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을 갈다

사진/김승범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랐다. 패인 길을 고친다고 얼마 전 자갈을 곳곳에 부려 쿵덕 쿵덕 작은 오토바이가 춤을 춘다. 게다가 한손엔 기다란 형광등 전구를 잡았으니, 어둠속 한 손으로 달리는 작실 길은 쉽지 않았다.


전날 우영기 속장님 집에서 속회예배를 드렸는데 보니 형광등 전구가 고장 나 그야말로 캄캄 동굴인지라 온통 더듬거려야 했다. 전날 형광등이 고장 났으면서도 농사일에 바빠 전구 사러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회에 형광등 여유분이 있었다. 그토록 덜컹거렸으면서도 용케 전구는 괜찮았다.


전구를 바꿔 끼자 캄캄한 방안이 대낮처럼 밝혀졌다. 막 일마치고 돌아온 속장님이 밝아진 방이 신기한 듯 반가워한다.


어둔 곳에 불 하나 밝히는 당연함.
필요한 곳에 불 하나 켜는 소중함.

-<얘기마을> 1991년

posted by

우리의 소원은 통일

사진/김승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실서 섬뜰로 내려오는 산모퉁이 길, 아침 일찍 커다란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책가방 등에 메고 준비물 손에 든 5학년 병직이입니다.


하루 첫 햇살 깨끗하게 내리고, 참나무 많은 산 꾀꼬리 소리 명랑한 이른 아침.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며 병직이가 학교를 갑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얘기마을> 1991년

posted by

할아버지의 낮술



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잊고 낮술 드시곤 벌러덩 방안에 누워 버렸습니다. 훌쩍 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진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 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일부러 기계 모를 마다하고 손 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저 든든히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담아 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모를 심기로 약속한 날, 정말로 모 심으러 들어온 건 둘째딸, 둘째딸네 뿐이었습니다. 모두 온다고, 오겠다고 전화론 그랬는데, 그런 전화 믿고 자랑도 했고 일꾼도 그만큼 적게 맞췄는데 결국 들어온 것은 둘째 딸네뿐이었습니다.


속상한 할아버지 마음, 말 안 해도 알기에 아무도 말릴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마음 위로하듯 하루해론 벅찬 일을 벅차게 해냈을 뿐입니다.


모심기 전날 밤, 신작로 곳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식들 밤늦도록 기다리며 어둠속 줄담배 피우던 할아버지 모습 본 이는 없었다 해도.

-<얘기마을> 1991년

posted by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교회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습니다. 단강이 얼마나 조용한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방앗간입니다. 평소엔 몰랐던 단강의 고요함을 방아 찧다 멈춘 방앗간이 가르쳐줍니다. 방아를 멈추는 순간 동굴 속 어둠 같은 고요가 시작됩니다. 익숙해진 덕에 많이는 무감해졌지만 그래도 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승학이 엄마를 만났더니 미안하다, 합니다. 미안한 일이 딱히 떠오르질 않아 물었더니, 이틀 전인 주일날 예배시간에 방아를 찧었다는 겁니다. 가능한 피하려고 했는데 손님의 다급한 청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이야기한 지난 주일만 해도 별 불편함 없이, 아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승학이 엄마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 년 열두 달 적지 않은 방아일 텐데도 말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적어도 그 마음은 믿음에 가까운 아름답고도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 때마다 우리의 예배를 염려하는 승학이 엄마의 조심스런 마음도 함께 받아주세요.

-<얘기마을> 1991년

posted by

'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눈썹 하나를 뽑아 돌멩이 사이에 넣어두면 되었다. 누군가 그걸 발로 차면 됐다. 그러면 돌을 걷어찬 이에게 옮는다고도 했다. 들은 말대로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우리식으로는 발바닥에 ‘地平’(지평)이라 쓰는 것이었다.


다래끼가 왼쪽 눈에 나면 오른쪽 발바닥에, 오른쪽 눈이면 왼쪽 발바닥에 지평이라 썼다. 반드시 먹물로 써야 효험이 있다는 그 글씨를 다래끼가 생길 때마다 썼다.


