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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 도청하며 “벽에 소변 보는 자”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20) 해킹, 도청하며 “벽에 소변 보는 자” 좀 지저분한 말이 되어 주저스럽지만, 서서 오줌 누는 이들 때문에 벽들이 애꿎은 수난을 당한다. 벽에다 대고 함부로 소변을 보는 것은 남자하고 개뿐이다. 아직도 서울의 으슥한 골목길 벽은 남자들의 공중 화장실이 되기 십상이다. 소변금지를 알리는 구호도 갖가지다. 어떤 곳에는 가위를 그려놓고 위협을 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개 이외는 여기에 소변을 보지 마시오”라고 써서 주정뱅이 오줌싸개들을 개로 깎아 내리기도 한다. 그래도 노상방뇨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또 이런 것은 동서와 고금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히브리어에서 사내를 경멸하여 일컬을 때 “벽에다 대고 오줌 누는 놈”이라고 한다. 즉 “서서 오줌 누는 놈”이.. 2015. 7. 16.
산사(山寺)의 풍경소리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2) 산사(山寺)의 풍경소리 이라는 제목으로 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는 산사(山寺)에 맡겨진 한 동자승의 성장기와 자연의 흐름이 서로 겹쳐 있는 묘미를 보여줍니다. 아직 그 어린 아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커가게 될 지모를 인생의 계절에서부터 시작해서, 많은 상처와 고달픔을 끌어안고 돌아온 사나이의 현실을 통해 영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희로애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작품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영화의 흥미로운 전개도 전개려니와 연못 한 가운데 서 있는 아름다운 정자 같은 사찰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환경의 아름다움 도 크게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풍경과 함께 인간사의 온갖 우여곡절을 담아내려 한 감독의 기량은 그래서 세계적인 주목도 아울러 받았습니다. “.. 2015. 7. 14.
안 낳는 것인가, 못 낳는 것인가?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8) 안 낳는 것인가, 못 낳는 것인가? “1.21” 2014년 한국에서 임신 가능한 여성들이 평생 출산하게 될 아이의 숫자이다. 저 정도 출산율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2005년 1.08로 최저치를 찍은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상승 국면 일변도는 아니다. 2007년 1.25를 찍은 뒤 다시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2012년 다시 1.30으로 최고점에 오른 뒤 다시 내려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21”이라는 수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우선 출산율 저하는 경제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 .. 2015. 7. 13.
다윗, 그는 악사인가 전사인가? 다윗 이야기(3) 다윗, 그는 악사인가 전사인가? 1. 이제 본격적으로 다윗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다윗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그는 구세주 예수의 조상이다. 마태복음 1장 1절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는 이러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 7장 42절은 “성경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날 것이요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라고 전하며, 로마서 1장 2-3절은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으며…”라고 적었고,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는 예수가.. 2015. 7. 12.
밥을 제대로 모시면 그것이 곧 예배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7) 밥을 제대로 모시면 그것이 곧 예배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만물을 사랑하시되 피조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으로 여겨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과 똑같은 사랑으로 만물을 사랑하십니다. 임낙경 목사님이 섬기는 강원도 화천의 시골교회에서 소박한 밥상을 받았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수고가 어우러져 공들여 빚어진 밥상. 밥을 다 먹고 났는데도 입안에는 그윽한 산야채의 향이 고여 있었다. 빈 그릇을 부엌으로 가져가는데, 부엌 입구에 ‘밥’에 관한 글귀가 적힌 족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 밥이 우리에게 먹혀 생명을 살리듯 우리도 세상의 밥이 되어 세상을 살리게 하소서. 한 방울의 물에도 .. 2015. 7. 10.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6) 애굽의 어머니들, 그들도 어머니였다(1) 1. “애굽에 큰 부르짖음이 있었다”(출애굽기 12:30). “부르짖음”은 울부짖음이다. 울부짖음은 절규(絶叫)이다. 그리고 그냥 부르짖음이 아니라 큰 부르짖음이란다.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울부짖는가? 울부짖음의 주체가 누구인가? 원래 애굽에 부르짖음이 있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애굽기 2:23-24). 성경기자는 갓 낳은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야 했던 어머니들의 부르짖음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 울부짖음도 만만치 않.. 2015. 7. 9.
비만의 도시가 허기진 까닭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21) 비만의 도시가 허기진 까닭은 날이 갈수록 비만해져만 가는 도시를 남모르게 허기지도록 하는 것은, 결국 산과 나무와 강, 그리고 하늘의 별에서 그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일 수 있습니다. 그 고독은 무서운 속도로 시간을 삼키는 분주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어느새 시(詩)를 잃어버린 시인의 영혼이자, 생계를 위해 화구(畵具)를 팔아버린 화가의 눈매를 닮아 있습니다. 때로 무엇으로도 좀체 갈증을 식힐 수 없는 여름의 난폭한 야만의 밤은 길들일 수 없는 맹수처럼 우리의 휴식을 소리 없이 습격하고, 동창(東窓)이 밝아오는 새벽녘에야 줄어드는 그림자를 이끌고 비로소 물러서는 기척을 냅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인사도 없이 황망하게 사라져가는 밤의 뒷모습은 처음의 무례함과는 달리,.. 2015. 7. 9.
여호와를 아는 사람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6) 여호와를 아는 사람 - 전집 3권 『성서 개요』 「사무엘상」 편 - 어디나 높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회생활의 무기가 된다. 사소한 일상의 일부터 죽고 사는 크고 긴급한 일까지, ‘내가 높은 사람을 안다’는 것은 더 쉽게, 더 빠르게, 나아가 나에게 더 유리하게 일을 처리하는 힘이 된다. 최근 어이없게 방역망이 뚫려 안타까운 생명들을 잃고 전 국민을 떨게 했던 ‘메르스 사태’만 보아도 그렇다. 1번 환자(그나저나 사람에게 1번이 뭐냐? 인격체를 호칭하는 방식으로는 참 별로다.) 스스로 ‘메르스 같다’고 자진신고 했다는데, 안이한 탁상행정에 콧방귀로도 안 듣던 보건당국 사람들은 ‘높은 사람을 안다’는 환자의 ‘협박’(?)에 움직였고, 덕분에 더 끔찍하게 확산.. 2015. 7. 9.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7) 한 걸음 속에 인생이 있다 삶이 암담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흐르는 모래 속에 빠져드는 것 같은 아득한 무력감, 마치 절벽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아스라한 공포가 밀려오면 세상은 아연 잿빛으로 변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호기롭게 지내던 시절은 가뭇없이 스러지고 늪과 같은 시간이 시작된다. 그 계기는 다양하다. 예기치 않은 질병이나 사고, 이별의 쓰라림이나 실패가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전혀 계기가 없는 경우도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게오르그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벌레로 변한 자기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늪과 같은 시간을 거쳐 온 한 젊은이의 고백을 들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는 밤마다 찾아.. 2015.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