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송대선의 시편묵상

하느님! 아무려면 제가 이런 짓을 했으리이까?

by 한종호 2021. 6. 11.

 

시편 73

 

야훼, 나의 하느님! 아무려면 제가 이런 짓을 했으리이까?(공동번역)

 

容我一申辯(용아일신변)

주님 저 자신을 변호하도록 허락하소서주님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십시오

(시편사색, 오경웅)

 

어려움에 처했을 때 겪는 이유만 알아도 그 고통이 반감되는 걸 경험합니다. 왜 지금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면 비록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조금은 견딜 힘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기꺼이는 아니더라도 피하지 않고 마음을 가다듬어 쉬 꺽이지 않을 결심을 다지기도 하지요. 만약 어려움이 자신의 허물로 인한 것이라면 책임지는 자세를 통해 도리어 자신의 그릇을 더 넓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맹자(孟子)의 언명이 오래도록 고난을 겪는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주었겠지요.

 

하늘이 장차 큰일을 어떤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며, 그 근골을 지치게 하며,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한다. 그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어 뜻과 같지 않게 하나니 이것은 그들의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하도록 위해서이다(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曾益其所不能).”

 

그러나 늘 이런 마음과 자세를 품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억울하고 속상해서 푸념하고 털어놓을 누군가를 찾기도 하지요.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 내 잘잘못을 판단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이를 우리는 그리워합니다.

 

더군다나 그런 어려움이 무고(誣告)로 인한 것이라면 억울한 심정은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속된 말로 열불이 나서 미치고 환장할 일입니다. 마치 이 세상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니 그 어려움에는 분명 알지 못하는 숨겨진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너무도 억울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터뜨리게 되는 울분은 두서조차 없어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억울한데 갈 곳마저 없습니다.

 

찾아갈 곳이 없을 때에야 우리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울분을 통하고 자신을 변호합니다. 시편 7편의 전반부의 간구는 마침표 없이 토해내는 시인의 속마음입니다. 정말 제가 저들의 말대로 그랬다고 한다면 능욕을 겪고 흙범벅이 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헝클어진 마음이 맘껏 솟구쳐오릅니다. 그에 비한다면 오늘의 우리 신앙은 너무 얌전하거나 아버지와의 관계를 매우 상식적인 선에서 유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그렇게 헝클어진 감정의 토로 가운데 시인에게서 중심이동이 일어납니다. 그의 언어는 자기의 결백에서, 원수들의 모함과 그로 인한 분노에서 점차 하느님께로 옮겨갑니다. 자신의 감정과 언어의 무게가 쏟아지는 만큼 어둠의 기운이 스러지고 이 마구잡이 토로를 받아주시는 분이 자신의 삶과 여정에서 어떤 분이신지를 떠올립니다. 마구 쏟아내던 사람이 점차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모아 이 모든 것을 들으시는 분을 향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의 고통)은 작아지고 이 모든 것을 거두시고 당신의 섭리를 펼치시는 하느님에 대한 더 깊은 신뢰에로 이끌립니다. 그러니 그는 어느새 흐트러진 자신은 잊고 이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그분을 찬양하려 합니다. 악에 북받쳤던 감정이 가라앉으며 그 가운데서 미더운 분을 향한 고요하고 정제된 읊조림이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네 당신이 옳습니다!”

 

그렇기에 자주 터무니없는 억울함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은총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더 나아가서 이 땅에서 가장 억울하셨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우리에게 되돌리지 않으시고 오로지 아버지께만 토로하셨던 예수님을 제대로 우리 마음에 모실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억울한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뵐 수 있지요. 바로 거기서 그분이 기다리시지요. 그런 자리에서야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셔서 모욕을 받고 버림받으셔서 구원을 이루는 신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한순간을 제대로 누릴 수만 있다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 한순간이 우리 인생 전체를 치유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히브리 시인보다 더한 감격과 찬미를 올려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fzari.tistory.com/2510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

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fzari.com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fzari.tistory.com/2512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시편 1편 6절b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 我主識善人〔아주식선인〕 우리 주님 선한 이 알아주신다(《시편사색》, 우징숑)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사실적인 앎

fzari.com

 

*한 말씀만 하소서!fzari.tistory.com/2516?category=974810

 

한 말씀만 하소서!

시편 1편 2절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공동번역》)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 거룩한 말씀 새김질하며 거닐며 종일 그 말씀

fzari.com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fzari.tistory.com/2519?category=974810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시편 2편 1-3절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이 사슬을 끊

fzari.com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fzari.tistory.com/2522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시편 4절 4절에서 시인은 그 난장판의 야단법석에서 하느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 笑蜉蝣之不知自量(소부유지부지자량)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

fzari.com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fzari.tistory.com/2532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3편 1절 吾敵何多(오적하다)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시편사색》, 우징숑) 당신께 나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마음을 다지면 걸리는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저를 덮치면서 말립니다.

fzari.com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fzari.tistory.com/2535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3편 4절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fzari.com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fzari.tistory.com/2540?category=974810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

시편 3편 3절, 6절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 주십니다.〔3절〕 적들이 밀려 와 에워 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6절〕(《공동번역》) 護我

fzari.com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fzari.tistory.com/2544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시편 3편 2절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fzari.com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fzari.tistory.com/2563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

시편 4편 6절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

fzari.com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fzari.tistory.com/2568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시편 4편 2절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공동번역》) 嗚呼濁世子 冥頑盍有極(오호탁세자 명관함유극) 세상

fzari.com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https://fzari.tistory.com/2580?category=974810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fzari.com

 

 

*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https://fzari.tistory.com/2588?category=974810

 

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시편 5편 7절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공동번역》) 我欲入主室 暢沾主膏澤(아욕입주실 창

fzari.com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https://fzari.tistory.com/2591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fzari.com

 

*어우러지는 춤https://fzari.tistory.com/2597

 

어우러지는 춤

시편 6편 8, 9절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공동번역》) 我泣主已聞 我求主已聽(아읍주이문 아구주이정) 有禱必見納 有感豈無應(유도필견납 유감기무웅) 이

fzari.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