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 사회'

안 낳는 것인가, 못 낳는 것인가?

by 한종호 2015. 7. 13.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8)

 

안 낳는 것인가, 못 낳는 것인가?

 

 

“1.21”

2014년 한국에서 임신 가능한 여성들이 평생 출산하게 될 아이의 숫자이다. 저 정도 출산율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2005년 1.08로 최저치를 찍은 뒤,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상승 국면 일변도는 아니다. 2007년 1.25를 찍은 뒤 다시 하강곡선을 그리다가, 2012년 다시 1.30으로 최고점에 오른 뒤 다시 내려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1.21”이라는 수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우선 출산율 저하는 경제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 올 것이고, 줄어든 노동자의 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이주민을 대규모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런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다원화·다변화 속도는 상당히 빨라질 것이다. 그 결과 한국도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사회로 접어들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기조를 이루던 많은 것들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각종 채널을 통해 다문화교육을 홍보하고, 또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 그러니까 두 명이 만났으니 적어도 셋 이상은 낳아야 인구가 현상 유지나 증가가 될 터인데, 둘이 만나 겨우 하나 낳을 정도니 인구의 줄어듦은 눈에 본 듯 빤하다. 앞으로 이 때문에 우리 후세들은 취업걱정이 아니라 세금 걱정에 허리가 휠 것이고, 경제인구와 노년계급과의 심리적, 사회적, 계층적, 경제적 갈등은 말할 수 없이 커질 것이다. 아무튼 지속적으로 후속세대들이 태어나 줘야 사회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텐데 타개책 찾기는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정부는 정부대로 낮은 출산율 문제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런데 제시되는 대책은 좀 일변적이다. 즉 보육 및 육아시설 확충, 가임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 확대, 여성들에게 집중되는 육아문제 해결을 위해 남녀 공동 육아 휴직 주기 등 출산율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대부분 사회 경제적 시각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인구에 관한 문제는 사회적 관심분야이긴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사회적이기 이전에 생리적이고 생물적이고 발생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출산율 문제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사회의 문제로만 국한시키지 말고, 보다 총체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우선 통계의 그물에서 빠질 수 있는 경우의 수들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단순히 결과론적인 출산율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임신 시도와 실패에 대한 비율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통계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즉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의 비율과 그들의 성공 비율, 그리고 유산 비율 등등 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두고 출산율 저하의 문제를 살펴야 한다. 그러니까 다들 사는 게 힘들고, 애 키우는 게 버거워서 임신을 꺼리고 있는 것인지, 아이는 갖고 싶고, 또 갖기 위해서 노력하는데도 좀처럼 생기지 않고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아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지금 자신의 삶을 좀 더 즐기고 싶어서인지 좀 더 분명하고 광범위한 통계자료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 후 각각의 통계들이 말하고 있는 의미와 이유를 촘촘히 분석해야 할 것이다. 요즘 한 다리만 거쳐도 어렵지 않게 유산 경험이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아이 키우는 게 힘들다 하더라도 과연 의도적으로 출산을 거부하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출산율과 더불어 유산율 그리고 불임율의 상관관계도 우리는 좀 더 면밀히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후진국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국가의 출산율이 확연히 높다는 것이다. 참고로 2014년 종합 출산율에서 1위는 아프리카 국가인 니제르로 6.89명이었고, 말리(6.16명), 부룬디(6.14명), 소말리아(6.08명), 우간다(5.97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나라의 여성들은 경제적 압박을 덜 받아서 저토록 높은 출산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신체는 생각보다 미묘하고 또 뛰어난 자생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동물의 경우도 스스로 출산율을 조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처한 외부 환경이 열악하다면 오히려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먹을 게 적고, 살기가 힘들어지면 개체 번식에 더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지금 생이 어렵고 고단하다면, 몸은 오히려 ‘지금’을 포기하고 ‘미래’를 준비한다고 것이다. 그런데 먹이도 풍부하고 삶의 조건이 여유로워지면, 의외로 종족번식 활동을 등한시 한다고 한다. 이를 신체가 지금의 환경을 ‘즐기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좀 과한 것일까. 아무튼 이런 동물 관찰의 결과는 의외로 생명체의 출산율은 자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출산의 가능성을 조절해가며 ‘지금 세대’가 ‘미래 세대’를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몸이 지닌 이 미묘한 종족 보존 사이클을 우리 사회 출산율 저하에도 포함시켜 해석해보면 어떨까. 표면의 결과가 때로는 본래의 원인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출산의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며 동시에 몸의 문제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좀 더 중요한 요인들을 잊고 있는지 모른다.

 

이길용/종교학,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