묘하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준 분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빙성을 얻은 그 방법은 다래끼엔 무슨 특효약쯤으로 알았다.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곱돌'이었다. 만질만질한 돌로서 맨바닥에 글씨를 쓰면 하얀 글씨가 써졌다.


곱돌 만드는 비책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곱돌과 비슷하게 생긴 차돌을 땅속에 구멍을 파고 넣은 후 거기에 똥을 부어두곤 한 달 쯤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 효과를 시원하게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곱돌을 우리는 귀하게 대하곤 했다.

개구리를 살려내는 방법은 또 얼마나 기막혔던지. 개구리를 땅바닥에 내리쳐 그야말로 '쭉 뻗게 한' 후 개구리 배 위에 아무 풀이나 뜯어 열십자 모양으로 올려놓고선, 그 가운데 침을 뱉었다.


열십자 모양의 효험 때문인지, 침의 효험 때문인지 놀만큼 놀다 와보면 뻗어있던 개구리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신비한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 어릴 적 기억들, 모든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후론 다시 맛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할아버지의 낮술  (0) 2022.01.06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0) 2022.01.05
'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0) 2022.01.04
붕어 잡기  (0) 2022.01.03
주님의 배려  (1) 2022.01.02
聖地  (0) 2022.01.01
posted by

붕어 잡기

그림/임종수



고향 부곡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월암리와 입북리, 초평리를 끼고 펼쳐져 있는 저수지의 크기는 상당했다. 여름철의 수영과 낚시, 겨울철의 썰매와 스케이팅을 마음껏 즐길 만큼 저수지는 차라리 호수 쪽에 가까웠다.


저수지로 흘러가는 개울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 개울마다엔 붕어, 미꾸라지, 구구락지, 빠가사리 등 고기들이 많았다.


특히 봄이 되어 첫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굉장한 날이 되곤 했다. 그때쯤이면 붕어가 알을 낳을 때, 첫 비가 오는 날은 알을 낳으려는 붕어가 그야말로 떼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그물이 필요 없었다. 그저 손으로 움키기만 해도 커다란 붕어들을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다, 두 손을 펴 물속에 집어넣고 조심스레 손을 좁혀 붕어를 잡는 맛이라니. 손 사이 붕어의 움직임이 아무리 날래더라도 우리들의 손에서 붕어는 빠져나가질 못했다. 손에 잡힐 때의 붕어의 힘찬 기운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멀리서 그물 가지고 온 어른들은 감탄하며 쳐다보았다. 그물로도 잘 잡을 수 없는 붕어를 아이들이 맨손으로 잡아 올리니, 혀를 내두를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을 보면 괜히 신이 나기도 했고 언젠가는 값을 받고 잡은 고기를 팔아본 적도 있다.

내가 모르는 방법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어른이 그물로도 잡을 수 없던 붕어를 어린 우리들이 맨손으로 잡았다.


인정하면 살고 싶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저만의 방법을.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0) 2022.01.05
'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0) 2022.01.04
붕어 잡기  (0) 2022.01.03
주님의 배려  (1) 2022.01.02
聖地  (0) 2022.01.01
머리에 얹은 손  (0) 2021.12.31
posted by

주님의 배려

  •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부자되세요!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파이채굴러 2022.01.02 07:43 신고

 

안쓰러운 건 어린 선아만이 아니었다. 근 한 달 반 동안 서울에 올라가 수술과 병원생활을 마치고 내려온 아주머니가 한쪽 눈 두툼한 안대를 댄 채 그동안의 얘기를 눈물로 할 때, 자리를 함께 한 모두의 마음은 안쓰러웠다.


아주머니가 눈물 흘릴 때마다 수건을 들고 그 앞에 서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선아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엄숙한 자리이기도 했다.


신실한 불자로서 30년 동안이나 섬겨오던 불도를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는 시간, 누구도 쉽게 생각 못했던 뜻밖의 변화에 첫 예배를 드리는 모두의 마음은 엄숙함으로 숙연하기까지 했다.


