.


그렇게 한 순간 어린 목숨을 데려간 강물이지만, 나는 한 번도 강물을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이 없다. 강물은 여전히 흐를 뿐이다. 새 다리를 지날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태경이를 애써 지울 이유도 없고, 지우려고 한 적도 없고, 그리고 여태껏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냥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게 할 뿐이다. 그렇게 내 가슴을 슬고 지나는 어린 영혼을 예수에게로 인도할 뿐이다. 끊이지 않는 호흡처럼 그렇게 슬픔의 강물이 평온히 흐르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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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신동숙의 글밭(61)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아들은 아침부터 티비를 켜면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는 한 마리 봉황새처럼 이불을 친친 감고서 둥지처럼 포근하게 만듭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주고는 억지로 데리고 나오려다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게 되면 딸기 쥬스와 빵을 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옵니다. 


반납할 대여섯 권의 책과 읽을 책과 노트와 필기구와 물통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맵니다. 몸을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로 순간 숨이 푹 땅으로 내려앉을 듯 하지만, 한쪽 귀에만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이 어둡고 구석진 마음마다 밝혀주는 햇살 같아서 발걸음을 가벼웁게 해줍니다. 


집을 나서고 보니 5일 장날입니다. 아침밥이 벌써 소화가 되었는지, 혼자 걷는 걸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겆질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있었다면, 엄마 소매를 붙들고 걸음을 멈추어 사달라고 했을 떡볶이, 어묵, 닭꼬지, 김말이입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집을 나서지 않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순간 집으로 되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작은 의지가 이내 제 풀에 꺾인 것은 어깨를 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마냥 무겁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가던 걸음을 돌이켜야 하거나 때로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보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선뜻 몸이 가지 못하는 이유가 저마다 짊어진 일상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은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의 말씀이 한 줄기 햇살처럼 전해져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 불신과 미움과 분리의 무거운 마음을 발걸음마다 날숨마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나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의 평화를 이 좁다란 가슴에도 담을 수 있을런지요.


무엇보다 가벼웁게 할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도록 수시로 내려놓을 일입니다. 그 홀가분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임을 봅니다. 언제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네'라며 가볍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날숨마다 몸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합니다. 날숨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조금은 길게 내쉬는 날숨 그 다음에 들숨처럼 저절로 채워주시는 은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 안에 고요히 머물러 쉼을 얻는 평화와 사랑의 호흡이 강물처럼 이어지기를요.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는 텔레비전과 이불 없이도 스스로 앉아서 고요히 마음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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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신동숙의 글밭(59)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하는 시간



모처럼 찾은 산동네, 다들 바쁜 일정 중에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중국집에서 시켜 먹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걸어서 올라오고 내려가는 데만도 다리가 후들거리는 아찔한 이 까꼬막을 오토바이가 올라오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자칫 뒤로 자빠질 것 같고,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배달을 해야하는 사람은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크고 밝다는 의미의 우리말 옛이름은 '배달'입니다. 우리는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달의 민족을 배웠다면, 오늘날 초등학생들은 매스컴에서 듣고 또 듣는 이름 '배달의 민족'. 광고의 요지를 보면, 어디든 달려 가고, 무엇이든 배달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더 편리할 수 없는 자본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제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이유를 두고 산동네 배달음식을 묵상합니다.




저녁답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는 주부의 모습이 귀합니다. 얼마 이상 주문을 클릭하면, 원하는 시간에 맞춰 집 앞까지 배달이 되니까요. 아파트촌과 평지 마을이 배달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십니다. 생계를 위해 배달을 해야하는 이웃들에게 산동네의 까꼬막은 어떤 무게로 다가갈까를 두고 묵상을 합니다.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던 예수의 마음을 제 어둔 가슴에 해처럼 떠올려서 잠시나마 산동네와 배달음식, 택배 문화를 비추어봅니다.


그리고,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청년들의 잔뜩 움츠러든 몸과 피어나지 못한 체 접혀 있는 씨앗 같은 마음을 묵상합니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어도 먹거리부터 생계가 해결 되기에, 연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한지, 삶이 행복한지, 가치와 의미를 먹고 살아야 하는 영혼이 배달 음식으로인해 자유로움을 얻는지. 자본주의가 낳은 편리함이라는 두터운 이불 속에 갇혀 연명하고 있는 젊음.  젊은 육체의 세포들을 알알이 깨어나게 해줄 한 줄기 햇살을 구합니다.


자본의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산골이나 시골로 들어가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행복을 찾았다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말이 한 줄기 맑은 바람처럼 가슴으로 불어옵니다. 언젠가 불어온 푸른 바람과 밝고 따스한 햇살이 피부에 닿았던 느낌을 기억한다면, 마음까지 가벼워져 겨드랑이께로 날개가 돋힌 듯 홀가분해지던 느낌을 몸이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내리는 빗물이 산비탈 마을의 낮아진 웅덩이마다 고여서 메마른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햇살이 포근하게 깊은 곳까지 감싸 안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르내리는 걸음마다 부디 안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좁다란 오름길에 봄이 오고, 오르락내리락 가쁜 숨을 고르어 평온히 걸으면 집집마다 틈새마다 피어난 색색깔꽃들이 눈맞춤하며 반길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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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사람의 온전한 행복

신동숙의 글밭(57)


