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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비아 돌로로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5) 비아 돌로로사 정릉교회 현관 앞 주차장 옆으로 작은 마당이 있다. 예배당을 지으며 마을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다. 마당에는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과 두 개의 파고라가 설치되어 있어, 규모는 작지만 정겨운 느낌을 준다. 사순절을 보내며 마당에 ‘비아 돌로로사’ 14처를 만들기로 했다. 비아 돌로로사는 ‘고난의 길’이란 뜻으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신 길을 일컫는 말이다. 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아쉬운 선택을 해야 했다. 터가 넓고 형편이 된다면 각 처소마다 그곳에 알맞는 조형물을 세우고 싶은 일, 14처를 알리는 내용을 코팅하여 파고라 기둥에 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어제 저녁이었다. 창을 통해 바라보니 누군가가 파고라 기둥 앞에 서서 거기.. 2019. 3. 25.
가장 위험한 장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6) 가장 위험한 장소 아이들의 사망 원인 1위는 ‘금 밟고 죽는 것’이고, 어른들의 사망 원인 1위는 ‘광 팔다가 죽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웃고 말 일을 설명하는 것은 멋쩍은 일이다. 광 팔다 죽는 것이야 금방 짐작이 되지만, ‘금 밟고 죽은 것’이 뭘까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놀이를 하다가 밟은 금을 말한다. 엉뚱하게도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침대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80% 이상의 사람들이 거기서 사망하니까.” 이만한 역설과 통찰이라면 삶이 단순하겠다 싶다. 2019. 3. 25.
역지사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4)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영어로 옮기면 ’understand’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뜻하는 ‘understand’가 ‘under’라는 말과 ‘stand’라는 말이 합해진 것이라 하니 말이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북미원주민들의 속담도 마찬가지다.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지나가던 중 한 마을에서 묵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죽신발 한 짝이 없더란다. 할 수 없이 낡은 고무신 한 짝을 얻어 신고 길을 나서게 되었는데, 그가 말을 타고 지나가자 동네에는 말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시작은 아무래도 고무신을 본 사람이었을 것이다... 2019. 3. 24.
다 살아지데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3) 다 살아지데요 아직은 젊은 사람. 도시를 피해, 도시가 요구하는 삶의 방식을 피해 시골로 들어가 둥지를 틀 듯 땀으로 집을 지었다. 집이 주인을 닮은 건지, 주인이 집을 닮은 건지, 동네 언덕배기 저수지 옆 그럴듯한 집이 들어섰다. 창문 밖으로 벼들이 익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그는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으리라 싶었다. 나무를 깎고, 글을 쓰고, 종이로 작품을 만들고, 닭을 키우고, 아이들 등하교 시키고, 소박한 삶을 살던 그에게서 어느 날 전해진 소식은 참으로 허망한 소식이었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닭을 잡고 있는 동안 집이 홀라당 불탔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 건지질 못했다고 했다. 살림도구며, 작품이며,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허무 위에 주저앉을 때.. 2019. 3. 24.
부르지 말아야 할 이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0) 부르지 말아야 할 이름 50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뉴질랜드 총격테러 사건은 하필이면 크라이스트처치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의 이슬람 사원에서 일어났다.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자부했던 뉴질랜드가 큰 슬픔에 빠진 가운데 아던 뉴질랜드 총리의 리더십이 조명을 받고 있다. 대형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뉴질랜드가 크게 동요하지 않은 이유는 아던 총리의 기민한 대응 덕분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무엇보다도 아던 총리가 검은 히잡을 쓴 채 진심 어린 표정으로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는 모습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포용과 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던 총리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회 연설을 하면서 “더 이상 크라이스트처치 총격범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2019. 3. 20.
방으로 들어온 500년을 산 느티나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2) 방으로 들어온 500년을 산 느티나무 원주 귀래면에 사시는 윤형로 교수님이 서울로 올라오며 전화를 했다. 시간이 되면 잠깐 들르시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손자가 태어났는데, 동생을 봄으로 형이 된 큰 손자가 마음이 허전할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교회로 찾아오신 교수님은 멋진 선물을 전해 주셨다. 알맞은 크기의 탁자로 마주앉아 차를 마시기에 좋은 용도였다. 나무에 붉은 빛이 감돌아 차를 마실 때 분위기가 그윽하겠다 싶었다. 전해주신 탁자가 더없이 반갑고 고마웠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태 전이었다. 오랜만에 인우재를 찾아 언덕길을 오르며 느티나무 아래를 지날 때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느티나무 굵은 가지 하나가 땅에 떨어져 서너 조각으로 잘린 채 .. 2019. 3. 20.
드문드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81) 드문드문 담장을 따라 노랗게 피어난 영춘화가 희끗희끗 거짓처럼 날리는 눈발을 맞는다. 문득 시간이 멈춰 선다. 눈과 꽃의 눈맞춤 꽃과 눈의 입맞춤 둘은 놀랐을까 서로 반가웠을까 얼굴 위 눈송이 하나 녹을 만큼 잠깐의 삶을 살아가며 드문드문 드문 만남 드문 은총 누렸으면. -한희철 목사 2019. 3. 20.
덤으로 사는 인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8) 덤으로 사는 인생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덤’이라는 말이다.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여인에게는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었다. 혈루증은 부정하다 여겨져서 성전을 찾는 일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불가능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도와 법이라는 벽을 만들어 놓았다. 병을 고치지 못하는 한 여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여인은 병이 낫는다. 예수의 옷자락을 몰래 붙잡았더니 정말로 병이 나은 것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거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 예수는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 2019. 3. 18.
사람이 되세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7) 사람이 되세요 그 때는 몰랐다.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분의 말이 이만큼 세월이 지나도록 남아 있으리라고는. 1978년 찬냇골이라 불리는 냉천동 감신대에 입학했을 때, 우리에게 윤리학을 가르쳤던 분이 윤성범 교수님이었다. 당시 학장직도 함께 맡고 계셨다. 가냘픈 몸매며 나직한 목소리며, 천생 선비를 연상케 하는 외모를 지니신 분이었다. 강의의 내용도 마찬가지여서 유교(儒敎)를 기독교와 접목시키는 일에 천착해 계셨다. 시험을 볼 때면 칠판에 문제 서너 개를 적은 뒤 시험지 나눠주고 당신은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가곤 하셨다. 뒷면까지 쓰면 안 볼 거라는 한 마디를 남기시고선. 그런 일 자체가 우리에겐 대단한 윤리 공부였다. 몇 번인가 강의실에서 말씀하신 것이 있다. “우리가.. 2019.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