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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2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2021년 새해 일지의 제목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으로 정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게 무엇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 아무래도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떠올릴 적마다 새로운 깊은 산골 돌 틈에서 샘솟는 석간수 한 모금 마시는 듯하다 이제 머지않아 물은 오월의 신록빛으로 물들겠지 2021. 4. 28.
한 점의 꽃과 별과 씨알 한 점의 꽃 한 점의 별 꽃밭에서 눈 둘 곳 잃을 때 어디 한군데 마음 둘 곳 없을 때 머리위 한 점의 별을 찾듯 발아래 한 점의 꽃을 찾는다 여기 흔한 한 점의 꽃은 낮아지고 작아진 가장 가까운 얼벗 이 땅에 흩어놓으신 별자리 오늘도 하루를 걷다가 마음이 길을 잃으면 한 점의 꽃과 별 그 사이에 사는 나를 지운다 숨으로 나를 지우며 나도 한 점이 된다 한 점의 숨으로 머문 한 점의 빛, 씨알 2021. 4. 27.
얼벗 햇살에도 찌푸릴 줄 모르는 얼굴 곱디 고운 나의 오랜 얼벗 한적한 길을 걷다가 작디 작은 얼굴이 보이면 모른 체 쪼그리고 앉아 벗님과 같은 숨으로 나를 지운다 같은 데를 바라보면 빈탕한 하늘이 있다 2021. 4. 26.
꽃봉오리는 꽁꽁 움켜쥔 조막손 손안에 힘이 풀리면 다섯 손가락 꽃이 핀다 2021. 4. 25.
세작 하늘이 땅을 적시우는 곡우 땅에 엎드린 씨앗과 어린 초목들이 푸른 날 감사의 기도를 하얗게 피워 올리우는 산안개에 찻잎이 살을 찌우는 날 올해도 차밭에 갈 수 없는 아쉬움이 이제는 미안함이 되고 나는 갈 수 없지만 오늘 아침 이마에 닿은 공평하신 빗물 세례에 제자리에서 마음 놓이 감사의 기도를 하얗게 올리우는 날 2021. 4. 24.
무화과 잎과 열매 무화과 잎과 열매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하늘땅 걸고서 내기를 한다 누가누가 이기나 가위바위보 무화과 잎은 빈 손 맨날 보자기 무화과 열매는 쥔 손 맨날 바위 이기기만 하는 잎은 신이 나서 하늘을 우러러 푸르게 웃음 짓고 지기만 하는 열매는 열받아서 잘도 잘도 영글어간다 2021. 4. 22.
동중정(動中靜) 오늘도 나는 달린다 빙빙빙 날아다닌다 사분사분 가벼웁게 사월의 산새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배달의 기사님들처럼 공양간 초발심의 행자처럼 119구급대원들처럼 기도의 타종소리에 뛰어가는 수녀처럼 분과 초 단위로 살아간다 성성적적(惺惺寂寂) 매 순간을 깨어서 땅과 하늘을 빙빙빙 춤을 추듯 날아다닌다 12시간을 앉았던 정중동(靜中動)으로 12시간을 달리는 동중정(動中靜)을 산다 심심한 생각 한 자락이 이마를 스친다 어느 쪽이 더 쉬운가? 12시간의 정중동일까? 12시간의 동중정일까? 2021. 4. 20.
진선미의 사람 집을 나서기 전 아들에게 묻는다 너는 탐진치의 사람이 될래? 진선미의 사람이 될래? 먹방을 보던 아들은 말뜻을 이해를 못해 한시가 급한 엄마는 잘 들으라며 진선미의 말뜻만 얼른 알려주었다 진은 참되고 진실된 진 선은 착하고 선할 선 미는 아름다울 미 그런데 아들은 들은 체 만 체 그래서 엄마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했다 안하면 용돈도 밥도 없을 거라며 아무 것도 없을 거라며 이윽고 아들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소리 한낮의 봄바람처럼 장난스럽게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새차게 밤하늘의 별빛처럼 멀어지는 말소리 비록 작지만 한 방울의 물이 바윗돌을 적시듯 아들의 몸에 진선미의 말이 점점 새겨지기를 6학년이 된 아들이 유튜브와 세상을 검색할 때면 진선미의 말이 어둔 세상 별자리가 되어주기를 진선미의 말씨 한 알을 아.. 2021. 4. 19.
새순 내게 있는 모든 의지를 떨구십니다 봄날의 꽃잎처럼 사방 흩어 놓으십니다 이 땅에 내 것이라 할 것 없는 나는 가난한 나무처럼 제 자리에 머물러 가만히 눈 감고 안으로 푸르게 깊어질 뿐입니다 2021.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