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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9

망해도, 살아내기 망해도, 살아내기 -「망하면 망하리라」 1934. 4월 - “난 한 마리 똥개가 될 거예요. 우직하게 그러나 컹컹 계속 짖으면서, 도둑들로부터 우리 집 사람들을 지키면서…” 지난 주 한 집필 원고의 공동 기획을 위해 모인 자리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대략의 집필 방향과 각자의 몫을 나눈 뒤에 자연스레 ‘요즘 나라꼴’에 대한 한탄이 이어지던 중간이었다. 반(反)생명적인 정치·경제 시스템이 너무나 견고하고 높은 벽과 같다고 모두가 속상해했다. ‘우리 집’이란 은유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 물을 기회는 없었지만, 대략 짐작은 되었다. 예수께서 기도하셨듯이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 집’이 어디겠는가? 생명을 살리고 권위와 소유를 나누며 .. 2023. 2. 15.
‘염려’없는 노동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3) ‘염려’없는 노동 - 전집 4권 『성서 연구』 「기독신자의 처세 원리」 - 임금피크제를 놓고 노사정간 의견조율이 안된다고 한참 시끄러웠다. 극적 타결을 보았다하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결국 앞으로 차차 의논하며 적합한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데‘만’ 합의를 한 모양이다. 그럴 일이다. 서로 “네가 양보해라”라고 주장하는 협상테이블에서 무슨 실질적인 합의가 나오겠나. 직업안정성이 있는 정규직이 날로 줄어드는 이 마당에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정규직 ‘부모’ 세대에게 ‘자녀’ 세대인 청년들의 고용창출을 위해 봉급을 깎자는 정부와 기업의 감성팔이는 생계형 노동현장을 살아가는 일반 시민정서에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만큼 ‘깎아서’ 청년들에게 ‘미래가 보장되는’ 어엿한 직장을 마련.. 2021. 9. 16.
하나님의 뜻, 사랑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뜻, 사랑 - 전집 3권 『성서 개요』 호세아 편 - “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저 사람이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나의 짝이 맞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요?” 지방에서 열린 한 청년 모임에서 받은 질문이다. ‘교회를 교회되게’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특강 시간 말미에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 내 특강 논지를 열심히 들은 뒤의 질문인 것은 맞았다. 그리스도인 두 사람이 이룬 가정이라면 가정도 ‘교회의 최소단위’이기에 이미 교회의 작동 원리나 관계 방식이 그 안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진지하고 순수한 청년에게 되물었다. 가장 이상적인 두 사람의 만남의 조건이 무엇이냐고 생각하는지. 그녀는 ‘서로 사랑하.. 2021. 6. 8.
을(乙)의 지형학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을(乙)의 지형학 -「조선지리소고」 1934. 3 - 김교신의 전공은 ‘지리 박물’이었다. 1927년 4월 함흥의 영생여자고등학교를 첫 부임지로 하여 이후 양정고등학교, 경기중학교, 그리고 마지막 송도고등학교까지 약 15년 간 강단에 섰다. 양정에서의 12년이 가장 긴 시간이었고, 늘 ‘사상이 의심된다’거나 ‘불온하다’는 눈초리를 받다 결국 1942년 으로 투옥되면서 교사 생활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그에게서 ‘지리 박물’을 배운 학생들은 회고하기를 그저 딱딱한 지형에 대한 수업이 아니었다고 했다. 특히나 한국 지리를 배울 때면 각 지역에 얽힌 조상들의 얼을 함께 가르쳤으며, 일제가 한글 수업을 금지했음에도 당당하게 조선말로 조선혼을 심어주셨다고 전한다. ‘무레사.. 2021. 5. 23.
