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36)
친구됨
- 전집 5권 『일기 I』 1935년 일기 -
다음 달은 정상적인 발행이 가능할까, 이런 식으로 과연 조선 땅 전역과 오고 또 올 미래의 세대들에게 성서의 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한치 앞을 모르면서 매달 성실함과 소망으로 이어간 『성서조선』지 발간이 어느덧 10년에 다다를 무렵, 김교신은 뜻밖의 친구들을 만났다. 한센병 환자들의 공간 소록도에서 보내온 문신활의 편지는 김교신 스스로도 고백하듯이 그의 인생에 큰 사건이었다.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은 1932년 부산의 감만리나병원을 섬기던 손양원 전도사에게서 성조지를 소개받았다 했다. 전도사님이 들려주시는 말씀 해석을 재미나게, 희열에 넘쳐 들었다고. 그러나 성조지의 불순함을 지적하고 ‘이단’이라 핍박하는 무리들에 의해 손 전도사님은 쫓겨나고 600여명이나 되던 나환자 교우들도 이리저리 떨어져나갔단다. 남은 5명. 돈 없고 반대에 부딪히는 고난 속에 겨우 한 권 신청하여 “병원 뒷산 송목(松木)을 의지하여 은근히 모이어 읽을 때마다 썩어짐이 없는 진실한 부흥이 되었더이다.”(2권 105쪽)는 것이 그의 고백이었다. 이후로도 기구한 사연으로 이리저리 몰리다 소록도에 모여 있다며, 김교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나환자가 찾아가는 것이 오히려 누가 될까봐 편지로 대신한다는 사연이었다. 이른 봄 소록도에서 온 소식을 받고 김교신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편집 조판까지 마친 후에 소록도 통신을 접하였다. 이것은 주필의 일생에 가장 큰 사변의 하나이다. 이 일을 지우들께 알리기를 지체할 수 없었다. 반도의 유위(有爲)한 청년들이 복음을 요구하지 않고, 유리한 전도지를 교권자 제씨가 강하게 독점하고자 할진대 우리는 애석할 것이 없이 퇴각하여 소록도의 5천 명 친구에게 가리라. 병자라야 의약이 필요하다. 단 면수의 한정으로 인하여 조군의 요한복음이 2면만으로 단축된 것은 미안 천만.
이 한 장의 편지는 막 조판을 마친 성조지뿐만이 아니라 김교신의 신앙과 향후 삶의 여정에도 큰 ‘사변’으로 작용했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 위아래가 있겠느냐만, 기왕이면 리더십 있는 청년, 장래 촉망한 인사에게 전해 산 신앙의 영향력을 더 빠르게 더 강력하게 한반도에 뿌리내리게 하고픈 욕심이, 솔직히 있었다. 그런데 만날수록, 이야기를 나눌수록, 오해와 무관심에 지치고 실망하던 한중간이었다. 그런데 이후 쏟아지는 소록도 통신들은 김교신 자신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던 복음의 심오한 깊이를 가진 살아있는 복음서요 예언서들이었다. 아아, 김교신은 결심한다. “나환자의 신서를 가슴에 품고 천국 길을 돌진하리라.” 변화는 비단 김교신뿐만이 아니었다. 문신활의 사연을 읽은 성조지 한 독자의 결심은 이러했다.
선생님, … 진체 송금 3원 40전 하였습니다. 이는 생(生)의 지대 1년분과 소록도 문신활 형에게 보낼 지대 1년분이올시다. 75호 그의 논문을 보고 지대를 제가 담당함이 가함을 느꼈나이다. 이 일을 절대로 공개하지 마시고 또는 위 문형 본인에게도 저의 이름을 교시(敎示)하지 마소서. 특별 부탁합니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삶의 결단을 담은 편지들이 이어졌다.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이야기들부터 연말까지 계속된 소록도행 선물꾸러미까지…. 그들은 이미 문신활의 ‘친구’였다. 남도 나도 ‘천형’이라 여기던 병을 얻는다는 것, 몸이 아픈 것도 감당키 어려운 지경인데 가족과 이웃, 살아갈 의미를 주고 힘을 주는 이들과 격리되어 외로운 영혼의 싸움까지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했던 문신활과 그의 동료들. 그들은 외딴 섬을 찾은 성조지를 통해 ‘친구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이들을 친구로 엮으신 ‘진정한 친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연인들의 편지가 이만큼 절절할까. “나병으로 인하여 외롭고 고독한 소생에게 둘도 없는 가장 유일의 벗”이요,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어떠한 경우든지 기거동작 간에 가슴에 품고 틈만 있으면 들고 본다”는 성조지를 통해, 이들은 하나의 ‘에클레시아’(교회)가 되어갔다.
