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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

때늦은 후회

by 한종호 2016. 1. 26.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2)

 

때늦은 후회

 

 

“바벨론 왕(王)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請)컨대 너는 우리를 위(爲)하여 여호와께 간구(懇求)하라 여호와께서 혹시(或時) 그 모든 기사(奇事)로 우리를 도와 행(行)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예레미야 21:2).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때늦은 후회’라는 것이 있지 싶다. 후회하며 뒤늦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속담도 있고,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아온 물고기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는 말이 아릿하다. H.D. 소로우는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하며 탄식을 하기도 했다.

 

단강에서 목회하며 만난 분 중에 안갑순 집사님이 있다. 머리에는 온통 서리가 내려 하얗게 쇤 할머니지만, 일찍부터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을 만큼 신여성의 삶을 살아왔던 분이다. 언젠가 집사님이 눈물로 들려주던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집사님이 담배를 배운 것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어린 나이 일곱 살 무렵이었다. 뱃속의 충(蟲)을 잡는다며 집안 어른들이 담배를 풀어 끓인 물을 마신 것이 담배를 배우게 된 계기였다.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던 집사님은 시집을 갈 때도 몰래 담배를 챙겨갔다.

 

우연히 며느리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꾸중 대신 아무도 몰래 담배를 전해주었다. 시아버지가 바깥출입을 한 뒤 집사님의 서랍에는 담배 몇 갑이 들어있곤 했다.

 

그렇게 일찍부터 담배를 피워오던 집사님이 어느 날 기적처럼 담배를 끊었다. 하늘에서 환한 빛이 당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꿈을 이틀 연속으로 꾼 뒤 집사님은 스스로 교회를 찾았다. 꿈을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날부터 교회를 나가기 시작, 세례를 받던 날 담배를 끊었다. 끊으려고 작심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좋던 담배가 갑자기 역하게 느껴졌다. 담배 냄새를 맡는 것조차도 견디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담배를 끊은 뒤 집사님이 눈물로 후회한 것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이었다. 딸은 늘 어머니 면전에서 담배를 피웠다. 덕분에 담배 연기도 고스란히 마셨다. 그때만 해도 딸은 몰랐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담배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말이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싫단 말 한 번 안 하시고 그 모든 순간을 참았다는 것을 집사님은 당신이 담배를 끊고서야 뒤늦게 후회함으로 깨닫게 된 것이었다.

 

 

 

 

예레미야 21장은 19-20장에서 다루던 사건들이 일어난 지 10여 년이 지난 후의 일에 해당한다. 정황으로 볼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거느린 군대가 이미 예루살렘을 에워싼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주전 588년의 상황이 될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오래 전부터 예레미야가 예언을 했지만,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불편하게 여겨 외면하였고, 미워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예레미야가 예언한 말이 현실로 다가오자 왕과 백성들은 당황하기 시작한다. 시드기야왕은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청한다.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 기도를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혹시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기사를 행하시면 적들이 떠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싸움을 걸어왔소. 기적을 베푸시어 적을 물리치시고 우리를 건져주십사고 야훼께 빌어주시오.” <공동번역 개정판>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려고 전쟁을 일으켰소.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주시오. 그분께 도움을 청해 주시오. 어쩌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서 그를 물리쳐 주실지 모르니 말이오.” <메시지>

 

기도를 청하기는 하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이 되었다. 결코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었다. 거듭 심판을 경고할 때는 귀를 막고 등을 돌려 무시하더니 막상 심판이 임하자 허겁지겁 도움을 청하는 시드기야왕의 모습 속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때늦은 후회를 기도로 막을 수는 없다. 때늦은 후회를 되돌리는 것이 기도가 아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때늦은 후회가 되고 말 것이다.

 

한희철/동화작가, 성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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