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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2

팔팔 동지 팥죽 새벽잠 걷어내시고 일어나셔서 몇 날 며칠 마련하셨을 붉은팥, 맵쌀, 찹쌀로 팔팔 끓이신 동지 팥죽 뚜껑 열리지 않도록 팔팔 올림픽 보자기에 꽁꽁 싸매고서 동해 바다가 품은 동짓날 떠오르는 태양처럼 품팔이로 가정 일으키신 바다 같은 품에 안으시고서 새벽 댓바람에 붉게 익은 얼굴 가득 자식 손주들 건강과 평화를 기도하시며 지나온 2021년 한 해도 감사히 다가올 2022년 한 해도 감사히 선물처럼 주시는 오늘을 해처럼 품으시고서 엄마는 새벽바람처럼 징검다리를 건너오셨습니다 2021. 12. 22.
벽돌 네 나 벽돌 일곱 나를 머리에 이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지매가 떨군 눈길을 따라서 벽돌 스무 나도 넘게 등짐을 지고서 계단을 오르는 아재의 굽은 등허리를 따라서 빈 몸으로 계단을 오르는 김에 속으로 벽돌 네 나쯤이야 하면서 갓난아기를 안듯이 품에 안고서 오르다가 열 계단쯤 올라서면서 그만 어디든 내려놓고 싶어졌다 애초에 세 나만 챙길 것을 후회하면서 묵직해진 다리로부터 차오르는 뼈아픔이 벽돌로 쌓아올려야 뚫리는 하루치의 하늘과 벽돌이 된 몸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 같은 숨이 벽돌 같은 세상을 맨몸으로 부딪히고서 맞는 밤하늘은 허전해 하나 하나의 벽돌 모두가 나로 쌓였다가 눈물로 허물어지는 외로운 겨울밤을 보내며 2021. 12. 19.
시들어 간다 시들 시들 시들어 간다 나무 숟가락, 밥그릇, 흙 접시 유리 찻잔을 악기 삼아 흐르는 물결과 물결의 선율에 기대어 평화를 연주하는 내 두 손으로 시들 시들 시들어 간다 평화의 물결이 스민 주름진 손등으로 피부결마다 바람의 숨결 같은 시들 시들 시가 들어간다 잔주름 결결이 황토빛 살결은 햇살 아래 시가 되어 황금 들녘 넘실넘실 2021. 12. 13.
나눔이 꽃 사과 한 알 사이좋게 모두 다 함께 나누고픈 한마음 선한 마음밭에 씨알처럼 품고서 반으로 나누면 푸른 싹이 트고 네 쪽으로 나누면 네잎꽃이 피고 여덟 쪽으로 나누면 여덟 꽃잎 코스모스 눈물나는 양파도 나눔이 꽃 그대로 접시에 담으면 밥상 가득 환하게 하얀 꽃잎들이 사이좋게 피었습니다 2021. 12. 10.
새벽 세 시, 박 기사님 새벽 세 시에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전화를 걸면 자다가도 언제나 곧장 달려오는 박 기사님이라고 있단다 그런 사람이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단다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우리들 삶의 둘레에 없진 않아서 24시간 대기 중이신 소방관, 경찰, 긴급출동서비스 기사님처럼 고마운 분들이 없진 않으나 하지만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단다 생각을 한 땀 한 땀 이어보아도 그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새벽 세 시에 이웃을 위해서 잠든 몸을 일으킬 수 있는 마음이 아득히 궁금해진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어디든 함께 하신다는 성경의 하느님 말고는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 너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지 않고선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지 않고선 잠든 .. 2021. 12. 9.
산골 산 정상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잠시 머물다 내려올 곳이지 거기까지 올라 서서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면 멀리까지 내다보았다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지 저 발아래 보이는 시인의 마을과 점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자신을 비추어 나도 그들과 같음을 나도 그처럼 멀고 작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때론 누군가에게 나도 별이 될 수 있음을 먼 그리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아무리 그래도 산 정상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그 누구든지 잠시 머물다 내려올 곳이지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정상에서는 높이 나는 새들이라도 잠시 머물기만 할 뿐 저녁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면 골짜기 어느 틈엔가 둥지를 틀고 고된 몸을 누이지 산골짜기 계곡을 따라서 물길을 따라서 내려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 2021. 12. 8.
다시 다시 보면 모두가 다 시詩 빈 하늘에 눈을 씻고서 다시 보면 땅의 모두가 다 하늘 오늘도 다시 아침해를 주시고 고된 하루에 선물처럼 다시 달밤을 주시는 순간마다 다시 숨을 불어넣으시어 주저앉으려는 몸을 다시 일으키시는 태초의 숨이 다시 숨쉬자며 처음 사랑이 다시 사랑하자고 2021. 12. 6.
어머니의 무릎 무릎 꿇는 일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요 꿇으라면 꿇는 일이 못할 일도 아니지요 하지만 남의 가게 밖 우편함에다가 전단지 종이 한 장 넣은 일이 죄가 된다면 가게 주인이 신고를 하고 몸소 고소를 당하시어 국가 공무원 경찰까지 출동할 만큼의 죄가 된다면 그 죗값 순순히 치르시고자 가게 주인과 경찰들의 발아래 무릎 꿇고 앉으신 어머니 돌처럼 단단한 그들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돌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 모아 비신 어머니 그런데 이제껏 한평생을 어찌어찌 살아오셨길래 어느 누군가의 떨리던 손으로 포착했을 그 한 순간에 이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긴 어머니의 모습은 눈물이 핑 돌고 뼈가 저리도록 시렸을 그 가슴 아픈 한 순간조차도 칠순의 고개를 넘기신 어머니 모습은 제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자녀를 위해 기도하.. 2021. 11. 28.
기도드릴게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저에게도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도드릴게요 바람결에 무심히 날려온 마른 풀씨 같은 말 한 톨 기도드릴게요 저는 말을 믿어요 씨앗은 자란다는 진리처럼 아무리 작은 말 한 톨이라도 그 말을 믿어준다면 아무리 하찮은 말 한 톨이라도 그 말을 품어준다면 햇살과 비를 맞은 씨앗이 언젠가는 자라서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듯 웃음과 눈물로 품은 기도는 아름답게 자라난다는 사실을 저는 믿어요 저를 위해서 기도드린다는 당신의 말도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드리고 계신다는 성령님의 마음을 닮은 그 마음으로 기도드릴게요 이 말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제겐 가장 든든하고 기쁜 선물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당신을 위해서 기도드릴게요 제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당신이 잘 되기를 바라는.. 2021.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