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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5) 지하도의 냉기, 그리고 도시의 슬픔 지하도를 지나면서 라면 상자로 추위를 막을 준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시울에 아프게 담겨왔습니다. 한 사람이 누워 지낼만한 자리가 머릿속의 허름한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상의 세계에서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해 가는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무력하게 잠겨드는 삶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우는 장면이었습니다. 사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도시의 풍경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 익숙함이 결코 편안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집 없는 이들의 거리 노숙은 어찌 보면 우리에게 하나의 깨우침을 던져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결국 자기 한 몸 누일 공간으로 돌아.. 2015. 11. 19.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을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6)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을까? 남편과 아내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랑 안에서 평등합니다. 하나님이 남자의 옆구리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남자의 머리나 발로 여자를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친절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이브를 지으셨는지 미주알고주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한편으론 고맙기도 합니다. 엉뚱하게 상상해볼 수 있는 널찍한 행간을 남겨두었으니까 말이지요. 유태계 소설가인 엘리 비젤은 소설가답게 ‘미드라쉬’를 자료로 삼아 왜 하나님이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창조했는지,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이브.. 2015. 11. 19.
모두를 취하게 하여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3) 모두를 취하게 하여 “그러므로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甁)이 포도주(葡萄酒)로 차리라 하셨다 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모든 병(甁)이 포도주(葡萄酒)로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하리니 너는 다시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땅의 모든 거민(居民)과 다윗의 위에 앉은 왕(王)들과 제사장(祭司長)들과 선지자(先知者)들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居民)으로 잔뜩 취(醉)하게 하고 또 그들로 피차(彼此) 충돌(衝突)하여 상(傷)하게 하되 부자간(父子間)에도 그러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관용(寬容)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滅)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 2015. 11. 18.
친구됨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친구됨 - 전집 5권 『일기 I』 1935년 일기 - 다음 달은 정상적인 발행이 가능할까, 이런 식으로 과연 조선 땅 전역과 오고 또 올 미래의 세대들에게 성서의 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한치 앞을 모르면서 매달 성실함과 소망으로 이어간 『성서조선』지 발간이 어느덧 10년에 다다를 무렵, 김교신은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간 소록도에서 보내온 문신활의 편지는 김교신 스스로도 고백하듯이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었다.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은 1932년 부산의 감만리나병원을 섬기던 손양원 전도사에게서 성조지를 소개받았다 했다. 전도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해석을 재미나게, 희열에 넘쳐 들었다고. 그러나 성조지의 불순함을 지적하고 ‘이단’이라 핍박하는 무리들에.. 2015. 11. 17.
힘내라, 젊은이들 김기석의 톺아보기(18) 힘내라, 젊은이들 입동이 지난 후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뒤쳐지지 않으려고 재바르게 살다가 마음이 묵정밭으로 변해버린 이들일수록 영문모를 영혼의 헛헛함으로 인해 울적해지는 때이다. 그래서인가? 노란 은행잎이 소복히 쌓인 거리를 걷노라면 그 따스한 노란빛이 마치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쌀쌀한 초겨울 풍경에 눈길을 주다가 이상하게 거리가 살짝 들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 활기가 수능시험을 치른 이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다.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홀가분함으로 거리를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 옅게 화장한 얼굴이 쑥스러운지 서로 바라보며 까르르 웃는 여학생들, 어른들의 세계에 틈입하기 위한 절차인지 염색과 퍼머로 멋을 낸 남학생들,.. 2015. 11. 13.
식민지 정신의 찬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4) 식민지 정신의 찬가 “인도가 영국에 식민지가 되어 안락을 누리고 있으며, 필리핀은 미국에게 통치를 받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서 다들 안전한 생활을 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이 말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미국에서 운영하던 에서 언급한 내용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보다는 서양제국의 식민지, 특히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편이 낫다는 시사를 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의 프린스턴 대학 학위 논문 제목은 이었습니다. 1910년에 발표된 이 논문의 논지는 제국주의 열강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조선의 영세중립이나 국제정치적 균형을 위한 주체적인 선택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중립화였습니다. 이때 중립화는 미국이 조선에 대한 다른 나라의 개입과 간섭을 저지하는 것을 전.. 2015. 11. 10.
빵을 주랴, 자유를 주랴?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5) 빵을 주랴, 자유를 주랴? “여러분이 나를 찾는 것은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6:24-35). 16세기 스페인의 세빌랴 라는 도시에 예수가 나타나셨다. 종교 재판과 마녀 사냥이 판치던 그 곳, 철저한 가난을 부르짖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아, 국왕과 성직계의 미움을 받던 개혁가가 날마다 광장에서 불타 죽던 도시에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그곳 추기경은 당장 예수를 체포하여 지하 감방에 가두고 한밤중에 예수를 찾아와 따진다. 도스또옙스키의 《카라마죠프가의 아들들》에 나오는 유명한 ‘대심문관’ 장면이다. 세빌랴의 추기경이 예수를 설득하는 교리는 이것이다. “자유와 지상의 빵과는 어떠한 인간에게나 양립할 수 없소. 자기네들.. 2015. 11. 10.
어떻게 말과 경주하겠느냐?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2) 어떻게 말과 경주하겠느냐? “여호와여 내가 주(主)와 쟁변(爭辯)할 때에는 주(主)는 의(義)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主)께 질문(質問)하옵나니 악(惡)한 자(者)의 길이 형통(亨通)하며 패역(悖逆)한 자(者)가 다 안락(安樂)함은 무슨 연고(緣故)니이까 주(主)께서 그들을 심으시므로 그들이 뿌리가 박히고 장성(長成)하여 열매를 맺었거늘 그들의 입은 주(主)께 가까우나 그 마음은 머니이다 여호와여 주(主)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主)를 향(向)하여 어떠함을 감찰(鑑察)하시오니 양(羊)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爲)하여 그들을 예비(豫備)하옵소서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地方)의 채소(菜蔬)가 마르.. 2015. 11. 8.
한나, 어머니 되기 위해 어머니 되기를 포기하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7) 한나, 어머니 되기 위해 어머니 되기를 포기하다(2) 1. 모정만리(母情萬里) 모로역정(母路歷程). 한나가 매년 실로 성소에 가서 소리 없는 통곡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나는 확신을 얻고 돌아왔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버텼다. 마침내 한나는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했다. 드디어 어머니가 된 것이다. 한나는 아이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한나가 아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까닭은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사무엘이라는 이름이 꼭 그런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울”이 그 의미에 더 가깝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들으셨다” 또는 표기에 따라 “그의 이름은 엘(하나님)이다”는 의미를 갖는.. 2015.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