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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한 알과 물 한 잔 2019. 2. 26.
전투와 전쟁 하루 한 생각(57) 전투와 전쟁 논쟁을 일삼는 수도자들을 꾸짖으며 수도원장은 말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것과 같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이겨도 지는 것이다. 더 소중한 것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전투에서 이기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전쟁의 승패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눈앞의 전투를 이기는 데만 급급하다. 원수가 같은 배에 탔다고 배에 구멍을 낼 수는 없다. 그랬다간 모두가 죽는다. 그런데도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 배에 구멍을 내는 이들이 있으니 딱하다.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기가 막힌 패배! -한희철 목사 2019. 2. 26.
어느 날의 기도 2019. 2. 25.
꿈꾸는 씨앗 하루 한 생각(55) 꿈꾸는 씨앗 1985년이었으니 얼추 35년 전의 일이다. 정릉에서 멀지 않은 미아중앙교회에서 1년간 교육전도사로 지낸 적이 있다. 토요모임에 모이는 학생들에게 매주 한 편씩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콘크리트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라는 망치를 들기로 했다. 워낙 벽이 두꺼워 아무 일도 없을지, 소리만 낼지, 그러다가 금이 갈지, 무너질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이다 싶었다. 아마도 동화를 그 중 많이 썼던 시기는 그 때일 것이다. 내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땐 동화를 썼으니까. 정릉교회 목양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면 사방이 아파트다. 병풍도 저런 병풍이 없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만 해도 북한산이 눈앞에 선명했고, 봄이 되면 붉은 진달래로 눈이.. 2019. 2. 22.
상상력과 사랑 하루 한 생각(53) 상상력과 사랑 우리가 보는 달은 달의 한쪽 얼굴뿐이라 한다. 달의 자전시간과 공전시간이 지구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상에, 지금까지 인간이 본 달이 달의 한쪽 얼굴뿐이었다니! 중국 우주선 창어4호가 달의 뒷면에 내렸다.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한다. 달의 이면이 미답의 땅으로 남았던 것은 통신 문제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지구와의 통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난제를 극복한 중국의 과학 발전이 놀랍게 여겨진다. 통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췌치아오라는 위성을 발사했고, 그 위성이 지상 관제소와 창어4호 사이의 통신을 중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달의 이면에 발을 디딘 것이 어디 과학의 발전뿐이었을까? 그런 성과를 얻은 데에는 과학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있.. 2019. 2. 21.
무시하기 하루 한 생각(54) 무시하기 죽어가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 위해 가시던 예수님의 발걸음은 멈춰 서고 만다.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옷자락을 붙잡았고, 순간 능력이 빠져나간 것을 몸으로 안 예수님이 옷에 손을 댄 여인을 찾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전해진 소식이 있었으니,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딸이 죽었으니 더 이상 수고할 필요가 없어지고 만 것이었다. 더 이상 수고할 필요가 없다는, 오실 필요가 없다는 말을 곁에서 들은 예수님은 그런 말을 듣고 절망에 빠졌을 회당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곁에서 듣다’는 말 속엔 염두에 두어야 할 뜻이 담겨 있다. ‘들어 넘기다, 무시하다, 묵살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했다. 딸이 죽었으.. 2019. 2. 21.
어떠면 어떠냐고 하루 한 생각(52) 어떠면 어떠냐고 날이 흐리거나 마음이 흐리면 촛불을 켠다. 촛불은 어둑함과 눅눅함을 아울러 지운다. 겨울이 다 가도록 드물던 눈이 새벽부터 내리던 날, 책상 위에 촛불을 밝혔다. 사방 나무들이 울창하게 선, 촛불을 켜면 숲을 비추는 달빛처럼 빛이 은은한 불빛이 얼마간 타다가 꺼지고 말았다. 초가 다 탄 것이었다. 초를 바꾸기 위해 다 탄 초를 꺼내보니 형체가 기이하다. 이리저리 뒤틀려 처음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다 탄 초가 넌지시 말한다. 끝까지 빛이었으면 됐지 남은 모양이 어떠면 어떠냐고. -한희철 목사 2019. 2. 20.
기투와 비상 하루 한 생각(51) 기투와 비상 쏟아진다. 막힘없이 쏟아져 내린다. 급전직하(急轉直下), 아찔한 곤두박질이다. 목양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보면 뭔가가 창밖으로 쏟아질 때가 있다. 따로 눈길을 주지 않아도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잠깐의 흐름이 창문을 통해 전해지기 때문이다. 빛인지 그림자인지 분간하기는 힘들지만, 폭포수가 떨어지듯 뭔가 빗금을 긋고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빗금을 따라가면 어김없이 그 끝에 참새들이 있다. 비단 떨어질 때만이 아니다. 솟아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빛인지 그림자인지가 수직상승을 한다. 그것은 위로 긋는 빗금이어서 잠깐 사이에 창문에서 사라진다. 참새들이다. 목양실은 2층에 있어 바로 위가 옥상이고, 아래층엔 긴 담벼락과 소나무가 있다. 옥상에 있던 참새들이 .. 2019. 2. 17.
먹먹함 하루 한 생각(50) 먹먹함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상영하는 곳이 많지 않아 극장을 찾는 수고를 해야 했다. ‘먹먹하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옆에 앉은 여자는 어느 순간부턴가 내내 울면서 영화를 봤다. 여자의 훌쩍임이 화면과 섞여 먹먹함을 더하게 했다. 영화를 보고 나와 승강기를 기다릴 때였다. “뭘 먹을까?” 데이트를 하지 싶은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을 때, 여자가 대답을 했다. “저녁을 먹는 것도 사치인 것 같아.” 도무지 허구 같아서 먹먹한. 그런데도 허구가 아니라서 더 먹먹한. -한희철 목사 2019. 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