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저의 간절한 호소 들어주소서(《시편사색》, 오경웅)
소리에 앞서는 것이 침묵이지요. 누군가의 고백처럼 당신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그 말씀이 침묵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일들을 떠벌리거나 제 사정을 하소연하기 전에 이미 당신이 다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침묵에 젖어들고 싶습니다. 그 침묵이 입술의 침묵으로만 그치는 것이면 안되겠지요? 입술의 침묵이 몸의 침묵이 되고 몸의 침묵이 삶에서 일어났던 온갖 생각과 감정을 고요해지기까지 좀 더 시간도 들이고 뜸도 들여야겠지요? 그렇게 침묵이 제 안에 녹아들어 들끓던 것들이 가라앉으면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도 조금 선명해지고 입술을 열기도 전에 어련히 님께서 잘 알아주실까 확신도 들겠지요.
침묵의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 참 놀랍습니다. 당신께 나아가기 위한 정화(淨化)의 시간이기도 하고, 당신과 오롯이 만나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하지 않아도 될 뻔한 것들을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실한 이들은 그저 당신 앞에 고요히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여겼었나 봅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당신은 이미 온전히 알고 계시고,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지 않아도 이렇게 무릎꿇기까지의 여정도 지켜보셨기에 당신이 먼저 두 팔 벌려 푸근히 감싸시고 받아들여주신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나 봅니다.
그러니 주님 먼저 묵묵히 있으면서 당신의 계심을 느끼고, 먼저 기다려주신 그 자비에 젖어드는 복을 허락해주십시오. 제가 나아오기 전에 가득한 당신의 임재와 기다리셨기에 나아오는 인생을 감싸시는 자비에 먼저 녹아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정화된 제 영혼의 흐느낌이 터져나오겠지요. 그렇게 터져나오는 기도는 들어주십사 하는 기도가 아니지요. 터져나오기도 전에 이미 들어주셨음을 알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의 투정이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기도하고 싶습니다.
* 정(情)은 요즘 심리학에서 말하듯 단순히 감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을 뜻하기도 하며 그 사람의 지향하는 바(의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옛사람들이 말하는 정(情)은 삿된 것에 물들지 않은 인간 내면의 순수한 발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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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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