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신동숙의 글밭(124)


단단한 흙밭에 호미질을 하다가


이웃에 두 평 남짓 화단이 있습니다. 시멘트와 벽돌로 담을 두르고 마사토를 쏟아 부워서 만든 작은 공간입니다. 로즈마리, 라벤더, 페퍼민트, 애플민트 등 각종 허브 모종을 한 뼘 남짓 간격을 두고 심은 곳입니다. 그리고 화단의 가장 먼 둘레에는 꽃을 볼 작은 묘목 대여섯 그루를 심었습니다. 이렇게 작년 여름에 만들어 두고는 하늘만 믿는 천수답처럼 알아서 크겠지 하고 무심히 겨울을 지났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쏟아 부은 마사토의 높이가 울타리보다 높다는 점입니다. 비가 뜸하다 싶은 날 호수로 마른 흙밭에 물을 주면, 흙으로 스며 드는 양보다 밖으로 흘러 내리는 양이 많아 보였습니다. 입이 짧은 딸아이를 볼 때면 애가 타는 마음 같습니다. 때때로 교만으로 높아지려는 제 마음에도 가운데가 움푹 낮아져 눈물이 고이는 자리를 내고 또 내려 합니다. 교만함은 이득보다는 손해를 보는 경우의 수가 더 많음을 이제는 경험으로 아는 나이가 됐는가 싶어 가슴께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갑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는데, 줄기는 말라 보이고 겨우 가지 끝에 피운 잎도 야위어 보입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점심밥을 먹고 난 후 호미와 모종삽과 고무장갑을 챙겨서 친정 엄마하고 일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밖으로 돌던 몸이 집 안에 머물게 되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소소한 집안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집니다. 다들 집에 머물면서 뭘하고 있을까 하고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들 그런 마음이신지 더러 전화가 걸려 오기도 하고, 전화를 걸고 싶은 얼굴들을 달처럼 별처럼 떠올려 보기도 하면서 하루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화단 중간에 쪼그리고 앉아서 허옇게 마른 흙을 호미로 푹푹 팠더니, 속에 부드러운 흙이 울컥 토하듯 숨을 쉽니다. 가운데 높은 흙을 퍼 담아 옮겨서 낮은 가장자리에 둑처럼 쌓았습니다. 새로운 울타리를 두르 듯 흙을 쌓아서 둑을 만들었습니다. 어릴 적 모래 놀이터에 앉아서 하염없이 쌓고 허물고 또 쌓던 모래 언덕처럼 모래 터널처럼 모래 물길처럼.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허무시는 손길을 따라서 한없이 낮아지려는 마음으로 낮은 숨을 쉽니다. 한 점까지 낮아진 숨에 고요함이 머물면 한 순간 세상은 맑고 평온하게 보입니다. 


이제는 물을 주면 밖으로 흘러 넘치지 않고 뿌리가 물을 머금도록 묘목을 중심으로 사이 사이 낮게 골을 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밭에 일꾼 지렁이가 하는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흙을 먹고서 흙을 길게 토해 내며 흙에 숨구멍을 내는 지렁이의 삶. 제가 쪼그리고 앉아서 호미질로 하고 있는 일이 지렁이가 하는 일들이 아닌가 하고요. 지렁이와 벌레 작은 생명들이 살지 않는 흙이란 이렇게 척박하고 단단해져 숨 조차 쉴 수 없구나.


봄비가 내린 후 강변에 아이들 새끼손가락 굵기만한 지렁이가 보이면 몇 마리 데려다가 풀어 놓자고 웃으며 얘기했습니다. 비가 그친 후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지렁이가 종종 눈에 띕니다. 징그럽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지렁이가 고맙고 소중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한결 넉넉해졌습니다. 우리집 마당에 저절로 자란 페퍼민트와 돌나물과 수국과 꽈리를 몇 뿌리 뽑아다가 한 뼘 간격을 두고 빈 곳에 옮겨 심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르고 단단한 가슴엔 스며들지 못하는 은혜를 생각하면서, 눈 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단단한 흙에 호미질을 하는 일은, 마음을 벼르는 일 못지 않게 개운한 일이 됩니다. 날이 갈수록 마음과 몸이 하는 일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마음을 지키라는 말씀이 해처럼 빛납니다.


더러 말씀을 들을 때면 양심에 폭폭 찔립니다. 단단한 가슴에 호미질을 하듯 진리의 말씀은 호미날 같습니다. 그렇게 폭폭 찔리고 움푹 패이고 부끄러운 듯 마침내 부드러워진 마음의 골마다 꽃씨를 심자고 했습니다. 온라인 동영상으로 듣는 주일 말씀이 또한 날이 선 호미날처럼 쟁기날처럼 그리고 뿌려지는 꽃씨 같습니다. 무심히 단단해지려는 제 마음밭을 일구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떠올리며, 고마움에 그리움에 봄비처럼 눈물이 내립니다. 낮아진 마음밭에 눈물이 빗물처럼 고이다가 넘쳐 흘러 좁은 물길이 나면 세상으로 흘러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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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신동숙의 글밭(122)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난 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봄이 오면 장사익 소리꾼의 곡조가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듯합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둘째가 세 살이 되고 엄마 품을 벗어나려던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거실에 펼쳐둔 신문을 넘기다가 하얀 목련꽃 한 송이처럼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습니다. 하얀 한복을 곱게 입은 장금도 명인의 하얀 춤사위. 진옥섭 연출가의 땀으로 장금도 명인의 민살풀이를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생애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글줄에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그해 6월, 저는 그렇게 십 여 년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서 혼자서 호젓이 서울행 KTX에 올랐습니다. 


6월의 서울 거리는 따사로웠습니다. 졸업 후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곳이 서울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을 훌쩍 넘기고, 오랜만에 걷던 가벼운 발걸음마다 그 시절에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꽃처럼 다시 피어나는 듯했습니다. 라일락꽃이 한창이던 6월의 어느 날, 돈암동 성신여대 앞 태극당 맞은 편에서 222번 버스를 타고 가던 이른 아침 출근길.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히다가 깜짝 놀라서 몸을 바로 세우고 또 부딪히고, 그렇게 모자란 잠을 꾸벅이다가 잠결에 내린 압구정 3호선 버스 정류장, 그 바쁜 출근길에 청담동 언덕길을 없는 듯, 제 뒤를 따라와서 명함을 내밀던, 어느 종갓집 장손처럼 단정하게 생긴 청년의 수줍은 눈빛. 2년 남짓 생활하던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픈 사연도 있었지만, 세월이 한 구비 두 구비 흐른 탓인지 좋았던 기억들만 아름다운 선물처럼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앉은 곳은 관람석이었지만,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에 제 호흡을 실었습니다. 고요히 손끝으로 흐르는 선을 따라서 하얀 저고리가 허공에 그리는 수묵화 같은. 가벼운 듯 무거운 발뒤꿈치 끝이 내딛는 땅은 매 순간 이 세상 처음의 땅 같은. 가슴에서 숨이 드나들 듯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무의 춤 같은. 흐르는 물처럼 구름처럼 고독 속에 호젓이 구도자가 걷는 침묵의 길 같은 장금도 명인의 춤사위. 그 긴 침묵을 깨고 봄바람처럼 불어온 소리가 소리꾼 장사익이었습니다. 그 역시 가슴에서 샘솟듯 꽃을 피우듯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많고 많은 사건 사고들에 아랑곳없이 올해도 어김없이 남쪽에선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제주도에서 피기 시작한 매화는 섬진강으로 진해로 경주로 점점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페북에 연일 올라오는 벗님들의 꽃소식들로, 세상의 무겁고 어두운 소식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가슴이 환해집니다. 산수유, 목련, 민들레, 꽃다지, 진달래, 벚꽃, 유채꽃, 제비꽃, 튤립......  추운 겨울을 견딘 후 올해도 한결같이 피어나는 꽃들이 한창인 봄날입니다.


