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76 “시간이 없어” 이진경의 ‘지금은 사랑할 시간’(5) “시간이 없어” 대학로를 거닐다 보면 언제나 드는 생각. 서울대병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의 공간이 뚜렷이 나뉘어 있구나. 한쪽은 생기발랄한 음악과 문화의 향기가 물씬 나는 거리 공연, 젊은이들의 활기찬 걸음으로 메워져 있고, 한쪽은 육신의 고통, 미래를 알 수 없는 근심, 신음 소리 등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리쬐는 햇살의 양은 동일한데 이편과 저편의 기운은 건널 수 없는 협곡이 가로놓인 것처럼 다르다. 나 역시 이편과 저편이 확연히 다르다. 이편에서 돌아가는 나의 분주한 일상은 순식간에 나를 해치워야 할 일들로 몰아간다. 빨리, 신속하고 정확하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그러다 도엽에게 문자를 보내거나 도엽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 때면 말로 .. 2015. 9. 18. 가을이 홀로 산책하는 소리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1) 가을이 홀로 산책하는 소리 가을 바람이 창문 넘어 허공을 그득 채우더니 이내 흔적없이 방을 비웠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존재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 뜨겁던 여름의 기억은 이렇게 소멸되어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무력하게 추방당하고 만 것 같은 여름은 또다른 여름을 준비하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어떤 계절에도 승리와 패배는 없습니다. 각기 자신의 할일을 열심히 하면서 머물러 있다가 홀연 종적을 감출 뿐이지요. 그래서 계절마다 우리는 그리움을 간직합니다. 그런 애틋함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세월은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풍경을 그려나가는 것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면 몸은 쇠해지기 마련이고 몸이 쇠하면 영혼조차 흔들립니다. 그러나 초월에 대.. 2015. 9. 16. 이 사랑 노래, 질펀하도다 이 사랑 노래, 질펀하도다 아주 가끔 성서를 들출 때가 있다. 물론 종교적 열심이 아닌 텍스트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만, 어쨌든 성서를 읽으며 나름의 마음공부를 한다. 그런데 성서는 꽤 야한 구석이 있다. 아담과 하와의 삶이 그렇고, 솔로몬 왕이 사랑한 아리따운 여인 이야기도 제법 농밀하다. 그런가 하면 그 옛날 시간에 봤던 삼손과 데릴라의 사랑 아닌 사랑도 은밀한 이야기 천지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성서는 에로티시즘으로 가득한 책이다. 《성서의 에로티시즘》은 ‘성서에 잠입한 에로스의 그림자’를 추적하는 책이다. 물론 에로스 혹은 에로티시즘이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대놓고 말하기 뭣한 주제다. 지은이의 말에 따르면 에로스는 ‘수상한 부담 덩어리’이고, 에로티시즘은 ‘신앙과 경건의 이름으로 자랑스레 내세우기 .. 2015. 9. 16.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에로스의 묵은 정념을 일깨우는 일상적 에로티시즘이야말로 숨 막히는 현대문명의 두터운 금기를 성찰하고 그것을 과감히 위반하는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생명의 숨구멍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비평의 풀무질이다.”(7-8쪽) “이 책이 성서의 해석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관점, 하나 됨을 갈망하는 인간의 꿈이라는 관점, 요컨대 생태적인 창조론의 관점을 좀더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9쪽) 1. 어깨 품이 넓은 비단옷을 입은 한 청년이 무릎을 꿇은 채 두 팔로 땅을 짚고 있다. 소맷자락을 걷어 올려 드러난 그의 팔은 미끈하고 든든하다. 살짝 드러난 초록색 바지가 고급스러워 보인다. 눈은 황홀경에 빠진 듯 반쯤 감겨 있고, 입술이 조금 벌어져 있다. 그는 연못에 비친 자기.. 2015. 9. 16. 진정성에 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2) 진정성에 대하여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웃과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그 다음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말도 아니고 이웃과 타인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다. 이 둘은 언제나 같이 간다. 같이 감으로써 서로를 보완하고 고쳐주고 완성시킨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먼저는 자신을 아는 것이고 그 다음이 자기 자신에 기반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이때의 실천이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우러나는 육친(肉親)적 사랑이다. 