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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1) 나는 싫다! “시바에서 유향(乳香)과 원방(遠方)에서 향품(香品)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찜이요 나는 그들의 번제(燔祭)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犧牲)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예레미야 6:20). 언젠가 잡지 에서 본 짤막한 유머 한 토막이 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겠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대뜸 떠올랐던 것이 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뻔한 대답이라면 유머 코너에 올라오진 않았을 것이다. 역시 정답은 의외였다. 진짜 휘발유였다. 정답을 대하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는 말은 생각해보면 지당하다. 돈 벌 욕심에 물을 가장 많이 넣으면 대번 들통이 나고 .. 2015. 9. 3.
광야에서의 다윗(3) 다윗 이야기(9) 광야에서의 다윗(3) 1. 이제 블레셋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다윗과 블레셋의 관계는 한 마디로 성격규정하기 어렵게 얽혀 있다. 양자관계는 다윗 초기엔 분명 적대적이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스라엘 안에서 명성을 얻었다. 블레셋 입장에서 보면 그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원수였던 거다. 하지만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게 되면서 둘의 관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과거엔 적대적이던 관계가 우호적으로 탈바꿈했던 거다. 그게 양쪽 모두에게 유리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에게 피신했다가 여의치 않아 미친 척 해서 빠져나왔다는 얘기(사무엘상 21:10-15)는 앞에서 했다. 그 후 다윗은 그일라와 십 광야의 산성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떠돌이 ‘하비루’답게 한 곳에 오래 머.. 2015. 9. 3.
광야에서의 다윗(2) 다윗 이야기(8) 광야에서의 다윗(2) 1. 다윗은 놉을 떠나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갔다.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도시국가 중 하나다. 그러니까 아기스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적장이다. 그래서 아기스의 신하들에겐 그를 받아들이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이 사람은 분명히 저 나라의 왕 다윗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서 저 나라의 백성이 춤을 추며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사울은 수천 명을 죽이고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다.’”(사무엘상 21:11)라며 펄쩍 뛰었다. 그들이 다윗을 ‘저 나라의 왕’이라고 부른 건 이치에 안 맞지만 말이다. 설화자가 시대를 착각했나? 다윗은 아직 왕이 되지 않았다. 왕은커녕 도망자 신세였다. 이런 실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순실수였을까, 아니면 그가 결국 왕이될 걸 .. 2015. 9. 1.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0) 그 길로는 가지 않겠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善)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行)하라 너희 심령(心靈)이 평강(平康)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對答)이 우리는 그리로 행(行)치 않겠노라 하였으며”(예레미야 6:16) 신학생 시절, 친구가 살던 한남동을 찾을 때마다 자주 들르던 찻집이 있었다. 2층에 자리 잡은 ‘태’(胎)라는 이름의 작은 찻집이었는데, 창가 쪽에 앉으면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로 순천향대학병원 정문이 마주 보였다. 붉게 물든 사람 얼굴만 한 플라타너스 잎이 툭 툭 지는 모습을 창문 밖으로 내다보는, 찬비 내리는 늦가을의 정취가 특히 뛰어난 곳이었다. 후덕한 인상의 찻집 주인이 연극배우였는데.. 2015. 9. 1.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0)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서울과 평양, 동경과 베이징이 하나로 이어져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말과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가 소통의 능력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나누어졌던 때의 풍경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제시대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동아시아는 하나의 생활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동아시아는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들어서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돌아가야 하는 길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은 북경을 거쳐 평양을 갑니다. 하얼빈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원산에서 동경을 가는 것은 왠지 까마득합니다. 오사카에서 신의주로 가는 통로도 단절된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에서 철로로 한참을 달려 압록강을 .. 2015. 9. 1.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3)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1.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보아스 밭에서 곡식걷이를 돕고 이삭을 주우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오미가 특별히 할 말이 있는 듯하다. 여기서도 본문기자는 나오미가 룻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을 일부러 밝힌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불필요해 보이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집요함은 룻과 나오미가 어떤 관계인지, 즉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 2015. 8. 30.
광야에서의 다윗 다윗 이야기(7) 광야에서의 다윗(1) 1. 구약성서를 읽다 보면 누구나 읽기 싫은 대목이 있다. 레위기가 전하는 제사의 구체적인 방법과 제사장이 갖춰야 할 조건들이 대표적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구약성서를 통독하려던 사람도 거기에 이르면 지겨워서 중단하려는 유혹이 빠진다. 정녕 레위기는 구약성서라는 바다에 우뚝 솟은 암초 같은 책이다. 그에 못지않은 암초가 지명(地名, place name)이다. 구약성서의 대부분의 지명들은 익숙하지 않고 발음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런 지명들이 등장하는 대목은 세심히 읽지 않고 대충 지나가기 일쑤다. 안 그런가? 구약성서 독자들 중 익숙지 않은 지명을 만나면 그게 어딘지 확인하려겠다고 지도를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열 명에 한 명도 안 될 거다. 그런데 지명이 .. 2015. 8. 30.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3) 안녕이라고 말할 때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으라 보이지 않아도, 보고 있어요 도엽을 다시 만났을 때 도엽의 표정은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평온해 보였다. 통화나 문자로 자주 접촉해서 그런지 그는 첫 만남 때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다. 모자를 벗어도 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모자를 벗으니 약간 곱슬한 머리카락들이 땀방울처럼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첫 만남 때 도엽은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 몇 가지를 잘 담아 왔었다. 그중 하나가 모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 물론 실명 전의 일이었다. 작년 1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암이 재발된 후 어느 여름날, 그는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물놀이를 하고 싶었다. 근처 강에서 .. 2015. 8. 28.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두런두런(29)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강원도 단강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새집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새집을 발견하면 새집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맡다’라는 말이 묘합니다. ‘맡다’라는 말에는 ‘차지하다’는 뜻도 있고, ‘냄새를 코로 들이마셔 느끼다’ 혹은 ‘일의 형편이나 낌새를 엿보아 눈치 채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어릴 적 말했던 ‘맡는다’라는 말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담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집이 어디 있는지를 눈치 챘다는 뜻도 있고, 내가 차지했다는 뜻도 담겨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가 새 한 마리를 보게 되었는데, 날아가는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주변을 경계하면서 조심스럽게 이 가지 저 가지를 .. 2015.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