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4)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영어로 옮기면 ’understand’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뜻하는 ‘understand’가 ‘under’라는 말과 ‘stand’라는 말이 합해진 것이라 하니 말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북미원주민들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지나가던 중 한 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죽신발 한 짝이 없더란다. 할 수 없이 낡은 고무신 한 짝을 얻어 신고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가 말을 타고 지나가자 동네에는 말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작은 아무래도 고무신을 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낡은 고무신을 신고 말을 탄 사람을 보았으니 얼마나 낯설고 우스꽝스러웠을까. 하지만 반대편에서 본 사람은 그 말을 인정하지 못한다. 분명히 가죽신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본 것이 확실하면 확실할수록 다툼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라도 한쪽 면만을 본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갖는 어쩔 수 없는 한계다. 내가 본 것이 아무리 확실하다 하여도 내가 본 것이 한쪽 면뿐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지사지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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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3)

 

다 살아지데요

 

아직은 젊은 사람. 도시를 피해, 도시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피해 시골로 들어가 둥지를 틀 듯 땀으로 집을 지었다. 집이 주인을 닮은 건지, 주인이 집을 닮은 건지, 동네 언덕배기 저수지 옆 그럴듯한 집이 들어섰다. 창문 밖으로 벼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으리라 싶었다.


나무를 깎고, 글을 쓰고, 종이로 작품을 만들고, 닭을 키우고, 아이들 등하교 시키고, 소박한 삶을 살던 그에게서 어느 날 전해진 소식은 참으로 허망한 소식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닭을 잡고 있는 동안 집이 홀라당 불탔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 건지질 못했다고 했다. 살림도구며, 작품이며,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허무 위에 주저앉을 때, 그의 가슴은 얼마나 숯검정이었을까. 문득 삶 자체가 지워지는 고통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불쑥 찾아야지 싶었던 것은 마음뿐, 무심한 전화를 한 것조차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언제 그런 일 있었느냐는 듯이 씩씩하게 전화를 받는 그에게, 애써 씩씩한 척 하지 말라며 농 삼아 인사를 나눈 것은 조금이라도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싶어서였다.


그는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불 탄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집은 불탔지만 진심으로 아픔을 나누는 이웃들, 그동안 헛살지 않았다는 마음이 그를 일으키고 있지 싶었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어서 위로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통화를 끝내기 전, 그가 한 마디를 했다.


“밥그릇 하나에 숟가락 하나만 있어도, 다 살아지데요.”


아픈 수업료를 내야 배울 수 있는 흔치 않은 깨달음이다 싶었다. 통화를 마치고 비오는 창문 밖을 내다보는데, 그의 말이 다시 울려왔다.


“다 사라져도, 다 살아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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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예전에 독서캠프를 통해 만난 분 중에 나태주 시인이 있습니다. ‘풀꽃’이란 시로 널리 알려진 시인이지요. 시골초등학교 교장으로 은퇴하신 분답게 중절모가 잘 어울리는 시골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는 그분을 처음 뵙는데, 그 분은 나를 알고 있었습니다. 한 신문에 쓰고 있는 칼럼을 눈여겨 읽어오고 있다 했는데, 금방 친숙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시 중에 최근에 알게 된 시가 있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중병을 앓고 있을 때, 곁에서 간호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썼다는 시였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아내를 위한 간절한 마음이 뭉뚝뭉뚝 묻어나는데,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남편의 글에 화답하여 쓴 아내의 글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남편이 드린 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 시인 아내의 절창이었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부부가 나누는 지극한 사랑이 따뜻한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라는 기도 앞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만, 이만한 기도를 물리치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토록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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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0)

 

부르지 말아야 할 이름

 

5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총격테러 사건은 하필이면 크라이스트처치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의 이슬람 사원에서 일어났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자부했던 뉴질랜드가 큰 슬픔에 빠진 가운데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리더십이 조명을 받고 있다. 대형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뉴질랜드가 크게 동요하지 않은 이유는 아던 총리의 기민한 대응 덕분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아던 총리가 검은 히잡을 쓴 채 진심 어린 표정으로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모습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포용과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던 총리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회 연설을 하면서 “더 이상 크라이스트처치 총격범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총격범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의 악명이 높아지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악명을 떨치길 원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에게 이름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테러리스트이고 범죄자이며 극단주의자다. 하지만 내가 말할 땐 이름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 간청한다. 희생자들을 데려간 사람의 이름보다는 우리가 잃은 사람들 이름을 말해 달라.”

