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이라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2)


같은 말이라도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와 무게는 달라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와 사람을 향한 의로운 행동에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이다.
그의 말이기에 위의 말은 더 큰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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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말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1)


말과 말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빛으로 바꾼 한 말씀도 있지만,
빛을 혼돈과 공허와 어둠으로 바꾼 한 마디 말은 얼마나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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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0)


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하루 종일 일하며 흘린 땀 때문이었을까, 인우재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 자다가 말고 목이 말라 일어났다. 잠을 자다가 물을 마시는 일은 좀체 드문 일이었다. 물을 마시며 보니 창밖으로 달빛이 훤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 대신 툇마루에 앉았다.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한 새벽이다.


보름이 지난 것인지 보름을 향해 가는 것인지 하늘엔 둥근 달이 무심하게 떠 있다. 분명 대지를 감싸는 이 빛은 달일 터, 그런데도 달은 딴청을 부리듯 은은할 뿐이다. 어찌 이 빛을 쏟아놓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눈부시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이런 빛의 근원이 있구나 싶다. 그런 달을 연모하는 것인지 별 하나가 달에 가깝다.


누가 먼저 불러 누가 대답을 하는 것인지 소쩍새 울음소리가 이 산 저 산 이어지고, 봄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량이 작아진 개구리 울음소리가 잔잔하다. 오케스트라 심벌즈 울리듯, 짐승인지 새인지 구분하기 힘든 기괴한 소리도 간간이 이어진다. 



어둠 속 달빛에 취하고 잔잔한 소리에 취해 있을 때 느닷없이 나타난 파란 빛의 춤, 반딧불이었다. 깜박깜박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어둠 속을 난다. 여기서 빛이었는데 잠깐 사이 어둠이 되고, 어둠이다 싶은데 잠깐 사이 빛으로 나타나고, 그야말로 반딧불은 광속으로 날고 있었다. 혼자만의 춤이 아니었다. 어둠은 하나의 무대, 망초 무성한 앞마당에서 달빛에서 벗어나 먹물처럼 컴컴한 숲속에서 함께 춤추는 군무(群舞)였다. 은빛 물결로 쏟아지는 달빛을 따르는지, 해맑은 소쩍새 노래를 따르는지 한없이 자유로운 빛의 춤이 어둠을 수놓았다. 


가만 일어나 마당에 섰다. 마침 다가오는 반딧불이 있어 손을 내민다.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손 안으로 드는 반딧불, 손을 축복하듯 서너 번 손을 밝히더니 다시 날아오른다. 구분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마주한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다. 


다시 돌아와 걸터앉는 마루, 나도 자연의 일부였다. 대단하거나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저 달빛을 함께 받는 어둠 속의 일부일 뿐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선 앞산이 의젓하게 앉아서 나를 마주한다. 말없는 것이 의젓함이라고 오랜 침묵 끝에 말한다. 뿌리에서 나온 웅숭깊은 소리다. 내가 소란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새벽 산이 일러준다. 그래, 어설픈 말을 내려놓자. 침묵으로 들자.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마땅한 걸음이다. 


왜 그랬을까, 가만히 펴보는 손 안에 빛과 온기가 담겼다. 은은한 달빛과 잠시 머물다 간 반딧불이 전해준 선물이다. 맞다, 모든 순간은, 모든 존재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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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무관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9)


사랑과 무관심





한 사람이 약국을 찾아와 말했다.


“내 아들에게 먹일 비타민을 사고 싶은데요.”
“비타민 A, B, C 중에서 어떤 것을 드릴까요?”


약사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무 거라도 상관없어요. 제 아이는 아직 어려 글을 읽을 줄 모르거든요.”


사랑과 무관심은 그렇게 다르다. 비타민을 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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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울음소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8)


사라진 울음소리


또 하나의 땅 끝, 해남을 다녀왔다. 먼 길이지만 권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길이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권사님이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기도를 하며,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한 터였다. 심방 이야기를 들은 원로 장로님 내외분이 동행을 했고, 권사님 한 분이 운전을 자청했다.


먼 길 끝에서 만나는 만남은 언제라도 반갑고 고맙다. 권사님이 새로 정착한 집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흔히 말하는 ‘이력’(履歷)의 ‘履’가 신발, 한 사람이 신발을 신고 지내온 길이라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권사님이 걸어온 이력을 듣는 시간이었다. 큰 아들로 태어나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들어가야 했으니 단순한 이력은 아닌 셈이었다. 


일정을 모두 비워두고 우리를 기다린 권사님은 1박2일의 일정이 너무 짧다고 아쉬워하며 해남 곳곳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덕분에 일몰과 일출이 아름다운 곳도 들렀고, 울돌목도 들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막아낸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언덕 위 전망대에 올라서니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급류가 흐르는 바다 위로 진도대교가 놓여 있었다. 