이 봄날에 "제발, 꽃 보러 오지 마세요!" 이 땅에 무수히 많은 봄이 찾아왔지만, 아마도 이 세상에 처음으로 태어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봄바람을 막으려는 무모한 일처럼 꽃놀이를 막으려는 마음들의 힘겨움이 조금은 헤아려지기에, 어쩔 수 없이 막아야만 하는 그 마음들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민살풀이의 장금도 명인이 내딛던 가벼운 듯 무거운 발걸음처럼 긴 호흡처럼, 훌쩍 떠나고픈 가벼운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으려 합니다. 


그렇지만 집 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이 봄날에도, 사람은 사람이라서 아름답습니다.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가슴으로 숨을 쉬는 일이 또한 가슴으로 꽃을 피우는 일임을 스스로가 알아차릴 수 있다면, 매 순간을 영원으로, 지상에서 천국을 사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또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겨울나무의 고독과 침묵 속에서 활짝 피운 봄꽃처럼, 지난한 일상 속에서 틈틈이 멈추어, 고독과 침묵 속에서 불어오는 성령의 자유자재하신 하나님을 봄바람처럼 느낄 수 있다면, 거룩한 성전인 제 가슴에도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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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신동숙의 글밭(121)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


세상에서 불어오는 무거운 소식들로 연일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입니다. 답답하고 무거운 가슴을 내려놓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어설프게 안고서 주신 하루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유튜브로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고미숙 고전평론가의 강의도 듣다가,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가는 곳마다 법정 스님의 저서 <홀로 사는 즐거움>을 끼고 다닌 하루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 마저 치우지도 못하고,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챙겨서 떠들썩한 식구들의 세속으로부터 벗어나 잠시 출가를 하였습니다. 식구들로부터 떠나와서 출가를 하는 장소는 거실 쇼파가 되기도 하고 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식구들과 함께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가 참 다르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다 챙겨주고 일일이 간섭하기보다는 언젠가부터 어설픈 엄마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잠시 잠깐 주어지는 엄마의 빈 자리가 도리어 선물 같은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늦은 밤에 딸아이는 떡볶이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낮에 아들은 누나 곁에 나란히 앉아서 저도 따라서 색색깔 쿠키 반죽을 빚습니다. 사용설명서를 봐 가면서 오븐에 굽기까지 저 혼자서 다 해냅니다. 엄마의 역할은 그런 자녀들의 모습에 틈틈이 감탄하면서 맛있게 먹어 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이미 예전에 읽으면서 연필로 연하게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친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거듭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맑은 샘물을 마신 듯 푸른 하늘을 본 듯 제 속뜰로 맑고 투명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귀한 글들 중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이 봄날에 함께 나누고픈 단락이 있어서 그대로 옮깁니다. 


"<마태복음>에 이런 구절이 있다.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지만 그 모진 추위와 비바람과 뙤약볕에도 꺾이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뎌낸 그 인고의 의지가 선연한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는 이렇게 쓰고 있다.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앞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한바탕 쓸고 닦아냈다. 아침나절 맑은 햇살과 공기 그 자체가 신선한 연둣빛이다. 가슴 가득 연둣빛 햇살과 공기를 호흡한다. 내 몸에서도 연둣빛 싹이 나려는지 근질거린다."(법정, <홀로 사는 즐거움>, 63~64쪽)


그 옛날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봄을 맞이하시던 법정 스님의 모습이 고요하고 투명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합니다. 글숲을 거닐며 스님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 답답하던 가슴을 슬고 지날 때마다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제 가슴을 누르던 것은 바윗돌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두터워진 모래 먼지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슬고 슬고 슬면 얼마든지 맑게 슬어낼 수 있는 세상의 먼지, 때때로 진흙탕이 될 때면 한 송이의 연꽃을 피울 수도 있는 그만치의 탁한 세상 말입니다. 이 땅에 한결같이 찾아와 줘서 고마운 봄날, 세상에서 불어오는 탁한 바람을 씻기는 건, 자연의 봄바람과 맑은 영혼의 속뜰에서 불어오는 맑고 투명한 바람인가 봅니다. 


딸아이는 자기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과 아들은 둘이서 얘기를 나누는지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가 정겹습니다. 그제서야 홀로 글숲을 거닐던 순례길에서 돌아와 저녁식사 뒷정리를 하러 주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늦은 밤 유튜브로 법정 스님의 육성 법문을 틀어 놓고 설거지를 하기로 했습니다. 듣다가 울컥 울컥 눈물이 나서 기침을 막으라는 팔꿈치로 눈물을 닦아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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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신동숙의 글밭(120)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면 침묵을 해야 하지만, 예배당 안에서 무리하게 예배 모임을 강행하려는 일부의 교회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연일 드물게 올라오는 포스팅에 답답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제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현재 코로나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한 공공수칙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현 시국입니다. 그런 중에 일부의 기독교 목회자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배 금단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중독과 금단 현상이란 곧 나의 신앙이 깨어 있지 못한, 졸음 운전처럼 졸음 신앙이라는 증거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종교란, 나와 이웃의 생명을 살리려, 깨어 있는 사랑이 될 때에만, 존재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런 사랑이란, 매 순간 깨어서 나와 이웃을 보살피려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아닌가 하고요. 그처럼 열린 가슴에는 보다 이기적인 중독이 아닌, 보다 이타적인 중심이 자리 잡을 테니까요.


월 회원권을 끊어 놓고 헬스장과 수영장을 다니며 몸을 푸는 사람들은 하루만 쉬어도 몸이 무겁다고 합니다.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는 권사님들은 어쩌다 새벽기도를 빼먹은 날은 하루가 영 시원찮고 허전하다 하십니다. 그리고 쉼없이 새벽기도의 재단을 쌓으십니다.


하지만 종교 생활이 단순히 하루의 몸풀기를 위한 중독의 대상으로 전락 될 때, 그렇게 졸음 종교가 향하는 길은 노쇠함이 아닌가 하고요. 저 역시도 빌었던 기도 제목처럼, 제 일신과 가족의 안락함과 물질의 부유함과 어딘지 모호한 세계 평화만을 기도 제목으로 삼으려는 기복신앙은, 맹목적 믿음을 낳고, 맹목적 추종을 낳고, 맹목적 졸음 종교인을 낳고, 중독적 종교 생활인을 낳고, 주변의 이웃들과 사회에 대해선 점차 무관심으로 흐를 소지가 다분한 종교적 태만이 아닌가 하고요. 토머스 머튼의 말처럼, '세례는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삶 속에서 종교생활이 마약처럼 단지 중독의 대상일 뿐이라면, 그것은 생명이신 예수의 복음에 대한 신성 모독은 아닌가 하고요. 성령이 살아서 역사하는 신앙인의 가슴에선, 예배가 맹목적 믿음의 중독이 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가슴에 성령이 살아서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원하는 신앙인의 가슴은, 닫힌 가슴이 아닌 열린 가슴일 테니까요. 머튼의 말처럼, '한 종교인의 영적 성숙도는 개방성에 있습니다.' 이방인과 이웃을 향해 언제나 열린 가슴이셨던 복음의 예수를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이웃들도 먼저 믿은 기독교인처럼, 똑같이 보고 똑같이 느낄 수 있는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뿌리에서 분화된 개체이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이들에겐 너무나 상식이 된 개념이기도 합니다. 교회 건물 밖에 있다고 해서, 노아의 방주 밖에 있다는 의미가 아닐 것입니다. 그 옛날 예수는 예배당만을 찾아다니면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전하시진 않으셨으니까요. 오늘날에도 당분간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고 하여, 삶 속에서 예배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성전은 신앙인의 몸이니까요. 우리의 몸이 성전이니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라고 이미 말씀하고 계시듯이요.