돕는 사람의 온전한 행복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은 모두가 다른 얼굴 다른 삶의 모습을 보입니다.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없으며, 한 순간도 똑같은 순간이 없는 생생히 살아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웃들 중에는 도움을 주는 손길도 있고, 도움을 받는 손길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서로가 조금씩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10대~20대를 지나면서 진학을 하고 또 취업을 위해 우리는 선택의 순간과 종종 만나게 됩니다. 대나무의 마디처럼 만나게 되는 그 순간에 어떠한 씨앗을 가슴에 품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모습은 달라질 것입니다. 대나무가 위로 곧은 것은 곁길로 가지 않고 높은 하늘만 선택했기 때문인지, 곁에 선 대나무에 제 마음을 비추어보며 그리고 둘러싼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뭔지는 잘 모르지만, 대상이 분명하진 않지만 세상을 향해 돕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원을 세우는 삶이 있습니다. 똑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가지만, 시간이 갈수록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지런히 바쁘게 일상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이 미덕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급속도록 그래프가 올라가던 경제 성장 속도에 발맞추어 소중한 하루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가쁜 숨을 쉬어야 했던 생활인들. 그리고, 언젠가부터 몰아쉬던 가쁜 숨을 천천히 내려놓으려는 잔잔한 물결들이 삶 곳곳에는 일렁이고 있음을 봅니다. 


저 역시도 20대 초반에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인생의 무거운 짐으로 가슴을 누르던 터널과 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터널의 시기는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찾아오고 또 지나가며 삶의 마지막까지 그렇게 이어질 테고요. 그러한 삶 속에서 매 순간마다 저는 언제나 초보자이며, 어린아이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20대 취업을 앞두고, 부지런함보다는 게으른 모습이었습니다. 방 안에 혼자 앉아 있었으니까요. 공부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척척 살아갈 줄 알았던 딸이었기에 지켜보던 부모님이 답답함에 가슴을 치시던, 혼돈과 공허함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무렵입니다. 저는 어둔 내면을 보고 있었고, 제 몸은 묶여 있었습니다. 식물과 같은 모습. 제게 주어지는 모든 한 순간의 선택이 영원의 숙제로 다가오는 그 무거움. 이제는 그 게으름과 무력감의 순간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멈춤.


학업과 일상이라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고요히 머무는 순간. 제 인생이 처음으로 멈추고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게 된 전환점입니다. 종종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멈춤의 시기를 겪은 분들도 계시지만, 여전히 일상의 수레바퀴 위에서 발을 내려놓지 못하여 주저하거나 두려워하고 있는 눈빛도 언뜻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영혼으로부터 초대장은 날아올 테고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복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저에게 다가온 멈춤의 순간. 고요히 머물러 내면으로 시선이 향하던 그 순간. 따뜻한 온기를 구했고 삶의 행복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금방 사라질 온기와 표피적인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빛과 온전한 행복을 구했습니다. 더욱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갔고, 그럴수록 나와 너는 둘이 아닌 하나의 뿌리임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내면의 느낌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흐려진 것이 아니라 마치 뿌려진 씨앗이 자라는 모습처럼 더욱 선명해집니다. 내가 노력해서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느낌이었다면 금방 사라졌을 것입니다. 멈추고 고요히 머무는 순간, 저절로 주어지는 은총이 실체임을 봅니다. 이미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에 고요히 머물러 평온함과 쉼을 얻는 관상觀想의 기도.


삶의 물줄기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에서 보이는 한계들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고층 아파트 부촌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늘의 공기, 미세먼지는 어디든 넘나듭니다. 함께 호흡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더불어 아름다운 삶을 지향점으로 자연스레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할 때 제 마음은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행복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가까움을 보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받으려고만 하면 작아지고 옹졸해집니다. 반대로 사랑을 주려고 하고 도움을 주려는 마음은 스스로의 가슴에 햇살을 품은 듯 넉넉한 가슴이 하늘처럼 내 속에 펼쳐지는 풍경을 봅니다.


제가 선택한 삶은 도움이 되는 삶, 섬기는 삶이 커다란 물줄기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온전히 행복하기 위해서 선택한 삶. 그 와중에도 물살이 오고 가듯, 스치는 이기심과 이타심은 서로가 잔잔히 부딪히며 윤슬처럼 반짝이는 모습입니다. 그러면서도 강물은 유유히 흘러갈 테고요. 우리의 삶이 눈물겹도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은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 위에 내려앉아 부딪히며 빈 곳을 채우는 하늘과 햇살의 반짝임이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명상의 집에서 만난 안셀모 신부님의 모습이 반가운 것은 돕는 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원을 십 대 때 세운 그 발심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토마스 머튼의 영성 강의. 이어지는 점심 식사 시간에는 맨 마지막에 식사를 하셔서 참석자들이 한 두 개씩 먹었던 생선 튀김을 못 드셨답니다. 적게 먹는 저보다 더 조금만 덜어 오셔서 국에 밥을 말아서 드십니다. 처음으로 나누는 인사가 반갑고 따뜻합니다. 


제가 난생처음 참석한 미사를 두고 옆에 앉은 대구에서 오신 분이 얘기를 하십니다. 저보고 오늘 처음 왔는데, 제일 큰 미사를 드렸다고 하십니다. 단상 위에까지 올라가서 예수님의 신상과 신부님을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빙둘러 서서 다 함께 성찬 미사를 드린 것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기에 제 차례가 되어서는 이마에 십자가 성호를 그으시며 안수 기도를 해주십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한 명씩 각자가 받은 빵을 차례로 적셔가며 나누는 모습입니다. 맨 마지막에 신부님이 성찬빵 부스러기를 닦듯이 긁어모아서 성찬잔에 담으시더니, 물을 조금 부어 헹궈서 드십니다. 그리고 행주로 깨끗이 닦아서 뒷설겆이까지 말끔히 마치는 모습입니다. 수도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또 살아가야 하는지 성찬 미사의 그 한 단면을 통해서 잠시 엿볼 수 있었습니다. 


