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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난다 신동숙의 글밭(36) 새가 난다 먼 하늘, 새가 난다 위로 아래로 위로 아래로 날개를 평등하게 펼치고 단순함 안에서 마음껏 난다 날개를 바람에 맡기고 진리 안에서 아이처럼 난다 햇살 안에선 한 점 별빛으로 달빛 아래로 고이 접은 꽃잎은 작은 둥지가 집이다 부리 끝에 감도는 훈기 부푼 가슴엔 하늘을 품는다 깃털 끝이 등 뒤로 흐르는 것은 꽁지깃이 가리키는 한 점은 마음 속 먼 하늘 그 너머의 하늘인지도 모른다 2019. 12. 21.
얼마나 다르지 않은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7) 얼마나 다르지 않은가 어느 날 강원도에서 목회를 하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근에서 농부를 짓는 이가 아직 못 판 콩이 있는데, 팔아줄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강원도 서리태는 타 지역의 콩보다 품질이 우수한데, 타 지역과 값 차이 없이 콩을 내겠다는 것이었다. 교회 여선교회에 이야기를 했고, 콩 한 가마(80kg)를 사기로 했다. 콩은 1말씩 10자루에 담겨 전해졌는데, 상태도 좋았고 무게도 후했다. 사실 곡식을 살 때는 사는 사람만 좋으면 안 된다. 농사는 그냥 짓는 것도 아니고, 농사짓는 수고를 생각하면 배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콩 값을 보내고 나서 연락을 하자 형이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콩을 낸 이가 내 초등학교 동창의 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름을 대.. 2019. 12. 20.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신동숙의 글밭(35) 아들 입에 달라붙은, 욕(辱) 4학년이 된 아들에겐 갈수록 늘어나는 게 있답니다. 먹성과 욕(辱)이랍니다. 어디서 배운 건지, 어디서 들은 건지 아주 입에 찰싹 달라붙은 욕은 떨어질 줄을 모른답니다. "수박을 먹을 때는 씨발~라 먹어어" "시바 시바 시바새키" "스파시바" 욕은 아주 신나는 노래가 되어 흥까지 돋웁니다. 해학과 풍자의 멋을 아는 한국 사람 아니랄까봐요. 그럴수록 엄마의 마음도 같이 기뻐해야 되는데, 도리어 점점 무거워만집니다. 뭔가 바르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테지요. 엄마의 잔잔한 가슴에 마구 물수제비를 뜨는 아들의 욕. 참, "스파시바"는 욕이 아니라며 능청스레 당당하게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러시아 말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이라면서요. 그러면서도 입에.. 2019. 12. 20.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신동숙의 글밭(34)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고흐. 그가 남긴 그림과 편지글들은 내 영혼을 울린다.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로 내 가슴을 물들인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후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으나, 그 시대가 감당하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나 뜨거웠는지도 모른다. 고흐가 가슴에 품은 건 무엇인가?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했는지. 그의 그림과 글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뿌리 깊이 고뇌하는 한 영혼과 만난다. 눈 오는 밤, 조금은 쓸쓸한 이 겨울에 어울리는 한때의.. 2019. 12. 19.
마지막 헌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6) 마지막 헌사 음악회를 준비하며 적잖은 문화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모인 자리에서 음악회 소식을 알렸을 때, 교역자들의 반응이 무덤덤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아니, 박인수 씨가 온다니까!” 하며 강조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30대인 부목사와 전도사들은 박인수라는 이름을 몰랐다. 이동원도 몰랐고, ‘향수’라는 노래도 몰랐다.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싶은 것은 내 생각일 뿐,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찾아들던 당혹스러움은 참으로 컸다. 박인수 씨가 찾아와 노래를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까 생각했던 것은 세대차를 고려하지 않은 쉬운 생각이었던 것이다. 음악회가 열리는 오후,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이 있을 터이니 인사를 해야지 싶어 예배당 로비에 .. 2019. 12. 18.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5)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정릉지역 이웃들과 함께 하는 음악회가 열리는 주일이었다. 음악회의 주인공인 박인수 교수님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을 했다. 음악회는 오후 2시 30분 시작인데, 아침 10시쯤 도착을 한 것이었다. 11시에 시작하는 주일낮예배를 함께 드리려고 등촌동에서 택시를 탔더니 생각보다 일찍 도착을 한 것이라 했다. 조용한 방 기획위원실로 안내를 하고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박교수님이 정릉에서 멀지 않은 미아동교회 출신이라는 것, 가수 이동원과 부른 ‘향수’ 이야기, 가요를 부름으로 겪어야 했던 불편과 불이익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궁금했지만 알 길 없었던 일들을 묻고 들을 수가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간이 되어 먼저 일어나야 했다. 잠.. 2019. 12. 18.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신동숙의 글밭(33) "어디 있어요?", 고독의 방으로부터 온 초대장 잠결에 놀란 듯 벌떡 일어난 초저녁잠에서 깬 아들이 걸어옵니다. 트실트실한 배를 벅벅 긁으며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눈도 못 뜨고 "아빠는?" / "아빠 방에" "누나는?" / "누나 방에" "엄마는?" / "엄마 여기 있네!" 그렇게 엄마한테 물어옵니다 아들이 어지간히 넉이 나갔었나 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살풋 웃음이 납니다. 저도 모르게 빠져든 초저녁잠이었지요. 으레 잠에서 깨면 아침인데, 학교에 가야할 시간이고요. 그런데 눈을 뜨니 창밖은 깜깜하고 집안은 어둑합니다. 잠에서 깬 무렵이 언제인지 깜깜하기만 할 뿐 도저히 알 수 없어 대략 난감했을 초저녁잠에서 깬 시간 밖의 시간. 해와 달이 교차하는 새벽과 저녁은 우리의 영혼이.. 2019. 12. 18.
두 개의 걸작품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4) 두 개의 걸작품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목양실 탁자 위에는 두 개의 소품이 놓여 있다. 소품이라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장인이 만든 걸작품으로 여긴다. 하나는 등잔이다. 흙으로 만든 둥그런 형태의 작은 등잔이다. 등잔은 그냥 보기만 하는 액세서리가 아니어서 실제로 불을 켠다. 누군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등잔을 켜곤 한다. 맑게 타오르는 불은 마음까지를 환하게 한다. 등잔은 지난해 초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이다. 포틀랜드에서 말씀을 전하며 만난 목사님이 이후 이어질 일정 이야기를 듣더니 한 수도원을 소개했다. 켄터키 주에 가면 겟세마니 수도원을 꼭 방문해 보라는 것이었다. 1848년에 설립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수도원 중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2019. 12. 17.
딴 데 떨어지지 않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3) 딴 데 떨어지지 않네 희끗희끗 날리는 눈발을 보다가 옛 선시 하나가 떠올랐다. ‘호설편편 불락별처’(好雪片片 不落別處), 이성복 시인은 그 말을 ‘고운 눈 송이송이 딴 데 떨어지지 않네’로 옮겼다. 시도, 번역도 참 좋다. 내리는 눈을 이렇게도 보는구나 싶다. 언덕에 부서지는 눈/백중기 출처 폴아저씨의 오두막 송이송이 고운 눈이 내리면 세상 어디 따로 딴 데가 있을까, 고운 눈 닿는 곳마다 고운 곳이 될 터이니 말이다. 하늘의 은총과 평화, 이 땅 어처구니없을수록 고운 눈으로 내리시길! 2019.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