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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몽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5) 검과 몽치 그 때 그 순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둠을 밟고 조심스레 다가오는 한 무리들, 그들의 손엔 검과 몽치가 들렸다. ‘검과 몽치’라는 말은 ‘칼과 몽둥이’라는 말보다도 원초적이고 음험하게 들린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은 검과 몽치만이 아니었다. 등과 횃불을 빠뜨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빛으로 오신 분을 붙잡기 위해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과 횃불을 밝힌 채 다가온다. 제대로 정제되지 않은 기름에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일까, 그 모든 것에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보태진다. 횃불보다도 더 강렬했을 눈빛들, 예수가 붙잡히던 그 밤 그 동산에는 온통 광기가 가득하다. 예수의 말씀대로 난폭한 강도를 잡는 현장과 다를 것이 없다. 생각해 보면 누구나 다 자기.. 2019. 12. 29.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 신동숙의 글밭(44)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 허공을 떠도는 외로운 말씀에게 자연을 단짝 친구로 선물합니다 먼지처럼 폴폴 발에 밟히는 말씀에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땅 고독의 방을 선물합니다 메마른 사막 길을 잃고 헤매는 말씀에게 눈물이 고여 흘러 넘칠 빗물 침묵의 기도를 선물합니다 믿어주지 않아 답답한 말씀에게 언제나 푸른 하늘 산들바람 진리의 자유를 선물합니다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말씀에게 '빛이 있으라' 따뜻한 햇볕 사랑의 눈길을 선물합니다 외로운 말씀에게 말씀의 주인이 짝지어 주신 말씀과 자연은 단짝 친구랍니다 2019. 12. 29.
나는 아직 멀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4) 나는 아직 멀었다 하필이면 암호가 입맞춤이었을까? 유다 말이다. 예수를 넘겨주며 무리에게 예수를 적시할 암호로 미리 짠 것이 입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예수를 알릴까를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 끝에 찾아낸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만나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반가움과 존경의 뜻이 담긴 행동,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었다. 껄끄러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그것이 유다의 제안이었다면 그의 머리가 비상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두려움이 읽힌다.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라고 무리들에게 말한다. 단단히 끌고 가라는 말을 왜 덧붙였을까? 예수를 놓칠까 걱.. 2019. 12. 29.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신동숙의 글밭(43) '기뻐하라'의 의미를 묵상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 5:16-18) 제 기억 속의 세월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입니다. 잊혀지지 않으며, 잊혀져선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 땅 어디에선가 그와 같은 불합리한 일들이 모습을 달리하고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닷속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유족들의 가슴 속으로 따뜻한 햇살 한 줄기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분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따뜻한 말 한 마디, 따뜻한 눈길이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잔잔하게 일렁이기를 소망합니다.. 2019. 12. 28.
열둘 중의 하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3) 열둘 중의 하나 예수를 팔아넘기는 가룟 유다를 두고 4복음서 기자는 모두가 같은 표현을 쓴다. ‘열둘 중의 하나’라고 말이다.(마태복음 26:14, 47. 마가복음 14:10, 20, 43. 누가복음 22:3, 47. 요한복음 6:71) 예수를 배반하여 팔아넘긴 자는 예수와 무관한 자가 아니었다. 예수를 모르던 자도 아니었고, 믿지 않던 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와 가장 가까이에서 지냈던 가장 가까웠던 자였다. 돈주머니를 맡겼으니 어쩌면 가장 신뢰받던 자였다. 분명한 것은 열두 중의 하나였다. 열두 중의 하나, 그 하나로 인해 나머지가 덩달아 부끄러워지는 걸 감내하면서 복음서 기자들이 그 일을 기록으로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약속이나 한 듯 굳이 덮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 2019. 12. 28.
밥 한 톨 신동숙의 글밭(42) 밥 한 톨 밥 한 톨도 흘리지 마라 밥그릇 주변을 돌아보고 밥 한 톨도 남기지 마라 밥그릇 속을 들여다보고 2019. 12. 27.
폭력에 굴복하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2) 폭력에 굴복하는 것 “현대생활의 분주한 활동과 스트레스는 본질적인 폭력의 한 형태인데,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형태일지도 모른다. 상반되는 무수한 관심사에 정신을 파는 것, 수많은 요구에 굴복하는 것, 너무나 많은 사업에 관계하는 것, 모든 일에 모두를 돕기를 원하는 것 따위는 어느 것이든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폭력에 협력하는 것이다. 행동주의자의 광분은 그가 평화를 위해 하는 사업의 효과를 사라지게 만든다. 광분은 평화를 이루는 그의 내적 능력을 파괴한다. 풍부한 결실을 가져오는 내적 지혜의 뿌리가 광분 때문에 죽어버려 그의 일은 결실을 맺을 수 없다.” 에서 만난 한 구절이다. 정작 이런 말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이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 2019. 12. 26.
내 마음의 방 신동숙의 글밭(41) 내 마음의 방 한희철 목사님의 -인우재- 내 마음의 방은 흙과 나무와 돌로 지은 산새소리에 새벽잠 깨는 작고 작은 흙방입니다 방석 하나 탁자 하나 촛불 하나 책 몇 권 차와 찻잔 세 벌 이부자리 한 벌 옷 두어 벌 갈무리 할 벽장 고요히 머무는 고독과 침묵의 방 빈 방에는 사랑과 평온이 나를 비운 만큼 하나님으로 충만한 내 영혼이 비로소 쉼을 얻는 방입니다 2019. 12. 26.
꽃으로 피어나기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1) 꽃으로 피어나기를 지인들과 함께 제주도를 방문하였을 때의 일이다. 곶자왈을 들러 나오는 길에 작은 식물원을 방문했는데, 초입에 놓여 있는 한 장식물에 눈이 갔다. 널찍한 바위 위에 세 켤레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신발장에 신발이 나란히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보니 가족의 신발이었다. 가운데에 놓인 구두는 아빠의 신발, 그 옆에 놓인 것은 엄마의 신발, 아빠 구두에 기대 있는 작은 분홍색 운동화는 필시 어린 딸의 신발이었다. 식구들을 위해 일하는 아빠는 늘 구두 끈을 질끈 동여맸을 것이다. 살림살이에 분주한 엄마는 늘 신발 끈을 묶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호기심이 가득한 아기는 늘 종종걸음, 찍찍이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신발에는 식구들이 보내는 시간이 담겨 있지 싶.. 2019.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