섬김을 받으려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로 살아가려는 수도자의 삶. 나를 비우고 진리와 빛의 하나님으로 채우려는 삶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온전히 행복한 모습은 아닌가 짐작해봅니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또한 온전히 행복한 삶일 테고요. 나와 너가 둘이 아니고 하나의 뿌리이기에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에 싹 트는 돕는 마음. 그 마음 자리에서 꽃이 피고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추어 고요히 머무는 그 마음 자리에서 평온과 사랑과 쉼이 있는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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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아들과 함께 명상의 집으로

신동숙의 글밭(56)


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아들과 함께 명상의 집으로



핸드폰으로 하루의 빈 틈을 채우려는 겨울방학 중 아들입니다. 급기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맨 처음 인사말이 "아빠! 핸드폰은?"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백을 채운 공기처럼 아이들의 삶 속에 호흡처럼 따라붙는 핸드폰. 무슨 수로 떼어낼까 싶어 마음이 무겁다가도, 이내 그 핸드폰 자리를 진리의 하나님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햇살 한 줄기의 소망을 품어보는 아침입니다. 


그리고 핸드폰은 단지 그 순례길에 좋은 조력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희망이 지금은 비록 겨자씨 만큼 작더래도 가슴에 심겨진 한 알의 씨앗은 알게 모르게 자랄 테니까요. 언젠가 눈을 뜨자마자 창밖으로 하늘빛을 살피며, 밤새 어두웠을 가슴에 빛의 하나님을 태양처럼 떠올리는 자녀의 고요한 아침을 그려봅니다.


도심 속 자연, 숲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움터인 '분도 명상의 집'을 어떻게 찾아갈까 궁리를 하다가 아들을 데리고 가기로 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핸드폰을 잘 내어주지 않는다는 걸 아들은 압니다. 엄마는 아들에게 심심함을 선물로 주고픈 그런 마음입니다. 그 무료함의 터널을 지나온 후 비로소 만나게 되는 내면의 소리가 있습니다. 일상의 삶을 창의성과 영성으로 열어줄 심심함과 텅 빈, 선물처럼 주어지는 그 시간 속의 시간. 심심함이 때론  영혼이 보내오는 초대장이 되기도 하니까요.


안 가겠다는 걸, 달래기도 하고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구슬렸더니 이온 음료 한 통을 손에 쥐고서 겨우 차에 탑니다. 전날부터 종일 내리던 겨울비에 오전까지 흐리던 하늘입니다. 점점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구름 사이로 언뜻 맑고 푸른 하늘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문득 마음만 먹었을 뿐 주저했던 여정이라 구름 사이로 조금씩 내려주시는 햇살의 은혜가 잔잔히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소나무, 대나무, 소나무, 대나무가 사이 사이 함께 자라고 있는 숲. 일부로 그렇게 심어 놓은 듯한 처음 보는 풍경입니다. 생소하지만 문득 소나무의 청정함과 대나무의 곧음이 조화로운 맑음으로 다가옵니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스승과 벗처럼 숲길로 오르는 발걸음마다 단단하던 가슴을 한 겹씩 열어줍니다.  


대나무 곁에 선 소나무는 곧게 뻗어 있습니다. 소나무가 곁에 있어 댓바람 소리가 쓸쓸하지만은 않습니다. 대나무와 소나무는 서로에게 좋은 벗이고 스승인 듯 그렇게 함께 서 있습니다. 골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기도를 해오지만, 문득 숲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청정한 곳, 그러한 도량에 호젓이 앉았다 오고 싶은 그런 마음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고요한 순례길에 동행자는 포노 사피엔스, 핸드폰족 12살 아들입니다.


TV로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아들을 떼어 놓고 오려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더 크기 전에  고요함의 씨앗을 심어주고픈 그런 의도가 숨어 있었지요. 명상의 집 둘레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습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띄엄띄엄 십자가 예수의 형상이 새겨진 돌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들은 오솔길을 산다람쥐처럼 뛰면서 앞서 갑니다. 그러다 잠깐 멈추고 뒤돌아 보며 어서 오라고 재촉합니다. 그러다가 땅에 떨어진 솔가지를 주워 팽팽 칼싸움을 하자며 건넵니다. 핸드폰 대신 솔가지를 손에 잡았으니 반갑게 맞이해야지요. 성모 마리아상 앞에선 느닷없이 국민체조를 합니다. 우리들 주위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건물 안엔 수도자들이 기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며 귀띔을 해줬더니, 순간 동작을 멈추고 여러 창문들을 향해 시키지도 않은 배꼽인사를 넙죽 건넵니다. 식은땀과 안도의 한숨이 소나무와 대나무 사잇길 겨울바람처럼 엄마의 가슴 사잇길로 교대로 스치며 지나갑니다.


엄마가 원하는 건, 그저 고요하게 머물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기도. 언제쯤 이곳에서 홀가분한 몸으로 그런 고요한 침묵의 기도 속에 머물 수 있을까 싶습니다. 또한 홀연히 그런 날이 올 테지요. 명상의 집 초입, 돌에 새겨진 '너희는 멈추고 하나님 나를 알라'(시편46)를 다시금 가슴에 새기며 떠나오려는데, 트렁크 문이 열려 있습니다. 아들에게 트렁크 문을 좀 닫아 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뜻하지 않은 배드민턴 채를 꺼내옵니다. 


