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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병들고 비뚤어진 종교지도자들

by 한종호 2016. 2. 8.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4)

 

병들고 비뚤어진 종교지도자들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夢事)를 얻은 선지자(先知者)는 몽사(夢事)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者)는 성실(誠實)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比較)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磐石)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예레미야 23:28-29).

 

‘사이비’는 어디에나 있다. ‘사이비’(似而非)라는 말은 ‘같을 사’(似)와 ‘아닐 비’(非)를 ‘그러나’라는 뜻을 가진 ‘말 이을 이’(而)가 연결을 하고 있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 사이비다. 그러고 보면 사이비의 중요한 특징은 ‘비슷함’에 있다 하겠다. 분명 가짜인데 진짜와 너무도 비슷하다. 그러기 때문에 구분이 잘 안 된다. 처음부터 확연히 다르다면 누가 사이비에 속아 넘어가겠는가?

 

가을 산에 올랐다가 먹음직한 버섯을 보게 되면 마음이 흥분되며 흔들린다. 분명히 내가 아는 버섯과 비슷하다. 게다가 언젠가 먹어본 적도 있는 것 같다. 산중에서 만난 버섯이니 확실한 자연산, 영양도 좋고 맛도 좋지 않겠는가, 자신도 모르게 손이 나가기가 쉽다.

 

사람을 죽게 만드는 독버섯이라고 그 색깔이 유난스럽게 알록달록하거나 모양이 울퉁불퉁 흉측하여 대번 티가 나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빛깔이며 모양이며 먹는 버섯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이 얌전해 보이는 것들이 적지 않다.

 

사이비 종교도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성령과 성경을 이야기한다. 눈곱만큼의 의심도 자리 잡을 틈이 없는 확고한 믿음을 내세운다. 말씀의 숨은 비밀을 알려주기도 하고, 숨은 계시라도 되는 양 심오한 해석을 들려주기도 한다. 대개는 들어보지 못한 신기하고 오묘한 말들, 지금까지 내가 헛것을 믿었다는 회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예레미야 23장에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실상이 가감 없이 담겨 있다. 병들고 비뚤어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낯부끄러운 모습들이다.

 

 

그들은 양 떼를 죽이고 흩어 버린 목자들이다. 그것도 주님의 목장에서(1절). 예언자도 썩고 제사장도 썩어 성전 안에서조차 악행을 저지른다(11절). 사마리아의 예언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릇된 곳으로 인도한다(13절).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이라고 다르지가 않아 간음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자들을 돕는다. 악행 하는 자들을 도와줌으로 그들이 죄악에서 떠날 수가 없도록 만든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 백성들의 삶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게 되고 만다(14절).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나온 환상을 말할 뿐이다(16절). 주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도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외친다. 너희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말한다(17절).

 

주님께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달려 나가 주님이 하시지도 않은 말을 예언이라며 전한다(21절). 내가 꿈에 보았다, 내가 꿈에 계시를 받았다 주장을 한다(25절). 혼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서로 꿈 이야기를 함으로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이름을 잊어버리도록 계략을 꾸민다(27절).

 

주님의 말씀에 붙잡혀 ‘심장이 속에서 터지고, 모든 뼈가 떨리고, 취한 사람처럼 되고, 포도주에 곯아떨어진 사람처럼 되어버린’(9절) 예레미야만 안쓰러울 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28절).

 

꿈을 꾼 예언자가 꿈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 말을 받은 예언자는 충실하게 내 말만 전하여라. 알곡과 쭉정이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꿈이나 꾸는 예언자는 꿈 이야기나 하여라. 그러나 내 말을 받은 예언자는 내 말을 성실하게 전하여라. 내가 똑똑히 말한다. 검불과 밀알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공동번역>

 

꿈이나 꾸는 너희 예언자들, 계속 그렇게 얼빠진 꿈 이야기나 하고 다녀라. 그러나 나의 메시지를 받은 예언자들은 충실하고 성실하게 그것을 전하여라. 알곡과 쭉정이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느냐? <메시지>

 

거짓 예언자들이 얼빠진 꿈 이야기를 한다 하여도 주님의 메시지를 받은 예언자들은 충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쭉정이와 알곡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니 알곡이 쭉정이 때문에 알곡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 하신다. 그 말로는 부족하다 여기신 것일까, 주님의 말씀은 이어진다.(29절)

 

내 말은 맹렬하게 타는 불이다. 바위를 부수는 망치다.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내 말은 정녕 불같이 타오른다. 망치처럼 바위라도 부순다. 똑똑히 들어라. <공동번역>

 

나의 메시지는 불같지 않느냐? 하나님의 포고다. 바위를 깨부수는 거대한 쇠망치 같지 않느냐? <메시지>

 

마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쭉정이들이 세상을 다 덮는 것 같아도 나는 그들을 한 순간에 다 태우는 불이라고, 가짜 예언자들의 거짓과 위선이 바위처럼 견고해 보인다 하여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단번에 깨부수는 거대한 쇠뭉치라고 말이다.

 

주님의 말씀은 맹렬하게 타는 불이요 바위라도 부수는 쇠망치다. 타지 않을 것이 없고, 깨지지 않을 것이 없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검불과 다를 것이 없는 어리석음일 터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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