17년 동안 앓아오던 지병이 눈으로 도져 위험한 수술을 앞두게 되었을 때,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안다. 아주머니 옆에 앉아 눈물로 예배를 드리는 한 손길. 그가 그동안 말없이 감내해온 사랑의 수고를. 흘러 흘러 바다에 닿는 강물처럼 찬마루 바닥에 흘렸을 남모를 기도의 눈물을. 결국은 기도의 응답. 드릴 건 감사뿐이었다.


사향으로 썼다는, 그동안 불심을 지켜주던 벽에 걸었던 액자를 모두 떼어내 불을 놓는다. 타오르는 불길. 그러나 이내 수그러들고 만다. 타 없어지는 것, 한줌 재로 남는 것, 그것뿐인 것을. 그래도 그것은 분명한 마침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노모를 모시고 나온 온 가족은 예배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새해 들어 첫 번째 맞는 주일, 한해를 은총으로 여시는 주님의 배려가 고맙고 든든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0) 2022.01.04
붕어 잡기  (0) 2022.01.03
주님의 배려  (1) 2022.01.02
聖地  (0) 2022.01.01
머리에 얹은 손  (0) 2021.12.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0) 2021.12.31
posted by

聖地



"한 목사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할 텐데."


목회하는 친구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자식을 목사라 부르는 어머니 마음에는 자랑과 기대, 그리고 한 평생 지켜온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어머니께 그랬다.


"성지가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사는 곳이 성지지요."


혹 어떨지 몰라 어머니를 위로하듯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사실임을 삶으로 확인하며 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을 성지(聖地)로 믿으며.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붕어 잡기  (0) 2022.01.03
주님의 배려  (1) 2022.01.02
聖地  (0) 2022.01.01
머리에 얹은 손  (0) 2021.12.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0) 2021.12.31
떨리는 전화  (0) 2021.12.30
posted by

머리에 얹은 손

사진/김승범

 

한해가 바뀌는 시간, 어둠속 촛불 하나씩 밝히고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경건한 마음들. 늘 그만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시간일터이면서도 해 바뀜의 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더듬더듬, 기도도 빈말을 삼가게 됩니다. 돌이켜 보는 한해가 회한으로 차올라 눈물로 흐르고, 마주하는 한해가 마음을 여미게 합니다.


머리 숙인 교우들 머리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곤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시간 위에 손 얹은 양, 손도 마음도 떨립니다.


전에 없던 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 그 일이 그 순간 절실했던 건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도 받고 싶은, 문득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눌렀습니다.

 

낮게 엎드려, 가장 가난한 마음 되어 단 한 번의 손길을 온통 축복으로 받고 싶은 배고픔, 문득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맞는 심정 누군 다를까. 내 자신에게 손을 얹듯 손을 얹습니다. 전에 없던 일, 그러나 축복은 그렇게 올겁니다.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의 배려  (1) 2022.01.02
聖地  (0) 2022.01.01
머리에 얹은 손  (0) 2021.12.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0) 2021.12.31
떨리는 전화  (0) 2021.12.30
따뜻한 기억  (0) 2021.12.25
posted by

상희의 아픔은 펄펄

사진/김승범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상희 아버지는 한참 어둠이 내린 버스정류장을 늦도록 서성였다.


안산으로 취직을 나간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 상희가, 신정휴가를 맞아 고향에 오겠다고 뒷집을 통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피붙이 하나 없는 객지에 어린 것이 나가 얼마나 고생이 됐을까. 먹을 것 제대로 먹기나 했는지, 딸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제법 붐빈 막차에도 상희는 내리지 않았다. 막차 지나 한참까지 기다렸지만 상희는 오지 않았다. 밤늦게 다시 걸려온 전화, 야근 나간 상희였다. 상희 아버진 된 술로 한해를 보내고, 상희의 아픔은 펄펄 흰 눈으로 내리고.

-<얘기마을> 1991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聖地  (0) 2022.01.01
머리에 얹은 손  (0) 2021.12.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0) 2021.12.31
떨리는 전화  (0) 2021.12.30
따뜻한 기억  (0) 2021.12.25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새벽송  (0) 2021.12.24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