그저 멈추고 싶었던 곳에서 원치 않는 배드민턴 깃털 공을 쳐야 했던 이유는, 아들의 기억 한 켠에 그렇게라도 명상의 집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문득 고요히 멈추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해처럼 떠오르는 예수의 말씀.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누가복음 18장 15~17절) 이 한 말씀의 생명력이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물처럼 차오르며 어느 새 온몸을 따스하게 감돕니다. 겨울바람 속에 배드민턴의 깃털 공은 자유로운 새처럼 자유로운 아들처럼 이리저리 나부낍니다. 대부분 맞추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으로 떨어진 깃털 공들을 주우면서도 가슴엔 평온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어설픈 우리의 여정 가운데 만져 주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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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52)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아이들이 한창 어릴 때, 달리는 차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딸아이가 빵을 먹다가 흘린 부스러기를 모으더니 차 창밖으로 냅다 던집니다. 순간 아찔한 마음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딸아이의 대답은, 이렇게 땅바닥에 던지면 개미가 와서 먹을 거라며 순간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평소에 마당이나 공원에서 음식을 먹다가 흘리면, 땅에 흘린 음식을 개미나 곤충이 먹으라고 한쪽에다 놓아두던 습관이 무심코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다릅니다.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린 곳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입니다.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린 딸아이와 얘기를 나눕니다. "만약에 개미가 빵 부스러기를 먹으러 찻길로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딸아이는 놀란 듯 자기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서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이는 말입니다. 먹을 거 함부로 두지 마세요. 그러다가 큰일 납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개미나 다른 생명이 먹이를 보고서 순간적으로 찻길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오랜 세월 수많은 직업이 있어 왔고, 때론 점차 수요가 줄어들어서 사라지는 직업도 있을 테고요. 앞으로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나기도 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모여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양식을 놓아두는 것처럼,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도 우리 중엔 계십니다.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 생명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곳에, 삶의 의미가 있는 곳에 양식을 놓아두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일자리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좋은 머리와 마음을 그러한 착한 일자리 만드는 데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쳐다만 봐도 아찔한 높은 곳에 일자리를 놓아두고 월급을 줄 테니 올라가라고 합니다. 확실한 안전장치도 없이 누군가의 아버지에게. 잔혹하고 슬픈 역사인 군함도처럼 맨몸으로 누워서 천장을 보며 석탄을 캐야 했던 강제 노역자는 우리들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찔하게 높은 곳과 바닷속 탄광은 다르지 않습니다. 수직으로 높이 높이 쌓으려는 마음은 탐욕과 가까움을 봅니다. 수평으로 지방으로 공평하게 선한 발전이라면 말초신경까지 피가 잘 도는 건강한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이 그러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돈이면 뭐든 다한다는 어두운 마음과 좁은 소견이라면 위험합니다. 그러한 일자리는 참으로 나쁜 일입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 시키고 싶지 않은 일은 사실은 남에게도 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황금률입니다. 황금률은 어느 한쪽에게 더 잘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최소한의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지켜져야 할 인간의 도리입니다. 황금률의 아름다움은 고용인만 지니는 덕목은 아닙니다. 피고용인도 스스로의 존엄성을 황금률의 선상에서 스스로 깨어서 자각할 수 있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화와 균형 속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테지요.
 
그동안 한국은 돈, 돈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너무나 많이 넘어왔습니다. '발전'이라는 허울뿐인 이름 하에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변의 아픔을 둘러보지 않고서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안전과 행복'이라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의미와 가치가 삶 곳곳에서 민들레꽃처럼 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착한 일자리가 많아질수록 우리네 삶 구석구석에서 더 다양하고 향기로운 꽃들이 웃음처럼 피어날 테지요. 제 자신도 그러한 힘을 기르기 위해서, 제 스스로가 무디어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책을 읽고 사색을 합니다. 그리고 침묵에 기대어 기도합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마태복음 7:1-12) 이것이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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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무지 한 쪽의 국위 선양

신동숙의 글밭(50)

 

단무지 한 쪽의 국위 선양

 

이 이야기는 30년 직장 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직 후 중국 단체여행을 다녀오신 친정아버지의 실화입니다. 정해진 일정을 따라서 들어간 호텔 뷔페에서 어김없이 새어 나온 아버지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드실 만큼 조금만 접시에 담아오셔서 배가 적당히 찰 만큼만 드시고는 다 드신 후 접시에 묻은 양념을 단무지 한 쪽으로 삭삭 접시를 둘러가며 말끔히 닦으신 후 입으로 쏙 넣으시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던 중국 뷔페 식당의 직원이 마지막 마무리까지 보시고는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짝짝짝 박수까지 쳤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는 한화로 1만원 정도의 팁을 건네시고는 일행들과 뿌듯한 마음으로 자리를 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국의 호텔 뷔페 직원이 배웅까지 나와서 아버지의 한국 여행객 일행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도 손을 흔들어 주시고, 이제는 들어갔는가 싶어 돌아보면 또 그 자리, 또 뒤돌아 손을 흔드시며 그렇게 국경을 넘어 아름다운 모습이 한 순간 그려졌다고 합니다.

 

 

(생전에 이뻐하시던 손녀, 신지우가 제주도에서 담은 소나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크고 많은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행동 하나, 말투, 손짓, 눈길 등 지극히 사소한 곳에 있음을 다시금 봅니다. 오히려 크고 거창한 모습 앞에선 감동보다는 놀람에 가까운 감정이 들곤 합니다.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 소리에 깜짝 놀라는 인간이 밤 하늘 먼 별 하나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마음까지 맑아지곤 합니다.

 

아버지 생전에 밥상에 앉으시면, 밥 한 톨과 농부의 땀을 늘 반찬 삼아 밥상에 올리시곤 하셨답니다. 어려운 시절 가족들을 여의셨기에 제겐 고모와 삼촌이 없답니다. 하지만, 돌아가시던 장례식에는 사돈의 팔촌의 며느리까지 먼 데서 찾아오셔서 인사를 하셨고요.

