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사는 인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8)

 

덤으로 사는 인생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혈루증 걸린 여인 이야기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덤’이라는 말이다. 물건을 사고팔 때, 제 값어치 외에 조금 더 얹어 주거나 받는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여인에게는 병이 낫는 것보다 더 절박한 것은 없었다. 혈루증은 부정하다 여겨져서 성전을 찾는 일도,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불가능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도와 법이라는 벽을 만들어 놓았다. 병을 고치지 못하는 한 여인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침내 여인은 병이 낫는다. 예수의 옷자락을 몰래 붙잡았더니 정말로 병이 나은 것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거기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시 예수는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길이었고, 여인으로서는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병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설마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예수가 알았으리라는 생각할 수 없었을 뿐더러, 혹시 알았다 해도 주변을 둘러보며 한 번 환하게 웃으며 갈 길을 재촉했다면 참 좋을 일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걸음을 멈춰 서서 옷에 손을 댄 이를 찾으신다. 자신의 능력이 몸에서 빠져나간 것을 몸으로 알아차린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흔들리는’ 것이다. 사랑을 전한 이가 휘청, 자신의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이다.


여인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께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예수가 여인에게 말한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안심하고 가거라. 그리고 이 병에서 벗어나서 건강하여라.”

 

옷자락을 붙잡았을 때 ‘병’이 나았다.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을 때 여인에게 주어진 것은 ‘구원’이었다. 그 순간 여인은 깨닫지 않았을까? 그동안 자신이 가져왔던 가장 간절한 갈망, 병이 낫는 것이 주님 앞에서는 ‘덤’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바라고 내게 필요한 것이 유일한 것인 줄 알았는데 주님 앞에서는 그것조차도 ‘덤’이었다는 것을.

 

 

 

남의 일로만 알았던 ‘환갑’을 맞는다.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라는, 하도 많이 들어 닳고 닳았지 싶은 말을 나도 이쯤에서 하게 되었다.


단강에 살 때 한 노인이 그랬다. 사람은 환갑이 지나면 ‘덤’으로 사는 거라고. 100세 시대를 말하는 요즘으로 보자면 그 말은 고쳐져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올라선 환갑이라는 고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로 한다. 이제부터의 삶은 ‘덤’이라고.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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