자유이신 하나님을 예배당 건물 안에만 가둬 놓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유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 어디든 가실 수 있는 살아 계신 분일 테니까요. 예전처럼 함께 모여서 간절히 주일 예배를 드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모르는바는 아닙니다. 예전처럼 예배당 안에서 늘 가족처럼 함께 기도하며,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식사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살갑게 지내던 성도들이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들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내 가족과 내 교회의 교인이 소중한 만큼 주위에 이웃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잃어버린 마지막 한 명까지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교회 안에 있든, 교회 밖에 있든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매 순간을 깨어 있으려는 자비와 긍휼의 모습으로, 세상을 비추어 주는 기독교가 저는 언제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간절합니다. 기독교를 손가락질 하는 세상 사람들 조차도, 그들의 마음 한 켠에선, 어느 순간 기독교인들이 따뜻한 가슴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따스한 가슴이란,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하나된 가슴에 불붙는 온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따스한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빛과 소금 같아서, 거리의 전도지와 말이 없이도 가슴으로 바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따스한 사랑일 것입니다. 예수가 하늘로 오르시며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의 가슴마다 공평하게 성령을 선물로 주고 가셨으니까요.


저에겐 매일 찾아오는 하루가 암흑과 혼돈으로 시작됩니다. 그 무거움으로부터 하루를 깨우는 말씀이 있습니다. 현실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뜨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거듭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은, 저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이 암흑과 혼돈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늘 어렵습니다. 여기서부터 하루의 첫걸음, 어쩌면 매 순간의 첫걸음을 내딛으려 거듭 이 말씀을 먹고 아니, 품고 살아가려 하는지도 모릅니다. 육신의 호흡처럼 가슴이 그 한 말씀으로 끊임없이 숨을 쉬기를 원하는지도 모릅니다.


내딛는 한 걸음에 등불 하나를 조심스레 비추는 말씀,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세상의 무수한 가치관과 혼돈의 땅을 살아가는 저에게 예수가 보여준 온전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니 몰랐다면 제 인생은 여전히 암흑과 혼돈 속에 헤매었을 지도 모릅니다. 진리의 영으로인한 그러한 스스로에 대한 물음과 인도하심이 아니라면, 세상은 그야말로 사이비 신천지와 극악무도한 n번방과 극도의 혼돈과 암흑의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는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빛이 됩니다. 예수가 보여준 온전한 마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하나님과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한 말씀을 등불처럼 씨앗처럼 품기를 원합니다. 아마도 육신의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영혼의 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킴으로, 다함께 무사히 견디며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는 중요한 때입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제 스스로에게 거듭 던지는 물음을 되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예배 금단 현상으로 마음에 갈등을 겪고 계시는, 일부 기독교의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나의 현재 신앙의 반응이 단순한 예배 금단 현상인가, 예수 따르기인가.' 그리고 또 거듭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의료진들을 비롯해서 구석구석 애쓰시는 분들이, 세상엔 드러나지 않은 곳에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이라면, 가슴에 살아 있을 성령과 예수가 가시고자 하는 곳으로 마음이 따라가기를. 안락한 예배당만이 아닌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로, 몸이 갈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흘러갈 수 있기를, 예수라면 그리 하시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제가 성경에서 본 예수는 그런 분이시기에.


오늘의 한 걸음에 비추는 등불 하나는 '예수라면 어떻게 하실까?' 묵은 교리와 종교적 전통과 맹목적 믿음과 잠든 중독과 금단 현상들의 낡은 옷을 벗고, 홀가분한 자유의 날개옷을 입으신 예수를 가슴에 품기를 스스로가 원합니다. 종교가 예배 금단 현상을 일으키는 마약이 아닌, 깨어 숨 쉬는 생명과 자비와 긍휼과 사랑의 물길이 되어 세상으로 흐를 때에만, 살아 있는 종교로써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은가 하고요. 그리고 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기가 지나고 더불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러한 교회를 통해서 예수의 복음은, 빛과 소금이 되어서 세상을 향해 비출 수 있을 테니까요. 여기까지 좀 지루한 사색의 산책길을 걸어왔습니다. 여기까지 다 읽으신 분들에게서 인내심의 은총을 봅니다. 노란 유채꽃이 살랑이며 푸른 하늘을 맑게 흔들어 놓고 있는 봄날입니다. 이제막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 아름다운 자연이 들려주는 경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오늘도 매 순간 고요한 예배의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이 비로소 안식을 누리는 침묵의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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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신동숙의 글밭(119)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에게


한 사람의 역할이 한 가지는 아닙니다. 생활하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이 다양한 만큼, 다양한 역할이 때론 다양한 인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선 순한 사람이 가정에선 엄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아이들한테 목소리가 올라갔다가 이내 후회하기도 합니다. 오래전 독립운동을 하기 위에서 집을 나서던 윤봉길 의사의 바짓단을 붙들고서, "아버지 제발 가지 마세요." 매달린 것은 여섯살 난 그의 어린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던 그의 아들에게 윤봉길 의사는 무정한 아버지였겠지요. 아들이 자라고 인생을 살아가면서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을 테지만, 한국의 독립 운동가와 그의 가족과 후손들은 너무나 힘겨운 삶을 살아온 게 아픈 역사적 현실입니다. 


하지만, 역사는 한국의 독립 운동가, 당신들의 뜨거운 가슴과 희생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의 깊은 흐름이 되고, 나무의 뿌리가 되어준 당신들에게 역사는 언제까지나 감사하며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그 마음이 경제적 보상으로 연결되지 못한 아쉬움은 아직도 청산 되지 못한 과거사가 덩그러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체는 아닙니다. 끊지 못한 지배와 피지배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지켜낸 것은 그림자인 경제적 풍요로움과 권력이 아니니까요. 일제강점기 암흑의 터널을 지나며 그들이 지켜낸 것은 한국인의 얼과 한글과 말입니다. 얼과 한글과 말에 깃든 정신과 맑은 영혼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려는 그 시선이 일제강점기 때 지배자의 시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배자 밑에서 제 가족만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같은 조선인이면서도 그 밑에서 작은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충실한 노예가 된 얼 빠진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었으나, 그 무리들은 여전히 물질적 풍요로움과 권력의 충실한 노예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더욱 물질과 권력의 충실한 노예가 되기 위해서,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수단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얼이 빠진 마음을 봅니다.


하지만, 연약한 계층을 착취하면서도 그들의 또 다른 인격은 사회적으로 존경 받는 어른과 아버지가 되기도 합니다. 이미 뱃속에서부터 누려온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그들의 자녀는 고액 과외와 유학의 풍요로운 코스 요리가 아니면 밥숟가락을 들지 않겠다고 떼를 쓸 테니까요. 때론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서라도 이제껏 누려온 레스토랑의 코스 요리를 포기할 수는 없는지요. 영혼의 맑은 숨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요.