5월 21일자 문신활의 편지는 차라리 한편의 예언서이다. 자나 깨나 성조지를 품고 다닌 이의 깨달음이 참으로 깊다.
아, 오묘하도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이여, 찬송하리로다. 우주의 배후에, 조선의 역사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소록도의 배후에 절망한 나맹인(癩盲人)의 생활 위에 운동하실 줄이야 누가 알았으며, 병중에도 병을 더하여 낙망과 연민의 입장에 처한 나맹인으로서 천국의 희망을 심구할 줄이야 그 누구가 알았을까요. … 오, 찬송하리로다, 우주에 충만한 그리스도의 생명, 학박사야 알았느냐, 나맹인의 참담한 사변 위에서, 그 형자님들의 눈물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적 창조의 묘법을, 세인들아, 너희는 몰랐으리라. … 아, 현 교회의 신앙관은 심히 천박한지라, 우주에 충만한 복음, 삼라만상에서 생명적으로 뛰놀며 성장하는 진리, 즉 성서가 가르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보지 못하고, 예수의 흔적만 남은 신조만 붙들고 밤낮 울고 있음을 구경하였음이다.
전형적인 예언서의 서문을 갖춘 그의 편지는 ‘고통’에 관하여 욥기를 뛰어넘는 문학적, 신앙적 성찰을 전한다.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웃는 자와 같이 웃듯이, 그리스도의 가혹한 사랑인 동시에 자기와 사람을 밀접한 교제를 시켜 놓고 견딜 수 없는 불행과 비운을 내리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었나이다. … 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인간의 행복이 아니요 인간의 불행이다. 아, 그리스도의 사랑은 웃음이라기보다 눈물이었나이다. 그리스도에게 불리는 자, 그리스도에게 선택함을 입은 20세기의 복음의 종들은 자기의 소유는 빼앗기고 자기의 소망은 깨어지는 것이다. … 아, 현 교회 사랑하는 형자들은 아직도 자기를 빼앗길 용기가 없다. 즉 땅의 것을 팔아 하늘의 것을 살 용기가 없다. … 소록도 갱생원의 사랑하는 형자들이여, 나병에 시들고 남은 그 뼈, 그 살, 그 피까지를 주 예수께 바치사이다. 빼앗기사이다. 그럴 때라야 천국은 형자님들의 소유가 되리이다. … 이를 못한 신자는 천박한 자기 지식과 관념에만 잡히어 영원히 죽으리다.
“요즘 받는 편지마다 소록도 아니면 만주”라는 김교신은 문신활과 동료들의 편지를 읽고 서신으로 왕래하다 7월 26일자 일기에 그리 적고 있다. “그 중간 반도는 교권자와 신학자에게 맡기고” 자신은 성조지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친구들을 향해, 즉 주변으로, 변방으로, 복음의 사자가 되어 달려가겠노라고.
실은 인간 문명이 지어져온 이래 중심에는 산 신앙이 오래 버텨본 적이 없다. 요즘 방영되는 어느 드라마(제목은 ‘송곳’인데 웹툰이 원작이라 한다) 대사마따나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다른 법”이다. 행여 복음의 생령을 가슴 뜨겁게 체험했고 그 핵심 메시지를 지식으로 안다 할지라도 인간 시스템의 심장부에 서면, 예수가 친구했던 이들과는 멀어지기 쉽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저 가난한 마음의 신앙고백이 터져 나온다. 병마와 싸우는 동안 문드러진 살, 쇠약해진 뼈…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된다고 온전히 ‘기쁨’으로 주께 내어놓고 천국을 사겠다는 것인가! 저런 친구들을 두고서 어찌 중심을 향할까. 참으로 예수의 선언은 옳다. 가진 자는, 중심에 선 자는, 그 가진 것으로 말미암아 천국에서 가장 멀다. 문신활의 사연이 담긴 성조지를 읽고서 ‘조선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시려거든 저이 한 사람이면 만족 만족 대만족’이라고 고백했던 송두용처럼, 아마도 이때 김교신은 삶과 신앙의 방향성을 더욱 굳건히 했을 일이다. 주변에 서기로, 병자와 함께 하기로, 약하고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기로… 그 결심대로 살다가 결국 그는 변방의 한 공장에서 병든 조선인 노동자들을 돌보다 그들의 친구로 죽었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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