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하나를 돌려 깎아서
네 식구가 좋게 나누느라

누나 접시에 세 쪽
동생 접시에 다섯 쪽

아빠 접시에 세 쪽
엄마는 입에 한 쪽

저녁 준비를 하느라
잠시 고개를 돌렸다 돌아 보니

아빠 접시에 두 쪽
누나 접시에 두 쪽

이상하다
누가 먹었지 했더니

저는 안 먹었어요
아들이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시치미를 뚝 땐 얼굴빛으로

증거 있어요?
CCTV 있어요?

엄마가 가만히 보면서
CCTV는 니 가슴에 있잖아

가슴에 손을 얹으면 
CCTV가 켜지니까

지금 바로
작동시켜봐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보고 있고
자기가 자기를 알고 있는데

그랬더니 
순순히

제가 먹었어요
바른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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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석굴암에서 바라보는 새벽의 일출



놀이터에서 
흙구슬을 빚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흙구슬이 부서져 울상이 되던 날

물기가 너무 없어도 아니되고
너무 많아도 아니되는 흙반죽을 떠올리며

새벽마다
이슬을 빚으시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면
이슬은 터져서 볼 수 없었겠지요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이 땅을 빚으시는지

물로 이 땅을 쓰다듬으시듯
바람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듯

오늘도 그렇게
새벽 이슬을 빚으시는 손길을 해처럼 떠올리며

저도 따라서 
제게 주신 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애쓰지 아니하기로 
한 마음을 먹으며 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밤새 어두웠을 제 마음을 향하여 둥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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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담그면




찬물에 담그면 
한결 순해집니다.

말린 찻잎이든 
줄기 끝에서 막 딴 식물의 열매든

찬물에 담그면 
그 색과 맛이 순하게 우러납니다.

그러면서도 
식물이 지닌 본래의 성품인 그 향은 더욱 살아나는
자연의 뜻을 헤아려 보는 저녁답입니다.

언젠가부터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하여
애써 물을 끓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찬물에 담근 찻잎은 
시간 맞춰 건질 필요 없이

찬물에 담근 후 
그저 시간을 잊고서 

얼마든지 기다림과 느림의 여유를 누릴 수가 있으니 
마음도 따라서 물처럼 유유자적 흐르고

찬물에 담근 녹찻잎을 그대로 대여섯 시간을 둔 후에도
그 맛이 별로 쓰지 않고 향이 좋아 거듭 찾게 되는 맛입니다.

선조 대대로 우리가 살아오고 있는 
이 땅의 한국은 산이 많고 물이 좋아 

한반도 이 땅에선
예로부터 산골이든 마을이든 물이 흔했기에 

물이라 하면 말 그대로 
바로 떠서 마실 수 있는 물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물이란 
우리들 삶의 둘레에 아니 삶의 중심에
가장 흔한 우리들의 생명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20년 사이에 
무분별한 경제 개발로 인해 땅은 파헤쳐졌고, 

무구한 세월 동안 
우리의 산을 지켜오던 소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지금도 어딘가에선 파헤쳐지고 있습니다. 

돌림병으로 인해 산채로 땅에 묻힌 동물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오늘의 사색은 여기서 그만 두고 싶어집니다.

불과 십여 년 전에만 해도 
마을 어귀마다 긴 줄을 서서 물을 받던 약수터의 익숙한 행렬들

저마다 집에서 준비해 간 물통들마다 넘치도록 
지하수와 약숫물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오던 어르신들의 듬직한 발걸음들이 이제는 먼 나라의 풍경처럼 그립습니다.

그때 그 물로 저녁 밥상에 오를 국물과 보리차를 끓여 먹던 이야기들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약수터의 물을 더이상 마실 수가 없게 되던 날로부터
지금껏 저희 집에서도 정수기를 사용해 온 지 
십여 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렇게 정수기를 통과한 물이란
생명수가 되던 자연의 물로부터
미네랄과 자연의 식물성을 다 빼버린
마치 몸에서 혼백이 빠져나간 그저 H2O일 뿐입니다. 

기업들마다 판매하는 생수에선 
제품마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올라와
목넘김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몸은 
늘 물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도 저는 정수기에서 내린 찬물 그대로 
찻잎을 담그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잘 말려서 덖은 후 차가 된 우엉차
손수 딴 국화꽃을 잘 말려서 찌고 덖은 국화차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우리집 둘레에 흔한
모든 식물의 잎과 뿌리와 줄기와 열매와 꽃들이 모두 차가 될 수 있는 오늘날입니다.