과도한 욕심의 권력과 물질적 풍요로움이 낳고 낳은 것은 어쩌면 비인격 또는 죄가 아닌가 하는 지점입니다. 왜 그토록 존경받는 선현들이 가난한 이들을 껴안으며 자발적 가난을 강조했는지 헤아려봅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다가 마지막에 물질의 풍요로움과 권력과 안락에 주저앉았던 대부분의 종교와 영성 지도자들이 추한 모습으로 그 인생의 막을 내린 것은 과거 역사가 거울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미 길들여진 권력과 물질적 풍요로움의 노예가 된 의식에선,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이 자신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인지요? 그 지점에서 저는 늘 아픕니다. 일제 강점기 때 지배자의 시선과 경제 지배자, 권력 지배자의 시선에서, n번방의 연약한 미성년자를 성노예로 삼은 지배자의 시선을 봅니다. 가슴에 바윗돌을 끼얹은 것 같습니다. 가슴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 무게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맥 빠진 손으로라도 틀어진 것들을 바로 추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아들과 딸들이 영혼의 맑은 숨을 쉴 수 있는 건강한 세상을 수채화처럼 시처럼 이 땅에 흙에 그려봅니다.


존엄한 사람을 내 욕망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시선에서 죄가 시작됨을 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수단으로 삼아선 안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이나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선 더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예수가 왜 그토록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를 강조했는지, 그 마음이 빛으로 드러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제가 평소에 지키려고 하는 기본 공식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그의 참 모습입니다.'


예수가 그토록 강조했던 잃어버린 어린 양은 사실은 우리 모두였구나, 라는 깨달음입니다. 나와 또는 가족 중에 누구든 그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교수가 그가 속한 교수의 입장만을 옹호하고, 종교인이 그가 속한 종교인만을 옹호하고, 제 자신이 제가 속한 가족만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집단 이기주의입니다. 자신과 집단 외에 사람은 상관없다는 듯이 타인으로 보고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마음이 바로 죄를 낳는 무지의 시작임을 봅니다.


교수가 그보다 연약한 학생을 챙기고, 종교인이 그보다 무지한 비종교인을 챙기고, 엄마가 이웃집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일 때, 그 사회는 비로소 맑은 숨을 쉴 수 있을 것입니다. 피가 서로 통하는 모습이니까요. 심장에서 나온 혈액은 언제나 발바닥으로 발가락 끝까지 내려갑니다. 손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막힘없이 돌아서 정수리까지 올라갔다가 심장으로 되돌아올 때 그 신체는 건강한 몸이 됩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언제나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갑니다. 흘러의 내리지 못하면 안개가 되어 감싸안기라도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시선, 언제나 시작은 따뜻한 심장, 가슴입니다.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는 시선으로부터 가슴은 따뜻하게 데워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 건강한 인간관계, 건강한 사회, 건강한 인격, 건강한 영혼은 어느 한 구석도 막히거나 소외된 곳이 없는 상태입니다. 어딘가 막히고 쌓인 것을 우리는 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이 없는 모습일 때, 한 사람은 모두가 모두는 한 사람이 되어 피가 순환하는 모습일 때, 건강한 신체가 될 것입니다. 제 개인이 인격의 결을 고르기 위해서 오늘도 스스로에게 거듭 묻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연약한 생명을 대하는 그 마음이 진정한 나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지켜온 선하고 맑은 하늘을 닮은 홍익인간의 마음, 밝은 배달의 마음입니다.


어느 신부님께서 들으신 이야기 내용을 그대로 옮깁니다.


'예전에 35세 된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학교 다닐 때 최고의 성적을 내고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늘 어머니는 이 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적응을 못해 한 해 두 해 힘들어 하던 아들은 결국 마음의 병이 생겨 회사를 그만 두고 정신 병을 치료하며 지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35년 동안 아들은 저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니 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 같아요. 이제는 모든 것 내려 놓고 아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마음을 쓸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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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목련이 어진 마음으로 피었습니다

신동숙의 글밭(117)


하얀 목련이 어진 마음으로 피었습니다


봄을 들이려고 창문을 열어두었습니다. 방바닥이 가루로 버석입니다. 어김없이 찾아온 불청객 황사입니다. 황사가 방 안에까지 찾아오던 날, 마당에 돌담 위 하얀 목련은 최선의 모습으로 환하게 피었습니다. 


하얀 날개를 단 흰새처럼, 백의의 천사 간호사들의 하얀 마스크처럼, 뛰어 다니는 국립검역원들의 흰방역복 날개처럼, 숨 돌릴 틈 없이 코로나 반응 검사를 하는 의료진들의 김 서린 하얀 땀방울처럼, 흰 꽃등처럼 하얗게 피었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목련이 기침에 좋다며, 목련꽃이 피는 내내 꽃잎처럼 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목련꽃 봉오리와 목련 꽃잎을 차로 마시면 목이 환하게 시원해진다고도 합니다. 


코로나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시는 모든 분들에게, 기침에 좋다는 하얀 목련의 순결한 마음으로 응원을 보냅니다. 


하얀 방역복 안에서 온몸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방울처럼 눈물처럼, 하얗게 피어나는 그대들의 하얀 마음들이 하얀 목련꽃입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하얀 마스크 안에서 환히 피어나는 하얀 땀과 애정 어린 눈물과 어진 미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환한 꽃인 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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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분유 먹이기

신동숙의 글밭(116)

강아지 분유 먹이기

 

시골 할아버지 집에 백순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백순이는 진돗개 어미입니다. 다섯을 낳았는데, 셋만 살아남았습니다. 아들은 주말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용돈을 챙겨서 강 건너로 강아지 젖병을 사러간다며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서 쌩 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강아지 분유를 사야한다며 저 혼자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로 뭘 그리 열심히 보는가 싶었더니, 강아지 분유 타는 방법입니다.

 

 

 

 

토요일 아침, 제일 먼저 일어나서는 아빠를 깨웁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얼른 가서 강아지 세 마리를 품에 안고서 분유 젖병을 입에 물려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때론 엄마의 밥 그릇에 있는 밥까지 푹 떠가는 식탐꾸러기 아들에게서 신기하게도 모성애를 봅니다.

 

생명은 그런 건가 봅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한테도 꼭 성씨를 붙이니까요. 김복순, 김탄. 강아지를 제 동생 쯤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선교원을 다닐 때면 늘 해마다 우정상을 받아오던 아들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정이 참 돈독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도 갈 수 없습니다. 학원도 쉽니다. 친구집에 놀러 가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잠까지 설쳐 가며 몇 날 며칠을 손꼽아 기다려온 토요일입니다. 강아지 세마리에게 강아지 젖병으로 강아지 분유를 먹이는 일. 차에 가면서 먹으라며 오렌지를 싸주려고 하니, 시간이 걸려서 안된다고 합니다. 평소에 그 좋아하는 오렌지도 마다하는 모습이 신기하고 우습기도 합니다. 자고 나면 키가 크듯 보이지 않는 마음도 그렇게 자라고 있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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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 휘저어 계란말이 만들기의 고요함

신동숙의 글밭(115)

 

천 번 휘저어 계란말이 만들기의 고요함

 

하루 온종일 두 자녀와 함께 집 안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점점 고요함이 사라져가는 것만 같습니다. 처음에는 틈틈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려고 잠시 방으로 들어가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거실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젼 소리와 아들의 박장대소에 고요함은 이내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새벽까지 핸드폰과 마주보던 딸아이도 느즈막이 일어나서는, 저녁이 가까워 올수록 몸에선 힘이 펄펄 나는가봅니다. 그래도 겨울방학 땐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는 영·수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아들도 학습지 학원과 복싱장을 다니고 있어서 그래도 틈틈이 숨통은 트였으니까요.

