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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선의 시편묵상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by 한종호 2021. 5. 17.

시편 64,5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소서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하는 일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공동번역》)

 

祈主一顧盼 授手昭慈仁(기주일고반 원수소자인)

死域誰念主? 頌聲絶幽冥(사역수념주? 송성절유명)

 

주님 돌이켜 살펴주소서 당신의 손 내미사 자비 드러내소서

죽음의 땅에서 뉘있어 주님 기억하리이까? 거기서는 도무지 님을 노래할 수 없나이다.(《시편사색》, 오경웅)

 

 

우리가 시간에 속한 존재여서일까요? 세월이 갈수록 스스로가 연약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젊은날 솟구치는 힘과 용기가 있었기에 세상의 그 무엇이든 짊어질 수 있을 것 같고, 모순되는 어떤 것이든 끝내는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열정 가득했었습니다. 이 믿음의 걸음을 잘 걷는다면 이 생을 허락하신 분이 주신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리라고 여겼지요. 헌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반대로 시간의 무게에 짓눌립니다.

 

명확해 보였던 일상들이 점점 흐릿해지고 옳은 것이라 선뜻 말하기도 어려워집니다. 세월의 지혜로 갈수록 선명해지리라 여겼던 문제들이 점차 콕 집어 말하기 더 어렵고 흐릿해집니다. 몸의 일부 기능들이 쇠해지면서 불편함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러다 끝내 무()로 돌아가는 것인가?

 

손 내밀어 붙잡으려 했던 것이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리도 든든히 보였던 것이 바싹 마른 잎사귀되어 바스러지는 가운데 든든히 섰다고 여겼던 바탕마저 밑없는 공동(空洞)이 아닐가 싶은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그 쇠약함이 순식간에 몸과 의식을 덮쳐 숨마저 위협하면 그 아연함에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습니다.

 

 

사진/김승범

 

시인은 자신이 무너지고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경험하는 중입니다. 무너지는 것보다 무너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의식 한가운데서 지켜본다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렵겠지요. 게다가 이제껏 그가 의지했던 하느님은 멀리 계십니다. 이 거리감이 시인을 당혹하게 합니다.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느끼고 고백하고 사랑하던 임재의식이 흐릿해지면서 생겨나는 거리감은 신앙을 지닌 이들을 무너져내리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의 삶의 곳곳에 자리잡은 신앙의 기억들이 그를 붙잡아줍니다.

 

신앙의 기억은 그저 흐릿한 추억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고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때때로 기도란 갑자기 발생한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한없는 간격을 좁히려는 우리의 어리석으면서도 유일한 시도이며 더없이 가상한 짓이지 싶습니다. 그리고 이때 기도의 재료는 우리의 무너짐이며 두려움이니 말도 안되는 것 같으나 이것만이 유일한 우리의 기도 밑천입니다.

 

특히나 시인은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가녀린 숨결 중에 있기에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자비를 베푸셔야겠습니다 주님! 제가 죽음으로 돌아가면 무() 따위가 어찌 당신이 베푸셨던 사랑과 손길을 기억하겠습니까? 저 어둠의 땅에서 어떻게 당신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여기, 이 나약한 몸뚱이가 당신의 은총을 떠올리는 통로가 되고 점차 희미해져가는 의식이 주님의 손길을 끌어당깁니다. 기실 우리가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는 도구는 그리 가치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분을 영광스럽게 하고 높여드리는 그 무엇이 아니라 대부분 이렇게 연약한 것들이며 그 연약함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고 우리 존재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거처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십니다.

 

유명(幽冥), 옛 사람들은 죽음의 땅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흐릿하고 어둑어둑하고 한없이 멀어 아득합니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보이긴 하되 형체가 없고 뭔가 들리긴 하는데 소리가 없는 것’(視之無形 聽之無聲 시지무형 청지무성)이라 하였습니다. 삶이라는 경계 너머를 선명하게 말할 수 없는 인생인지라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겠지요. 시인은 자기 생명이 그와같이 흐릿함과 경계너머의 아득함으로 흩어지는 중이라고 항변합니다.

 

침상의 요는 눈물로 젖어들고 시련에 영혼은 지쳐 스러져가며 눈은 흐려지고 뼈도 녹아내립니다. 그런 시인에게 기도는 여유있는 행위가 아닙니다. 마치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마지막 여정에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 그분이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은 소경에게 주어진 유일회적인 외침, “나사렛 사람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와도 같습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외칠 수 없지요. 그걸 몸으로 알아챘던 것일까요? 그는 온몸과 영혼으로 유일회적인 외침과 간구를 올려드렸고 새로운 삶을 허락받았습니다. 모순된 말이지만 모든 기도는 유일회적인 외침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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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징숑(오경웅)의 《성영역의》를 우리말로 옮기고( 《시편사색》) 해설을 덧붙인 송대선 목사는 동양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 귀동냥을 한다고 애쓰기도 하면서 중국에서 10여 년 밥을 얻어먹으면서 살았다. 기독교 영성을 풀이하면서 인용하는 어거스틴과 프란체스코,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등의 서양 신학자와 신비가들 뿐만 아니라 『장자』와 『도덕경』, 『시경』과 『서경』, 유학의 사서와 『전습록』, 더 나아가 불경까지도 끌어들여 자신의 신앙의 용광로에 녹여낸 우징숑(오경웅)을 만나면서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지평에 눈을 떴다. 특히 오경웅의 『성영역의』에 넘쳐나는 중국의 전고(典故와) 도연명과 이백, 두보, 소동파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장가와 시인들의 명문과 시는 한없이 넓은 사유의 바다였다. 감리교신학대학 졸업 후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열린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제천과 대전, 강릉 등에서 목회하였고 선한 이끄심에 따라 10여 년 중국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누렸다. 귀국 후 영파교회에서 사역하였고 지금은 강릉에서 선한 길벗들과 꾸준하게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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