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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너희가 처먹어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7) 고기는 너희가 처먹어라 “만군(萬軍)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犧牲)에 번제물(燔祭物)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대저(大抵) 내가 너희 열조(列祖)를 애굽 땅에서 인도(引導)하여 낸 날에 번제(燔祭)나 희생(犧牲)에 대(對)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命)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命)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百姓)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命)한 모든 길로 행(行)하라 그리하면 복(福)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聽從)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自己)의 악(惡)한 마음의 꾀와 강퍅(剛愎)한 대로 행(行)하여 그 등을 내게로.. 2015. 10. 6.
하루씩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5) 하루씩 - 전집 5권 『일기 I』 1930년~31년 일기 - 살다보면 엉겁결에 맡게 되는 일들이 있다. 물론 ‘하기 싫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 상황이 되지 않는데, 공동체의 처한 정황상 ‘독박을 쓰는’ 경우다. 더 우아한 말이 있겠으나 개인에게는 이만큼의 부담이다. 김교신에게는 『성서조선』 편집주간이 된 일이 그러했다. 1930년 5월부터 김교신은 거의 단독으로 잡지의 편집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그동안은 정상훈이 했던 일이다. 나라도 어수선했지만 한창 젊은 나이의 6인이었다. 직업면에서도 가정면에서도 이동이 잦은 시기였다. 양인성은 평북 선천에, 함석헌은 오산에, 류석동은 소격동에서 이렇게 저렇게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성서모임을 열어가며 ‘버티던’ 한중간.. 2015. 10. 4.
청년 예수께 길을 묻습니다 한종호의 너른마당(34) 청년 예수께 길을 묻습니다 “순결한 남자들 저녁노을같이 붉고 곱던 남자들 그들과 함께 한 시대도 저물어 채울 길 없는 끔찍한 날들이 많았다 …길을 떠나려다 문득문득 순결한 남자들 보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뜨거움도 간절함도 없이 살고 있어서 눈물도 절규도 없이 살고 있어서” - , 도종환 역사를 고뇌하고 이상에 자신을 걸고 아무런 계산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런 이들을 다시 보고 싶어하는 시인의 아픔이 절절히 다가옵니다. 시인은 다시 에서 꿈꾸는 새로운 출발을 이렇게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바다로 떠날 일을 꿈꾸지만 나는 아무래도 강으로 가야겠다 가없이 넓고 크고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작고 따뜻한 물소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것 같다 .. 2015. 10. 1.
기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6) 기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그런즉 너는 이 백성(百姓)을 위(爲)하여 기도(祈禱)하지 말라 그들을 위(爲)하여 부르짖어 구(求)하지 말라 내게 간구(懇求)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城邑)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行)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자식(子息)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婦女)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皇后)를 위(爲)하여 과자(菓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神)들에게 전제(奠祭)를 부음으로 나의 노(怒)를 격동(激動)하느니라”(예레미야 7:16-18). 흔한 말처럼 되었지만 ‘기도’(祈禱)는 ‘기도’(企圖)이며 ‘기도’(氣道)이기도 하다.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마음의 소원을 아뢰는 조.. 2015. 9. 30.
“미생(未生)을 위한 철학”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3) “미생(未生)을 위한 철학” 비정규직의 모멸감과 격차사회의 모순을 드러낸 드라마 은 끝났지만, 현실의 미생은 여전히 미생인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일까? 이 드라마를 패러디한 방송 프로의 이름은 이었다. 아예 육안(肉眼)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존재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 시인 이문재의 라는 시의 전문이다. 어쩌면 이리도 고마운 시가 있는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나”라는 존재가, 어느 한 사람에게는 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는 깨달음은 누가 뭐래도 뜨거운 사랑이다. 그 “나”는 우리 모두다. 이.. 2015. 9. 25.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3) 우리의 에드몽 단테스는 어디로 1815년,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는 오랜 항해를 마친 범선이 들어섰습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되었을까 말까한 한 청년이 입항의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물건과 사연을 싣고 온 배를 보기 위해 항구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정세는 아직 불투명했습니다. 엘베 섬에 귀양 간 나폴레옹의 파리 복귀 작전이 비밀스럽게 새어나오고 있었고, 반 나폴레옹 파의 권력은 충분한 민심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국제정세도 나폴레옹의 귀환이 유럽에 새로운 폭풍을 몰고 올 것을 예감하고,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에드몽 단테스. 범선의 진두지휘를 맡고 있던 청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마르세이유에 도착하자마자 병들고 늙은 아버지를 만나러 달려갔.. 2015. 9. 25.
끙끙 앓는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6) 끙끙 앓는 하나님 “너희가 무익(無益)한 거짓말을 의뢰(依賴)하는도다 너희가 도적(盜賊)질하며 살인(殺人)하며 간음(姦淫)하며 거짓 맹세(盟誓)하며 바알에게 분향(焚香)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神)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救援)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可憎)한 일을 행(行)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盜賊)의 굴혈(窟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7:8-11). 주님의 탄식 중에서 그 중 마음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나의 성소에서 나를 멀리 떠나가게 하고 있다”(에스겔 8:6.. 2015. 9. 25.
여정을 향한 용기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2) 여정을 향한 용기 인간은 아득히 오래전부터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평생을 아무런 불만 없이 머물러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금껏 알지 못했던 이들과 만나고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자 하는 열망은 누구도 제지할 수 없는 인생사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때로 그 여정의 과정에 예상할 수 없는 위험이 움츠리고 있다 해도, 그건 이미 떠나기로 작정한 이들의 발길을 막아낼 수 있는 장애물은 되지 못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물론이고, 손오공이 나오는 《서유기(西遊記)》도 모두 일상의 궤도에서 탈출한 존재들의 모험에 찬 열망의 기록이라고 할만합니다. 종교가 인간사를 지배한 시절에는, 라는 이름으로 인간은 익숙했던 .. 2015. 9. 23.
김교신의 그리스도‘론’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4) 김교신의 그리스도‘론’ - 전집 4권 『성서 연구』 「골로새서 강의」 - ‘이단(異端)’이란 ‘다르게 서 있다’는 말이다. 같은 이름으로 혹은 비슷한 주장을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결국 그 끝이 달라지므로 따르는 이들을 미혹케 한다. ‘기독신앙이란 교리 논쟁이 아닌 삶으로 살아내는 산 신앙’이라고 주장했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에게는 물론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던 단어다. 허나, 김교신과 성서조선 동인들이 끝내 바로잡으려했던 기독 신앙과 정신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로 하여금 ‘바로 서’ 있도록 함이었으니, 결국 큰 범주에서 김교신은 ‘다르게 서 있는’ 이단과의 한판 겨루기를 피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교신은 이단과 치열하게 겨루었던 ‘정통(正統.. 2015.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