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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0) 고마움 담임목사실 화장실 창문 쪽에는 다육이 화분이 두 개 있다. 모두 세 개였는데 지난여름을 지나며 한 개는 죽고 말았다. 물을 너무 안 주어 그런 것인지 많이 주어 그런 것인지 시들시들 거리다가 말라버리고 말았다. 주인의 고르지 못한 관심 속에서 그래도 두 개의 다육이는 잘 살아주고 있다. 오늘 아침 화장실에 들어가니 다육이 하나가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유난히 맑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며칠 전의 일이 떠올랐다. 다육이를 보니 힘이 없는 것 같아 물을 준 적이 있다. 그 물을 먹고 다육이는 저리도 윤기 있게 생기를 되찾은 것이었다. 그래야 물 한 모금, 저만한 고마움도 드물겠다 싶다. 2019. 11. 23.
꽃자리 신동숙의 글밭(3) 꽃자리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제가 살고 있는 집과 작은 마당, 집 앞 강변의 풍경들입니다. 글감도 주로 일상의 소소하고 흔한 모습을 담다보니 사진도 그에 어울리는 소박하고 때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습들이 대부분입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건, 손톱보다 작은 풀꽃, 땅을 구르던 낙엽 한 장도 사진으로 담아 놓고 보면은 이렇게 예뻤던가 싶어 새로운 눈을 뜨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답니다. 눈 여겨 보는 일. 아무리 작고 하찮은 대상도 마음을 기울이고 눈 여겨 보아주면 아름다운 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사진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며칠전에 벗님들의 포스팅을 읽던 중,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한 장 있었습니다. 적힌 이름을 보니 분홍 동백꽃. 복사꽃보다는 연하고 매화꽃보다는.. 2019. 11. 22.
지지 못한 지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9) 지지 못한 지게 북콘서트가 있어 원주를 다녀왔다. 원주청년관과 하나복강원네트워크가 함께 주관하는 행사였다. 여전히 원주청년관 지하의 는 친근하게 느껴졌다. 목회자들과 교우들, 독서모임에 속한 이들이 함께 참석을 했는데, 오랜만에 대하는 얼굴들도 있어 반가운 마음이 더욱 컸다. 처음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DMZ를 걸은 이야기를 담은 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야지 했는데, 로 바꾸게 되었다. 몇 명이 참석할지를 알지 못하는 터에, 출판된 책 중에서 거의 판매가 끝난 를 구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자연스럽게 단강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마침 단강도 원주권에 속한 마을, 그런 점에서는 일리 있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예배당이 없던 외진 마을, 내게는 첫 목회지, 창립예배.. 2019. 11. 22.
시詩 밥 신동숙의 글밭(2) 시詩 밥 ... 설익은 하루를 살아온 후 혼자 앉은 고요한 밤 아쉽고 부끄런 마음 걷어내고 무표정한 일들 걷어내고 밑바닥까지 내려갑니다 보물찾기 하는 아이처럼 그래도 바닥엔 누룽지 같은 감동이 눌러 붙어 있어서 돌돌돌 긁어 모으니 시밥 한 그릇은 나옵니다 2019. 11. 22.
줍기의 고결함 신동숙의 글밭(1) 줍기의 고결함 가로수 은행잎이 쪽빛 가을 하늘 가득 노랗게 피었습니다. 무딘 가슴까지 환한 노란빛으로 따뜻해져 옵니다. 어제 내린 가을비가 재촉하는 바람에 도로에는 일찍 떨군 은행잎이 노랗게 피어 폭신한 융단길을 내어줍니다. 너무나 많아서 일까요. 한 잎 주워서 더 가까이 손으로 만져보려는 마음일랑 접어둔채 그저 가던 걸음을 재촉할 뿐입니다. 인도로 내려앉은 은행잎은 발길에 소리 없이 밟히지만, 어쩌다 차도로 내려앉은 은행잎은 어김없이 짓이겨져 바람에 무겁게 날리울 뿐입니다. 어디로 어떻게 떨어져 생에 마지막 빛깔을 피울지는 바람에게 물어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노란빛으로 환했던 마음이 땅을 보며 걷는 동안에는 안쓰러움으로 그늘이 집니다. 땅으로 깔리는 그림자처럼. 하지만, .. 2019. 11. 21.
할망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8) 할망구 민영진 선생님의 팔순을 맞아 몇 몇 지인들이 모여 식사를 했다. 가볍고 조촐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선생님 내외분을 뵈었다. 팔순을 맞은 소감을 여쭙자 뜻밖의 이야기를 하신다. 할망구 이야기였다. 71세를 맞았을 때 누군가가 ‘망팔’을 맞으셨다며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望八’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으로 71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81세는 ‘망구’라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는데, 가벼운 상상은 맞았다. ‘望九’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로 81세를 이르는 말이었다. ‘망구’에 이어진 말이 ‘할망구’였다. 설마 할망구가 망구에서 왔을까 했는데, 정말로 그랬다. 할망구라는 말은 망구에서 온 말이었다. 익숙한 말 할망구가 낯선 말 망구에서 왔다는.. 2019. 11. 20.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7) 라면이 일으키는 사랑의 파장 선배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를 방문하여 대화를 마치고 막 헤어지려 할 때, 선배는 우리를 예배당으로 안내했다. 추수감사절을 지낸 제단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제단의 불을 켜자 제단에 쌓여 있는 라면이 보였다. 제단으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상표와 크기가 다른 라면 박스들이 나란히 쌓여 있었는데, 그 양이 상당했다. 유심히 보니 회사는 달랐지만 모두가 컵라면이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대부분의 교회가 과일을 드리는 것에 비해 선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는 몇 년 전부터 라면을 드리고 있다. 노숙자 사역을 하는 목사님에게 라면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데,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교우들도 이제는 뿌듯한 마음으로 참여를 한다고 했다. 마침 감사절인 전날 비가 .. 2019. 11. 20.
개 같은 세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6) 개 같은 세상 심방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왔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어느 샌지 지나칠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다. 압권은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이야기였다. 직장 상사를 성토하는 자리에서 단연 1등을 한 내용이 있단다. 그것도 반려동물과 관련이 있었다. “직장 상사 애완견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 있어? 가보니까 영정 사진에 강아지 사진이 떡하니 올라가 있는데,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어 난감하더라.” 그렇게 시작하는 내용이었다는데, 그 말 앞에 어느 누구도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석한 교우 중에는 공무원인 교우가 있었다. 그가 뜻밖의 규정을 들려주었다. 애완동물이 죽으면 처리하는 규정.. 2019. 11. 18.
이슬 묵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4) 이슬 묵상 가을로 접어들며 하루 한 꼭지씩 이어오고 있는 글이 있다. 이슬에 관한 글이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면 공기 중에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로 맺힌다. 애써 골라 자리를 찾은 것인지 하필이면 풀잎이나 꽃잎 끝에 아슬아슬하게 맺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아찔하게 한다. 게다가 수명도 짧다. 아침 해가 뜨면 어느 샌지 사라진다. 이슬이 어느 순간 생겼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세상에 누가 있을까. 언제 왔다가 언제 가는지를 모르는 신비한 걸음, 이슬은 그런 존재지 싶다. 될 수 있으면 가장 짤막하게 쓰려 하는 것은, 그것이 이슬과 어울린다 싶기 때문이다. 어찌 이슬에 군더더기가 있겠는가. 맺히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눈물겨울 만큼 짧은 순간이다. 사.. 2019. 1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