울돌목이란 이름이 인상적이다. 물살이 빠르고 소리가 요란하여 바닷목이 우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한문 지명인 ‘명량’(鳴梁)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다. ‘울 명’(鳴)에 ‘들보 량’(梁)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권사님은 울돌목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왜선을 울돌목으로 유인한 뒤 물에 잠가둔 굵은 쇠사슬을 양쪽의 소들이 끌게 하여 왜선들을 사슬에 걸려 침몰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 당시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었느냐며, 이순신 장군이야말로 ‘하늘이 내신 분’이라고 감탄스러워했다.  




들려준 이야기 중에는 아쉬운 대목도 있었다. 저 멀리 하늘 아래 가장 먼 산을 가리키며 그곳이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인데, 어릴 적엔 비가 오거나 날이 흐리면 그곳까지 소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울돌목에서 나는 소 울음소리가 그렇게 멀리까지도 들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리가 놓인 뒤로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사라져 더는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 없이 찾은 사람에게 울돌목이란 아름다운 경치가 펼쳐진 바다일 뿐이지만, 역사와 내력을 아는 이들에게는 감회가 깊은 곳이 된다. 어릴 적 들었던 소 울음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권사님과 같은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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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라는 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7)


증오라는 힘



때로는 증오도 힘이 된다.
좌절이나 체념보다는 훨씬 큰, 살아갈 힘이 된다.
하지만 증오는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한다.
대개는 길을 잃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감정에 갇혀 평생의 시간을 보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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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인장의 인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6)

 

선인장의 인사

 

목양실 책상 한 구석에는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다. 예전에 권사님 한 분과 화원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때 권사님이 사준 화분이다. 권사님은 가게에 둘 양란을 하나 사면서 굳이 내게도 같은 화분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

 

 


 

그런 권사님께 양란 대신 사달라고 한 것이 양란 옆에 있던 선인장이었다. 이내 꽃이 지고 마는 난보다는 가시투성이지만 오래 가는 선인장에 더 마음이 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이 마음에 더 의미를 부여할 것 같았다. 바라볼 때마다 인고를 배울 수 있다면 싶기도 했다. 값 차이 때문이었던지 한동안 양란을 권하던 권사님도 내 생각을 받아주었다.  

 

어느 날 보니 선인장이 새로운 줄기를 뻗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선인장이 “안녕!” 하면서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반가워서 손을 들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식물과 나누는 교감, 잠깐 보기 좋은 꽃보다도 오래 두고 바라볼 선인장을 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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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5)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 사람이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어색하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못마땅한, 무표정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했던 일을 안다. 최루탄을 쏘아 사람들을 흩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무릎에 짓눌려 숨졌다. 죽은 이는 흑인 시민이었고, 죽인 이는 백인 경찰이었다. 


분노하여 일어선 군중들의 분노를 공감하고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그였다. 갈등과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분노한 군중을 폭도로 여기며 맞서고 있다. 성난 군중 위로 헬기를 띄우고, 적군을 대하듯이 총을 든 군인들을 동원했다. 그런 핑계 감을 주는 약탈행위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분노한 시민을 적으로 대하며 갈등과 상처 위에 기름을 끼얹는 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는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예배당을 찾아 성경책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모습을 통해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입장과 행동의 정당성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성경책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 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하지만 한 손으로 치켜 든 사진 속 성경은 한없이 가벼워 보인다. 소품으로 전락한다. 


뒤에 적인 이름을 보니 그가 찾은 교회는 성 요한 교회였다. 자신이 경험한 예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누구보다도 사랑을 강조한 제자다. 하필이면 그가 찾은 곳이 성 요한 교회였을까 싶은데, 생각해 보면 누구라도 그런 법이다. 


사랑을 강조한 사도 이름을 가진 예배당 앞에 성경책을 들고 서 있지만, 그가 누구인지가 드러난다.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있음으로써,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든, 그가 누구인지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어느 누가 예외일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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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4)


소확행


말에도 생명력이 있어 낯선 말이 어느새 익숙한 말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있다. ‘소확행’이란 말이 그렇다.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말이라고 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확행이라고 했다. 




문방구에 들러 잉크와 공책을 샀다. 만년필에 넣을 파란색 잉크와 설교문을 적기에 적절한 노트를 사가지고 나올 때 문득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그랬다.
‘이런 게 소확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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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 놓은 항아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3)


엎어 놓은 항아리



항아리 파는 가게를 찾은 사람이 항아리를 보며 불평을 한다. 


“아가리가 없네.”


이번엔 항아리 밑을 들춰보더니 또 불평을 한다


“밑도 빠졌군.”


항아리들은 비 맞지 말라고 엎어 놓은 상태였다.

불평하는 이는 한결같이 불평한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여 자기 생각을 뒤집을 줄 모른다. 엎어 놓은 항아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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