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의 마음 담아,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송대선의 시편묵상 2021. 5. 15. 07:18

사진/김승범

 

시편 57

 

당신의 크신 사랑만을 믿고 나는 당신 집에 왔사옵니다.

주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향하여 엎드립니다.(《공동번역》)

 

我欲入主室 暢沾主膏澤(아욕입주실 창첨주고택)

爰具敬畏心 朝拜爾聖宅(원구경외심 조배이성택)

 

나 바라기는 주님집 내실에 들어

풍성한 은택에 넉넉히 젖고

경외의 마음 담아 당신 전에서 예배하는 것이옵니다(《시편사색》, 오경웅)

 

시인은 주님의 내실(內室)에 들기 원합니다. ()도 아니고 청()도 아니라 실()입니다. 주님과 공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만나고자 함()도 아니고, 손님으로 찾아와 격식을 갖추고자 함()도 아닙니다. 시인은 그저 주님과 내밀한 만남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보여주고 싶은 만남을 원하고 있습니다. 내실(內室)은 사랑하는 장소요, 님의 허락없이는 결코 들 수 없는 장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차지하는 장소요, 둘이 하나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복에 겨워 신음하며 자신을 잊어버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는 님의 신령한 은택에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오롯한 사랑을 나누며, 님이 내가 되고 내가 님이 되는 영원같은 찰라를 맛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동등하다 여길까요? 말도 안되는 시건방진 생각입니다.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사랑에 젖어 자신을 잃었다가 돌아오면 그저 한없는 은총을 입었기에 더욱 더 당신을 우러르고 그리워하지요. 당신이 어떤 분이신데 저를 내실에 들이시고, 제가 뭐라고 저를 받아들이셨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그 무한한 간격을 당신의 능력으로 당기셔서 간격없게 하시고 품으신 은총에 감읍하면서도 화들짝 놀라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경하면서도() 두려워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엎드려 예배하며 그 사랑을 내면에 꼭꼭 눌러 담습니다. 혹여 잊혀질까 그 사랑의 순간을 삶과 영혼에 오롯이 새겨내야지요.

 

그래야 하는 것은 시인이 주님의 집 내실에만, 성전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치가 전도되고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현실, 인생을 혼돈스럽게 만들고 내면에 다듬어온 사랑을 조롱하며 신기루처럼 만들고자 하는 거짓된 힘을 대면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악에서 건지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데 그 간절한 기도는 역설적이게도 주님과 나누었던 내밀한 사랑에서 솟아오르는 울림입니다. 악과 싸우기 위해 시인은 독한 마음을 품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날을 날카롭게 벼리지도 않습니다. 악과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었던 어둠의 전철을 밟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악과 싸우다가 자기의()에 빠져서 악만큼이나 자신을 부풀린 괴물로 변한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여전히 많거든요. 그보다는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을 부드럽고 여리게 노래하는 것이, 여전히 사랑에 목마른 것이 그를 그분 앞에 사랑스러운 어린아이로 여전히 살아가게 하는 것임을 님의 내실에서 배웠기 때문이겠지요.

 

* (), (), ()

 

()은 공적인 장소이며 공식적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다. 엄격하고 사적인 관계가 통용될 수 없다. 듣는 이와 호소하는 이의 높낮이가 아주 크다. 듣는 이는 지위만큼의 높은 자리에 서 내려다 보고 고하는 이는 낮은 자리에 엎드려 아뢴다. ()과 실()은 모두 집에 있다. ()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기에 격식을 갖추고 머무는 곳이다. 주인은 예를 갖춰 맞이하고 손님은 신을 벗고 오른다. 주인과 손님 사이에는 아직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 연회를 즐길 수도 있고 사적인 일들을 처리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목적지향적인 곳이다. ()은 안방이다. 함부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주인만의 방이다. 그곳으로 손님을 들인다는 것은 격의없음이며 친밀함이며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임이다. ()에서는 도무지 감출 바가 없다.

