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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2

투명하게 지으신 몸 밥은 자식이 먹었는데 엄마 배가 부르다고 하셨지요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누군가가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다쳤다고 하면 내 정강이뼈가 저릿해지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떨며 아파하고 밤새 마음이 아파서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서 평화의 숨으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나의 몸은 나를 스쳐 지나는 이 모든 걸 그대로 느끼며 투명하게 반응한다 저녁밥을 먹다가 이런 나를 지으신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녕하신지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2022. 1. 24.
미장이 싸늘한 벽돌과 껑껑 언 모래와 먼지 같은 시멘트 이 셋을 접붙이는 일 이 셋으로 집을 짓는 일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이 차가운 셋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제 살처럼 붙으리라는 강물 같은 믿음으로 나무 토막 줏어 모아 쬐는 손끝을 녹이는 모닥불의 온기와 아침 공복을 채워주는 컵라면과 믹스 커피 새벽답 한 김 끓여온 생강차 한 모금 2022. 1. 22.
바람 빈 가지가 흔들린다 아, 바람이 있다 나에게 두 눈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가 없는 듯 한낮의 햇살이 슬어주는 잠결에 마른 가지 끝 곤히 하늘을 지우는 보이지 않지만 없다가 있는 듯 앙상한 내 가슴을 흔드는 이것은 누구의 바람일까? 2022. 1. 13.
마른잎 스치는 겨울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내려 주시는 한 줄기 햇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만 집니다 - 겨울나무 (53) 2022. 1. 10.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2022. 1. 3.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 2021. 12. 31.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코바나19금'('썩은 밥에 빠진 누런 코') 한 사람이 있다. 그 옛날 친구를 따라서 뭣 모르고 찾아간 해인사의 백련암. 그리고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던 젊은이다. 그러면 부처님 앞에 삼 천 배를 올리라는 성철 스님의 한 마디에 괜히 투덜댔다가 "그라믄 니는 마, 만 배 해라!"라는 성철 스님의 엄호에 오기가 발동해서 정말로 백련암 초행길에 만 배를 올렸던 젊은이다. 그가 바로 성철 스님의 상좌인 원택 스님이다. 다리가 끊어지고 온몸이 부숴지는 듯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만 배를 겨우 마친 젊은이는 기어가다시피하며 성철 스님께 한 말씀을 청하였다고 한다. 청년이 기대했던 한 말씀이란 다름 아닌 청년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한 말씀이었으리라. 성철 스님은 "지킬 수 있나?" 물으신 후 딱 한 말씀만 하시곤 내려가라 하셨다며 상좌인 원택 스님은 .. 2021. 12. 28.
십자가 나무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이 땅에 오신 십자가 나무 그러나 이 땅에 머리둘 곳 없다 하시던 마음이 가난한 나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비로소 손가락으로 가리키시며 마음으로 살으라 하신 홀로 산을 오르시어 기도하시던 나무 진리에 뿌리를 내리고 진리의 몸이 되신 온몸으로 시를 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랑 나무 다시 하늘로 오르시어 우리에게 성령을 주고 가시며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함께 살아가든 홀로 외따로 살지라도 우리 모두의 마음에는 저마다 태양을 닮은 양심이 공평하게 나를 비추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진리 안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한 그루의 평화 나무로 선 십자가 나무 예수 2021. 12. 26.
팔팔 동지 팥죽 새벽잠 걷어내시고 일어나셔서 몇 날 며칠 마련하셨을 붉은팥, 맵쌀, 찹쌀로 팔팔 끓이신 동지 팥죽 뚜껑 열리지 않도록 팔팔 올림픽 보자기에 꽁꽁 싸매고서 동해 바다가 품은 동짓날 떠오르는 태양처럼 품팔이로 가정 일으키신 바다 같은 품에 안으시고서 새벽 댓바람에 붉게 익은 얼굴 가득 자식 손주들 건강과 평화를 기도하시며 지나온 2021년 한 해도 감사히 다가올 2022년 한 해도 감사히 선물처럼 주시는 오늘을 해처럼 품으시고서 엄마는 새벽바람처럼 징검다리를 건너오셨습니다 2021.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