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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가는 향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8) 오래 가는 향기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은 여인을 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알려져서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가복음 14:9)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 2천년 세월을 지난 오늘 우리도 그 여인이 한 일을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향기를 흉내 내는 향수가 있다. 잠깐 있다 사라지는 향기도 있다. 하지만 오래 가는 향기도 있다. 세월이 지나가도 지워지지 않는, 오늘 우리들의 삶과 믿음이 오래 가는 향기가 될 수 있다면! 2020. 1. 3.
햇살이 온다 신동숙의 글밭(48) 햇살이 온다 햇살이 온다 환한 그리움으로 산산이 부서져 땅의 생명 감싸는 당기는 건 가슴 속 해인가 뿌리가 깊어진다 선한 그리움으로 산산이 실뿌리로 땅 속 생명 살리는 당기는 건 지구 속 핵인가 2020. 1. 3.
설거지산을 옮기며 신동숙의 글밭(47) 설거지산을 옮기며 먹고 돌아서면 설거지가 쌓입니다. 식탁 위, 싱크대 선반, 개수대에는 음식물이 묻거나 조금씩 남은 크고 작은 냄비와 그릇과 접시들. 물컵만 해도 가족수 대로 사용하다 보면 우유나 커피 등 다른 음료컵까지 쳐서 열 개는 되니까요. 가족들이 다 함께 한끼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난 후, 빈 그릇들을 개수대에 모으다 보면 점점 쌓여서 모양 그대로 설거지산이 됩니다. 그렇게 설거지산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일도 그와 같지 않을까 하는 한 생각이 듭니다. 하루 동안 우리의 눈과 귀, 의식과 무의식 중에 먹는 수많은 정보들. 읽기만 하고 덮어둔 책 내용들이 내면 속에선 정리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사색과 묵상을 통해 정리되거나 .. 2020. 1. 2.
가라앉은 목소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7) 가라앉은 목소리 송구영신예배를 앞두고 끝까지 망설인 시간이 있었다. 도유식이었다. 두어 달 전 성북지방 목회자 세미나 시간에 강사로 온 감신대 박해정 교수는 교회에서 도유식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 회복되기를 바라는 시간으로 도유식을 꼽았다. 진정한 예배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경험에 의하면 도유식은 참 은혜로운 예식이다. 기름을 이마에 바르는 것은 크게 세 가지의 의미가 있겠다 싶다. 물론 내 짐작이다. 하나는 성별이다. 주님은 모세에게 성막과 성막 안에 있는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바르게 하셨다.(레위기 8:10) 다른 하나는, 치유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아픈 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2020. 1. 1.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신동숙의 글밭(46) 붕어빵 한 봉투와 첫 마음 마당가 복순이 물그릇에 담긴 물이 껑껑 얼었습니다. 얼음이 껑껑 얼면 파래가 맛있다던 친정 엄마의 말씀이 겨울바람결처럼 볼을 스치며 맑게 지나갑니다. 개밥그릇엔 식구들이 아침에 먹다 남긴 삶은 계란, 군고구마, 사료를 따끈한 물에 말아서 부어주면 김이 하얗게 피어오릅니다. 그러면 복순이도 마음이 좋아서 잘도 먹습니다. 거리마다 골목 어귀마다 눈에 띄는 풍경이 있습니다. 추운 겨울 밤길을 환하게 밝히는 붕어빵 장사입니다. 검정색 롱패딩을 입은 중·고등학생이,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선 젊은 엄마가,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퇴근길의 아버지가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서 착하게 기다리는 집. 따끈한 붕어빵 종이봉투를 건네는 손과 받아든 얼굴이 환하고 따끈.. 2020. 1. 1.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6)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내게 천의무봉(天衣無縫)으로 남은 구절 중에는 윤동주의 ‘서시’도 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 지위나 재산 등이 아니라 사소한 것, 의외의 것, 예를 들면 말 한 마디나 어투, 그가 보이는 몸짓이나 태도 등이 그의 존재를 충분히 말할 때가 있다. 윤동주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는데 내게는 이 한 구절이면 족하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했던, 사랑하려고 했던, 사랑과 사랑하려 했던 사이를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얼마 전이었다. 예배당과 별관 사이에 있는 중정에 몇 가지 허름한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교회 안에 있는 비품 중에서 버릴 것들을 .. 2020. 1. 1.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신동숙의 글밭(46) 무말랭이가 먹고 싶다는 딸아이 학교를 가야 하는데 딸아이가 일어날 줄을 모릅니다. 목도 따갑고, 코도 막힌다며 이불을 끌어 안습니다. 학교를 가든 병원을 가든 한 숟가락이라도 떠야 움직일 수 있다고 했더니, 담백하게 끓인 김치찌게를 밀어내고는 삶은 계란만 겨우 집어 먹습니다. 아이들이 열이 나거나 아프다고 하면 동네에 있는 소아과를 갑니다. 진료를 받는 이유는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더 자세하게 알기 위해서입니다. 독감이면 A형인지 B형인지 검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진료 확인서를 제출해야 병결이 인정이 됩니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해열제, 소염제, 소화제, 항생제를 먹지 않고 신종플루와 독감을 지나온 게 어느덧 7년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타미플루는 먹은 적이 없답니다. 양약 대신.. 2019. 12. 31.
수처작주(隨處作主)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65) 수처작주(隨處作主) 벌써 여러 해, 한해가 기울어갈 때쯤이면 이어지고 있는 일이 있다. 선생님 한 분이 카드를 보내주신다. 선생님은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이라는 말 앞에 ‘선생님다운’이라 쓰려다가 그만 둔다. 선생님과 선생님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 같은 민망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말이 오히려 선생님을 거추장스럽게 만든다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늘 자연스럽고 소탈하신 선생님은 필시 그런 수식어를 어색하고 번거롭게 여기실 것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공부하실 때 외에는 강원도를 떠나지 않고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선생님은 강원도를 사랑하신다. 국어선생님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얼, 우리의 문화를 사랑하는 것을 평생 가르치셨고, 몸소 지키셨다. 교장선.. 2019. 12. 30.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신동숙의 글밭(45) 행복한 고독의 사랑방에서 작은 찻잔에 담긴 차 한 잔이 있습니다. 내려오던 햇살은 율홍빛 속에 머물고, 차향은 30년 전 스치운 푸른 바람 냄새를 아련히 기억합니다. 천천히 서너 모금으로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움으로 출렁이던 잔은 빈 잔이 되고, 빈 잔은 하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빈 잔 바닥에 내려앉은 햇살은 한 점 하얀 별빛으로. 없는 듯 계시는 빛의 하나님이 잠시 내려앉아 고요히 머물러 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찻잔에 담긴 찻물을 비우는 순간 얼른 들어차는 하늘처럼 허전한 나를 하늘로 채우길 원합니다. 나의 좁은 창문을 열면, 작고 여린 가슴으로 밀려드는 공허감, 무력감, 가난한 내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길 원합니다. 이제는 알든 모르든 내 안에 있는 나의 연약함과 부.. 2019.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