 

오늘도 뭔가 모르게 몸에서 기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가만 앉아 있어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집이란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한 곳이 됩니다. 겨울방학을 지내면서 아들은 이제 엄마보다 키가 더 커졌습니다. 요즘은 엄마 대신 텔레비젼과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푹 빠져 즐거운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가볍지가 않습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엄마 품 안에 있을 때가 그립기까지합니다. 책 몇 권 챙겨서 가방에 넣고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하면, 카페든 도서관이든 어디든 따라나서던 아들이었는데, 이젠 몸을 꿈쩍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선이, 서로를 붙들어 메고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인지, 그 얽히고 섥힌 속에서의 행복이란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릅니다.

 

집 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들의 몸은 점점 쇼파와 혼연일체가 되려는 듯 거대한 몸집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몸된 성전이 마치 대형교회처럼 식탐으로 살만 찌고 있는 모습 같습니다. 저렇게 거대하지만 엄연히 거룩한 성전이기에, 엄마로써 매일 하나님과 예수님을 심어주려고 공연히 애를 써보지만, 대형교회를 보듯 하늘을 막고 선 고층 아파트를 보듯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가난한 마음, 빈 마음이라야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요. 하지만, 아들의 마음 속 어딘가엔 저도 엄마도 모르는 빈 곳이 자리하고 있을 테지요. 하나님이야말로 예측불허 자유의 하나님이시니까요. 자녀의 때는 하나님만 아실 테니까요.

 

별달리 하는 일도 없이 삼시 세끼와 간식까지 챙겨 먹으려는 아들이랑 함께 있으니, 덩달아 저도 살만 찌는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아무도 안만나야지 싶은 마음도 듭니다. 밤에는 운동 삼아서 일부러 청소기를 놔두고, 쪼그리고 앉아서 방바닥을 닦아 보기도 했습니다. 청소기를 돌릴 때와는 사뭇 다른 집 안 풍경이 낮게 펼쳐집니다. 제가 아홉살 무렵이던 때 경험이 떠올라 실없는 웃음이 납니다. 그 작은 몸집으로 마루 밑으로 기어 들어갔던 추억입니다. 빛이 들지 않는 마루 밑에서 내다본 바깥 세상은 가로로 길게 환한 빛이었습니다. 어른들이 왔다갔다 신발이 보이긴 했지만, 아무도 제게 나오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사 오던 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레임으로 마루 밑을 기어서 천천히 구석구석 낮게 살피었습니다. 먼지에 휘감기는 머리를 잘못 치켜 들면 삐져 나온 대못 끝에 찔릴 수도 있었지만, 그때 조심성이 길러졌는지도 모릅니다. 먼지 투성이 손바닥에 닿던 마른 쥐똥도 두 손끝 사이에 콩알탄으로 쏘던 쥐똥나무 열매를 보듯 별로 더럽지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혼자서 마루 밑을 탐험하는 일은 어수선한 마당 곧 일상의 일에서 저만치 벗어난 딴 세상의 일이었습니다. 유년기에는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종종 혼자 뒷산 바위산에 올라가서 발아래 대신동 마을을 소꿉마을처럼 내려다보기도 하고, 하늘과 한참을 마주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던 풍경이, 그 모습 그대로 푸르게 펼쳐지곤 합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운전 조심하고, 잘 다녀오세요."라는 인삿말이 떨어지자마자 현관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에, 저는 혼자가 되는 그 홀가분한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때는 혼자서 하는 설겆이도 즐겁기만 합니다. 좋아하는 강의나 말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으니까요. 밥그릇을 씻다 보면 가슴이 달그락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고무장갑을 벗어 놓고 식탁에 앉아서 글을 씁니다. 일상의 삶과 읽기와 배움과 글쓰기와 기도가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고요한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가족들이 떠난 후 집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저에겐 고요한 기도의 시간과 같습니다. 요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점점 그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일상의 바쁜 삶 속에서 여유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계시는 바쁜 생활인들에 대해서 아릿한 마음도 듭니다. 어쩌면 화석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혼자만의 고요함. 마음 속에선 늘 뭔가 모르게 사막처럼 갈증이 나지만 신기루처럼 잡히지도 않고, 하늘처럼 채워지지도 않는 그 허기를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 그래서 저를 비롯한 문명인들이 더욱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뭔가에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영상물, 영화, 여행, 연애, 먹방 음식, 성형, 다이어트, 외모 꾸미기, 집, 땅 등 늘 시선이 밖으로 향하는 헛헛한 마음들. 일상 속에 잠시잠깐 주어지는 고요한 시간이 없다는 것은, 행복이 머무는 마음의 자리가 빈약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고요.

 

 

 

제게 고요함이란 홀로 있는 가운데 주어지는 시간 밖의 시간입니다. 처음엔 대부분 아주 쓸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 쓸쓸함과 무료함과 따분함과 심심함 그 너머에 있는 고요함을 맛보았기에, 제게는 이제 기다려지기까지 하는 시간 밖의 시간입니다. 딸아이와 아들은 그 무료함과 심심함의 텅 빈 마음을 유튜브와 텔레비젼과 먹방 음식으로 채우려는 듯 헛헛해 보이기까지합니다.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사람들에게 심심할 틈도 주지 않으려는 문명의 힘이 거센 파도처럼 느껴집니다. 엄마의 잔소리 쯤은 금새 삼켜버리고 마는 힘센 파도 같습니다. 고요함은 그 쓸쓸함과 심심함의 좁은 길을 홀로 견뎌낸 후 비로소 만나게 되는 고독의 방이니까요. 언제쯤 아이들이 그 문명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그 물결 위에 작은배를 띄우고서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유유히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고요함을 누릴 수 있을런지요.

 

잠을 자야 하는 밤인데 오히려 눈빛이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히 빛나는 딸아이가,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오늘밤에도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고 합니다. '천 번 휘저어서 계란말이 만들기'.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할 게 없으니까, 이런 짓도 한다면서 딸아이는 함박웃음에 신이 났습니다. 못 이기는 척 그러라고 했습니다. 조금은 엉뚱하지만 그렇게라도 단순한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깃들기를 내심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계란 노른자는 따로 덜어 두고 계란 흰자만 천 번을 휘저으면 된다고 합니다. 쪼그리고 앉아서 마룻바닥을 닦다가 넌지시 물었습니다. 몇 번째냐고, 그랬더니 숫자를 살리지 않고 그냥 젓고 있었다고 합니다. 눈은 텔레비젼에 가 있고 손만 휘젓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설겆이를 하면서 주일예배 동영상을 틀어 놓던, 제 몸과 정신이 따로 분리된 모습을, 딸아이를 통해서 비추어 보는 것 같아서 마룻바닥을 닦다 말고 웃음이 났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홀로 있는 고요한 이 시간을 사랑합니다. 비로소 제 마음이 평온한 안식을 누리는 고요한 시간이니까요. 기도가 빠질 수 없습니다. 말이 된 기도가 아닌 그저 어릴적 보았던 커다란 하늘의 침묵 속에 잠기는 침묵의 기도입니다. 방안에 불을 끄고, 책상 위에 스탠드불을 켜고, 작은 촛불을 켭니다. 아무 말없이 묵묵히 고요히 앉아 있는 이 평온한 시간 속에서 가슴으로 예수를 떠올립니다. 한 점 별빛처럼 해처럼.