육친(肉親)이란 곧 내 몸이다. 아빠가 너희를 사랑하듯,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듯, 너희는 곧 우리의 몸이다. 누가 자기 몸을 이 세계의 전부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이니 억.. 2015. 9. 16. 성서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1) 곽건용의 ‘짭조름한 구약 이야기’(32) 성서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1) - 정말 소돔은 그래서 심판받았을까? - 창세기 19:1-11 에스겔 16:49-50 동성애와 한인교회 개신교회에서 동성애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냥 적당히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한국 개신교인들은 동성애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전에 단칼에 ‘죄’라고 규정합니다. 한국 개신교인들은 ‘차별금지법’ 전체를 강력하게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하는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미국에서는 지난 6월에 연방대법원이 동성 간의 결혼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후로 한인교회들이 그 결정에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또 3월에 미국장로교(.. 2015. 9. 16. 성서의 ‘에로티시즘’이 피어난 꽃자리 성서의 ‘에로티시즘’이 피어난 꽃자리 1.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이 몸과 맘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아갈 때 그곳에 생명력과 기쁨이 있다.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명력과 기쁨, 누구에게나 간절하다. 그래서 그 욕망과, 욕망이 추동하는 몸과 맘은 경계를 넘어선다. 어떤 때 경계선은 허용되는 금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라고 물으면 “꽃 찾으러 왔단다”로 답하며 오고가는 아이들 놀이의 금은 즐겁게 오가는 경계다. ‘위반자’를 환영하는 금이다. 즐겁고 유쾌하며, 그 사이 은근한 짜릿함도 있다. 그러나 금기의 국경도 있다. 개인이, 사회가, 나라가, 역사가, 아니 영원이 거룩함의 이름으로 불침(不侵)의 경고 푯말을 붙여 놓은 터부의 경계. 금기의 경계 저 편에는, 엄중 경고의 푯말을 .. 2015. 9. 15. 하나님이 버린 폐석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3) 하나님이 버린 폐석 “주(主)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미 너로 내 백성(百姓) 중(中)에 살피는 자(者)와 요새(要塞)를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그들은 다 심(甚)히 패역(悖逆)한 자(者)며 다니며 비방(誹謗)하는 자(者)며 그들은 놋과 철(鐵)이며 다 사악(邪惡)한 자(者)라 풀무를 맹렬(猛烈)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鍛鍊)하는 자(者)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惡)한 자(者)가 제(除)하여지지 아니하나니 사람들이 그들을 내어버린 은(銀)이라 칭(稱)하게 될 것은 나 여호와가 그들을 버렸음이니라”(예레미야 6:27-30). 자신을 쥐라고 생각하는 청년이 있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청년은 그.. 2015. 9. 15. 신앙생활이 성서의 ‘세속’과 만날 때 의 종횡서해 신앙생활이 성서의 ‘세속’과 만날 때 -《성서의 에로티시즘》의 저자 차정식 교수 인터뷰- 편집자 주/ 이 기사는 도서출판 의 김성민 대표께서 SFC 편집장 시절 인터뷰하여 에 실은 내용입니다. ‘성서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를 차정식 교수만큼 적절하게 풀어낼 사람은 드물다. 그의 문장들은 깊이 있는 신학적 해석에 텍스트를 바라보는 에로틱한 상상력이 함께 공명한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날카로운 분석은 혀를 차며 감탄할 정도고, 끊임없이 쏟아 내는 화려한 수사학은 짧은 비명이 튀어나올 정도로 경이롭다. 냉랭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이렇게도 한 문장에 함께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에로티시즘에 대한 선입견을 관능적 육체의 미학으로 바뀌어내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런 주제는 기독.. 2015. 9. 15. 이전 1 ··· 244 245 246 247 248 249 250 ··· 2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