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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믿음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13) 행동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믿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하느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말이다. 그 때 나는 ‘너와 나’라는 문구에서 ‘와’가 하느님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영어로 보면, ‘You and Me(너와 나)’에서 ‘and’ 같은 존재가 하느님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영원과 순간을 연결해주는 고리로서 하느님이 의미 있다고 답변했다. 철저히 존재론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있다. 어떤 개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존재의 유무에 집착하여 자신들이 믿는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마련해야 안심이 되는 이들이다. 가치로서 또는 관계성으로서 가 아니라 개체성을.. 2017. 8. 7.
가혹한 현실과 믿음 사이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5) 가혹한 현실과 믿음 사이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전도서 3:16, 새번역). 공의와 정의 실행으로 억울함이 없어야할 법정에서 조차 악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발설한 코헬렛(전도자)의 이 말, 통탄할 일이다. 만연된 불의를 짚어낸 말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가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관찰하고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고 통찰해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코헬렛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정직하게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예언자들처럼 시대의 악을 고발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간결한 말의 세계를 음미하다보면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2017. 8. 5.
작은 표지판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9) 작은 표지판 진부령 정상에서 용대리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했다. 아직 세상이 눈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길, 그런 길을 혼자 걷는 즐거움을 어느 누가 흔하게 누릴까. 오가는 차도 드물뿐더러 길도 내리막길어서 나도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제법 걸어 내려왔다 싶을 때 저만치 앞쪽으로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기암괴석이 질주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용대리(龍垈里)라는 지명이 바로 저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용 용’(龍) 자에 ‘터 대’(垈) 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암괴석은 영락없이 용의 등 비늘을 빼닮았다. 용의 등 비늘을 닮았지 싶은 바위가 산등성이를 내달리고 있.. 2017. 8. 4.
왜 걸어요?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 2017. 7. 31.
오래 걸으니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7) 오래 걸으니 오래 걸으니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걷기 전에는 몰랐고, 알았다 해도 희미한 것들이었다. 내 발이 비로소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문득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 발이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느낌은, 그동안 내 땅에 발 딛고 살면서도 내 발이 충분히 현실에 닿지 못했다는, 허공을 딛듯 현실과 거리감을 두고 살아왔다는,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어설프고 어색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낯설고 새로웠다. 오래 걸으니 어느 순간부터 땅이 내 발을 붙잡는 것 같았다. 속도에 대한 느낌도 새로웠다. 걸어보니 이게 맞는 속도구나 싶었다. 풀이 자라는 속도, 꽃이 피어나는 속도, 바람이 지나가는 속도, 곡식이 자라는 속도, 나비와 잠자리가.. 2017. 7. 29.
할머니 민박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6) 할머니 민박 폭우가 쏟아지는 진부령을 걸어 오르다 만난 두 사람의 웃음이 선하다. 부부지 싶은 두 사람은 우비를 입은 채로 버스 정류장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그들 옆에 서 있는 두 대의 자전거, 필시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서 길을 나섰다가 생각지 않았던 폭우를 만나 버스 정류장으로 피한 것이리라. 여전히 비를 맞으며 그 앞을 지나가자 두 사람은 빙긋 나를 보고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안다. 나도 두 사람을 향해 빙긋 웃었다. 두 사람도 내 웃음의 의미를 알았으리라. 때로는 말로 하지 않아도 웃음 하나로도 나눌 수 있는 고마운 마음들이 있다. 다녀보니 숨어 있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았다. 모르고 있는 아름다운 마음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마.. 2017. 7. 27.
몇 가지 다짐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5) 몇 가지 다짐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다. 걸으면서 지킬 몇 가지 원칙을 미리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첫째, 잠은 허름한 곳에서 잔다.둘째, 밥은 최소한의 것을 먹는다.셋째, 꽃 한 송이, 풀잎 하나 꺾지 않는다.넷째,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킨 것이 두 가지 있다. 그 중 지키기 쉬웠던 것은 네 번째 다짐이었다. 버려져 있는 쓰레기를 줍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다니면서 내가 버리지는 말아야지 했다. 배낭 밖에 있는 주머니에 까만 비닐봉지를 하나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 담았다가 숙소에 들어가면 봉지를 비웠다. 당연한 일인데도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또 하나 잘.. 2017. 7. 25.
행복한 육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4) 행복한 육군 자주 혹은 정기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따금씩 기회가 될 때면 함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다. 로드맵을 만들어주신 뒤 그 길을 잘 걷고 있는지,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만난 건 아닌지 누구보다 걱정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첫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들어 장로님께 소식을 전했더니 장로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주무시면서 꾀를 내세요. 응원군을 불러 물도 간식도 챙기고 잠자리를 구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꾑니다. 걷는 것 이상으로 그런 일이 더 힘든 겁니다. 육군 행군 훈련은 먹고 자는 것은 지원부대가 따로 해주기 때문에 걷기만 하면 됩니다. 해병대는 그것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해병대에서 육군으로 소속변경하시는 것을 강추!! 저만 알고 있을게요... 2017. 7. 23.
“한국은 왕조사회다” “한국은 왕조사회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갑질의 향연만 반복된다. 갑질…, 결국 그건 ‘왕질’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지적하는 저자는 우리 사회의 왕조적인 모습을 이렇게 풀어간다. “우리의 공화정 도입이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발적 행위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순식간에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서구 사회가 프랑스 혁명(1789~1794)이라는, 시민의 힘으로 왕정을 종식시킨, 역사적 경험을 소유한 것에 반해, 우리는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강대국이 주도한 세계 체제 재편 과정의 하나로 타력에 의해 공화제가 시작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전히 우리 사회 대부분의 마인드와 에토스는 임금을 모시던 때의 역사적 경험과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2017.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