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배운 게 있잖아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6) 배운 게 있잖아요 “저 경림이예요.” 뜻밖의 전화였지만,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지는 대번 알았다. 이름과 목소리 안에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가 되어 경림이는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인우재로 올라왔다. 함께 동행한 둘째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 웃음이 나왔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단강에 들어왔을 때,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단다.” 그렇다, 경림이는 단강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만난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열심히 교회에 나왔고, 고등학교 때 이미 교회학교 교사를 했었다. 유아교육을 공부한 뒤엔 자기도 고향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며 단강교회에서 하는 ‘햇살놀이방’ 교사 일을 맡기도 했었다... 2020. 5. 18.
기도이자 설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5) 기도이자 설교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자, 세상을 향한 설교입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의 소리를 향해 순례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마틴 슐레스케의 에 나오는 한 구절은 그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군더더기를 버린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겸손해지거나 단출해진다. 우리의 삶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말과 삶이 곧 세상을 향한 설교라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한다. 기도와 설교가 일상과 구별된 자리와 시간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많은 순간 무의미하거나 비루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곧 기도이자 설교라는 말은 그 말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짧은 한 문장 안에서 일어나는 공명이 맑고 길다. 서로 다른 현이 깊은 화음.. 2020. 5. 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4)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도리보다는 실리가 앞서는 세상이다. 유익보다는 이익이 우선인 세상이다. 많은 일들이 마땅하다는 듯이 진행된다. 하도 점잖게 이루어져 그걸 낯설게 여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경박(輕薄)하고 부박(浮薄)한 세상이다. 비 때문일까, 낡은 책에 담긴 이행의 시구가 마음에 닿는다. "우연히 아름다운 약속 지켜 즐겁게 참된 경지를 깨닫네 사람이 좋으면 추한 물건이 없고 땅이 아름다우면 놀라운 시구도 짓기 어려워라" "한평생 얻고 잃는 게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유유히 웃어넘기곤 묻지를 않으려네" 2020. 5. 16.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3) 다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남겨 두기로 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편안한 일인가. 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갖지 못할 것을 인정하며 비워두기로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넉넉한 일인가. 다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로 못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침묵하기로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푸근한 일인가. 다 가보려 하지 않는다. 가닿을 수 없는 미답의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늑한 일인가. 2020. 5. 15.
때로 복음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2) 때로 복음은 어릴 적에 귀를 앓은 적이 있고, 그 일은 중이염으로 남았다. 의학적으로 맞는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동네 철둑너머에 있는 저수지를 찾아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 뜨거워진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물기를 말렸던 기억들이 있다. 하필이면 군생활을 한 곳이 105mm포대, 싫도록 포를 쏘기도 했으니 귀에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왼쪽 고막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고, 드물지만 귀에서 물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일주일 가까이 귀에서 물이 나온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일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정작 걱정이 되는 증세는 따로 있다. 양쪽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마치 솜으로 양.. 2020. 5. 14.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1)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리 속담 중에는 신앙과 관련이 있는 속담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신앙적인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다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콩 심은데 콩 나고, 밭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그렇다.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팥 심어 놓고 팥 안 날까 안달을 하는 것도 신앙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피와 쭉정이는 제가 제일인 양 삐쭉 고개를 쳐들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인격과 신앙이 익는 만큼 겸손도 따라서 익는다. 잘 익은 과일이 그렇듯이 그의 삶을 통해서는 향기가 전해진다. 신앙과 연관이 있다 여겨지는 속담 중의 하나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이다. 빈 수레일수록 삐거.. 2020. 5. 13.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0) 독주를 독주이게 하는 것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유튜브 영상을 통해 듣는다. 듣는다 생각했지만 실은 보고 듣는다. 연주와 함께 연주자와 지휘자 혹은 청중의 표정을 대하면, 소리만 듣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느끼게 된다. 연주 현장에 있다는 느낌까지는 아니더라도, 호흡을 같이 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고 마침내 지휘자 옆에 서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던 바이올린 솔리스트가 연주를 시작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들을 때면 공통적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문득 눈보라가 치는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 위에 서 있는 듯하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한다면 작곡가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다.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2020. 5. 12.
말로 하지 않아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9) 말로 하지 않아도 비가 오는 토요일, 교우와 점심을 먹고 예배당으로 돌아올 때였다. 예배당 초입 담장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둔 화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무실 간사인 장 집사님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화분 아래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자 화분마다 물이 차는데, 그러면 꽃의 뿌리가 썩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구멍이 두 개가 나 있지만 화분의 흙이 구멍을 막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화분에는 구멍을 뚫을 자리가 몇 개 더 있다면서 일일이 송곳으로 화분 아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많이 갈 텐데요.” 우비를.. 2020. 5. 11.
700일이 넘었어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8) 700일이 넘었어도 지난 6일은 친구가 이 땅을 떠난 날이었다. 그가 살던 미국의 시간으로 하면 5월 5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아이처럼 살다가 아이처럼 떠난 것이었다. 하긴, 살아 있을 적에도 그는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고,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를 좋아했었다. ‘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이 아프다. 1주기 때에는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기로 했다. 시간이 그만큼 더 흘러서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춰선 이 때, 굳이 모이는 것을 친구도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 집에서 찍은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을 꺼내본다. 1978년 서울 냉천동 .. 2020. 5.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