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2 없는 책 돈냄새가 없는 책 추천사가 없는 책 전쟁 후 서울에서 태어나 이 땅을 살아오는 동안 반평생의 구비길을 넘고 넘으며 글에서 없는 냄새를 풍길 수 있다니 글을 읽으면서 있음을 찾으려다가 이 땅에서 나를 세운 흔적이라고는 마땅히 없고 또 없어서 눈물을 지우고서 바라보는 제주의 푸른 바다와 하늘처럼 출렁이며 때론 잠잠한 맑은 글에 비추어 되돌아볼 것은 없는 나 자신 뿐이었다 , 최창남 2021. 4. 14. 꽃잎비 꽃잎이 꽃잎을 감싸며 꽃잎이 꽃잎을 안으며 작고 순한 이름들이 꽃잎비로 내린다 가장 작은 목소리로 가장 순한 몸짓으로 서로를 감싸며 서로를 안으며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산을 감싸며 한 잎의 시가 되고 들을 안으며 한 잎의 노래가 된다 2021. 4. 8. 둘레길 둘레둘레 민둘레 둘레길에 민둘레 민둘레가 피어서 둘레둘레 둘레길 2021. 4. 1. 꽃춤 꽃이 춤을 춘다 하늘 하늘 하늘 꽃이 웃음 짓는다 하늘 하늘 하늘 2021. 3. 31. 민들레 곁에 민들레 곁에 가까이 앉으며 노란꽃 언저리에 떠돌던 숨을 얹는다 봄바람 같은 봄햇살 같은 꽃잎마다 결결이 숨결을 고르다가 숨이 멈추어 쉼이 되는 순간 웃음이 난다 민들레처럼 2021. 3. 30. 나도 하늘처럼 밤하늘 불을 끄실 때 내 방에 불을 켠다 새벽하늘 불을 켜실 때 내 방에 불을 끈다 어둔 밤이면 전깃불에 눈이 멀고 환한 낮이면 보이는 세상에 눈이 멀고 언제쯤이면 나도 하늘처럼 밤이면 탐욕의 불을 끄고서 어둠 한 점 지운 별처럼 두 눈이 반짝일까 새벽이면 마음에 등불을 켜고서 하늘 한 점 뚫은 해처럼 두 눈이 밝아질까 2021. 3. 25. 물 인심 물 한 잔 드릴까요? 하고 얼른 물으면 바빠요! 하며 냉큼 달아나신다 택배 기사님도 배달 기사님도 집배원 아저씨도 물 한 모금 삼킬 틈없는 나무 꼬챙이 같이 삐쩍 마른 뒷모습에 넉넉한 물 인심이 가슴 우물에 먹먹히 고인다 2021. 3. 1. 무의 새 무한한 날갯짓으로 몸무게를 지우며 무심한 마음으로 하늘을 안으며 새가 난다 하늘품에 든다 2021. 2. 25. 로즈마리와 길상사 한겨울을 지나오며 언뜻언뜻 감돌던 봄기운이 이제는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온 요즘입니다. 길을 걸으며 발아래 땅을 살펴보노라면 아직은 시들고 마른 풀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서도 유독 푸릇한 잎 중에 하나가 로즈마리입니다. 언뜻 보아 잎 모양새가 소나무를 닮은 로즈마리는 개구쟁이 까치집 머리칼을 쓰다듬듯이 손으로 스치듯 살살살 흔들어서 그 향을 맡으면 솔향에 레몬향이 섞인듯 환하게 피어나는 상큼한 향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로즈마리를 생각하면 스무살 중반에 신사동 가로수길과 돈암동 두 곳의 요가 학원에서 작은 강사로 수련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있던 고시원 방이 삭막해서 퇴근길에 숙소로 데리고 온 벗이 바로 작은 로즈마리 묘목입니다. 언제나 로즈마리와의 인사법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 2021. 2. 24.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