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76

썩은 감자 하나가 섬 감자를 썩힌다 감자와 고구마는 좋은 양식도 되고 맛있는 간식도 된다. 솥단 지에 푹 삶아 식구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것은 다른 음식을 통해서는 쉽게 누리기 힘든 멋과 정겨 움을 준다. 감자와 고구마는 비슷한 면이 있다. 모든 씨가 그러하듯 적 은 것을 심어 많은 것을 거둔다. 씨감자 한 조각을 심으면 둥글 둥글 편하게 생긴 감자 여러 개를 거둘 수 있고, 고구마 순 하 나를 심으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를 거두게 되니 괜히 수지맞는 기분이 들어 농사짓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감자와 고구마는 보관을 잘못하면 금방 얼거나 썩고 만다. 물기가 있거나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면 썩기가 쉽고, 추운 곳에 보관하면 얼기도 잘 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보관해보면 알지만 한 개가 썩으면 나머지 도 금방 썩.. 2024. 10. 29.
씨알을 품고 품은 꽃 씨알에서 움튼 어린 싹이 하품하는 아침 이내 푸른 숨결로 어루만지는 굳은살 박힌 옹이마다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씨알에서 태어났지만 씨알을 저버린 적 없는 지고지순한  한마음 자리가  해처럼 떠올라  하루를 밝히고 씨알을 품고 품으며 한 평생 부르는 노래가 꽃으로 피어나듯 안으로부터 피어나는 혁명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다가 잠이 들어도 가지마다 잎을 떨구는 이 가을밤에도  그친 적 없는 씨알의 노래를 성실한 바람이 듣는다 맑은 별 하나가 듣는다 한바탕 꽃이었다가  진 자리마다 열매를 맺고 떨군 맨 끝자리에는 언제나 맨 처음 씨알이 무수히 있다 2024. 10. 29.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이런 교회는 무너지는 게 순리다”   폴 틸리히는 신앙이란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상태라 했다. 사로잡힘은 주체적으로 조장할 수도 없고 물리칠 수도 없다. 불가항력이다. 그래서 사로잡힘은 마치 교통사고처럼 다가온다. 그렇게 느닷없고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예수에게 사로잡혀 살아온 세월을 돌아본다. 사로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일심으로 달리긴 했다. 돌아보면 갈짓자 걸음이었지만, 그래도 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다. 다가섰다 싶은 순간 멀어지고, 멀어졌다 싶은 순간 다가오는 길, 탄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진 그 길이 참 힘겹다. 한국교회가 위기다. 아무리 뻔뻔한 사람이라 해도 이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시적인 위기라면 좋겠는데, 그게.. 2024. 10. 23.
예수는 밀실에 가둬 두고 광장으로 나서는 목사와 교인들 10월 27일, 그것도 종교개혁주일에 “악법을 저지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 2백만 명이 모인단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한국교회는 예수가 길거리에 다니면서 세상을 둘러보는 것을 반가워할까? 또는 교회에 와서 목사들의 설교 듣기를 원하기는 할까? 예수께서 교회에 들어오시면, 거 누구요, 당장에 나가시오, 하지는 않을까? 왜 그런가 하면, 오늘날 한국교회를 보면서 예수께서는 틀림없이 아니 이런 강도들의 소굴을 봤나?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아비지의 집,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타락시키고 말았구나, 하시면서 크게 역정을 내시지 않겠는가? 도대체가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많은 경우 예수님을.. 2024. 10. 22.
진수성찬, 내게 그것은 정성스런 손길로 잘 차려진 진수성찬 앞에서 이 몸 낱낱이 전율한다 화면에서 육해공 전쟁터를 보았을 때처럼 마지막 숨이 고통이었을지도 모르는 산과 바다에서 평화를 꿈꾸던 나의 전생들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이 몸이 살리라는  끈질긴 이 생의 저주 앞에 주저앉았던 나의 스무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그 마음 하나 별빛처럼 가슴에 품고서 숨막히던 어둠과 혼돈을 아름다운 밤하늘로 활짝 펼쳐놓을 수 있었지 옆방에는 통닭을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랑하는 식구들이 있고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으로 조율하는 나의 고요한 방에서 나는 오늘도 한 점 한 점 평화의 숨으로 태초에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음식을 탐구할 뿐 2024. 10. 22.
여성 신학자, 설교자들의 육성을 직접 들어본다 여성 신학자, 목회자들의 육성이 담긴 설교집이다. 설교자, 신학자 하면 남성들을 떠올리기 쉬운 현실에서 여성 신학자, 여성 목회자의 설교를 직접 대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우선 여성 목회자나 신학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아직도 낯설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 풍토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출간은 의미가 남다르다. 새 시대, 새 설교>에 참여한 이들은 김호경 전 서울장신대 교수, 유연희 스크랜턴 여성리더십센터, 이은선 한국信연구소 소장, 이연승 보스톤대학교 세계기독교와 선교연구소 초빙연구원, 이현주 한신대 종교와 과학 센터 연구교수, 최은경 한신대학교 겸임교수, 최은영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 송진순 이화대학 강사, 이은경 감리교신학대학교 연구교수, 조은하/목원대학교 .. 2024. 10. 8.
설교 베끼기, 위선의 깊이만 더해가고 좋은 설교가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면 그것은 귀중한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설교의 표절이나 복제가 행해지는 것은 하등 이상한 게 아니다. 설교자가 말씀의 증언자이며, 전도자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표절과 복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기조차 하다. 애초부터 우리의 복음은 우리 자신의 창작물이거나 우리 자신의 특허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서와 그에 얽힌 말씀의 내용을 여기저기서 포착하여 말씀 증언의 구성 요소에 포함시켜야 하고, 그로써 자신의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이다. 따라서, 표절이나 복제가 이미 있는 것을 따로 따내거나 본떠서 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근본에 있어서 설교의 표절과 복제를 문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도리어,.. 2024. 10. 4.
화엄경은 바흐와 함께 일과 중 한 시간 불교서적 읽기 내 방 책장 고요한 숨을 쉬는 늘 동경하는 보물 같은 벗과 스승들 하늘의 별자리를 바라보듯 진리의 지도를 더듬어 보는, 여기는 일상의 시간이 멈춘  시간 너머의 시간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성철 스님의 산을 몇 고비 넘긴 후 법정 스님의 물을 건너가는 순례길 화엄경 화엄의 바다 "너거 엄마는 책 사는데 밖에 돈 안 쓰제?" 수년 전 내 곁에 선 딸아이가 들었던  보수동 책방 골목에 울리던  범종 소리 십여 권이 넘는 법정 스님의 책값을  부르시는 대로 치른 후 책탑을 품에 안고서 좋아서 감추지 못한 환희용약 탄로 난  나의 본래면목 그런데 무엇에 빗장이 걸려 있었을까 그동안 열지 못한 화엄의 문 오랜 숙제를 일과로 가져온 일 법정 스님의 긴 호흡에 익숙치 않은 이.. 2024. 9. 19.
한 잎의 가을 어김 없이  오늘 해가 뜨고 쉼 없이  지금 바람이 불고 멈춤 없이 낮은 데로 물이 흐르는  이 가을날 무량수 무량광 하늘 하나님을 뚝! 떼어놓고 설명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여태껏  하나도 찾지 못하였는데 해는 어김이 없고 바람은 쉼이 없고 물은 멈춤이 없어서 없으신 듯 성실하신 하나님 이 가을에도  하늘은 넓고 깊어만 가는데 한 잎의 단풍에  가을이다 2024.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