버텨라, 버티자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5) 버텨라, 버티자 (조와(弔蛙), 1942년 3월) ‘한 시간에 740만원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주차요원을 꿇릴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던 ‘백화점 모녀’마저 사회정의를 외치는 시절이다. 세상을 바로잡고 싶었단다. 한참 동면 중인 ‘개구리’도 들었다면 웃을 이야기다. 그들이 ‘바로 잡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재의 사회적 배치 속에서 VIP(아주 중요한 사람)로 자리한 사람에게는 무한 존경과 절대 복종을 표시하는 사회,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바른’ 사회였을까?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는데, 그랬다면 740만원 씀씀이나 남편의 권력에 대한 언급은 불필요했을 일이다. ‘내 남편 한 마디면 너희들 다 잘려!’가 어찌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성을 .. 2021. 5. 19.
응시의 윤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4) 응시의 윤리 - 전집 4권 『성서 연구』 「율법의 완성-간음과 이혼」 - 내가 김교신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거의 ‘완벽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윤리와 도덕에 엄격하다는 점이다. 나 역시 ‘율법주의자’는 아니지만(글쎄 내 생각이기만 할지도),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꼴’은 나나 남이나 잘 못 견디는 편이다. 그게 고스란히 드러나는지, 미국에서 목사안수과정을 밟는 중에 받았던 인성 테스트에서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평가인즉, 내가 목회를 한다면 교인들에게 너무 엄중한 윤리적 잣대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우여곡절 가정사로 인해 결국 안수를 받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족이 길었지만, 내 성향이 그러하다보.. 2021. 5. 16.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 줄탁동시(啐啄同時) - ‘손기정 군의 세계 마라톤 제패’ 1936년 9월 - 첫째로 손 군은 우리 학교의 생도요, 우리도 일찍이 동경-하코네 간역전경주의 선수여서 마라톤 경주의 고(苦)와 쾌(快)를 체득한 자요, 손군이 작년 11월 3일 동경 메이지 신궁 코스에서 2시간 26분 41초로써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할 때는 ‘선생님 얼굴이 보이도록 자동차를 일정한 거리로 앞서 모시오’ 하는 요구에 ‘설마 선생 얼굴 보는 일이 뛰는 다리에 힘이 될까’ 하면서도 이 때에 생도는 교사의 심장 속에 녹아 합일되어 버렸다. 육향교 절반 지점부터 종점까지 차창에 얼굴을 제시하고 응원하는 교사의 양 뺨에는 제지할 줄 모르는 열루(熱淚)가 시야를 흐리게 하니 이는 사제 합일의 화학적 변.. 2021. 5. 14.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 - , 1940년 3월호 - 해가 바뀌는 즈음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마음에 가득했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다보니 어느 덧 안산 하늘공원이다. 가늘게 내리는 하얀 눈송이를 맞으며 홀로 서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앞에 마주했다. 한 이름, 한 얼굴씩 눈에 새기고 마음에 담으면서 기도하며 한 걸음씩 움직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생각할수록 안타깝고, 안타까움이 클수록 또 분했다. 어이없는 죽음이라서, 너무 어린 죽음이라서, 무엇보다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직함과 무책임이 빚은 참사라서, 기성세대로서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납덩이처럼 마음을 짓눌렀다. 어느덧 저 아이들은 마치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쌀알’처럼 .. 2021. 5. 13.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 응답하라. 2021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 응답하라. 2021년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이여! 1927년으로부터 온 편지 - 창간사 - 1927년 7월, 6인의 조선 젊은이들이 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했다.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 되어버린 세월호 참사 이후 나라의 현재를 암담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이 시절보다도, 더 희망이 없던 일제치하였다. 동인 중 하나였던 함석헌의 표현처럼 ‘끌려가듯’ 일본 땅에서 낯선 타자로 살며 바다 건너 조국을 지켜보자니, 젊은 지식인이요 신앙인인 이들의 참담한 마음이 더욱 깊었을 터이다. “그러므로 걱정을 같이 하고 소망을 일궤에 붙이는 우자(愚者) 5-6인이 동경 시의 스기나미촌에 처음으로 회합하여 ‘조선성서연구회’를 시작하고 매주 때를 기하여 조선을 생각하고 성서를 강해하면.. 2021.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