 

희생자들을 데려간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느라 정작 희생자들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일이 우리에게는 있다.  맞다, 우리에게는 부르지 말아야 할 이름이 있다. 부르지 말아야 할 이름 대신, 기억해야 할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한희철 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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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2)

 

방으로 들어온 500년을 산 느티나무

 

원주 귀래면에 사시는 윤형로 교수님이 서울로 올라오며 전화를 했다. 시간이 되면 잠깐 들르시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손자가 태어났는데, 동생을 봄으로 형이 된 큰 손자가 마음이 허전할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교회로 찾아오신 교수님은 멋진 선물을 전해 주셨다. 알맞은 크기의 탁자로 마주앉아 차를 마시기에 좋은 용도였다. 나무에 붉은 빛이 감돌아 차를 마실 때 분위기가 그윽하겠다 싶었다. 전해주신 탁자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웠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태 전이었다. 오랜만에 인우재를 찾아 언덕길을 오르며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느티나무 굵은 가지 하나가 땅에 떨어져 서너 조각으로 잘린 채 나무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단오에는 그네가 달려 동네 아낙네들에게 큰 기쁨을 전해주었다던, 동네 어른들 이야기로는 5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다. 가장 단순한 모습으로 섰다 싶었는데도 세월의 무게인 양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굵은 가지 하나를 떨군 것이었다. 떨어진 가지가 길을 막고 있으니 누군가가 가지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씩 잘라 길옆으로 치워 놓은 것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무게가 나무에게도 있구나 하며 지나치려다 문득 나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견뎌온 세월이 얼만데 싶었다. 이병철 씨에게 물었더니 누가 떨어진 가지를 챙기겠냐며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했다. 병철 씨가 끌고 온 트랙터의 도움을 받아 나무 몇 토막을 인우재 처마 아래로 옮겼다.

 

어느 날 처마 아래 있는 나무를 보다가 윤 교수님 생각이 났던 것은 교수님이 공방을 꾸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직을 한 뒤 집 한 켠에 공방을 만들고 이런저런 가구들과 소품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취미 이상의 작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버려진 나무들을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보관하고 있던 느티나무의 용도가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가을, 교수님을 제재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병철 씨와 함께 느티나무를 트럭에 싣고 나갔다. 제재소 주인은 이리저리 나무를 살펴보더니 속이 많이 비어있어 생각보다는 나무판이 많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노라고 했다. 실제로 나무를 켜보니 쓸모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 짐작했던 대로 속이 많이 비어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무속이 비고 속에 까만색이 남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었다. 병철 씨가 어렸을 적 그 느티나무는 동네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고 한다. 나무가 하도 커서 나무 밑동 부분은 아이 서너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병철 씨의 이실직고에 의하면 언젠가 한 번은 나무속에서 불장난을 하다가 나무를 태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 때 낸 불이 나무를 태워 나무속이 더 비고 까만 기운이 남게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어릴 적 불을 낸 장본인이 불을 낸 나무를 싣고 제재소를 찾아 나무를 켜게 될 줄이야.

 

여섯 장인가 얻은 나무판 중의 하나로 교수님은 탁자를 만들 생각을 했고, 나무판에 숭숭 뚫린 구멍들을 기술과 수고로 메워 멋진 탁자를 만든 것이었다. 결국 교수님이 전한 탁자는 단강에서 오백년 이상을 살아온 느티나무로 만든 탁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탁자가 전혀 낯설지 않고 오히려 친숙하게 여겨졌다. 인우재 아래 그 늠름하고 우람한 느티나무가 내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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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1)

 

드문드문

 

담장을 따라 노랗게 피어난 영춘화가
희끗희끗
거짓처럼 날리는 눈발을 맞는다.
문득 시간이 멈춰 선다.

