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76 뿔 솟은 모세?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9) 뿔 솟은 모세? 로마에 있는 일명 쇠사슬교회라 불리는 산 피에트르 인빈콜리 성당 안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상이 있다.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고 왼쪽 위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힘줄이 튀어나온 팔과 다리의 근육, 긴 수염에 곱슬머리. 그런데 머리에 뿔 두 개가 솟아 잇는 것이 처음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다. 조각가가 모세의 머리에 뿔을 조각해 넣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역의 출애굽기 34장 29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들 설명한다. 우리말 번역의 , 과 은 모세가 증거판 돌을 가지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났다”(개역),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개역개정), “얼굴의 .. 2019. 5. 9. 나는 누구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나는 누구일까? 큰 딸 소리가 다시 독일로 돌아갈 날이 가까이 오면서 함께 연극을 보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정릉에서 대학로는 버스 한 번만 타면 되는 가까운 거리,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와 소리가 정한 연극이 , 나는 처음 듣는 제목이었다. 요즘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했던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좌석이 매진이었고, 좌석을 따로 지정하지를 않아 줄을 선 순서대로 입장을 해야 했다. 무대는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 평범한 의자들이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공사장에서 쓰는 듯한 둥근 쇠파이프가 울타리처럼 둘러쳐 있었다. 설치된 무대만 봐서는 연극이 무척 단조롭거나 지루할 것처럼 여겨졌다. 연극의 상황은 단순했고 .. 2019. 5. 9. 5월의 능선에서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5월의 능선에서 우리에게 5월은 유난히 격동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필 5월인가 싶은 질문을 굳이 던져본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그런 계절의 지점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 때를 그냥 보내면 여름이 다가오고, 그러다보면 무언가 계기를 잡아내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5월은 그런 점에서 어떤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는 경계선에 있는 듯 하다. 이런 느낌은 달리 말하자면, 초조감과 통한다. 이후의 시간은 너무나 쏜살같이 흘러서 그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연말의 지점에 자신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마땅한 결실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또다시 새롭게 오는 일년에 기대를 걸 수밖에.. 2019. 5. 9. 씨앗과 같은 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씨앗과 같은 말 마음에 떨어져 씨앗처럼 남은 말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느꼈으면 싶어 논농사를 시작하던 해, 논에 물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병철 씨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돼요.” 마을 사람들이 거반 다 나와 강가 너른 밭에서 일하던 날이었다. 아예 솥을 가지고 나와 강둑에서 밥을 짓는 김영옥 집사님께 일일이 짐을 다 옮겨야 했으니 고생이 많았겠다고 인사를 했을 때, 예전에는 물이 맑아 강물을 길어 밥을 지었는데 이젠 어림도 없게 되었다며 툭 한 마디를 했다. “다 씨어(씻어) 먹어두, 물은 못 씨어 먹는 법인데유.”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된다는, 어떤 것이든 물로 씻으면 되지만 물이 더러워지.. 2019. 5. 8.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독자적인 몇 개의 낱말들이 서로 모여 구(句 phrase)나 절(節 clause)을 형성할 때 각 개별 단어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결합된 낱말들이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뜻을 우리는 숙어(熟語) 혹은 관용구(慣用句)라고 한다. 이러한 특수 표현의 형성은 언어마다 다르다. 같은 언어라고 하더라도 시대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뜻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용적 표현이 축자(逐字) 번역이 될 때에는 그 의미를 옮기지는 못한다. 한 언어의 관용적 표현에 대한 의미론적 연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기도 한다.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들은 번역된 성서 중에서 직역의 경.. 2019. 5. 8. 그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9) 그냥 후둑후둑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흙집 흙벽 떨어지듯 견고하다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다. 태연하던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어디에도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미동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손을 휘저어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음악도, 책도, 커피도, 세상 풍경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한 순간 내가 낯설고 세상이 낯설다. 모래알 구르듯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도록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내 향방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지도,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미끄러지.. 2019. 5. 8. 50밀리미터 렌즈처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7) 50밀리미터 렌즈처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송진규 선생님이 있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살며 강원도의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이시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모습 속에는 강원도의 이미지가 담겨 있지 싶다. 원주에 있는 육민관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교장으로 은퇴를 하신 뒤, 지금은 고향 호저에서 살고 계시다. 어느 핸가는 동네 이장 일을 보았다고도 들었다. 이장이라는 직함도 잘 어울리신다 싶었다. 선생님의 성품과 삶과 글과 사진을 나는 두루 좋아한다. 언젠가 선생님께 들은 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은 50mm 렌즈로만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50mm 렌즈가 사람의 눈에 가장 가깝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자.. 2019. 5. 7.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6)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 “악마가 영혼을 거칠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반대로 영혼을 과도하게 섬세하게 하는 데 주력한다. 그리하여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은 ‘죄가 없는 곳에서도’ 끊임없이 모든 것을 죄로 보고, 결국 자기 자신을 스스로 참소(讒訴)한다.” 예수회의 창시자 로욜라가 한 말이다. 내면을 성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영혼의 방에 등불을 밝힌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 너무나 섬세해진 영혼은 섬세해진 자신을 과신하여 정작 바라보아야 할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2019. 5. 6. 빛을 바라본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5) 빛을 바라본다면 가만 보니 창가에 놓아둔 화초의 여린 줄기들이 한 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 연습을 한 싱크로나이즈 선수들이 보이는 팔이나 발동작 같다. 우리는 하나, 모두가 같은 마음이랍니다, 작은 목소리 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유리창 쪽을 향하고 있었다. 모두가 빛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면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빛을 바라본다면 같은 빛 안에서 하나인 것이었다. 2019. 5. 5. 이전 1 ··· 184 185 186 187 188 189 190 ··· 29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