 

자신에겐 누구보다 엄격하셨던 분. 남해에 있는 집안의 가족 납골당으로 모시고 가던 단체 버스 안에서, 큰 할아버지의 아들인 동갑내기 작은 아버지께서 앉으신 좌석에서 뒤돌아 보시며 하신 얘기가 기억납니다. "우리 부락에서 너거 아버지한테 인사 안 받은 집은 한 집도 없을끼다. 그래서 내가 다들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아침에 마을에 방송하고 오던 길이다." 어버지 어린 나이에 떠나오신 고향입니다.

 

어릴 적 여름날 기억은 다 잊었는데 매미 소리만 기억난다고 하시던 고향, 아홉살에 나뭇짐 해오시느라 엄지발가락이 자라지 못하신 얘기, 누렁소 꼴을 먹이시던 이야기에는 소가 참 어질다고 하시면서 소처럼 예쁘고 맑은 눈을 지그시 감기도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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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땅으로

신동숙의 글밭(49)

 

무릎을 땅으로

 

"넌 학생인데, 실수로 신호를 잘못 봤다고 말하지!" 함께 병실을 쓰시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면회 온 언니들, 아주머니들, 어른들의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 "어쨌거나 횡단보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앞둔 4월, 벚꽃이 환하던 어느날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넜으니까. 그 순간엔 마치 빨간불에 건너도 될 것처럼 모든 상황이 받쳐 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건 교통 법규, 약속을 어기는 일이니까.

 

내일 시험을 앞둔 일요일 밤,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 9시가 넘어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올 때 바게트 빵을 사오라던 동생의 부탁이 생각나 집과 반대쪽으로 향했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 이게 왠일인가! 이쪽 저쪽 둘러봐도 달리는 차도 사람도 하나도 없는 텅 빈 거리를 보는 건 무척이나 낯설었다. 텅 빈 공간, 마치 땅이 아닌, 하늘 안에 나 혼자 있는 기분. 빨간 신호등은 힘 없는 허수아비. 나는 두 손으로 겨드랑이 옆 가방 끈을 붙잡고 한 마리 새가 되어 사뿐히 날 듯이 뛰었다.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넜을 무렵. 문득 내 앞에 서너 명의 사람이 서 있는 듯 보였다. 순간 너무나 부끄럽단 마음이 내 온몸을 감싸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얼음이 되었다.

 

1초 후 얼음땡하고 내 몸을 쳐준 건, 사람 손이 아닌 승용차 앞 범퍼였다. 나는 정말로 한 마리 새가 되어서 공중으로 붕 떠올라 날 수 있었으나 이내 곧 추락하고 말았다. 부딪히던 순간의 느낌은 통증이 아니었다. 묵직함과 온 세상이 하얗게 되는 공의 세계. 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땅으로 곤두박질한 불쌍한 새 한 마리를 누군가 보듬어 안았고, 나는 둥지처럼 폭신한 몸에 안긴 채 놀란 숨을 헐떡이며 차는 어디론가 달렸다. 비로소 눈을 뜬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운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 담요가 더럽다며 깨끗한 담요로 바꿔 주던 다리를 절뚝이던 간호사, 경찰관... 누운 채 나는 한 마디를 했다. "네!", 빨간불에 건넜냐는 물음이었고, 난 누워서도 몸을 살폈다. 엑스-ray를 다시 찍었던 건, 내가 불편한 곳은 거기가 아니라는 말에 의사 선생님의 진단 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 몸이 들려 주는 진실에 반응했을 뿐이다. 빨간불이라는 말이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피해 보상 없이 엄마는 한 달 동안 생업을 접어야 했으니까.

 

병실로 옮겨지고, 나를 보듬었던 아주머니가 병문안을 오셨다. 그 다음 날도 오셨고, 그때 선물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주시고 가신 것은 미니 카세트, 우리 대학생 아들이 녹음해 주었다며 앞뒤로 빽빽이 4시간 가량 녹음이 된 테이프, <간디>와 이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테잎 안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는 모두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새로운 세상이었다. 여고 시절과 대학생이 되면서 그 목소리의 이름들이 하나 둘 내 안으로 들어왔다. 유제하, 김현식, 정태춘과 박은옥, 시인과 촌장. 모두가 잠든 어둔 밤 고층 병실 통유리창으로 내려다 보던 옹기종기 불 켜진 마을들.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을 들으며, 그대로 시인이 사는 마을로 보였다. 테잎이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지금까지도 내 정서의 커다란 밑그림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마음과 몸이 들려주는 진실에 그대로 반응하는 일은 당장 눈앞에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늘 그렇다. 손해를 보더래도 진실을 가리는 것은 내겐 숨구멍을 틀어 막는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내 안의 영혼이 숨을 쉴 수 없는건 가장 슬픈 일이니까. 눈앞이 캄캄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선택한 건 언제나 내면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내 어둠에 가려질세라 내 무딘 마음에 흐려질세라 눈이 하얗게 시리도록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본다. 네댓 살 어릴 적에 하늘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 후.

 

그 진실이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는 걸 언젠가부터 알 것도 같았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30대의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읽고 있는 그의 책 속에서 무한히 하나님의 사랑 아래에서 빨간색 밑줄과 별표, 하트표를 긋고 있는 백발노장의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본다.

