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와 천일야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0)

 

은하철도와 천일야화

 

 

서울과 평양, 동경과 베이징이 하나로 이어져서 우리의 삶 속에서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건 우리말과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가 소통의 능력으로 보다 자연스럽게 나누어졌던 때의 풍경입니다. 다만 그것이 일제시대의 역사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동아시아는 하나의 생활권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동아시아는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들어서면 주춤거리게 됩니다. 돌아가야 하는 길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은 북경을 거쳐 평양을 갑니다. 하얼빈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원산에서 동경을 가는 것은 왠지 까마득합니다. 오사카에서 신의주로 가는 통로도 단절된 지 오래입니다.

 

서울역에서 철로로 한참을 달려 압록강을 건너 러시아 평원으로 가는 길은 분명 막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외곽만 있고 그 중심이 동맥경화증에 걸린 육체처럼 사방이 차단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체증이 걸린 한반도입니다. 이걸 뚫어내는 작업은 그러나 오랫동안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 단죄되어왔습니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라는 구호는 4.19 학생혁명 이후 전개된 정국의 핵심에 꽃인 깃발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통일의 길로 가지 않는 한 기본적인 한계에 봉착한다는 깨우침이 만들어낸 외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통찰력 풍성한 구호는 허황된 이상주의와 순진한 청년들의 오도된 주장으로 지탄받았습니다.

 

 

 

 

이미 1200년 전인 8세기 신라의 고승 혜초가 중국을 지나 저 머나먼 서역으로 길을 떠나 기록한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이 나라가 한반도의 반쪽에 갇혀서 세계를 향하는 몸짓을 하는 것은 그래서 기형적입니다. 자기 땅의 반쪽과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서 대륙과 바다를 꿈꾸듯이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습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그렇습니다. 그건 다만 철마의 소망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끊어진 철도가 이어지는 것은 끊어졌던 우리의 마음들이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기차를 타고 스쳐 지나며 보게 되는 우리의 정겨운 산하는 남과 북이 하나의 민족임을 거듭 거듭 확인하는 과정일 겁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남과 북이 철도로, 육로로 이어져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대륙과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와 유럽을 하나로 묶어 가리키는 유라시아가 한반도와도 하나로 엮인 지구촌의 현실인 것을 절감할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무한대로 자라날 것이며, 은하철도를 타고 서울에서 밤이 깊어가는 바그다드로 가는 천일야화(千一夜話)도 꿈꾸게 될 것입니다.

 

남북으로 오가는 철마, 그 위에 우리의 새로운 꿈이 성숙하게 될 겁니다. 문학과 음악, 영화와 연극, 그리고 시와 그밖에 놀라운 축제의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이 기쁘게 예감됩니다.

 

김민웅/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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