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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저녁볕 2019. 4. 7.
신기한 아이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6) 신기한 아이들 정릉교회에서 갖는 속회지도자 세미나가 있어 아이들과 동행을 했다. 군산에 있는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와 금산교회를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두 곳 교회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함께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거니와, 행사를 마친 후 인근에서 시간을 조금 더 보내려고 차를 따로 가지고 갔다. 고속도로에 전용차선이 있으니 버스는 싱싱 달릴 터, 승용차가 늦을까 싶어 일찍 떠났는데 생각보다 먼저 도착했다. 아펜젤러순교기념교회 마당에는 운동신경이 민첩한 개가 있었다. 공을 척척 막아내는 재주가 남달랐다. 공을 기다리며 취하는 준비 자세는 마치 페널티킥을 막기 위한 골키퍼의 자세와 거반 다를 것이 없었다. 공중 볼이든 땅볼이든 척척 입으로 물어 공을 막아냈다. 다 막아낼 터이니 다시.. 2019. 4. 6.
등에 손만 대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5) 등에 손만 대도 아빠가 맞은 환갑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아이들이 잠시 귀국을 했다. 저렴한 표를 끊는다고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서 왔는데, 덕분에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도착을 했다. 비행기 멀미가 심한 막내는 떠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아무 것도 먹지를 못해 체력까지 바닥이 나 있었다. 쭈뼛쭈뼛 선물로 전하는 시계보다도 2년여 만에 아이들 얼굴 대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 노고단을 올랐다. 숲이 흔할 뿐 산다운 산이 드문 독일에 사는 아이들이기에 우리 산의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하고 싶었다. 얼마 만에 산에 오르는 것일까, 모두의 걸음이 쉽지가 않았다. 돌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때였다. 혼자서 등산을 하던 한 여자가 우리를 보더니 말을.. 2019. 4. 4.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4)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마음이 조금은 평안해지셨어요?” 막 차에 타려는 권사님께 안부를 여쭈었다. 속회 모임을 마치고 속도원들과 점심을 드시러 가는 길이라 했다. 지난주일 목사의 급한 걸음을 알면서도 기도를 부탁할 만큼 권사님은 지금 안팎의 어려움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 이애경 그림 “괜찮아요. 돌아보면 살아온 걸음걸음이 기적 아닌 적 없었거든요.” 권사님의 대답은 단순했다. 차에 타며 권사님이 남긴 가볍고 따뜻한 웃음, 고난은 그렇게 우리를 익어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2019. 4. 4.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3)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뛰어난 이야기꾼 엔소니 드 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어느 신부가 한 부인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빈 성당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이 가고 두 시간이 가도 부인은 아직도 거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신부는 그 부인이 절망에 빠진 영혼이라고 판단하고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다가가서 말했다. 사진/송진규 “제가 어떻게든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오, 감사합니다, 신부님.” 하고 부인은 말했다. “필요한 도움을 모두 받고 있었어요.” 그 말 아래, 두어 줄 떨어진 곳에, 부인이 한 한 마디 말이 더 적혀 있었다. “당신이 중단시키기 전까지는!” 목사인 내가 하는 일이, 목사인 내가 하는 설교가 제발 그런 것이 아니기를! 2019. 4. 2.
거기와 여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2) 거기와 여기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시인 이대흠의 ‘천관’이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시며,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기고,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될 때, 시인은 문득 거기와 여기를 생각한다.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는,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거리와 경계가 우리에겐 있다. 2019. 4. 2.
달 따러 가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1) 달 따러 가자 윤석중 선생님이 만든 ‘달 따러 가자’는 모르지 않던 노래였다. “얘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 가자 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뒷동산에 올라가 무동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지금도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가 있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2절이 있는 줄을 몰랐고, 그랬으니 당연히 2절 가사를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 못한다더라 얘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 달아 드리자” 쉘 실버스타의 달 따는 그물 1절은 2절을 위한 배경이었다. 낭만적으로 재미 삼아 달을 따러 가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장대 들고 망태를 멘다고 어찌 달을 따겠는가만, 달을 따러 가자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밤이.. 2019. 3. 31.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90)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을 얹어 주십시오 며칠간 기도주간을 보내고 돌아와 갖는 새벽기도회, 오랜만에 나누는 말씀이 새롭다. 마가복음서의 순서를 따라 주어진 본문이 8장 22~26절, 벳세다에서 한 눈먼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였다. 두어 가지 생각을 나눴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은 그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따로 데리고 나가신다. 동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고치면 소문이야 금방 멀리 퍼지겠지만, 예수님은 소문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었다. 그를 따로 만나신 것은 그에게 눈을 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고치신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실 때도 마찬가지다.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신다. 집집마다 들러 소문.. 2019. 3. 30.
사랑을 한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샐각(89) 사랑을 한다면 화장실 변기 옆에 시집 몇 권이 있다. 변기에 오래 앉아있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라는데, 잠깐 사이 읽는 한 두 편의 시가, 서너 줄의 문장이 마음에 닿을 때가 있다. 시(詩) 또한 마음의 배설(排泄)이라면, 두 배설은 그럴 듯이 어울리는 것이다. 변기 옆에 놓여 있는 시집 중의 하나가 이다. 이대흠 시집인데, 구수한 사투리며, 농익은 생각이며, 시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의 하나가 ‘성스러운 밤’이었다. 삼십 년 넘게 객지를 떠돌아다니다 갯일에 노가다에 쉰 넘어 제주도에 집 한칸 장만한 홀아비 만수 형님이 칠순의 부모를 모셨는데, 기분이 좋아 술 잔뜩 마시고 새벽녘에 들어오던 날, 그 때까지 도란거리던 노인들이 중늙은이 된 아들놈 잠자리까지 챙겨놔서.. 2019.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