 

흙을 파는 어린 아이처럼 나무 꼬챙이로 때론 맨 손가락으로 지성의 흙을 파헤치느라 굵어지고 갈라진 거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정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혜도, 지성도, 정의감도 아니라 사랑이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436쪽)

 

'신앙을 가지면서 번뜩이는 감각, 냉철한 비판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다.... 지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거니까.... 지성은 깨달음으로 가는 사다리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93쪽)

 

이어령 선생의 지성이 나의 덩어리진 의식과 의식 사이를 비집고서 훑고 지나감을 본다. 하지만, 차갑지가 않다. 이미 사랑의 빛으로 감싸여 본 그의 지성은 이제는 따뜻하고 그 어느 영성가 와 시인과 구도자 못지 않게 빛나도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무릎을 봐라. 무릎이 성한 사람은 값어치가 없다. 일어설 때 몇 번이고 무릎을 깨뜨려 본 사람, 무릎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어령 선생은 그 자신의 깨어지고 아물고 상처투성이의 무릎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는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두란노, 2012)

 

그날의 교통사고 때, 붕 떠올라 하늘을 날고서 맨 처음으로 땅에 닿은 곳은 양 무릎이었다. 어릴 적 산동네 비탈길을 뛰어서 내려오다가 사정없이 넘어져 깨어지고 피가 나던 무릎. 빨간색 아까정끼가 붉은 동백꽃처럼 피어서 늘 그렇게 지지 않던 무릎. 그날 내 몸의 상처는 그게 다였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꼼짝 안하고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몸 속 깊이 있는 뼈라서 수술이 불가능하고, 살짝 어긋나 붙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곳이라 가능한 처방이라시며.

 

그때 드렸던 기도가 있다. 살려 주시면 남은 생은 진실되게 착하게 살겠습니다. 살려주시는 분이 있다면 은혜를 져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백열 번의 무릎을 구부려 땅으로 엎드린다. 깊어진다. 나를 내려놓은 후 비로소 눈물로 씻기고 맑아진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싶으니까.

 

한창 꼭대기에서 머물던 성적은 그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러브레터 한 박스는 지금까지 먼지 이불을 덮고서 책장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일일이 답장을 하면서 편지 쓰기에 재미를 붙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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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산을 옮기며

신동숙의 글밭(47)

 

설거지산을 옮기며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쌓입니다. 식탁 위, 싱크대 선반,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묻거나 조금씩 남은 크고 작은 냄비와 그릇과 접시들. 물컵만 해도 가족수 대로 사용하다 보면 우유나 커피 등 다른 음료컵까지 쳐서 열 개는 되니까요. 가족들이 다 함께 한끼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모으다 보면 점점 쌓여서 모양 그대로 설거지산이 됩니다.

 

그렇게 설거지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일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한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우리의 눈과 귀, 의식과 무의식 중에 먹는 수많은 정보들. 읽기만 하고 덮어둔 책 내용들이 내면 속에선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사색과 묵상을 통해 정리되거나 비우지 못하고, 때론 마음 한구석에 쌓이고 얼룩이 져서 일상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우두커니 서 있는 설거지산이 그대로 커다란 산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산을 한 고비 넘는 듯한 부담감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기도 하고요. 삼십 년 가까이 설거지를 해오는 지금도 가끔은 이런 마음이 일어나니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아직 중학생 딸아이에게도 선뜻 시키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염두에 두는 건 설거지가 사람에게 많은 배움을 줄 거라는 경험에서 온 예상입니다.

 

하다 보면 설거지를 하는 일은 설거지산을 하나 옮기는 일이 됩니다. 이제는 나름의 규칙도 몇 가지가 있답니다. 그 방법대로 하다 보면 일의 앞뒤가 서로 엉키지 않으면서, 크게 헤매지 않고 설거지산을 무난히 옮길 수 있답니다. 참,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걷는 스승이자 벗이 있어서 지루함을 잊게 하기에 오히려 그 시간이 즐거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동행자는 유튜브로 듣는 법정스님의 육성 법문, 목사님의 주일 말씀,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와 초의 선사 등 옛 선비들의 이야기, 최근에는 신부님이 연작으로 강연하신 '토마스 머튼'이 있습니다. 물을 틀거나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동행자의 말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산을 옮기는 초입부터 미리 단도리를 해둡니다. 소리를 최대치로 올리고 핸드폰이 물에 젖지 않는 선상에서 최대한 제 귓가에 둡니다. 때론 이어폰을 한쪽 귀에만 꽂고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어 두기도 하고요.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나면 시작하는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첫 번째 일은, 산을 옮겨둘 텅 빈 땅을 마련하는 일. 즉 건조대에 남은 그릇과 수저 등을 모두 비우는 일입니다. 새롭게 씻은 그릇을 엎어둘 빈 곳을 마련해 두는 일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글을 쓰는데 앞서 내 생각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생각을 비우거나 내려놓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소 추상적인 일이기에 모호할 수 있지만, 분명한 한 마음은 '주시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며 하나님 앞에 업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옷자락 아래에 나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겸손의 마음입니다. 산을 넘거나 옮기는 일 앞에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다'는 한 생각은 무겁고 거추장스런 짐이 될 뿐이니까요. 내 안의 모든 근심, 걱정, 무거운 짐을 주님의 옷자락 아래에 내려놓으려는 한 마음. 그 가벼움 속에 살짝 가슴께를 스치는 자유함이 가끔 선물처럼 주어지기도 합니다.

