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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6) 그들이 너에게 돌아올망정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萬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萬一) 천(賤)한 것에서 귀(貴)한 것을 취(取)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 같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예레미야 15:19). 같은 자리에 있다고,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마음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겉으로야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여도 마음도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다 해도 생각은 얼마든지 다를 수가 있다. 예레미야는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하다가 겪는 어려움을 불평과 원망으로 쏟아놓았다. 그치지 않는 고통과 낫지 않는 상처를 두고서 주님은 흐르다.. 2015. 12. 11.
평화를 향한 생명 사랑의 노래신학 꽃자리의 종횡서해(19) 평화를 향한 생명 사랑의 노래신학 - 《나는 내 숨을 쉰다》 속의 시선과 만나다 - 시선에 관하여 한 사람 속에 수천의 층이 있듯이 한 권의 책은 저자의 내면세계의 무수한 층들을 담고 있다. 홍순관의 《나는 내 숨을 쉰다》 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에 담긴 저자 홍순관의 시선들을 곳곳에서 보기 시작하였다. 나의 이 글은 이 책을 통하여 내가 만나게 된 홍순관의 ‘시선(gaze)’에 대한 글이다. 한 사람의 시선은 그 사람이 생각하고 꿈꾸는 세계, 타자에 대한 이해,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정, 그리고 신에 대한 이해를 담아낸다고 나는 본다. 나는 사람이 각기 지니고 있는 그 시선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시선이란 쓰여 진 언어나 말해지는 언어체계를 넘어서서 그 사람의 이 .. 2015. 12. 10.
누가 당신에게 누구냐고 물으면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8) 누가 당신에게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돌파 속에서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모든 활동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돌파 속에서 나는 모든 피조물을 능가합니다. 돌파 속에서 나는 피조물도 하나님도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있던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 앞으로 영원히 있을 나입니다. 어느 젊은 여자가 수도원의 대문을 두드리며 엑카르트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문지기가 물었다. “누구라고 전해 드릴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어째서 그걸 모른단 말이오?” “저는 소녀도 아니요, 아줌마도 아니요, 남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인도 아니고, 미망인도 아니고, 처녀도 아니며, 또 신사도 아니고, 하녀도 아니고, .. 2015. 12. 8.
이가봇의 어머니, 비극의 시대를 통찰하다(1)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8) 이가봇의 어머니, 비극의 시대를 통찰하다(1) 1. “이가봇의 어머니.” 우리는 비극적인 시대를 살다간 한 여인, 한 슬픈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 한다. 누구보다 예리하게 시대적 상황을 파악하고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던 여인. 어리석고 탐욕스런 남자들이 제 멋대로 주도하다 결국 망쳐놓은 비극적 상황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바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던, 그러다 몰락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사라져야 했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2. 사무엘상 2장에서 7장까지는, 당시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리던 막강한 엘리 가문이 어떻게 삽시간에 멸망하고, 에브라임 산지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 그의 어머니 한나가 성전에 의탁한 사무엘이 어떻게 이스라엘 역사.. 2015. 12. 6.
주님은 그저 신기루입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5) 주님은 그저 신기루입니다 “나의 고통(苦痛)이 계속(繼續)하며 상처(傷處)가 중(重)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찜이니이까 주(主)께서는 내게 대(對)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예레미야 15:18). 주님 앞에 진솔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숨김없이 털어놓은 것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주님을 ‘사람의 마음을 통찰하시는 분’ ‘사람 속을 꿰뚫어 보시는 분’이라 고백을 하면서도, 그분 앞에 솔직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앞에 때로는 충분히 정직하지 않은 말로, 때로는 일부러 말하지 않음으로 마음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는 한다. 그날의 새벽기도를 잊지 못한다. 단강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였으니 오래 전.. 2015. 12. 4.
도리어 애틋한 시작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6)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 2015. 11. 30.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4) 가뭄 끝은 있다고 말하지만 “가뭄에 대(對)하여 예레미야에게 임(臨)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城門)의 무리가 곤비(困憊)하여 땅에 앉아 애통(哀痛)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貴人)들은 자기(自己) 사환(使喚)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地面)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者)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 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豺狼)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예레미야 14:1-6).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2015. 11. 27.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37) 하나님을 자기 종처럼 부려먹으려는 사람들 내가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아무리 투명하고 치밀하다 해도, 그것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방법 없는 방법, 존재 없는 존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떠한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은 많다. 종교적 교리도 있고, 철학적 논증도 있고, 명상이나 기도, 금식, 참회, 고행 같은 수행의 방법들도 있다. 물론 이런 방법들이 하나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알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어떤 하나의 공경 방법이나 이 방법, 저.. 2015. 11. 26.
하나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세상에서 꽃자리의 종횡서해(18) 하나님을 창밖으로 내던져버린 세상에서 이름 석 자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있지요. 그의 이름 속에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경우입니다. 제게는 ‘홍순관’이라는 이름이 그렇습니다. 이름 뒤에 그 무슨 호칭이나 설명을 따로 붙이지 않아도 이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홍순관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가 걷는 길과, 품은 꿈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애정과, 그러면서도 지금의 자신이 맞는지에 대한 아픈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홍순관이라는 이름 뒤에 집사라는 호칭을 붙입니다. 집사라는 호칭으로 교회라는 틀 안에 묶어두려는 마음에서가 아닙니다. 행여 집사.. 2015.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