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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선의 시편묵상

어우러지는 춤

by 한종호 2021. 5. 20.

갈릴리교회 전경, 사진/김순현

 

시편 68,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공동번역》)

 

我泣主已聞 我求主已聽(아읍주이문 아구주이정)

有禱必見納 有感豈無應(유도필견납 유감기무웅)

 

이내 울음소리 이미 들으셨고 이내 간구 애저녁에 받으셨으니

님께 바친 기도 어찌 아니 받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시랴(《시편사색》, 오경웅)

 

인생이 드리는 눈물의 호소와 하느님의 들으심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될까요? 간구하는 처연함과 긍휼한 귀기울이심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요? 인생이 시간의 바늘 위에 섰는지라 간구와 응답 그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처럼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시간을 넘어 계신 하느님의 응답은 그 간격을 넉넉히 허무시지 않을까요?

 

이내 울음소리 이미 들으셨고 이내 간구 애저녁에 받으셨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이럴 때 이미()라는 언어는 시간의 간격을 무너뜨리는 실제적인 사건입니다. 모순된 사건이고 시간을 거스르는 사건입니다. 마치 박해자 사울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만나 눈의 비늘이 떨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걷게 되었을 때 하느님의 자비하신 이 사건은 영원 전부터 예정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무지 얼토당토 않은 말이지만 그렇게 말고는 어떤 말도 무소용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신적 사건의 언어를 신학화하여 예정론이라고 주장하는 거야 신학자의 소관이니 무어라 할 말은 없습니다.

 

이렇게 간구와 응답의 시간이 뒤바뀌는 것이 기도이지요. 그러므로 기도하고자 엎드렸다는 것은 기실 혼자만의 행위가 아니라 이미 함께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솟구치는 슬픔과 연약함의 토로는 향방없는 메아리가 아니라 귀기울이시는 주님 앞에 쏟아지고 있음이지요. 그러니 이미 들으셨다고 뒤늦게 말하는 거지요. 하여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그분 안에서 드려지는 것이고 자주 나중에 깨닫게 되듯이 말하는 우리보다 먼저 귀기울이셔서 신실하게 들으시는 자비를 체험하는 사건이라 해야겠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응답하시는지 거절하시는지를 기다리며 시간을 재거나, 하느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것은 기도라 할 수가 없습니다. 도리어 <성서조선>지의 겸손한 믿음의 선진이 들어주신 기도보다 들어주시지 않은 기도가 더 많아 감사하다고 고백한 것처럼 간구와 응답의 상관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그분을 이전보다 더 가까이 느끼고 생생히 맛보며 세밀히 이끄시는 분이심을 알아가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그분 앞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충분히 머무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시편 46편처럼, 지축을 뒤흔드는 에집트의 기병의 말발굽 소리와 삼키려 넘실거리는 홍해 그 사이에 머무는 것인데 마음에서야 하고픈 일과 바라는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저들의 사나운 기운 그 사이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있어 하느님의 하느님 되심을 경험하라고 하십니다.

 

그게 기도지요. 내가 뭘하는 게 기도가 아니라 내가 그분 앞에 머물고 그분이 무엇인가를 하시도록 비우는 것, 그게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쉽지 않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뭘 하려고 부산스레 움직이고 모의하고 계획하고 두리번거리지요. 가만히 머물기, 그분 앞에 수동적으로 멈추기는 가장 적극적인 신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머무는 중에, 멈춤 중에 기도자를 흉흉한 파도와 뒤흔드는 말발굽에서 들어 승리의 요새로 옮기시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지요.

 

문제를 만나는 것이 인생이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픈 것은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하느님을 슈퍼맨으로 여깁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줄 분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면에서 자주 무력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말입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여정이 아닙니다. 그와 전혀 다르게 기도를 통해 기도자는 문제가 사라져버리는 것을 체험합니다. 기도 후에도 여전히 문제는 눈앞에 있고 파도는 넘실거립니다. 현상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하느님께서 기도자의 삶에 개입하시면서 더이상 그 문제가 그의 영혼과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어져 버립니다. 선명한 신기루입니다. 문제가 사라져버리면 이제껏 두려워하고 떨며 울었던 것이 우스운 일로 변하고 그토록 심각했던 것이 한없이 가벼워지지요. 자유의 날개가 겨드랑이에서 시작되는 것을 느끼겠지요.

 

감응(感應), 옛사람들은 사람이 마음을 다해 신명을 감동시키므로 하늘은 절로 그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해왔습니다(人以精誠感動神明 神明自然會回應人). 기도는 기도자에게서 출발하지만 들으시는 분에게로 전이되고 끝내는 말씀드리는 이와 들으시는 분이 어우러지는 춤이 되는 거지요. 말하기 전에 들으심 있었다고 해도 모순이 아니게 되겠지요.

 

 

*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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