차가 되는 제다과정이란
식물이 지닌 독성은 낮추고 약성은 그대로 살려서
색향미를 고루 갖춘 하나의 몸체 곧 사람으로 치자면 진선미를 고루 갖춘 하나의 인격체로 나아가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그러면서 목넘김이 물처럼 순한 것이 
좋은 차와 좋은 커피와 좋은 음료의 조건입니다.

자연의 식물을 
말리거나 찌거나 덖기도 하고
때론 식물 그대로 찬물에 담그다 보면 

어떤 식물의 잎은 우러나는 속도가 빠르지만
말린 오미자와 로즈힙처럼 속도가 느린 열매도 더러 있습니다.

제각각 식물이 지닌 성품이 저마다 다른 이치입니다.

그렇지만 어떤 식물이든 
일단 찬물에 담근 후에는 

무엇이든 일찍 변화되기를 바라며 보채고 채촉하던 
그 성급한 마음인 불의 기운들을 누그러뜨리며
하나 둘 욕심을 지워가는 비움의 시간으로 
들뜨던 숨을 내려놓으며 몸은 평화의 땅으로
어린 아이로 돌아가는 자유의 몸짓으로
내게 오는 하루가 저절로 흐르는

그저 자연과 물과 마음이 함께 흐르는 시간으로
제 몸도 순하게 흐르는 시간을 홀로 누리면 그만입니다.

저에게 있어 차를 마신다는 건
문명의 이기가 빼앗아간 자연을 
도로 물에 담는다는 생명 부활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게 다시금 자연이 된 물을 
홀짝홀짝 그저 몸속으로 흘려보내다 보면

제 몸은 흐르는 강물이 되기도 하고
한순간 제 가슴은 샘물이 솟아나는 샘터가 되기도 합니다.

자연을 찬물에 담근 순한 물이 
늘 제 곁에서 반려차 즉 길벗이 되어주니
오늘도 순하게 하루가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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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으면





땅에서 길을 잃으면
저 위를 바라본다

동방박사들이 밤하늘의 별자리를 보면서
이 땅에 내려오신 어린 왕을 찾아가던 사막의 밤길처럼

하늘 장막에 써 놓으신 그 뜻을 읽으려
밤낮 없이 바라본다

그러나 저 하늘이 가리키는 곳은
언제나 내 안으로 펼쳐진 이 커다란 하늘이었다

숨줄과 잇닿아 있는
나의 이 마음이다

마음대로 행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다는 그 마음

날 여기까지 이끌어준
모든 새로운 길들을 비춘 마음속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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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聞香)

 



하얀 박꽃이 더디 피고
하얀 차꽃이 피는 시월을 맞이하며

하얀 구름은 더 희게
푸른 하늘은 더 푸르게

무르익어가는 이 가을 하늘이
먼 듯 가까운 얼굴빛으로 다가오는 날

들음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하늘문을 그리며

문향(聞香)
차꽃의 향기를 들으며 생각합니다

올해도 감사히
모든 꽃들이 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음은

꽃들을 둘러싼 
없는 듯 있는 하늘이 

늘 쉼없는 푸른 숨으로
자신의 향기를 지움으로 가능한 일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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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명태찜



한가위 명절 마지막 날
늦잠 자던 고1 딸아이를 살살 깨워서

수운 최제우님의 유허비가 있다 하는
울산 원유곡 여시바윗골로 오르기로 한 날

번개처럼 서로의 점심 때를 맞추어 짬을 내주시고
밥도 사주신다는 고래 박사님과 정김영숙 언니 내외

끓는 뜨거운 돌솥밥과 붉은 명태찜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간직했던 소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언니와의 첫만남에서 서로가 짠 것도 아닌데 둘 다
윤동주와 김용택 시인의 시집을 똑같이 챙겨온 이야기

그것으로 열여덟 살 차이가 나는 우리는 단번에
첫만남에서부터 바로 자매가 된 이야기

동경대전에 나오는 최수운님의 한시를 풀이해서 해설서를 적으신 고래 박사님의 노트 이야기

청수 한 그릇 가운데 떠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예배를 드린다는 천도교의 예배와

