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하고 못 사귄



단강으로 들어오는 직행버스 안에서의 일입니다. 용암에서 한 남자가 탔는데, 못 보던 분이었습니다.


운전기사 바로 뒤에 앉은 그 남자는 버스기사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얘기 중에 이어진 것이 교회 욕이었고 신자 욕이었습니다.


자리가 빈 버스인데다가 남자의 목소리가 여간했던 탓에 일부러 귀 기울이지 않아도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욕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내용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기사 아저씨가 욕을 해대는 남자의 말을 받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풉, 웃음이 났습니다.“ 어째 아저씨는 하나님하고 그리 못 사귀셨어요?”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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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 오르는 꿈



친구와 함께 백두산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지만 가슴은 얼마나 뛰고 흥분되던지.
오르다말고 잠에서 깨어서도(아쉬워라!) 설레는 가슴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내 기똥찬 꿈을 꿨으니 꿈을 사라 했다. 거참 신나는 일이라고 친구도 덩달아 좋아한다.

언제쯤일까, 먼 길 빙 돌아서가 아니라 내 나라 내 땅을 지나 백두에, 天地에 이를 날은. 설레는 오늘 꿈이, 꿈만으로도 설레고 고마운 오늘 꿈이 정말로 가능한 그날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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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건



잘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을 
오늘은 보고 싶습니다.


내 어디쯤인지
어떤 모습인지 
어디로 가는지
거울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일 없이 
턱 없이 밤이 깊은 건 
그 때문입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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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잘 나았심니더



“기도해 주신 덕분에 아기 잘 나았심니더.”


김남철 씨의 전화였습니다. 지난 봄 마을 보건진료소 소장님과 결혼한 김남철 씨가 아기 아빠가 되고 나서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저를 꼭 닮았심니더.”


전화였지만 목소리만 듣고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입이 귀에 닿은 웃음이 눈에 선했습니다.


낮선 마을로 들어와 마을사람들과 따뜻한 이웃되어 살아가는,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김남철 씨가 이젠 아기 아빠가 되었습니다.


아기를 보면 가만있지 못하는, 아기 유난히 좋아하는 평소 그의 성품으로 보아 가뜩이나 정겨운 신혼살림에 더욱 더 웃음꽃 피어날 것이, 전화 속 전해온 웃음만큼이나 눈에 선했습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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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뒤의 햇살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따스함으로 머물도록
한 올 한 올
품안에서 머물도록
잠깐
잠깐만이라도 그대 고요하라.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비늘 같은 햇살
햇살은 거리에 널리고 
바쁜 걸음에 밟히니 
표정 잃은 등마다 낯선 슬픔 
제 집처럼 찾아드니

그대 등 뒤로 내리는 햇살이 
새근새근
고른 숨결로 머물도록
잠깐
잠깐이라도 그대 침묵하라.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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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 기다려온 씨앗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박민하 성도님 네 심방을 하며 위의 성경을 읽었다. 무거운 짐, 걱정일랑 주께 맡기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말씀 중 ‘멍에’도 그랬고, ‘두 마리 소가 나란히 밭을 간다’는 농사법에 대한 얘기도 그랬다.


함께 모인 교우들이 그 말을 쉽게 이해했다. 박민하 성도님은 ‘두 마리 소’를 ‘겨릿소’로 받으셨다.

‘소나 나귀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이사야 1:3)는 속회공과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알아보나요?” 


여쭸더니 


“그럼요, 주인보다 먼저 알아보고 좋아하는데요.”


허석분 할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늘 바라 땅 일구며, 씨 뿌리고 거두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가슴에 말씀일랑 씨앗처럼 떨어진다.


투박하고 푹푹한 땅의 가슴, 말씀은 발아 기다려온 씨앗처럼 그렇게 떨어진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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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 가는 길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들 마음마다엔 끝 모를 사막 펼쳐 있음을 봅니다. 


선인장 가시 자라는 따가움과 별빛 쏟는 어둠, 


고향 지키듯 적적한 침묵 홀로 지키는 저마다의 사막이 저마다에게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막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요?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걸 묻고 싶습니다.


바람 자는 언덕에 말(言)을 묻곤 
사막으로 가는 길,
그걸 묻고 싶습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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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치다



쌀이며 담배며 콩이며, 그동안 지은 농작물에 대한 수매가 있었다. 늘 그래왔던 대로 원하던 양도 아니었고 기대했던 가격에도 미치지 못했다. 


잠깐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농촌에선 유일하게 만져볼 수 있는 목돈의 기회이기도 하다.
쌀 미(米)자는 원래 八과 八을 합쳐 놓은 글자, 88세를 米壽라 한다. 쌀 한 톨 먹으려면 농부의 손 여든여덟 번이 가야 한다. 


농사 중 가장 많이 손 가는 게 잎담배농사라 하니, 담배는 여든여덟 번 손 가는 쌀보다도 더 손이 가는 셈이다. 재처럼 작은 씨를 모판에 심을 때부터, 몇 번이고 같은 빛깔, 같은 상태의 잎을 추리는 조리에 이르기까지 여간한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수매하는 일을 ‘바친다’고 한다. 잎담배 수매에 응하는 걸 ‘담배 바친다’고 한다.
‘바친다’라는 말이 아프다. 값을 매기는 쪽이 받는 쪽이니 아무래도 듣기 좋은 말로 얘기하는 것이 값 받는데 유리할 거라는 기대심리였을까, 관(官)을 어렵게만 생각해온 오래된 시간 탓일까. 그저 몇몇이 모여 의견을 모으면 그대로 값이 정해지는 숱한 공산품들을 두고, 필요 없는 걸 불쌍해서 사주는 듯, 선심 쓰듯 정해준 가격 앞에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을 바쳤다. 

애써 거둔 먹거리를 두고 팔았다 않고 바친다 하는 농민의 뜻을 언제나 올바로 헤아려 바치는 곡물을 소중하게 받을지.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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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당신의 바라봄 속에 펼쳐지는 세계를 
난 사랑합니다.


끝 간 데 없는 당신. 
당신 안에 있다 해도 그게 구속 아님은 
내 아직 당신의 끝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소식 언제인가 싶게
얼음 같은 고독
흰 눈 같은 푸근함 
아울러 지닌 

돌아가야 할 이 
있는 곳
그게 고향이라면
당신은 내 고향입니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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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릿한 기도



“우린 부족한 게 많습니다. 성미도 즉고, 헌금도 즉고, 사람도 즉고, 성도도 즉고, 믿음도 즉습니다. 불쌍히 보시고 채워 주옵소서.”


지 집사님은 늘 그렇게 기도하신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저희들을”이라든지 “지금은 처음 시작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라든지 사람마다의 기도엔 습관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지집사님의 경우엔 위와 같다.


말과 마음이 하나라면 언제나 집사님은 빈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넉넉한 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집사님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지나는 아릿함을 난 아직도 어쩌지 못한다.

-<얘기마을>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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