 

 


눈과 꽃의 눈맞춤
꽃과 눈의 입맞춤
둘은 놀랐을까
서로 반가웠을까
얼굴 위 눈송이 하나 녹을 만큼
잠깐의 삶을 살아가며
드문드문
드문 만남
드문 은총 누렸으면.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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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사는 인생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덤’이라는 말이다.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여인에게는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었다. 혈루증은 부정하다 여겨져서 성전을 찾는 일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불가능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도와 법이라는 벽을 만들어 놓았다. 병을 고치지 못하는 한 여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여인은 병이 낫는다. 예수의 옷자락을 몰래 붙잡았더니 정말로 병이 나은 것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거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 예수는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길이었고, 여인으로서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병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설마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예수가 알았으리라는 생각할 수 없었을 뿐더러, 혹시 알았다 해도 주변을 둘러보며 한 번 환하게 웃으며 갈 길을 재촉했다면 참 좋을 일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걸음을 멈춰 서서 옷에 손을 댄 이를 찾으신다. 자신의 능력이 몸에서 빠져나간 것을 몸으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흔들리는’ 것이다. 사랑을 전한 이가 휘청, 자신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께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예수가 여인에게 말한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옷자락을 붙잡았을 때 ‘병’이 나았다.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을 때 여인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었다. 그 순간 여인은 깨닫지 않았을까? 그동안 자신이 가져왔던 가장 간절한 갈망, 병이 낫는 것이 주님 앞에서는 ‘덤’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바라고 내게 필요한 것이 유일한 것인 줄 알았는데 주님 앞에서는 그것조차도 ‘덤’이었다는 것을.

 

 

 

남의 일로만 알았던 ‘환갑’을 맞는다.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라는, 하도 많이 들어 닳고 닳았지 싶은 말을 나도 이쯤에서 하게 되었다.


단강에 살 때 한 노인이 그랬다. 사람은 환갑이 지나면 ‘덤’으로 사는 거라고.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으로 보자면 그 말은 고쳐져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올라선 환갑이라는 고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라고.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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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7)

 

사람이 되세요

 

그 때는 몰랐다.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분의 말이 이만큼 세월이 지나도록 남아 있으리라고는. 1978년 찬냇골이라 불리는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했을 때, 우리에게 윤리학을 가르쳤던 분이 윤성범 교수님이었다. 당시 학장직도 함께 맡고 계셨다. 가냘픈 몸매며 나직한 목소리며, 천생 선비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니신 분이었다. 강의의 내용도 마찬가지여서 유교(儒敎)를 기독교와 접목시키는 일에 천착해 계셨다.

 


시험을 볼 때면 칠판에 문제 서너 개를 적은 뒤 시험지 나눠주고 당신은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가곤 하셨다. 뒷면까지 쓰면 안 볼 거라는 한 마디를 남기시고선. 그런 일 자체가 우리에겐 대단한 윤리 공부였다. 몇 번인가 강의실에서 말씀하신 것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듯이, 교회도 사회를 위해 십일조를 바쳐야 해요.”


“경험에 비춰보면 150명 정도가 교회로선 제일 적합한 규모 같아요. 그러니 큰 교회 이루려 하지 말고, 좋은 교회를 이루세요.”


분명 잔잔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윤리학 교수님다운 이야기였다. 뜨거운 사명감을 가진 신학생들에겐 뭔가 시시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 들었던 말들이 지금껏 마음에 남아 있다. 금방 지워질 것 같았던 말들이 말이다. 그렇게 남은 말 중엔 다음과 같은 말도 있다.


좋은 목사가 되기 전 먼저 좋은 신자가 되세요. 좋은 신자가 되기 전 먼저 좋은 사람이 되세요.”