 

가슴이 따스해져 오면 비로소 제 영혼이 쉼과 안식을 누립니다. 그 시선으로 바깥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제 자녀에게 참으로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건물 덩어리보다 이 고요함입니다. 외부로부터 길들여진 소유가 아닌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천국의 마음자리가 됩니다. 영성가이자 수도승인 토머스 머튼도 '관상의 기도'에서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고요히 머무는 고독 속 침묵의 기도는 이미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지상에서 만나는 천국이 됩니다. 제게 있어서 고요한 고독은 평온한 사랑방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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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모두가 되기까지

신동숙의 글밭(112)

 

한 사람이 모두가 되기까지

이 사회에서 제 자신의 가치를 화폐만으로 환산하려는 일이, 이제 저에겐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일이 됩니다. 스스로를 겸손함으로 붙들어 메두려함도 아니요. 교만함으로 떠벌리듯 자랑하려함도 아닙니다. 비록 걸친 옷은 촌스럽지만, 가치 의식 만큼은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니까요. 시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거듭 제 자신을 비추어봅니다. 자연과 지성의 거울들과 역사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고 또 비추어 하늘을 보듯 늘 바라보려 합니다.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화폐만으로 환산하지 않으며,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시는 분들을 많이도 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광고를 하지 않기에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 깊은 물처럼, 구름 뒤에 가려진 늘 커다랗게 푸른 하늘처럼, 산을 지키는 소나무처럼 그들의 가치는 한결같습니다. 사람 아래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보편적인 공평함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폐를 사람보다 우위에 두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일어나기 전에 청탁을 받았던 원고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토론토에 살고 계시는 재미 교포 한국인 박선주 할머니의 청탁입니다. 제목은 <젬마의 눈물>, 함경남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던, 고2 여학생이 6·25전쟁을 겪으며, 1·4후퇴 때 부모님과 어린 다섯 동생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을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부산의 영주동 산비탈 마을 판자촌에 거처를 구하며, 대청동 메리놀 병원에서 받았던, 평생을 잊지 않으시던 도움의 손길들. 잠시 동생들이 살던 서울을 다녀가면서도, 주인공 할머니에게 부산은 '내 그리운 고향 부산'이 됩니다. 이미 70년이 지난 옛이야기. 할머니의 이름은 젬마 한영실. 그리고 박 안셀모 신부님을 통해서 저에게 원고 교정을 의뢰하신 분은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입니다. 그 시절을 함께 겪으신 할머니들의 연세가 무거운 세월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흐른, 젬마 한영실 할머니의 소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작은 소설이나 수필집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 젬마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 옛날 주인공 젬마 할머니의 소원을 듣게 된, 박선주 할머니는 젬마 할머니에겐 성당에서 만난 천사였습니다. 성당 재단 앞에 남몰래 꽃꽂이를 하시던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는 전문 상담가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녹취된 구술 상담 내용과 젬마 한영실 할머니로부터 간간히 넋두리처럼 전해 들으신 이야기를, 지금까지 간직해오고 계셨다가 신부님께 보내오신 사연입니다.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의 가슴 속에 미루어둔 숙제처럼 지녀오셨을까요? 원고를 보내오신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는 본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책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상황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서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저에게로까지 흘러온 사연입니다.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한글 프로그램 파일이었지만, 처음에 신부님이 받았던 원고는 손글씨였다고 합니다. 저에게 부탁을 하신 내용은, 먼저 신부님이 손글씨를 워드 작업으로 옮기긴 했으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으니, 읽을 수만 있도록 교정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구어체를 그대로 옮긴 글이다 보니, 문장의 완성도가 엉성하긴 했지만, 원고를 읽는 내내 저는 눈물이 나서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 가면서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슬을 꿰듯이 흩어 놓은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앞뒤 흐름에 맞추어 이어서 붙이고, 희미한 말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살리고,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구어체와 숨결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원고에 들어간 모든 단어와 문장들을 98%까지 원문 그대로 살리는데 원고 교정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에 투영이 되는 일입니다. 주인공 젬마 할머니 한 개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제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되고, 한 시대의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 그 아픈 뿌리 위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대한민국이라는 고마운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민주주의의 꽃 속에 핀 또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어서 자라나는 어린 세대가 있으니까요. 맨몸으로 시대의 겨울을 견뎌오신 겨울나무 같은,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들이, 이제는 젊은 가슴들 안으로 이어져 유유히 흐르는 속 깊은 강물이기를 그려봅니다.

 

어디까지나 저라는 한 사람이 동떨어진 객체가 아닌, 역사와 동시대와 얽히고 섥힌 한 생명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발병한 데는 단 한 명의 사람이 그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세계로 퍼져 나간 기간은 불과 2개월 남짓이라는 시간 밖엔 안걸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멀고도 또 가까운가. 보이지 않는 만남과 만남으로 이어져 있다는, 깊은 자각에 내 곁에 가까운 이웃과 먼 타국인들까지도 마음으로는 더욱 가까운 이웃처럼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있어서, 하늘에는 이념도 국경도 경계도 없는 것입니다.

 

1차 교정 원고를 보내드렸더니, 신부님으로부터 한결 편하게 읽혀진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잠시 한국의 코로나가 거세어지면서, 토론토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제 보내오신 문자에는, 분도출판사에서 <젬마의 눈물>을 출간하시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제가 도움이 된 부분은 1차 교정이 전부라서 미흡하기만 합니다. 원고료를 챙겨 주시려는 문자를 받고는 아직 답장을 드리기 전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으로써 제가 놓인, 저를 둘러싼 세상을 곰곰이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혼자만의 사색입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 미래의 불확심함보다는 지금 내가 속한 현실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젊은 세대로부터 유행처럼 번져서 많이들 알고 계신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바라보는 소확행은 조금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 소확행의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일입니다. 소확행은 당장 내 눈 앞에 이익을 쫓는다거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라는 좁은 의미가 아닙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처럼 나 한 사람이 전세계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지구 역사상 모든 사상과 가치와 의미는 한 사람이 씨앗이 되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선 한 마음, 한 생각 먹기의 의미를 무겁게 둡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도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요.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한 생각이 30만 명의 신천지 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천국은 겨자씨만한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예수의 비유가 피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한국인 확진자 처음 발병 지역이 대구입니다. 이후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구는 타지역에 비해서 확진자 수가 급속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확진자들의 격리 치료 시설이 의료기관 수용 시설의 한계치를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다들 우려하던 상황에서 최초로 자체 시설을 개방한 곳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입니다. 천주교로부터 불 붙은 나눔과 섬김이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대기업과 대형교회들도 그들의 수련관을 개방하겠다며, 나눔과 섬김의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보내주시겠다는 원고료가 작으나마 천주교회를 통해서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제게도 소확행이 될 것 같습니다. 마땅히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는 답장을 보내려고 합니다. <젬마의 눈물> 할머니의 원고를 읽으며 흘렸던 눈물 만큼 제 자신이 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라는 불가항력 속에서 고2 여학생이던, 젬마 할머니가 고스란히 몸으로 견뎌오신 그 아픔과 눈물이, 세월 속에 잊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강물처럼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오롯이 한 시대를 대변하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환상보다는 매 순간 속에서 영원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요즘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현 정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깊이 아프기에 가장 크게 기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두고 중국인에 대해 문을 닫지 않고, 한결같이 북한에 대해 열린 마음. 다른 한 편에선 비난하는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비난이란 세상의 가치를 물질과 화폐만으로 환산하려는 마음들이 낳은 환상은 아닌지요. 한 개인의 청정함이 한 국가의 투명함이, 생명을 생명으로 공평하게 대하려는 첫걸음임을 봅니다.

