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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한희철의 얘기마을(1)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따뜻한 봄볕이 좋아 소리와 규민이를 데리고 앞개울로 나갔다. 개울로 나가보니 버들개지도 벌써 피었고, 돌미나리의 새순도 돋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밭둑에 어느새 풀들이 쑥 자라 있었다. 개울물 소리 또한 가벼운 몸짓의 새들과 어울려 한결 명랑했다.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개울 속에는 다슬기들이 제법 나와 있었다. 다슬기를 잡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둑을 지나다보니 웬 시커먼 덩이들이 군데군데 논물 안에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개구리 알이었다. “저게 뭔지 아니?” “몰라요.” “개구리 알이야, 저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는 거야.” 소리와 규민이가 신기한 눈빛으로 개구리 알들을 쳐다본다. “올챙이가 커서 뭐가 되는지 아니?” “개구리요.” 책에.. 2020. 6. 17.
같은 말이라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2) 같은 말이라도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의미와 무게는 달라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만 존재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와 사람을 향한 의로운 행동에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말이다. 그의 말이기에 위의 말은 더 큰 의미와 무게를 갖는다. 2020. 6. 13.
말과 말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1) 말과 말씀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빛으로 바꾼 한 말씀도 있지만, 빛을 혼돈과 공허와 어둠으로 바꾼 한 마디 말은 얼마나 많을까. 2020. 6. 12.
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10) 모든 순간은 선물이다 하루 종일 일하며 흘린 땀 때문이었을까, 인우재에서 보내는 두 번째 밤, 자다가 말고 목이 말라 일어났다. 잠을 자다가 물을 마시는 일은 좀체 드문 일이었다. 물을 마시며 보니 창밖으로 달빛이 훤하다. 다시 방으로 들어오는 대신 툇마루에 앉았다.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 한 새벽이다. 보름이 지난 것인지 보름을 향해 가는 것인지 하늘엔 둥근 달이 무심하게 떠 있다. 분명 대지를 감싸는 이 빛은 달일 터, 그런데도 달은 딴청을 부리듯 은은할 뿐이다. 어찌 이 빛을 쏟아놓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눈부시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 이런 빛의 근원이 있구나 싶다. 그런 달을 연모하는 것인지 별 하나가 달에 가깝다. 누가 먼저 불러 누가 대답을 하.. 2020. 6. 11.
사랑과 무관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9) 사랑과 무관심 한 사람이 약국을 찾아와 말했다. “내 아들에게 먹일 비타민을 사고 싶은데요.” “비타민 A, B, C 중에서 어떤 것을 드릴까요?” 약사가 묻자 그가 대답했다. “아무 거라도 상관없어요. 제 아이는 아직 어려 글을 읽을 줄 모르거든요.” 사랑과 무관심은 그렇게 다르다. 비타민을 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사랑이다. 2020. 6. 10.
사라진 울음소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8) 사라진 울음소리 또 하나의 땅 끝, 해남을 다녀왔다. 먼 길이지만 권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길이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해남으로 내려가게 된 권사님이 있었다. 이사를 앞두고 기도를 하며, 시간을 내어 찾아뵙겠다고 인사를 한 터였다. 심방 이야기를 들은 원로 장로님 내외분이 동행을 했고, 권사님 한 분이 운전을 자청했다. 먼 길 끝에서 만나는 만남은 언제라도 반갑고 고맙다. 권사님이 새로 정착한 집을 방문하여 예배를 드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흔히 말하는 ‘이력’(履歷)의 ‘履’가 신발, 한 사람이 신발을 신고 지내온 길이라는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권사님이 걸어온 이력을 듣는 시간이었다. 큰 아들로 태어나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집에 양자로 들어가야.. 2020. 6. 9.
증오라는 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7) 증오라는 힘 때로는 증오도 힘이 된다. 좌절이나 체념보다는 훨씬 큰, 살아갈 힘이 된다. 하지만 증오는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한다. 대개는 길을 잃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감정에 갇혀 평생의 시간을 보내지만. 2020. 6. 8.
선인장의 인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6) 선인장의 인사 목양실 책상 한 구석에는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다. 예전에 권사님 한 분과 화원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때 권사님이 사준 화분이다. 권사님은 가게에 둘 양란을 하나 사면서 굳이 내게도 같은 화분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 그런 권사님께 양란 대신 사달라고 한 것이 양란 옆에 있던 선인장이었다. 이내 꽃이 지고 마는 난보다는 가시투성이지만 오래 가는 선인장에 더 마음이 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이 마음에 더 의미를 부여할 것 같았다. 바라볼 때마다 인고를 배울 수 있다면 싶기도 했다. 값 차이 때문이었던지 한동안 양란을 권하던 권사님도 내 생각을 받아주었다. 어느 날 보니 선인장이 새로운 줄기를 뻗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선인.. 2020. 6. 7.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5)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 사람이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어색하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못마땅한, 무표정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했던 일을 안다. 최루탄을 쏘아 사람들을 흩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무릎에 짓눌려 숨졌다. 죽은 이는 흑인 시민이었고, 죽인 이는 백인 경찰이었다. 분노하여 일어선 군중들의 분노를 공감하고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그였다. 갈등과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2020.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