 

두 번째 일은, 크고 작은 그릇과 씻겨야 할 모든 식기를 물에 적셔 놓는 일입니다. 어쩌다 밥그릇이 충분히 담기지 못하고 한쪽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눌러 붙은 밥풀 하나를 떼어 내기 위해서 한 번의 문지름이 열 번, 스무 번이 되기도 합니다. 무난히 넘어오던 설거지 길에 괜한 용을 쓰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게 밥풀을 떼다 보면, 일상에서도 불필요한 용을 쓰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저 물에 푹 담궈 두기만 해도 스윽 한 번의 문지름이면 해결되었을 수많은 마음의 일들. 내 뜻대로 억지로 하려다가 잘 안되어 혼자 얼굴을 붉히거나 제 풀에 꺾여 낙담한 경우는 없었던가. 그저 나를 내려놓는 침묵과 눈물의 기도에 온몸이 푹 잠길 수 있었다면 저절
로 풀려질 마음의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고요.

 

세 번째 일은, 크고 단단한 그릇은 아래로 작거나 깨지기 쉬운 유리컵은 위로 그리고 손이 많이 가는 수저는 되도록 모아서 맨 나중에 한꺼번에 한 줌씩 모아서 씻기로 합니다. 나름의 분류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공통점은 깨어지기 쉬운 그릇은 맨 위에 올리거나 따로 놓아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눈에 잘 띄도록 하는 이유는 무심결에 부딪혀서 깨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도 가로수의 간격 만큼 공간을 두고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빈 공간은 하늘이 채우고 있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님으로 채울 수 있다면 하고요. 서로에게 거는 기대와 욕심과 사리사욕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의 존재만으로 감사와 아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일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가까운 가족들에게 가장 안되는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요.

 

네 번째 일은, 효율성입니다. 몸의 동선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수돗물이 혼자서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 헹군 그릇을 오른손이 엎어둘 때, 동시에 왼손은 흐르는 수돗물에 그 다음으로 헹굴 그릇을 적시고 있는 일입니다. 효율성이란 불필요함과 사족을 없애고, 단순함과 간소함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입니다. 의미보다는 재미를 찾는 일들, 모임들이 제게는 불필요함입니다. 의미와 가치를 우선에 두는 삶을 지향합니다.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마음이 그 속에서 만족하게 되면 재미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제게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이란,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는 일. 둘째, 사람들에게 유익과 행복이 되는 일. 셋째, 나 스스로에게도 유익과 행복이 되는 일. 이렇게 세박자 왈츠의 리듬처럼 이 세 가지가 만족되는 일이 저에겐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재미는 그림자처럼 따라올 수밖에 없을 테고요.

 

다섯 번째 일은, 그 모든 과정 중에 호흡이 거칠어지거나 괜히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몸에는 불필요한 힘을 주지 않으면서 반복되는 움직임 속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는 일. 호흡을 평온하게 유지하다 보면 그대로 마음의 평온함으로 이어짐을 봅니다. 그 평온함 속에서 들려오는 스승이자 벗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을 하며, 호흡과 마음의 결을 고르는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춘 듯한, 저에게는 고요한 시간이 됩니다.

 

여섯 번째 일은, 눈에 보이는 설거지를 하는 일과 마음의 설거지를 같은 선상으로 바라보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은 보이지 않는 일의 실상이라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그래서인지 설거지 을 옮기다 보면 마음까지도 점점 가지런해지고 정갈해지는 기분이 절로 드는 것은 그 때문일 테지요. 소소하고 사소한 일상의 일과 마음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일. 우리의 선조들이 지향한 학문의 길, 곧 마음을 챙기는 일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에게는 영혼을 챙기는 일이 될 테지요.

 

일곱 번째 일은, 조금 힘에 부치는 순간이 와도 감사함으로 한 걸음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겹쳐 놓은 그릇과 그릇이 서로 끼었다가 분리가 되지 않는다거나, 조심한다고 해도 유리컵이 미끄러져 깨지는 예외의 경우가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순간 일어나는 당혹스러움을 날숨과 함께 가볍게 흘려보낸 후 들숨일 때 '다치지 않고 이만하기 다행입니다.' 하며 감사의 마음을 먹는 일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간다는 말씀이 흐르는 물처럼 다가옵니다. 곧 감사함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이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을 내어주는 일임을 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없는 듯 계시는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실 테고, 때론 나 스스로가 그런 사실을 놓치더래도 보고 계신다는 사실은 하늘에 태양처럼 여전할 테니까요. 이렇게 설거지산을 말끔히 빈 곳으로 옮겨 놓는 일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말끔히 씻기고 정리정돈된 주방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정갈하게 정리정돈된 느낌이 듭니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남아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다. 또 그 다음 식사 때가 다가오고 있으까요. 내 몸의 호흡처럼 먹고 사는 일은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엔 끊이지 않고 오고가며 흘러가는 강물이기에. 우리 모두의 일상이 평화의 강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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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신동숙의 글밭(46)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마당가 복순이 물그릇에 담긴 물이 껑껑 얼었습니다. 얼음이 껑껑 얼면 파래가 맛있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겨울바람결처럼 볼을 스치며 맑게 지나갑니다. 개밥그릇엔 식구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 군고구마, 사료를 따끈한 물에 말아서 부어주면 김이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복순이도 마음이 좋아서 잘도 먹습니다.

거리마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붕어빵 장사입니다. 검정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선 젊은 엄마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퇴근길의 아버지가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서 착하게 기다리는 집. 따끈한 붕어빵 종이봉투를 건네는 손과 받아든 얼굴이 환하고 따끈하기만 합니다.