 

적어도 현직 대통령의 마음에서 제가 보는 초점은,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까지 살피려는 마음으로 읽혀집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누구든 그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중, 중국에 가족을 둔 분들, 북한의 실향민, 확진자가 된 분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에게까지 햇살을 비추려는 현 정부의 정책입니다. 언제든 그 마지막 한 명이 또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자각.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자국에 대해서 믿음과 신뢰의 마음이 든다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는 경제와 화폐만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가 그 첫걸음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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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를 꿈꾸는 딸에게 딴지를 거는 나쁜 엄마

신동숙의 글밭(110)

 

검사를 꿈꾸는 딸에게 딴지를 거는 나쁜 엄마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딸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체육관 졸업식장에선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준비하신 졸업생들을 위한 고별 인사가 참석한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준 사연입니다. 특이하게도 졸업생의 이름을 한 명씩 호명하면, 한 명씩 강단에 오릅니다.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졸업장을 받고,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는 의식입니다. 그때 커다란 스크린에 띄운 배경 화면은 한 학생의 꿈입니다. 화면 왼편으로 학생의 인물 사진과 이름 그리고 꿈이 커다랗게 적혀 있는 모습에 눈시울이 붉어진 학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졸업식장을 가득 메운 졸업생들과 배웅을 나온 5학년 후배들과 모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 앞에서 선서라도 하듯, 미래의 꿈을 다짐이라도 하듯, 그렇게 졸업생들의 꿈이 날개를 펼치듯 펼쳐졌습니다. 마지막 반에 한 명의 졸업생에게까지 교장선생님의 고별 인사는 시냇물처럼 길게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교장선생님은 졸업생 한 명 한 명의 손을 다잡아 주시며, 중학생이라는 더 넓은 물줄기로 나아가는 어린 꿈들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졸업생들의 꿈은 다양한 듯했지만, 비교적 인기 있는 직업군들이 눈에 띄기도 했습니다. 유행에 따라서 컴퓨터 프로게이머, 아이돌 가수, 디자이너 등. 제 딸아이의 꿈은 흔치 않은 '검사'였습니다. 그 꿈은 이미 그전부터 딸아이의 입에서 심심하면 나오던 그런 꿈이었습니다. 딸아이의 입에서 '검사'라는 단어가 튀어 나올 때마다, 엄마는 가슴이 뜨끔뜨끔해지곤 했습니다. 솔찍한 엄마의 심정으론 딸아이가 '검사'가 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뜯어 말리고 싶었습니다. 상대해야 하는 사회적 관계가 주로 범법자와 범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가 얼마나 머리 무겁고 마음을 슬어내려야 하는 일들이 많을까 싶은 마음에, 겁없이 '검사, 검사' 멋진 노래를 부르듯 되뇌이는 딸아이의 모습이 내심 못마땅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직업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무게가 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가슴을 눌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딸아이를 6학년이 될 때까지 그 흔한 영·수 학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문제집을 풀게 하지만, 비교적 자율에 맡기다 보니 허술한 곳이 많았습니다. 잠시 잠깐씩 시켜본 학습지도 그저 그랬습니다. 그 대신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접고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게 한 것과 합기도가 유일한 사교육이었습니다. 6학년 첫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서,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하는 말이, 자기가 학원을 다 알아봐뒀으니, 엄마는 가서 등록만 해주면 된다면서, 더는 느린 엄마를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엄마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 가다시피 딸아이가 앞장 서서 찾은 걸음이, 처음으로 학원에 입성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마침 피아노 레슨이 있던 시각이라 레슨 선생님은 영문도 모른채 바람을 맞으셔야 했고, 엄마는 죄송하다는 인사를 거듭 드려야했습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서 3~4년은 늦게 학원에 들어간 딸아이는, 그동안 학습에 대한 굶주림이 컸던지 무섭도록 흡수를 했습니다. 이후로 중학교 2학년, 전과목 올 A 등급을 받았다는 점수도, 겨울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야 엄마는 성적표를 보고서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받은 표창장에 이어서,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서도 반대표로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엄마는 너무나 게으른 엄마입니다. 중학교 영·수 학원을 알아보는 일도, 딸아이는 친구들과 셋이서 여러 친구들에게 물어본 후, 적합한 곳을 선택한 후 엄마에겐 결재만 부탁했으니까요. 그렇게 딸아이에게 '검사'라는 꿈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부터 3년이 넘는 제법 긴 기간 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엄마로써 딸아이를 길들이는 방법이 딱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럴거면, 학원 가지마! 공부하지마!" 이 말이 유일한 벌이자 브레이크가 됩니다. 어디까지나 인성의 터전을 다지기 위함입니다.

 

평점 90점이 넘지 않을 거면 학원에 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해도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딸아이는 학원을 다니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으니까요. 학원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부가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학원보다 더욱 좋아하는 곳은 학교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학교에 가기 싫단 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심지어는 아침잠을 깨워본 적도 거의 없답니다. 딸아이는 엄마보다 항상 먼저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왔다갔다 하곤 합니다. 단 중학생이 되고 밤10시까지 다니는 학원을 쉬게 된 토요일에 "엄마, 토요일이 왜 좋은 줄 알겠어. 쉴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또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재미난 듯 웃습니다.

 

 

 

 

초등학교에선 일년에 두 차례, 학교 전체 공개 상담 기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교실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앉게 됩니다. 늘 담임선생님들로부터 고맙다며 좋은 인사를 들어오곤 했습니다. 5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부모인 저를 보시자마자 허리를 90도로 굽히시면서 "따님을 잘 키워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시는 바람에, 몸둘바를 몰라하는 저에게 자리에 앉으시라며, 살뜰한 인사를 해오시기도 하셨습니다. "원이는 남자친구들하고도 잘 놀고, 여자친구들하고도 잘 놀고, 모듬 수업에선 늘 리더를 잘 합니다." 딸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남다 보니, 학원으로 바쁜 친구들을 대신해서 과제들을 꼼꼼이 챙기곤 했으니까요. 딸아이는 그렇게 늘 사회적 평판을 후하게 받곤 했습니다. 미술상, 글짓기상, 시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과학의 날 행사에선 2인 1조 학교 대표로 나가서 장려상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사교육 경험이 없이요.) 그동안 받은 상장을 벽지로 붙이면 ㄱ자로 다 붙일 정도입니다. 자꾸만 자녀 자랑으로 흘러가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맨 마지막에 있습니다.

 