 

또 다른 의미, 공자가 제자 자로의 배움을 평하면서 어느 정도의 학업을 이루긴 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고 평하는 장면이 있다. 학문이나 기능, 사유 또는 관계의 정도를 평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낱말의 간격에서도 자신의 처한 바를 파악하고 나아갈 바를 가늠하였다. 나는 그분과 어디서 뵙고 있는가?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fzari.tistory.com/2510

 

그분의 마음, 성심(聖心)에 닿는 길

시편을 순서대로 읽되 한 시편 안에서 마음에 닿는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차례와 관계없이 공동번역과 개역개정, 오경웅의『성영역의』(《시편사색》으로 번역출간)를 중심으로 더 입에 붙는

fzari.com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fzari.tistory.com/2512

 

아무 말 없어도 그것만으로도 넉넉합니다

시편 1편 6절b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공동번역》) 我主識善人〔아주식선인〕 우리 주님 선한 이 알아주신다(《시편사색》, 우징숑)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에 대한 사실적인 앎

fzari.com

 

*한 말씀만 하소서!fzari.tistory.com/2516?category=974810

 

한 말씀만 하소서!

시편 1편 2절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공동번역》) 優遊聖道中 涵泳徹朝夕〔우유성도중 함영철조석〕 거룩한 말씀 새김질하며 거닐며 종일 그 말씀

fzari.com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fzari.tistory.com/2519?category=974810

 

열방이 날뛰고 만민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시편 2편 1-3절 어찌하여 나라들이 술렁대는가? 어찌하여 민족들이 헛일을 꾸미는가? 야훼를 거슬러, 그 기름부은 자를 거슬러 세상의 왕들은 들썩거리고 왕족들은 음모를 꾸미며 “이 사슬을 끊

fzari.com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fzari.tistory.com/2522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살이의 소동이라!

시편 4절 4절에서 시인은 그 난장판의 야단법석에서 하느님의 웃음소리를 듣습니다.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가소로워 웃으시다 笑蜉蝣之不知自量(소부유지부지자량) 제 분수를 모르는 하루

fzari.com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fzari.tistory.com/2532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시편 3편 1절 吾敵何多(오적하다) 내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시편사색》, 우징숑) 당신께 나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마음을 다지면 걸리는 것들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나 저를 덮치면서 말립니다.

fzari.com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fzari.tistory.com/2535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3편 4절 竭聲籲主(갈성유주) 온맘과 영혼으로 주님 당신을 부릅니다(《시편사색》, 우징숑) 그러니 그럴수록 당신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이렇게 제 속의 결심은 연약하기만 한데

fzari.com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fzari.tistory.com/2540?category=974810

 

저의 적들을 쳐주소서!

시편 3편 3절, 6절 그러나 야훼여! 당신은 나의 방패, 나의 영광이십니다. 내 머리를 들어 주십니다.〔3절〕 적들이 밀려 와 에워 쌀지라도 무서울 것 하나 없사옵니다.〔6절〕(《공동번역》) 護我

fzari.com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fzari.tistory.com/2544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시편 3편 2절 너 따위는 하늘마저 버렸다고 빈정대는 자 또한 왜 이리도 많사옵니까?(《공동번역》 彼無神助 其命幾何(피무신조 기명기하) 하느님이 저를 돕지 않으시니 그 목숨 앗는 것쯤이야

fzari.com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fzari.tistory.com/2563

 

정녕, 무엇이 인생의 참된 평강인지요

시편 4편 6절 “그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 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밝으신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야훼여.(《공동번역》) 衆庶喁喁望 何日見時康(중서옹옹망 하일

fzari.com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fzari.tistory.com/2568

 

고집은 세고 어둑하기 한이 없어라

시편 4편 2절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나의 영광을 짓밟으려는가? 언제까지 헛일을 좇고 언제까지 거짓 찾아 헤매려는가?(《공동번역》) 嗚呼濁世子 冥頑盍有極(오호탁세자 명관함유극) 세상

fzari.com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https://fzari.tistory.com/2580?category=974810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시편 5편 1, 2절 한숨짓는 까닭을 알아주소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소리 모르는 체 마소서(《공동번역》) 鑑我默默情(감아묵묵정) 聆我哀哀號(영아애애호) 침묵으로 말씀드리는 저를 살피시고

fzari.com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https://fzari.tistory.com/2591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시편 6편 4,5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

fzari.com

---------------------------------------------------------

 

 

*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