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아이들을 만나다 주일 오후에 아이들이 놀러왔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너 먼저 들어가’ 하며 서로 뒤로 뺏지만, 모두들 들어왔다. 수원종로교회 청년이 보내준 들깨차를 타서 마시곤 둘러 앉아 게임을 했다. ‘밍맹몽’, 단순하면서도 틀리기 쉬운 게임이다. 조금씩 어색한 분위기가 지워진다. 그냥은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노래도 게임에 틀리자 자연스레 부른다. 게임을 마치고 ‘화전놀이’라는 동요를 가르쳐 주었다. ‘달님처럼 둥그런 진달래 꽃전은 송화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다’ 노래 중 제일 어려운 그 부분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타반주에 맞춰 악보도 없는 노래를 잘 불렀다. ‘개밥’이란 단편소설도 들려줬다. 현진건인.. 2021. 8. 14. 마음으로 통하는 한 언어 오후에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탈하신 분이셨다. 자신의 교육철학,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 은사와 제자라는 말, 교육자로서 갖는 보람 등을 말씀하셨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교장 선생님의 웃음은 유난히 맑고 많으셨다. 나이가 인간의 순박함을 지워간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쉬운 생각이지 싶다. 전교생이 80명이 채 안 되는 이 곳 단강초등학교. 이곳의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문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 년에 한번쯤이라도 전교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작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 되겠지 싶다. 서툴더라도 건강한 글들이 실리리라. 어쩌면 농촌에 대한 가장 꾸임 없.. 2021. 8. 12. 갓 태어난 송아지 신기하게도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다닌다. 오늘 지 집사님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영양부족인지 일어나질 못했다. 모두 일터에 나간 한낮에 송아지를 낳은 모양이었다. 저녁 어둘 녘에야 일터에서 돌아와서 외양간 오물을 치우면서야 송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사에 가보니 어미 소가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데도 그때까지 송아지는 털이 마르지 않았다. 송아지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다 맘 속으로 대신한다. 신앙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너무 꾸민 몸짓 같았다. 다음날 원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사에 다시 들리니 송아지가 일어섰다. 일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송아지를 돌본 집사님의 정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겨우 일어섰을 뿐 엄마 젖을 찾을 줄도 빨 줄도 몰라 우유를 타서 줘야 한다. 추.. 2021. 8. 11. 빼앗긴 들 김영옥 성도님네 잎담배 심는 곳에 다녀왔다.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 밭이었다. 요즘은 매일같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담배를 심고 있다. 그때마다 일터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일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수고한다는 빈말에 가까운 인사보다는 구체적으로 일을 돕는 일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맡은 일의 차이를 인정하여 인사만이라도 거르지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다. 내가 할일을 사람들이 깨달으며 인정한 후엔 오히려 함께 일함이 쉬워지겠지. 밭에 가니 동네 거의 모든 분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담배는 참 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한 분씩 만나 뵈며 수고하신다 인사를 하며 몇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반가이 맞아 주는 그분들이 고맙다.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일하는 밭 바로 옆 강가.. 2021. 8. 10. 니코스카잔차키스를 읽으며 어제 오늘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오 아름다운 크레타의 영혼’을 읽는다. 그의 작품들에서 인상적인 말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낱권으로 읽을 때의 신선함이 되살아난다. 거침없는 사고와 행동, 그러면서도 더 없이 맑고 투명한 영혼.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꾸밈없이 일궈내는 살아있는 언어들. 자유혼을 가져야만 얽매임 없이 내 사는 땅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그가 들려주는 여러 얘기들은 가르친다. 분명 그는 내게 커다란 산이다. 한 마디 말로는 규정할 수 없는, 우직하고 묵묵한 산. 니코스카잔차키스를 통해 확인한 건 초라하게 무뎌진 내 언어와 영혼이었다. 1987년 2021. 8. 9. 갈급한 마음 팀스피릿 훈련 중이던 군인 한 명이 예배에 참석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는 훈련 중 이곳 섬뜰에서 1박을 하게 되자 혹 오늘 예배가 없느냐 물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지난번 부임 심방 때 빠진 최일용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기로 한 날이어서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말씀이 그리웠다고 한다. 문득 군에 입대하여 첫 예배를 드리며 눈을 꽤나 흘렸던 옛 군생활이 생각났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수아 1장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종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던 카투사 이인철 병장, 그는 말씀을 듣고만 간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남기고 갔다. 말씀을 갈급해 하는 마음을 남겼다. 넌 언제 어디서 그걸 잃어버렸느냐고, 그가 묻지도 않은 물음이 안경을 쓴 그의 얼굴과 함께 그가 돌아간 뒤에도 내내 .. 2021. 8. 8. 작두질과 도끼질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누워 계셨고, 머리맡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두 분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진 산중에서 산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촛농이 쌓이고, 시커멓게 그을린 등잔불,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두 분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란 지금처럼 어둑하고 침침한 것이리라. 날짜와 요일을 몰라 예배드리러 내려오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땐,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깊숙한 주름마다에 패인 두 분 삶의 고독이란 얼마만한 것일지 모르겠다. 마당에 나와 소죽거리 만드는 작두질을 도와 드렸다. ‘써걱, 써걱’ 할아버지가 들이미는 짚단이 내리 밟는 작두에 잘려 나간다. 문득 스치는 생각들이 있다. 한 독립군이 일본군에 의해 작두에 목이 잘려 죽던 얼마 전 신문의 사진이 떠올랐다... 2021. 8. 7. 소에게 말을 걸다 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1987년 2021. 8. 6.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나무하러 가는 사람 왜 불러요?” 저만치 산으로 나무하러 오르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오신 신집사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환한 얼굴, 마음이 그런 게 아니다.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2월이 다가오자 집사님은 고민이 된다. 2월 1일부터는 용암 쪽으로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는 곳에 ‘취직’을 한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쉬고 점심은 각자 지참. 그리고 월급은 18만원이다. 오가는 차비 빼고 나면 뭐 그리 크게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취직을 하는 게 집에서 품 파는 것보다야 열 번 편한데, 문제는 땔감이다. 연탄도 기름보일러도 없기 때문에 천생 나무를 해서 때야 .. 2021. 8. 5.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