요즘은 붕어빵 두세 개에 천원을 합니다. 옛날 제가 중학생 때 붕어빵 한 개에 오십원 하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저녁 시간 오고가는 학원길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붕어빵. 조금씩 사먹던 붕어빵을 실컷 먹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던 어느날, 천원을 들고 붕어빵 집으로 달려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중·고등학생 버스 요금으로 종이 회수권이 있던 시절, 회수권이 100원에서 150원으로 오르던 때라 학생 용돈으로 천원은 큰돈이었습니다. 혼자서 스무 개의 붕어빵을 놓고 물리도록 먹어도 열 개를 채 못 먹었던 그때의 기억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하나 둘 제과점이 생기고, 노점상 단속이 심해지면서 겨울철이면 늦은 밤까지 귀갓길을 환하게 밝혀주던 붕어빵 장사도 눈에 띄게 줄어든 시절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거리 상권을 점령해버리고, 치킨과 피자 등 배달 음식에 잠시 밀려난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붕어빵은 가격의 문턱이 낮아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가까운 착하고 따뜻한 고마운 양식이 되어줍니다.

 

 

 

   - 그림 : 신가영 작가 (이오덕 선생님의 '감자를 먹으며'의 삽화)

6·25 동족 상잔의 비극 이후,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 길거리에서 생겨난 먹거리 중에는 풀빵인 국화빵과 붕어빵, 호떡이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뜨거울 만큼 온기를 머금은 거리의 음식이라는 점입니다. 그때 그 시절 대부분의 장사들은 길바닥이 생계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건물들이 지어지면서 차츰 장사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경기의 큰 바람이 한 차례씩 불어올 때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았던 노점상 단속. 국가 정책에서 볼 때 노점상은 말끔하게 치우고 싶은 가난한 시절의 그림자일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이 나라가 딛고서 다시 일어선 곳은 척박한 이 땅, 길바닥이라는 고마운 사실입니다. 땅과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성품은 흙의 온순함을 닮아 선함을 봅니다. 거리에 장이 서는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정겹고 닫히고 끊어졌던 마음과 마음이 강줄기처럼 이어짐을 봅니다.

춥고 배고프고 어둡던, 겨울과 같은 그 어려운 시절에 겨울나무가 된 선조들과 부모님 세대들이 있습니다. 맨몸으로 길바닥에서 농촌의 흙을 일구듯 온몸으로 도시의 삶을 일구어 온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들의 피, 땀, 눈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이처럼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우리 선조들이 그와 같이 지나온 추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요. 

숨가쁜 경제 성장이 거리에서 깨끗하게 치운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골목마다 뛰어 놀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저녁밥 짓기 전에 모여 앉아 저녁 찬거리를 얘기하던 새댁들의 재잘거림도
어디론가 들어가버렸습니다. 생계와 생활과 놀이의 터전이었던 길과 골목이 찻길과 주차장이 되어버린 차가운 풍경들.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해 걸어가야 하는 거리의 행인들.

오늘날 붕어빵 장사 곁으로는 언제나 주차된 차가 있거나 시동을 끄지 않은 정차된 차가 멈추어 있기도 합니다. 밤늦게까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눈에 겨울 밤거리의 붕어빵 장사는 어떤 풍경으로 다가갈런지요. 가끔 엄마의 입장에선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답니다. 앞으로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과 도로가 있다면 걷고 싶은 거리, 틈틈이 식물을 심어서 안전하고 맑은 거리를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은 언제나 마르지 않는 샘물입니다.

여러 시절을 지나며 한 때 눈에 띄게 줄어들었던 붕어빵 장사가 올 겨울엔 유난히 눈에 자주 들어옵니다. 추운 겨울 밤거리에 온기를 가득 머금은 환한 등불, 붕어빵 장사가 그저 반갑고 고맙습니다. 오래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의 생계 자립을 돕는 지원 사업으로 유행을 타기도 하며 꿋꿋하게 겨울 밤거리를 지켜온 붕어빵 장사가 지켜온 것은 사람을 향한 온기인지도 모릅니다.

숨 막히는 건물로부터 거리로 내몰리듯 자연스레 모여드는 움직임이 이 나라 이 땅 곳곳에서 일어남을 봅니다. 들에 풀꽃처럼 흐르는 물처럼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버스킹, 거리 공연으로 세상과 소통하고픈 젊은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드는 곳도 거리입니다. 푸드 트럭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곳도 길입니다. 유럽 나라들 중 국민 행복지수가 높은 곳은 개인 사장이 많은국가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이 시대가 더불어 피운 꽃, 촛불집회의 꽃자리가 된 곳도 건물이 아닌 바로 길, 길바닥입니다. 길은 소통과 희망이 싹트는 땅, 목마른 이들에게 살아있는 샘. 내가 한 방울의 물이라면 낯선 세상과 조화롭고 아름답고 맑게 섞여서 흘러가야 할 첫 만남의 장소. 건물보다 먼저 있어온 길거리는 도시의 강줄기입니다.

초저녁 잠에서 깬 뒷좌석에 앉은 아들에게 이야기 한 자락을 들려줍니다. 짧은 이야기의 마지막에 '붕어빵은 어떻게 들고 가야할까요?'라며 물었더니, 아들은 '손에'라며 귀찮은 듯 당연한 걸 물어본다는 듯 짧은 대답을 툭 내뱉습니다. 장난끼가 오른 엄마의 '땡!'이라는 평가에 아들은 잠이 마저 깼는지 뒷좌석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썩입니다. 

'따끈한 붕어빵은 옷 속에 넣고 가야지. 이왕이면 가슴에 품고 가면 더 좋고, 그러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가슴도 따뜻해지고 붕어빵도 식지 않는다.'고 말해줍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의 첫날,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덕담이 따뜻하기만 합니다. 온기를 듬뿍 머금은 따뜻한 말이 올 한 해 마지막 날까지 동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감사와 사랑과 행복을 가득 담은 덕담 한 봉투. 그 온기가 식지 않도록 따끈한 붕어빵 한 봉투처럼 가만히 가슴에 품어 보는 건 어떨까 싶은 그런 새해 첫날의 첫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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