우주의 맑은 기운을 담은 차 한 잔 올리는 다례법과 이어지는 한국의 고대 차례법 이야기

예수님과 제자들의 두레밥상 이야기
석가모니와 제자들의 대화가 경전이 된 이야기

김치와 물김치와 멸치와 김과 부추전 영양 반찬처럼  
둥근 이야기들을 푸짐하게 풀며 나누다 보니

숟가락과 젖가락은 쉬질 않았건만
밥그릇에 밥은 천천히 줄고

돌솥에 끓던 누룽지 숭늉은 한 김 식어 푹 퍼져 
먹기 좋은 순한 물밥이 되어 날 어린 시절로 데려온다

문득 명태찜 둥근 접시를 보니까
명태살들이 우리 모녀 앞으로 다 밀려와 있다

분명히 나는 바닷가 저쪽으로 간간히 밀어보내었는데
파도에 밀려 도로 해변가로 떠밀려온 물고기들처럼 

둥글고 커다란 명태찜 접시가 
울산의 푸른 앞바다처럼 출렁이고 있었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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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삼

 

 



방문이 활짝 열리며
아들이 바람처럼 들어와

누웠는 엄마 먹으라며 
바람처럼 주고 간 종재기

푸른 포도 세 알
누가 시키지도 않았을 텐데

누가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
피 속에 흐르는 석 삼의 수

더도 덜도 말고
석 삼의 숨

하나 둘 셋
하늘 땅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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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정 툇마루



경주 구미산 용담정 툇마루에 앉으며
먼지처럼 떠돌던 한 점 숨을 모신다

청청 구월의 짙은 산빛으로 
초가을 저녁으로 넘어가는 구름으로

숲이 우거진 좁다란 골짝 샘물 소리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수운 최제우님의 숨결로

용담정에 깃든 
이 푸른 마음들을 헤아리다가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달을 보며 빌던 정성과 만난다

시천주(侍天主) 
가슴에 하느님을 모시는 마음이란

몸종이던 두 명의 여인을
한 사람은 큰며느리 삼으시고

또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으신 
하늘처럼 공평한 마음을 헤아리다가

용담정 산골짜기도 운수 같은 손님이 싫지 않은지
무료한 마음이 적적히 스며들어 자리를 뜨기 싫은데

흙마당에 홀로 선 백일홍 한 그루
아직 저 혼자서 붉은 빛을 띄어도

마땅히 채울 것 없는 
마음 그릇에 모실 만한 것이란

초가을 저녁 
없는 하늘 한 줌 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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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잎

 

 


푸른 하늘
길 없는 길을

하얀 뭉게 구름
흘러가는 가을날

푸른 무화과잎
소리 없는 소리로

아무리 손을 뻗어도
아직은 뿌리가 깊어

손인사 하듯 
제자리에서 흔들릴 뿐

눈물처럼 떨군
가을잎 한 장

가을 바람이 좋아
얼싸 안으며 돌아

발길에 부대끼다
흙먼지로 돌아가도

이 땅이 좋아
푸른 하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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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톨




내려주신 말 한 톨 
어디에 두어야 하나

글을 아는 이는
종이에 적어두고

글을 모르는 이는 
가슴에 심더라

종이에 적어둔 말은
어디로 뿌리를 내려야 하나

가슴에 심어둔 말은 
잊지 않으려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다가 
마음밭으로 뿌리가 깊어져

제 육신의 몸이 곧 말씀이 되어 
마음과 더불어 자라나고

단지 말을 종이 모판에 행과 열을 맞추어
가지런히 글로 적어두었다면

다시금 마음밭에다가
모내기를 해야 할 일이다

말이란 모름지기 
마음을 양식으로 먹고 자라나는 생명체이기에

마음밭에 뿌리를 내린 말의 씨앗에서 
연두빛 새순이 움터

좁은길 진실의 꽃대를 지나는 동안
머리를 하늘에 두고서 발은 땅으로 깊어져

꽃과 나무들처럼
너른 마음밭에 저 홀로 서서

꿈처럼 품어 
꽃처럼 피울 날을 기다리는 말 한 톨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마음밭으로 모내기를 하기도 전에
종이 모판에서 메말라버린 글씨들이 얼마나 많을까?

윤동주 시인이 우러러본 밤하늘의 별처럼 많을까?
다석이 헤아린 일평생 우리 몸을 드나드는 숨처럼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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