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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그랭이질 한옥을 떠메고 앉은 우직한 머슴, 주춧돌을 가리켜 그렇게 부르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보았는데 참 적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집이 제대로 서려면 물론 기둥이 중요하지만 그 기둥을 떠받치는 주춧돌 역시 중요하다. 사람들은 기둥에는 눈길도 주고 그 우람함에 감탄을 하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다. 어찌 생각하면 서운할 것도 같은데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니, 주춧돌을 두고 우직한 머슴이라 부른 것은 제격이다 싶다. 한옥을 지으며 기둥을 세울 땐 맨땅이 아닌 주춧돌 위에 세워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도록 했다. 주춧돌을 놓을 때 당연히 돌의 표면이 반반한 모양이어야 쓸모가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2025. 2. 8.
비꽃과 비설거지 비와 관련된 우리말 중에 우리가 잘 알지 못해 즐겨 쓰지 못하는 말들이 있다. 안개비나 이슬비는 익숙해도 ‘는개’라는 말은 낯설지 싶다. 안개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를 는개라 불렀다. 채찍처럼 쏟아진다고 하여 ‘채찍비’도 있었고, 빗방울의 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린다 하여 ‘발비’도 있었다. 좍좍 내 리다가 금세 그치는 비는 ‘웃비’, 한쪽으로 해가 나면서 내리는 비는 ‘해비’나 ‘여우비’,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비는 ‘먼지잼’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 라 했다던데,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너무 고마워서 ‘단비’ 혹 은 ‘약비’, ‘복비’라 부르기도 했다. ‘비그이’라는 말은 .. 2025. 2. 1.
썩은 감자 하나가 섬 감자를 썩힌다 감자와 고구마는 좋은 양식도 되고 맛있는 간식도 된다. 솥단 지에 푹 삶아 식구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것은 다른 음식을 통해서는 쉽게 누리기 힘든 멋과 정겨 움을 준다. 감자와 고구마는 비슷한 면이 있다. 모든 씨가 그러하듯 적 은 것을 심어 많은 것을 거둔다. 씨감자 한 조각을 심으면 둥글 둥글 편하게 생긴 감자 여러 개를 거둘 수 있고, 고구마 순 하 나를 심으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를 거두게 되니 괜히 수지맞는 기분이 들어 농사짓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감자와 고구마는 보관을 잘못하면 금방 얼거나 썩고 만다. 물기가 있거나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면 썩기가 쉽고, 추운 곳에 보관하면 얼기도 잘 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보관해보면 알지만 한 개가 썩으면 나머지 도 금방 썩.. 2024. 10. 29.
형광등을 갈다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랐다. 패인 길을 고친다고 얼마 전 자갈을 곳곳에 부려 쿵덕 쿵덕 작은 오토바이가 춤을 춘다. 게다가 한손엔 기다란 형광등 전구를 잡았으니, 어둠속 한 손으로 달리는 작실 길은 쉽지 않았다. 전날 우영기 속장님 집에서 속회예배를 드렸는데 보니 형광등 전구가 고장 나 그야말로 캄캄 동굴인지라 온통 더듬거려야 했다. 전날 형광등이 고장 났으면서도 농사일에 바빠 전구 사러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회에 형광등 여유분이 있었다. 그토록 덜컹거렸으면서도 용케 전구는 괜찮았다. 전구를 바꿔 끼자 캄캄한 방안이 대낮처럼 밝혀졌다. 막 일마치고 돌아온 속장님이 밝아진 방이 신기한 듯 반가워한다. 어둔 곳에 불 하나 밝히는 당연함. 필요한 곳에 불 하나 켜는 소.. 2022. 1. 8.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실서 섬뜰로 내려오는 산모퉁이 길, 아침 일찍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책가방 등에 메고 준비물 손에 든 5학년 병직이입니다. 하루 첫 햇살 깨끗하게 내리고, 참나무 많은 산 꾀꼬리 소리 명랑한 이른 아침.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병직이가 학교를 갑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 1991년 2022. 1. 7.
할아버지의 낮술 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잊고 낮술 드시곤 벌러덩 방안에 누워 버렸습니다. 훌쩍 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진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 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일부러 기계 모를 마다하고 손 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저 든든히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담아 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 .. 2022. 1. 6.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교회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습니다. 단강이 얼마나 조용한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방앗간입니다. 평소엔 몰랐던 단강의 고요함을 방아 찧다 멈춘 방앗간이 가르쳐줍니다. 방아를 멈추는 순간 동굴 속 어둠 같은 고요가 시작됩니다. 익숙해진 덕에 많이는 무감해졌지만 그래도 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승학이 엄마를 만났더니 미안하다, 합니다. 미안한 일이 딱히 떠오르질 않아 물었더니, 이틀 전인 주일날 예배시간에 방아를 찧었다는 겁니다. 가능한 피하려고 했는데 손님의 다급한 청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이야기한 지난 주일만 해도 별 불편함 없이, 아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승학이 엄마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 2022. 1. 5.
'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눈썹 하나를 뽑아 돌멩이 사이에 넣어두면 되었다. 누군가 그걸 발로 차면 됐다. 그러면 돌을 걷어찬 이에게 옮는다고도 했다. 들은 말대로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우리식으로는 발바닥에 ‘地平’(지평)이라 쓰는 것이었다. 다래끼가 왼쪽 눈에 나면 오른쪽 발바닥에, 오른쪽 눈이면 왼쪽 발바닥에 지평이라 썼다. 반드시 먹물로 써야 효험이 있다는 그 글씨를 다래끼가 생길 때마다 썼다. 묘하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준 분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빙성을 얻은 그 방법은 다래끼엔 무슨 특효약쯤으로 알았다.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곱돌'이었다. 만질만질한 돌로서 맨바닥에 글씨를 쓰면 하얀 글씨가 써졌다. 곱돌 만드는 비책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곱돌과 비슷하게 생긴 차돌을 땅속에 구멍을 파고 넣.. 2022. 1. 4.
붕어 잡기 고향 부곡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월암리와 입북리, 초평리를 끼고 펼쳐져 있는 저수지의 크기는 상당했다. 여름철의 수영과 낚시, 겨울철의 썰매와 스케이팅을 마음껏 즐길 만큼 저수지는 차라리 호수 쪽에 가까웠다. 저수지로 흘러가는 개울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 개울마다엔 붕어, 미꾸라지, 구구락지, 빠가사리 등 고기들이 많았다. 특히 봄이 되어 첫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굉장한 날이 되곤 했다. 그때쯤이면 붕어가 알을 낳을 때, 첫 비가 오는 날은 알을 낳으려는 붕어가 그야말로 떼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그물이 필요 없었다. 그저 손으로 움키기만 해도 커다란 붕어들을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다, 두 손을 펴 물속에 집어넣고 조심스레 손을 좁혀 붕어를 잡는 맛이라니. 손 사이 붕어의 움직임이 아무리 날래더라.. 2022.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