 

 그럴까, 갈수록 그 말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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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며칠 전 ‘석고대죄’와 ‘후안무치’에 관한 글을 썼다. 웹진 <꽃자리>를 꾸려가는 한종호 목사님이 어디서 찾아냈는지, 석고대죄에 관련된 사진 하나를 함께 실었다. 누군가 공책 위에 한문공부를 하듯 席藁待罪라 쓰고는 그 뜻을 손 글씨로 적은 걸 찍은 사진이었다.

 

 


 

席藁待罪라는 네 글자 위에 뜻을 푸는 순서를 숫자로 정해놓았는데, 2-1-4-3 순이었다. 藁 - 席 - 罪 - 待 순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점선을 따라 이어 놓은 뜻풀이가 재미있었다. 


‘짚으로 짠 거적을 - 깔고 앉아 - 죄 주기를 – 기다리다.’

 

사진 속 내용을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던 것은 첫 목회지였던 단강마을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단강 사람들의 말버릇 중의 하나가 ‘벌 받는다’를 ‘죄 받는다’고 하는 것이었다. 죄를 지으면 죄에 대한 대가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 그런데도 마을 사람들은 그냥 “그러다간 죄 받지” 식으로 말하곤 했다.

 

어쩌면 그것은 ‘죄’ 와 ‘벌’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 죄를 지으면 으레 벌이 따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죄와 벌의 경계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생각하는 마음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런데 사진 속 席藁待罪도 ‘罪’를 ‘죄 주기를’이라 풀고 있으니, 오래 전 단강 마을 사람들이 떠오를 법도 했다.

맞다, 席藁待罪의 ‘罪’는 ‘죄 주기를’이라 이해를 하는 것이 적절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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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5)

 

혀가 창이다

 

사순절을 앞두고 묵상집 원고를 썼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주관하고 한국YWCA연합회, 한국 YMCA전국연맹, 기독교방송이 연합하여 만드는 묵상집이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하는 고난주간 묵상집 원고는 이번에 세 번째로 쓰는 원고였다. 처음엔 공동 저자로 참여했고, 다음번엔 혼자서, 이번에도 혼자서 쓰게 되었다.


같은 기관에서 만드는 묵상집에 같은 주제로 거듭 참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의 한계가 있고, 표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원고 청탁을 다시 받으며 같은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그러던 중 딸 소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림 이야기를 했다. 글에 그림을 접목하면 어떨까 싶었던 것인데, 딸에게 의견을 물었던 것은 소리가 독일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하더니 며칠 뒤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아르마 크리스티’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아르마 크리스티’(Arma Cristi)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할 때 썼던 고난의 도구들, 즉 형구(刑具)들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소리가 보내준 그림 중에는 장 부시코(Jean Boucicaut, 1366-1421년)의 성무일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도 수난의 도구>도 있었다. 그림 속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온갖 수난의 도구들이 마치 대장간의 연장들처럼 십자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도구들이 가한 고통을 생각하면 예수가 당한 끔찍한 고난이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한 번도 다룬 적 없는 주제, 흔쾌한 마음으로 아르마 크리스티에 등장하는 도구들을 하나씩 묵상하기로 했다.

 

그림 속에 담긴 다른 도구들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게 뭘까 싶은 것이 있었다. 십자가 아래 타원형으로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분홍색 형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소리의 의견을 물었더니 대개는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로 이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옆구리에 난 창 자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며 고민을 하는 동안 내게 떠오른 생각은 달랐다.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 형구라면 오히려 사람들의 입술이 맞겠다 싶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겪었던 고통 중 그 중 견디기 어려운 고통은 사람들이 함부로 쏟아낸 거친 말들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대뜸 이어지는 생각이 있었다. 혀가 창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함부로 하는 말은 누군가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것과 진배없는 일이다. 창을 들고 휘두르지 않는다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닌 것은,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누군가의 속을 창보다도 더 깊이 찌르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아르마 크리스티가 전해준 하나의 생각, 혀는 창이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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