5학년엔 친구들과 다함께 놀러간 친구집에서 친구들이 딸아이에게 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책 읽기 금지령' 그러면서 딸아이는 한바탕 웃습니다. 딸아이는 스마트폰을 얻기 위해서 아빠가 제안한 2년 동안의 약속을 다 이행하기도 했습니다. 잠언 암송과 성경 읽기입니다. 4학년이던 11월부터 5학년이 되던 2월까지 성경을 4독을 한 것입니다. 제대로 읽었는지 물어보면 읽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하기야 신학을 전공한 박사님들도 성경을 수차례 읽으셨다고 해도, 그 이해의 깊이는 주시는 만큼의 은혜 외에는, 더 깨칠 수 없는 책이 성경이기에 그쯤에서 읽기 이해의 확인을 그치기로 했습니다. 성경 읽는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언제 읽었느냐고 물으니, 주일날 어른들 대예배 시간에 아빠 옆에 앉아서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짜투리 시간을 합해서 4개월 동안 성경 4독을 하게 된 것입니다. 딸아이의 정직성은 저도 신뢰를 하는 입장이라서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만하면 충분하니 그만 읽어도 된다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교만해지지 않을까 싶어서입니다. 그 당시에 교회 주보에는 전교인의 성경 읽은 횟수를 공개적으로 기록을 했었는데, 혹시나 어른들과 자신을 비교해서 자칫 어린 나이에 교만해질 것이 염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딸아이가 꿈이 검사라고 얘기할 때마다, 저는 결코 그 꿈을 추켜 세우지 않습니다. 검사라는 직업이 어떤 일인지 저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아무리 헤아린대도 결코 가볍지 않은 직업의 무게감과 사회적 책임감과 인생 전체를 둔 행복만족감에서 딱히 뭐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딸아이가 검사라는 꿈 얘기를 해올 때면, 엄마는 언제나 딴지를 거는 입장입니다. 간혹 말투에서 또래들 사이의 거친 은어가 튀어 나온다든지, 별로 친하지 않다는 이유로 또래 친구 누군가를 좋지 않게 얘기를 한다든지, 인사를 제때 안한다든지, 딴지를 거는 이유는 그야말로 사소하지만, 인성의 기본 밑바탕이 되는 씨앗 같은 점들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학업 점수엔 별관심도 안두면서, 그런 사소한 인성 부분에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인성의 꼬투리를 잡을만한 낌새가 보일 때마다, 걸고 넘어지는 엄마가 거는 딴지의 한 마디는, "그럴거면 공부하지마! 공부는 인성이 기본이 된 사람이 하는 거다. 그렇지 않고 만약 자기 욕심에 공부를 잘해서, 중요한 공직자나 법조인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면, 엄마는 자기 자식을 괴물로 키우는 거다. 엄마는 내 자식이 무식하면 무식했지, 괴물이 되어서 남들 괴롭히는 꼴은 못 본다!"

 

다행인지 딸아이는 청개구리 기질을 타고난 듯합니다. 유년기에 유일한 벌은 "책 읽지마!"였습니다. 놀이터에서 한창 재미나게 놀다가 모처럼 앉아서 책을 1시간 넘게 보고 있으면, "딸아 제발, 책 좀 그만 읽고 집에 가자아." 그러면 딸아이는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 속으로 뛰어 들어갈 기세가 됩니다. 잠자리에선 "이것만 읽고 자야해에." 그러면 딸아이는 눈에 불을 켭니다. 딸아이의 놀이터였던,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구해온 새책을 두고서 "엄마가 잠시 갔다올 동안에 읽으면 안돼에." 그렇게 부드럽게 말해 놓으면, 딸아이는 여지없이 책 앞에서 안달을 합니다. 그 방법이 딸아이에겐 제법 효과가 있었기에, 동생에게도 그대로 적용을 시켜 보았지만, 동생은 언제나 엄마의 말을 곧이 곧대로 순종을 하는 순둥이였습니다. 그걸 뒤늦게 깨닫고서는 아차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엄마는 딸아이가 중 2학년이 될 때까지도 검사라는 꿈에 대해 끊임없이 딴지를 걸곤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잠언 한 절부터 시작된 암송이 점점 그 암송력이 늘어나서, 일년이 지나니 단숨에 20절을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늦은 학원 입성에도 불구하고 영어단어 외우기에서 언제나 일등으로 마쳐서 일년도 안되어 상급반에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딸아이는 그렇게 승부욕과 두뇌 회전이 빨라서 늘 엄마를 긴장하게 만드는 자녀였습니다.

 

딸아이에게 가장 많이 들려주는 법조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효봉스님입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으로써 법복을 입은 수재, 한국인 최초의 판사입니다. 그는 자신이 내린 판결 중에서 독립 운동을 하다가 붙잡혀 온 청년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게 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형 판결의 자리에서 그 자신을 쳐다보던, 그 청년의 마지막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내가 무엇이관대 한 청년에게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가!" 그 후로 그는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판사복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걸인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다가 승려가 되었습니다. 상좌를 받지 않기로 유명한 노승은 딱 두 명의 제자를 받습니다. 시인이 된 고 은과 법정스님입니다. 그 후로 고 은 시인은 파계승이 되어서 세상으로부터 최고의 찬사까지 받았지만, 알 수 없는 일로 더이상 매스컴에서 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던 시인이었기에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제 거의 딸아이에 대해서 간략하게 다 적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칭찬과 상장과 사랑을 참 많이도  받아온 것 같습니다. 게으른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학교와 선생님들에 대한 햇살 같은 신뢰 뿐이었다고 할 만큼 뒷바라지라곤 없었으니까요. 사실 제 하루를 사색으로 채우기에도 저는 늘 부족합니다. 그리고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괜한 자식 자랑이 되었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재주가 인성을 넘어선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알 수는 없지만, 만약에 딸아이가 상위 1프로의 수재라고 해도 그 재주가 인성을 넘어선 안된다는 점입니다. 만약에 검사라는 사회적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앉은 자녀에게 일수록, 그 재주나 욕심이 지나쳐 양심과 정의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선, 극히 경계하고 또 경계하려는 부모의 입장은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부터 3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자녀의 검사라는 꿈 앞에서 엄마로써 늘 당당하게 딴지를 걸 수 있는 이유입니다. 엄마 말고는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만약에 있다면, 그건 자녀 내면에 있는 양심일 겁니다. 제가 초점을 맞추는 곳은 겉으로 드러난 자녀의 재주, 뛰어남이 우선이 아닙니다. 물론 잘하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으로 들어가 따져 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깨어서 살피는 곳은 자녀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양심입니다.

 

성철스님에게 제자가 되려고 찾아온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제자가 되려면 한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제자가 들은 단 한 마디의 말씀은, "자기를 속이지 마라". 성경을 읽은 저에게 양심은 곧 성령이 됩니다. 진리의 영입니다. 예수가 하늘로 가시며 공평하게 주신 선물입니다.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이방인에게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신 양심이 있어서, 어느 누구도 자기의 내면에 빛나는 양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딸아이도 스마트폰과 단단히 유착이 되고부터는, 이제는 가끔 검사라는 꿈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아이돌 가수가 부럽다고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게으른 엄마지만, 늘 지켜보는 것은 공부가 첫째가 아닙니다. 잔재주도 부리면 좋지만 언제나 그 다음입니다. 첫번째 조건은 딸아이가 자신을 속이지 않고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직업에 책임윤리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양심과 책임감과 정의를 우선에 두어야 하는 법조인의 자리에서, 만약에 제 자녀가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한다면, 그것은 도둑질이 되고, 엄연한 범법자와 법죄자가 되는 길입니다. 당연히 엄마로써 가슴을 치면서 회초리를 들고서 종아리를 쳐서라도 법복을 벗겨야 하는 경우가 됩니다.

 

세상을 속이는 일도 죄가 되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 공직자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야말로 그 인생은 추하게 추락한 인생이 되니까요. 자자손손 그 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요? 만약에 내 자식이 그렇다면 당장에, "너! 검사하지마! 당장 옷 벗어!"라고 말해야지요. 유아기에 조막손에서 책을 뺏듯이, 중2의 2학기 기말고사 전날 밤에 '그럴거면, 공부하지마!'라는 말로 딸자식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놓았듯이, 그렇게 법복을 벗길 일입니다. 그것이 내 사랑하는 자녀의 영혼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뭐라고, 땅이 뭐라고, 세상을 속이는 것보다 더 나쁜 죄, 양심과 정의를 지켜야할 공직이자 법조인의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속이느냐면서요. 결혼을 한 후에는 딸이라면 시어른,  아들의 경우에는 장인과 장모도 다같은 부모가 될 테지요.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마태복음 10장 26~33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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