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76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 40여 일 동안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고 온 지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꼭 필요하다 싶어 챙긴 짐들 중에서 중간에 버린 물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걷는 것이 워낙 힘들다보니 버릴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버리게 되더라는 것이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단다. 눈썹도 짐이 된다니, 눈썹에 무슨 무게가 있다는 것일까 싶다. 눈썹이 없는 사람도 없지만 눈썹의 무게를 느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눈썹이라는 말과 무게라는 말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백 리만 걸으면 눈썹조차 무겁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눈썹도 먼 길을 걸으면 느낌이 달라지는 모양이다. 천리 길에는 눈썹도 짐이 된다는 것은, 먼 길을 나설 때는 눈썹조차도 빼놓고 가라는 뜻이다. ‘눈썹조차도’라.. 2016. 3. 10.
종교, “너나 잘 하세요!”(1) 종교, “너나 잘 하세요!”(1) 편집자 주/이 대담은 ‘스님 목사 신부의 대화 다섯 마당’이라는 부제가 붙은 《잡설》책에 실린 내용으로 ‘종교’를 테마로 다섯 분(김기석/청파교회 목사, 김민웅/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인국/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 도법/조계종 화쟁위원장, 오강남/종교학자)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김민웅 오늘은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종교가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진단을 하고, 어디가 돌파 지점인가를 고민하는 그런 자립니다. 각자가 종교를 대표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 이야기든 타종교 이야기든 다양하게 풀어보면 좋겠습니다. 김인국 한국의 종교 현실에 대해서는 ‘친절한 금자 씨’가 이미 결론을 내렸어요. “너나 잘 하세요!”라고. 누.. 2016. 3. 9.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자로 사랑을 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지금이야 대부분 미터법을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치(寸), 자(尺), 척(尺) 등 지금과는 다른 단위를 썼다. 거리를 재는 방법도 달라져서 요즘은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도 기계를 통해 대번 거리를 알아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측정법이 좋아져도 잴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있다. 하늘의 높이나 크기를 누가 잴 수 있을까. 바라볼 뿐 감히 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자기 손에 자 하나 들었다고 함부로 하늘을 재고 그 크기가 얼마라고 자신 있게 떠벌리는 종교인들이 더러 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잴 수가 없다. 기쁨과 슬픔 등 사람의 마음을 무엇으로 잴 수가 있겠는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잴.. 2016. 3. 8.
날마다 ‘시작하는’ 자의 영혼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6) 날마다 ‘시작하는’ 자의 영혼 누가가 말하는 ‘아이’는 맑은 공기와 같은 것, 티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이 영혼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이와 같이 영혼이 순결하고 티가 없어야 합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로렌츠 마티가 자기의 영적 스승 칼프리트 뒤어크하임 백작의 집을 찾아갔을 때, 백작은 이미 팔순의 나이인데다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로렌츠는 자기 스승에게, 높으신 연세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다네.” 백작이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인간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본질과 하나가 되려고 아무리 머리 터지도록 애를 써 봐도, 인간은 언제.. 2016. 3. 7.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동네 한복판에 있었다. 지리적으로 한 가운데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우물은 만남의 장소였고 대화의 장소였다. 우물이 있어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한 식구와 같은 ‘우리’가 될 수 있었다. ‘남’이 따로 없었다. 우물은 그렇게 마을을 형성하는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물에다 똥을 누다니,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우물에다 똥을 눈다는 말인가? 누군가를 골려주려고 그랬을 수도 있고, 대판 싸운 집이 있어 분한 마음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은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고 말한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재미있고, 통.. 2016. 3. 4.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3)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손석춘 선생님,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경칩에서 춘분을 향해가는 이즈음 봄기운을 잘 타고 계신지요? 며칠 전 저는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들어 잔뜩 옹송그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몸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매일 물이 오르고 있는 산수유나무와 개나리와 눈맞춤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흘낏흘낏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잠포록한 날씨 탓인지 제가 늘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는 삼각산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크레인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무엇인가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 2016. 3. 1.
너희를 껍데기로 만들겠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7) 너희를 껍데기로 만들겠다 “내가 그들 중(中)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新郞)의 소리와 신부(新婦)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燈)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荒廢)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七十年) 동안 바벨론 왕(王)을 섬기리라”(예레미야 25:10-11). 신혼 초의 일이다. 부엌을 지나가다 창문가에 유리잔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키의 파란 싹들이 아우성을 치듯 앙증맞게 담겨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콩나물이라 했다. 반찬을 하면서 콩나물을 한 움큼 꽂아둔 것이었다. 콩나물이 빛을 쬐니 화초처럼 파랗게 바뀐 것이었다. 며칠 뒤였다. 싹이 담긴 유리잔에 물이 거반 줄어 있었다. 얼른 물을.. 2016. 2. 29.
‘자비’보다 ‘무심’(無心)이 낫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5) ‘자비’보다 ‘무심’(無心)이 낫다 나는 무심(無心)을 자비보다 더 차원 높은 것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동료의 결핍을 향해 밖으로 나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심은 이러한 마음의 혼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모든 덕들을 살펴보건대, 무심만큼 하나님께 도움이 되는 덕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랜 전에 믿음이 깊은 성인이 있었다. 그는 매우 거룩한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성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성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자기 주위에 사랑의 향기를 퍼뜨렸다... 2016. 2. 25.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2016.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